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인터뷰 시리즈] 가상일기 by 정세주


2018년 1월 *일

......집으로 돌아온 게 믿어지지 않는다. 내가 기억하는 집은 보니따 호스텔 밖에 없어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여기가 한국이고, 방문만 열면 누나가, 민주가, 할머니가 있다는 게 거짓말 같다. 누나가 여러 번 말했다. 마르코는 죽었고, 마르코가 죽은 건 니 탓이 아니고, 너는 인제 안전하다고. 하지만 밤이면 더 무섭다. 언제건 빗소리가 들리고 마르코가 나타날 거 같다. 다들 잠들고 나면, 할머니가 코고는 소리가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2018년 1월 *일

......유진우가 돌아오지 않는다고, 누나는 수심 가득한 얼굴로 누군가와 자꾸 통화를 한다. 그리고 내게 자꾸 물었다. 너 더 아는 거 없느냐고. 그래서 말했다. 유진우가 게임 내에서 버그로 인식되었으면 죽었을 거라고. 엠마가 천국의 열쇠로 심장을 찔러서 삭제했을 거라고. 그 말을 들은 누나는 백짓장처럼 얼굴이 하얘져서 비틀거리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어나갔다. 누나가 뛰어나가는 걸 본 민주가 들어와 언니 왜 저러느냐고 묻길래 누나에게 한 말을 그대로 했는데, 민주는 엠마가 뭔지 몰라 설명을 해야만 했다. 그러자 민주도 울면서 나한테 바보라고 했다. 그 이야기가 진짜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런 이야기를 언니한테 하면 어쩌냐고. 언니랑 아저씨가 서로 얼마나 좋아하는지 아느냐고. 아저씨는 언니랑 결혼하고 싶어 한다고. 나는, 전혀 몰랐다. 상상도 못했다. 그 유진우랑 누나가 그런 사이일 줄. 민주가 저렇게 친근하게 아저씨라고 부르는 게 그 유진우일줄.



2018년 1월 *일

뛰어나갔던 누나는 성당에서 쓰러져서 상범이 형에게 업혀서 돌아왔다. 누나가 쓰러진 적은 처음이다.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도, 누나는 우리를 끌어안고 울고 또 울었지만 쓰러지지는 않았었다. 의사를 불러다 수액을 꽂아줘도 깨어나기만 하면 주사바늘을 빼고 또 나가버린다. 누나가 어떻게 될까봐, 너무 무섭다.



2018년 2월 *일

누나는 오늘도 성당에 갔다가 파김치가 되어서야 돌아왔다. 할머니가 뭐라도 먹으라 아무리 닦달을 해도 고개만 젓고 자기 방으로 올라가 침대에 그대로 쓰러졌다. 걱정이 되어 누나 방을 살짝 들여다 봤을 때, 베개에 고개를 파묻고 울고 있던 누나가 웅얼거렸다. 왜 하필 엠마야, 하고. 내게 묻는 건 아닌 혼잣말인 거 같았다.


왜, 이렇게 됐을까. 난 게임을 만들면서, 그저 엠마 앞에서는 아무도 못 싸우게 하고 싶었다. 아빠가 돌아가신 후 그라나다에서 사내아이들은 나를 굼뜨고 멍하고, 부모도 없는 외국인이라며 자주 놀렸고, 그러다보면 싸움이 되곤 했다. 내가 싸우면 누나가 불려왔고, 일이 커지면 그 부모들에게 사과를 했다. 걔네가 먼저 놀렸다고 해도 소용없었다. 이제는 안다. 본인도 아직 10대였던 누나가 왜 그럴 수 밖에 없었는지. 우린 거기에서 살아남아야 할 이방인이었으니까. 그러고는 내게도 야단도 치지 않고 그저 미안하다고만 했다. 누나가 왜 미안하냐고 하면 슬픈 눈으로 쳐다보고 꼭 안아주었다. 한참 지나서야 알았다. 우리가 스페인에 온 걸 누나가 미안해하고 있다는 걸. 누나에게 꽃피우지도 못한 기타의 재능이 없었다면 엄마아빠가 이국에서 고생만 하다 그렇게 가버리지 않았을 거라고, 그래서 누나가 나랑 민주에게 미안해하고 있다는 걸. 그게 누구의 탓도 아니었음에도.


