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태초에 그림자가 있었다.
부제 : 세계사와 성경을 통해 해석한 우주-세계의 상징과 의미 - 그림자의 변화를 중심으로
서론
최근 연재되고 있는 312-231의 세계-우주에서 메뚜기, 혹은 그림자는 '찬란한 연방'을 제외한 모든 이야기에서 줄거리에 핵심 요소로 자리잡고 있다.
가장 최근에 연재되고 있는 '결정된 인류'에서는 북극성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며, 멀리 떨어져서 자신들을 지켜보는 존재로 여겨진다.
'고요한 바다'부터 등장한 메뚜기는 원래 헤단이 샛에 대항하기 위해 만든 강력한 무기였고, 헤단에서 지은 이름은 그림자이다. 샛은 헤단과 다르게 연방에 속해 있는 나라였기 때문에 메뚜기는 연방 전체를 샛의 동맹으로 판단하여 이들을 모두 공격하였고, 오랜 평화를 유지하던 연방은 한 순간에 무너져내렸다.
'영원한 요새'와 '우주의 꿈'은 그에 저항하기 위한 작전 중 일부 성공한 경우에 속한다.
'영원한 요새'의 문명은 그들의 행성과 그 밖에 우주를 물리적으로 완벽히 단절 시킴으로써 메뚜기로부터 완벽한 은폐에 성공했지만, 이는 그들 스스로를 우주로부터 완전히 고립시키며 하늘을 닫아버리는 방법이었기 때문에 내부 자원이 고갈됨에 따라 천천히 죽어갈 예정이다. 어떻게 되돌릴 수 있는지 조차 모른다.
반면 '우주의 꿈'은 우주의 별을 연료로 무수히 반복되겠지만, 결국 메뚜기와 늘 공존하며 이들과 함께 멸망과 탄생을 반복하게 될 운명에 처한 셈이다. 두 가지의 경우 모두 메뚜기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실행된 작전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다른 결과를 만들었는데, 이 차이는 메뚜기와의 공존을 유지하는 선택이 인류의 존속을 가져다 주는 결과를 낳는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침략자인 메뚜기가 오히려 인류의 존속과 발전에 필요한 존재처럼 보이는 이 구조는, '도시행성'의 개미를 떠올리게 한다. 그들의 이름으로 하여금 곤충은 인류보다 오랜 시간 존재하며 인류는 아직도 그들에게 여러 방면에서 시달리고 있지만, 동시에 그들은 인류에게 이로운 환경을 선물해준다.
인류는 보다 고도화된 기술을 침입자, 내지는 포식자로부터 얻어 문명을 이어가는 한편 이는 우주의 꿈이 결국 별을 에너지원으로 삼는다는 점과 '원시문명' 속 산신령이 말한 무한한 발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황제의 결론으로 하여금 유사성을 더한다. 우주의 별 또한 무한대로 존재할 수는 없기 때문에, '원시문명'의 황제와 '우주의 꿈'은 모두 무한이라는 개념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벽에 부딪히게 된다. 황제는 거기서 천천히 가는 것을 택했고, 우주의 꿈은 가능한 모든 자원을 동원해 시뮬레이션하며 가능성을 찾는 길을 택한 셈이다.
'도시행성'에서 심향은 개미에 대한 연구 도중 이런 말을 한다.
"모든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며, 이를 개미와 사람 사이에 적용하면.. 사람은 땅을 일구고 잔해를 녹여 문명을 만드는 프톨레타리아며, 그런 우리를 죽이고 착취하는 개미들은 포악한 부르주아다."
여기서 프톨레타리아란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않은 사람들, 즉 노동자를 칭하는 독일어이다. 부르주아는 불어긴 하지만 그 외에도 당케! 라고 인사 하는 둥 한국어와 외래어를 제외하고 유일한 외국어로 독일어를 구사한다.
개미에 대한 이야기였던 '도시행성'에서는 이정도에서 그쳤지만, 메뚜기의 기원에 대한 내용인 '고요한 바다' 속 헤단은 독일을 모티브로 만든 국가이다.
1. 헤단의 우월주의와 반성에 대해
헤단은 샛에 수세대에 걸쳐 저항하였는데, 여러 대사를 통해 꽤나 처절하게 대응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림자는 헤단이 우월한 민족이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2차 세계대전의 시작이었던 독일 나치의 민족우월주의를 떠올리게 한다.
