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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명...그리고 무한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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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진우는 처음부터 답이 정해진 질문을 던졌던 거 같다. 희주에게 자신을 믿냐니 그걸 정말 몰라서 물었던 걸까. 그것도 그런 고백을 하고 나서.


1년 전 그라나다에서 희주는 매일을 치열하게 살았지만 꿈은 멀어지고 생계만이 남았었다. 한국을 떠나온 지 12년, 좋은 일은 하나 없었고 부모님마저 돌아가셨다. 아직 못 자란 동생들을 위해 온갖 궂은일을 다했지만 현실은 절망적일 뿐, 어제보다 더 나쁜 오늘과 불투명한 내일만이 이어졌다. 유진우를 만나기 전까지.


비록 그 시작이 온전히 순수하진 못했을지라도 그 순간순간은 매우 눈부셨다. 답이 없던 현실에서 탈출한 해방감, 무조건적으로 가족들을 위해줄 수 있다는 뿌듯함, 되찾은 꿈까지. 그리고 그 순간들에는 유진우가 함께 있었다. 매우 어른스럽고 예의바른 것 같으면서도 의외의 구석에서 엉뚱한, 그러므로 더 신기했던 사람. 이별이 아쉬웠던 반짝이던 사람.


그 사람이 이젠 아슬아슬한 모습으로 희주의 눈앞에 서 있다. 그녀와 너무 닮은꼴 과거를 털어놓으며 그때 자신과 아주 많이 닮은 눈빛을 하고서. 이건 어차피 정해진 결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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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도 지금도 어디로 가야 할 지 변함없이 비참하고 절망적이다. 오히려 더 나빠진 건가. 1년 전엔 옆을 지켜주는 사람이라도 있었지만 이젠 그마저 없으니. 진우의 공포를 이해해주는 이는 없었다. 누구도 볼 수 없고 하지 못 하는 퀘스트를 한다는 건 그런 의미였다. 철저히 혼자여야 했다. 그렇다고 생각했었다. 다시금 달려 와주는 사람을 발견하기 전까진. 타의에 의해 순식간에 파괴된 삶 앞에 함께 울어주고, 그래서 혼자는 아니라고 외로움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는 이를 보기 전까진.


조건 없는 믿음이란 진우의 손에 닿을 듯 닿지 않는 대상이었을 거다. 관계를 형성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그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가치와 능력을 증명하면 되는 바. 다만 그 가치와 소용이 다하면 그 끝 또한 분명하다. 말만 쿨할 뿐 실은 언니 오빠 없이는 울음을 터뜨리는 민주에게서 봤던 그림자는 진우에게 그런 종류였을지 모른다. 과거의 나. 그래서 그에 기대면서도 필요치 않게 될 날을 바랐었지만 어째서인지 늘 요원했었다. 그런데 불가능하리라 자조하면서도 차마 기대까지 버릴 수는 없던 그 믿음이 찾아와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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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어디 가지 말아달라고 그랬다. 그 말이 희주에겐 늘 목에 걸린 가시와도 같았을 거다. 공교롭게도 희주가 잠시잠깐 자리를 비운 새 진우가 사라지는 일과 겹치면서 더.


진우의 말은 어딘가 모호하다. 첫 만남부터 지금까지 그는 희주에게 거짓을 말하진 않으나 사실 전부를 털어놓지도 않는다. 그래서 진의를 살피려면 말이 아니라 눈빛을 읽어야 했다. 그 해석이 맞아떨어진단 보장은 없다. 다만 그래야 희주의 마음이 편해질 따름이었다. 적어도 진우에겐 최악일지 모를 순간에 그를 혼자 남겨두지 않아도 될 테니.


유진우를 만나는 시간이 늘수록 정희주가 확신하게 된 하나는, 그가 홀로 많은 걸 감당한단 거였다. 홀로 지탱하고 홀로 싸우던 끝에 홀로 앓곤 했다. 그라나다로 다시 떠났던 일 역시 진우는 매우 가볍게 갔었다. 희주가 그 위험함을 알게 된 건 이미 떠난 뒤였고 돌아온 진우는 몸도 마음도 크게 다쳐 있었다.


그럼에도 상처를 깊게 살피는 이를 찾긴 힘들었다. 곁에 수많은 사람을 두고도 진우가 늘 다쳐서 나타나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래서 이제 희주는 '또' 어딘가로 갈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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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공간도 누군가와 공유한 경험만으로 그 의미가 새로워질 수 있다. 진우는 그날 그 차 안에서 그런 기분을 느꼈을지 모른다. 몇 시간 전까지 희주를 보며 웃고 설레던 그 곳에서. 무엇을 말하기에도 꺼내놓기에도 여전히 조심스럽다. 하지만 안절부절 못하는 희주 모습이 어깨에 힘을 빼게 한다. 너무 자연스럽게 그녀에게 익숙해지게 한다.


어쩌면 진우 스스로가 생각했던 때보다 너무 일렀을지 모른다. 그 불안을 안고도 함께 설레며 돌아오던 길의 아늑함이 더 크게 느껴진다. 놓을 수가 없다. 해서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나 보다. 그날따라 돌아가면 혼자일 룸이 싫었고 친숙하던 어둠은 유독 낯설었고 만약 지금이 꿈이라면 그 꿈에서 깨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 마음을 희주에게 결국 들켰다. 그뿐 아니라 이 어린 아가씨가 진우를 이겨먹으려 한다. 어안이 벙벙한데 그게 희주 때문인지 기분이 나쁘지 않은 자신 때문인지는. 이 또한 찰나에 지날지 모른다. 유진우 인생에도 따뜻한 순간들이 아주 없진 않았으니 그 온기를 더 갈망했다. 그래도 부디 지금만은 온전해주기를. 아니, 끝까지 지켜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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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그것이 행복이자 불행이고 다시 행복이었을지 모른다. 닮았지만 다르고 또 닮은 두 사람이 서로를 지키는 방식이 비슷한 만큼 달라서, 어떤 하나의 행성이 폭발하기 전까진 계속 그 주변을 맴돌고 맴도는 별과별의 관계와 같았던 건. 떠날 수도 가까이 갈 수도 없는 달과 지구와도 같이, 사랑하면서도 궤도대로 서로의 곁을 맴돌던 건. 그 끝이 오기 전까진.





#참고로 나쪼렙은 이 이야기 해피엔딩이라 생각하니 끄적이는거지 아니었다면..나샛 멘탈이 그리 강하진 못해. 그러지는 않았..겠지만 혹시라도 이 잡글에 놀랐을 쪼렙이 있다면 미리 사과하려고. 굿밤 알모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