하지만 나는 기타를 치는 누나가 제일 좋았다. 제일 예뻤다. 내게 엠마는, 기타를 치는 누나였다. 엠마의 옷도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 누나가 마지막으로 기타 경연대회에 나갔을 때 입었던 의상을 생각하며 만들었다. 그 의상을 준비하며 아빠는 내가 기억하는 한 마지막으로 환하게 웃었다. 하지만 누나는 그 대회에서 상을 받지 못했고, 실망한 아빠는 또 술을 마셨고, 이내 사고로 돌아가셨다. 누나는 기억 못하는 거 같았다. 언젠가 그라나다 거리에서 비슷한 옷을 입은 여자를 보고 내가 저 옷 비슷하다, 라고 했을 때 뭐가? 하고 되물었으니까.


난 그저 엠마 주변을 평화롭게 만들고 싶었다. 엠마에게 부여했던 버그 삭제 기능은, 쓸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저, 자기 잘못도 아닌데 고개를 숙이던 누나가 생각나서, 게임 내에서 뭔가가 잘못된 게 생기면 마음대로 없애버릴 수도 있는 힘을 엠마에게 주고 싶었다. 그게 유진우가 될 거라고는, 정말로 생각도 못했다.



2018년 4월 *일

.....누나는 여전히 매일매일 성당에 간다. 그리고, 나는 이 모든 게 내 탓인 거 같아 여전히 무섭고 무섭다. 누나는 니 탓이 아니라고 해준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집 밖에 나가는 것도,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무섭다.



2018년 6월 *일

내 게임이 조만간 제이원에서 정식으로 출시될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가 이렇게 살 수 있는 것도 유진우가 내 게임을 산 덕분이고, 처음 이유를 알 수 없던 게임의 버그는 유진우가 사라질 무렵의 리셋과 함께 모두 없어졌다고 했다. 불안한 눈으로 누나를 보자 누나는 게임은 이미 우리 게 아니라고 했다. 그 사람도 이걸 원할 거라고 하면서.


지난번에 왔던, 현재 제이원의 대표라는 사람이 연락을 해서, 게임 세부사항과 관련해서 개발팀이 나한테 물어보고 싶은 게 많다고 했다. 누나는 좋은 분이라고, 너만 괜찮다면 도와주라고 했다. 고개를 끄덕이자 이내 최양주라는 사람이 전화를 걸어와 다다다다 이것저것 물어댔다. 대답을 하다 보니 이 게임을 만들면서 내가 얼마나 기대에 차 있었는지, 이걸로 누나를, 식구들을 부자로 만들어줄 수 있을 거 같아 얼마나 두근거렸는지가 기억이 났다. 식구들이나 상범이형 외에 다른 사람이랑 이야기해본 건 정말 오랜만이었는데, 조금, 재미있었다.



2018년 8월 *일

그리고 오늘, 누나랑 민주랑 같이 처음 집 근처 공원에 나갔다. 사람들이 나만 쳐다볼 거 같았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누나가 내일은 마트에 같이 가보자고 했다.



2018년 10월 *일

오늘은 나 혼자 외출을 했다.



2019년 1월 *일

며칠 전 누나가, 제이원에서 나한테 회사를 차려준다고 했다. 앞으로 넥스트 다음 버전을 만드는 데도 내 도움이 필요하다고, 내가 마음껏 연구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어떻게 할까 망설이다가 한다고 했다. 게임 이야기를 하는 건, 게임을 만드는 건 여전히 재미있었으니까. 내가 잘 할 수 있는 건 그것 뿐이었으니까.


오늘 누나랑 회사에 갔더니 사람들이 박수를 쳐 줘서 깜짝 놀랐다. 전화로 여러 번 이야기했던 최양주라는 형은 다짜고짜 자기 이름을 대면서 나한테 쓰라고 했다. 최양주라고 썼더니 그게 아니라 내 이름을 쓰고 자기한테 싸인을 해달라고 했다. 앞으로 친하게 지내요도 쓰라고 했다. 대체 왜?




..........그리고 유진우가 돌아왔다. 정말로, 나처럼 인던에 있었나보다.




2019년 1월 *일

누나는 잠시도 유진우에게 눈을 떼지 않는다. 그 사람도 자는 동안도 누나의 손을 놓지 않았다. 민주는 그라나다에서랑 똑같다고 했다.