독일은 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뒤 힘든 시간을 보내다가 히틀러의 민족주의 연설로 부활하여 끝난줄만 알았던 전쟁을 다시 시작했다. 헤단의 역사도 그 과정을 그대로 걷고 있는데, 살아남은 소년의 대사는 그 모든 과정을 시간 순으로 정당화하거나 자책한다. 연방에서 온 나비는 개인을 탓할 수 없다며 슬퍼하지만, 헤단의 소년은 민족의 죄는 자신의 죄라며 자책하는 점에서 대비된다. 여기서 나비는 자신들이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전부 부수고 다니는 것이라 말하고, 그림자는 헤단의 사람들을 모두 죽어도 멈추지 않을거라고 말한다. 인류박물관과 마찬가지로 사상이나 관념을 작가가 어떤 식으로 여기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일반적으로 전범에 대한 죄책감은 참여한 사람보다 전쟁 이후 세대가 전쟁 과정을 교육 받은 뒤 갖기 때문에 이를 착실히 실행한 독일의 교육과 역사 의식이 높게 평가되는데, 작가는 군대를 기계 군집으로 대체하고, 민족주의 정신을 인공지능(그림자)으로 표현하였다. 그리고 기계몸으로 살아가는 개인을 상정함으로써 모든 전쟁 과정을 경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아 죄책감에 시달리는 인물을 만들어 그의 사고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필자가 생각하는 고요한 바다의 특별한 점은 우선 세계-우주의 첫 번째 이야기라는 점이고, 답지 않게 실제 세계사의 일부를 직접적으로 활용했다는 점이다.
세계-통합대한국은 한국 중심으로 모든 이야기가 전개되고, 가끔 소소하게 등장하는 중국, 일본이 보인다. 여기서는 지역명이나 나라 이름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며 '평양 황무지'처럼 언어나 관습을 그대로 캐릭터로 삼은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고요한 바다에서는 독일을 본 뜬 헤단으로 이야기가 시작되며 표면적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그들의 역사 속 사상, 발단, 결과를 이야기에 녹여 내었다. 이것이 세계-우주의 첫 이야기라는 것을 고려할 때, 게르만족이 유럽의 한 뿌리라고 알려진 점 또한 언급할만 하다.
그림자의 목걸이와 독일의 훈장인 철십자 문양.
마지막으로 그림자가 완성되었을 때 헤단은 물에 잠기게 되는데, 과정에 대한 자세한 묘사가 없다. 후술하겠지만 타락한 사람들이 물에 잠기게 되는 이야기인 '노아의 방주'가 떠오른다.
2. 메뚜기와 꿈
메뚜기는 연방에서 붙인 그림자의 이름이다. 헤단의 비장의 무기이자 민족주의의 씨앗인 그림자는 메뚜기가 되어 온 우주를 부수고 다니고 있다. 연방의 사람들은 이에 대항하기 위해 수십가지 작전을 세우고 그만큼 실패하였는데, 그 파괴력 때문에 이를 숭배의 대상으로 삼는 사람들까지 생겨났다.
연표를 보면 연방 사람들이 헤단의 고향섬에 도착해서 메뚜기의 초기 설계도를 얻어 만든 것이 우주의 꿈이란걸 알 수 있는데, 초기 설계를 기반으로 했기 때문에 메뚜기에 비해 완성도는 떨어진다. 앞으로 헤단의 무기를 메뚜기 혹은 그림자, 연방이 그에 대항하려고 만든 것을 우주의 꿈 혹은 꿈으로 칭한다.
우주의 꿈은 메뚜기에 대항하기 위한, 어쩌면 도전하기 위한 작전이었다. 그 시뮬레이션 속 꿈들은 탑을 쌓고 있었으며, 초반에 탑에 대해 이런 묘사가 나온다.
"지평선을 찌르는 돌탑들은 만물의 상대성에 대한 멋진 농담이다. 탑은 쌓아 올려진 것이 아니라 주변이 깎여나간 것이다. 결과가 같다니 놀랍지 않은가?"
탑 주변의 땅을 파서 탑 위에 놓았으니 아무튼 탑을 쌓은게 맞다. 메뚜기에 도전하며 쌓는 탑, 바벨탑의 상징이다.
도전에 실패한 이후 탑이 무너지고, 꿈들이 별을 중심으로 구형으로 흩어지는 것 또한 바벨탑의 결말과 동일하다. 탑에 대한 묘사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성경의 말과 상반되는 '원수를 섬멸한다'는 그림자의 작동원리에 대한 은유가 아닐까 추측한다. 결과가 같다니 놀랍지 않은가?
소녀(우주의 꿈 주인공)는 우주의 꿈 내내 우월감을 느끼며 연구하는데, 그 정체가 그림자인 것을 알고보면 당연한 일이다. 작가는 이런식으로 같은 세계관 내에서 완전히 다른 이야기에 조금씩 연결고리를 만들어 하나로 엮는 것을 즐겨한다.
그림자인 소녀는 꿈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바보라고 부르며 이들에 붙은 꿈을 채취하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늘 위험인물로 취급 되었는데, 여기서 메뚜기의 효과적인 대응책이 나온다.
우주의 꿈도 그러했지만 그림자도 처음에는 외부의 적에 대응하기 위한 무기였다.
그래서 노인이 죽고 더 이상 사람들이 소녀를 쫓아오지 않자 그림자의 독백이 없어지고 공격성이 없어진다. 심지어 사람들처럼 살아가려는 모습을 보인다. 물론 위협이 없어지면 연구 속도는 더뎌질테니 결국 '원시문명'의 황제의 결론으로 회귀한 느낌도 든다.
다른 사람들처럼 살아가려고 할 때 소년과 함께 있었기 때문에 사랑이나 가족같은 편안함이 필요했다고 해석될 여지도 있으나, 그림자의 기원으로 보나 우주의 꿈의 결말로 보나 그것은 또 다른 재앙에 대한 예견이 될 뿐이다.
아마 활잡이가 다른 바보들처럼 탑을 쌓는데만 집중하고 괴물 처치에 대한 사명감을 가지지 않았더라면 더 빨리 메뚜기를 공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결정된 인류의 내용이 아닐까 생각한다. 크게 신경을 쓰지 않으면 위험하지 않게 된다.
3. 북극성
수 많은 우주를 거쳐 메뚜기는 점점 적의를 잃고, 샛과 거리가 멀어 살아남은 연방과 함께 평화로워진 인류는 다시 재건하여 문명을 이루고 있다. 그림자의 복수는 이제 끝낼 때가 됐다.
이젠 눈 앞에서 재앙을 뿌리던 메뚜기는 없고, 멀리서 지켜보는 북극성만 남아있다.
언제 재림하여 문명을 끝내러 올지 모르지만 지금은 멀리서 지켜보고만 있다고 한다, 북극성은 이제 최후의 심판의 상징이다.
북극성이 시사하는 바는 찬란한 연방과 크게 다르지 않다. 멀어지면 희미해진다. 전쟁을 끝내는 법은 멀어지는 것이다.
북극성, 연방, 우주의 꿈을 통틀어 봤을 때 성경이 가족과 이웃의 사랑을 얘기한다면 세계-우주의 대주제는 흩어지는 것이다.
결정된 인류에서는 여전히 적은 존재하지만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탓에 늘 허울뿐인 승리를 외치고 있다. 자원이 그리 많지도 않고 그저 각자의 일을 반복하며 지루한 날을 보낸다. 하지만 그만큼 각 기관은 자신의 역할을 충실하게 실행하고 있고, 그 덕분에 메뚜기와 우주의 꿈의 유의미한 위계질서는 사라지게 된다.
장군과 복제가 마지막 남은 그림자라고 가정해보자.
장군이라는 직책으로 하여금 마지막 남은 우월함을 유지하던 그림자는 공격성, 파괴력이 아닌 생산성에 밀려 패배할 예정이다.
우주의 꿈에서, 소녀가 무시하던 바보들은 각자 크고 작은 기술적 문제들을 해결하며 탑을 쌓았다.
시뮬레이션이 반복되다가 그림자보다 꿈의 발전이 우세해지면 탑을 쌓는 과정은 더 체계적이고 단계적으로 발전할 것이다.
그렇게 유지되고 있는 문명이 결정된 인류이며, 그림자는 이런 상황을 위해 설계된 존재가 아니다. 여러 조직이 함께 작업을 할 때는 복잡하고 그 자체로 완전한 하나의 설계보단 단순하고 국소적인 일을 위해 설계된 다양한 부품이 필요하다. 산업혁명 이후 기업을 이길 수 있는 개인은 거의 없다.
장군의 복제는 60여년간 일에 소질이 없어 몇 번이나 제외당할 뻔 했고, 그것이 단순 능력 부족이 아님을 알아챈 선택부에 의해 겨우 살아남아 있던 셈이다.
이제 생존을 결정하는건 메뚜기나 북극성이 아닌 자연당과 선택부이다.
결정된 인류의 문명은 발전된 문명 속 다윈의 자연선택 그 자체를 상징한다.
도저히 이길 수 없었던 것 처럼 보이던 힘을 가진 그림자는 이제 거대한 사회 구조와 자연선택에 의해 제외될 예정이다. 정확히는 북극성이 되거나 그와 비슷하게 끝나지 않을까 싶다. 이 작가는 늘 어느 한 쪽을 택한 적이 없기 때문에...
4. 결정된 인류의 이름에 대해
연방 공무원은 결말 후 1600년은 더 살았다고 한다. 메뚜기가 북극성이 된 지 1600년 이상 지났다고 볼 수 있는데
왜 하필 1600년 일까 하고 보니 17세기는 뉴턴이 활동했던 시대이다.