2019년 1월 *일

유진우는 원래 살던 호텔로 돌아간다고 했지만, 누나는 화를 내면서 못 가게 했다. 심지어 그 사람의 옷이랑 소지품을 챙겨 올 때도 같이 따라갔다 왔다. 할머니는 내가 유대표 밥을 한 끼도 못 먹여서 얼마나 속상했는지 아느냐며 자꾸만 음식을 산처럼 한다. 민주는 집에 들어올 때면 아저씨, 하고 제일 먼저 그 사람을 부른다.


처음 봤을 때 유진우는 니가 세주구나, 하고 오래 알았던 사람처럼 웃었다. 그런데 나는 여전히 그 사람과 눈을 마주치기가 어렵다. 그래서 내내 누나 뒤에 숨어 있었다.



2019년 2월 *일

인제 누나는 좀 안심이 되는지 다시 공방에서 작업을 한다. 유진우도 종일 통화를 하거나, 하루 걸러는 오는 것 같은 박선호 대표를 만나거나, 노트북을 들여다보고 있더니 결국 자기가 쓰는 손님방에 최신형 컴퓨터 설비를 들여왔다.


그 사람 옆에 혼자 가기는 아직 무서운데, 컴퓨터가 너무 최신형이라 궁금해서 살짝 가봤더니 양주형이랑 통화를 하고 있다가 갑자기 나를 바꿔줬다. 이거 연결은 나보다 니가 더 잘 할 거라고 하면서. 엉겁결에 양주형이 말하는 대로 컴퓨터 세팅을 했다.


컴퓨터 만지는 동안은 잊고 있었는데 다 하고 나니 그 사람이랑 단 둘만 있었다. 황급히 나가려고 하니까, 유진우가 세주야, 하고 불렀다. 쳐다보니 왜 그렇게 나를 피하냐고, 내가 싫으냐 물었다.


아니요, 미안해서요, 하니 뭐가? 하고 다시 물었다. 나 때문에, 내 게임 때문에, 하고 말하고 나니 갑자기 눈물이 났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엉엉 울고, 유진우는 내 어깨를 토닥여주고 있었다. 니가 일부러 그러려고 게임을 만든 게 아니잖아, 하고 말해 주었다. 그래도, 대표님 다리도 그렇고요, 내가 전화만 안 했으면, 하고 웅얼거리니 난 니가 전화해 줘서 고마운데. 그래서 희주를 만난 거니까. 그리고 나 인제 대표 아니다, 니 누나도 다르게 부르래도 말 안 듣더니, 했다. 그럼 뭐라고 불러요? 하고 물었더니 갑자기 장난기 어린 얼굴이 되더니 나한테 진짜 용서받고 싶어? 했다. 고개를 세게 끄덕이니 그럼 앞으로 매형이라고 불러, 그걸로 계산 끝이다, 하고 웃었다.




..........매형? 진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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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많은 이들이 리퀘했던 정세주 버전. 마지막 진우랑 세주가 대타협(?)하는 부분은 언젠가 리뷰글에 내가 댓으로 단 적이 있어서 본 사람들도 있을 듯. 그런데 세주는 성격상 인터뷰 같은 건 안할 거 같아서, 일기형태로 쓰는 게 제일 나을 거 같았음.


사실 정남매의 그라나다 시절에도 수많은 사연이 있을 거 같아서, 살짝 상상해 봤고. 세주가 엠마에게 그런 역할을 준 것도 이유가 있어서일 거 같아서 말이야.


그리고 지난번 글 리플에 최양주는 본부장 되었냐는 질문이 있어서. 유진우 인터뷰에서 이미 최양주는 본부장 된 걸로 도장 꽝꽝 찍어놨음. 우리 유댑 뱉은 말은 지키는 남자니까요.


짤들은 갤줍. 특히 이미 처남매형 케미가 흘러넘치는 저 메이킹짤은 알함 짤 중에서도 내 최애짤임(우리 블레에 저 장면 메이킹도 좀 더 있길!!). 금소니들 감사감사. 유통사랑 조율하느라 수고 많은 추진팀도 넘 감사하고, 애정어린 리플들 정말 고마워. 그런 리플 아니었음 더 안 썼을 거라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