과학사에서는 고전역학이 뉴턴에 의해 시작되고 약 200년 뒤 맥스웰을 마지막으로 완성되었다고 보는데,
양자역학이 주류를 이루는 현재 고전역학의 가장 큰 특징은 결정론적이라는 것이다.
처음 연방 공무원을 마주쳤을 때 양자역학의 확률론과 고전역학의 결정론에 대한 얘기가 사용되었다.
뉴턴 역학은 초기 상태만 알면 미래 상태를 정확하게 계산해 낼 수 있다.
즉 초기 상태에 따라 단 하나의 미래가 결정되어 있으며 계산을 매우 빠르게 하면 이를 예측할 수 있다. 뉴턴역학은 결정론이다.
신에게서 처음 독립했다는 측면에서 데카르트를 노린 것일 수도 있겠으나 장군이 그림자라는 가정이 맞다면 완전 독립했다고 볼 수도 없고 이름부터 '결정된 인류'라는 점에서 아마 뉴턴이 아닐까? 사실 거의 동일한 시대면서 뉴턴도 데카르트에 영향을 받았으니 구분에 큰 의미는 없다. 자연선택설도 크게보면 결정론이며 라플라스와 다윈 둘 다 과학계 4대 악마에도 속해 있다.
양자역학의 결론으로 인해 결정론이 부정된 내용은 창쾌한 지경씨에서 한번 다뤄졌던 적이 있다. (17화)
성경에서도 절대적 예언이나 그로 인한 예정설이 나오기는 하지만, 자연철학에서의 결정론이 특별한 이유는 종교적인 서술 없이 사람이 만든 기본원리를 통해서만 세상을 설명한다는 점에 있다. 누가 봐도 결정된 인류의 문명 속 초월적 존재는 없다. 평생말단폐급복제나 장군이나 설계는 똑같다. 연방도 더 발달했을 뿐 마찬가지다.
그에 반해 결정된 인류의 간부들은 자신들의 말이 모두 장군의 뜻이거나 승리를 위한 것이라며 주장을 관철하기도 한다. 성경에서 신앙을 유지하는 과정을 전투나 싸움처럼 묘사하기도 하는 와중에 (e.g. 요한일서 5장 4절), 해석에 따라서는 마땅한 근거 없는 맹신이 만연한 사회에서 이를 상황에 따라 남용하는 인간상으로 볼 수도 있겠다.
결정된 인류에서처럼 사람들 사이에서 권력이나 권위를 유지하는 것은 결국 신뢰와 믿음의 문제이고, 이는 신의 유무에 관련없이 사회가 움직이는 방식이다. 복제에 대한 사실이 밝혀졌을 때, 장군도 생각했을 것이다, '이제 끝낼 때가 됐다.'라고.
5. 태초에 그림자가 있었다.
고요한 바다의 헤단이 느낀 위협과 우월주의는 우주의 꿈의 그림자에 고스란히 이어졌다.
연방은 흩어져 있었기 때문에 뭉칠 수 있었고 재앙이었던 메뚜기는 멀어졌기에 북극성이 되었다.
그 고향 행성은 죽은 가족을 사랑한 죄로 물에 잠겼으며,
찬란한 연방은 원수의 이웃인 죄로 인해 차례차례 멸망했다.
그림자를 본 따 만든 꿈은 탑의 형태로 땅을 파내며 그림자에 도전하였고
우주의 빛을 하나하나 끄고 다녔다.
세계-우주는 성경에 대칭이다.
예수가 빛이라면, 이건 그림자다.
예수가 말씀이라면, 그림자는 환청이다.
예수는 사랑을 가르쳤고 그림자는 흩어짐을 유도했다.
그 결말은 언제나 인류를 지켜보며 최후의 심판이 예견된 북극성이요.
결과가 같다니, 놀랍지 않은가?
이거 전체 작품을 내내 요 글을 써가면서 읽으신건가요, 아님 지금까지의 작품들을 다 읽고 써보신 건가요?
다 한번씩은 읽어보고 썼어요. - dc App
아녀 욕하는게 아니구 이런 완결된 한 편의 글로 지금까지의 작품들을 엮을 수 있다는게 너무 멋져서 단 댓글이에요
ㅋㅋㅋ 그런 생각 안했어요. 결정된 인류 빼고는 다 끝까지 읽어보고 썼습니다. - dc App
감사합니당 - dc App
ㅋㅋㅋㅋㅋㅋ결정된 인류는 아직 안끝났으니 맞는 말이네요 저두 감사합니다 잘읽엇어요 !!
잘쳐주면 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