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는, 우주의 꿈에서 메뚜기가 우주의 꿈 계획을 파토낸 방식은

연방이 우주의 법칙을 입력하기 전에 먼저 해킹해서, 우주의 꿈이 메뚜기가 되도록 서사의 피아식별을 고장낸 것임.


본래 우주의 꿈, 곧 멀어면 옅어진다는 원리에 따라 악의가 선의로 변모하는 꿈이 입력되어야 하는 것을,

우주의 "꿈"이 "메뚜기"가 되도록 서사를 오염시켜버렸음.


그래서 '정의의 주인공'이 '메뚜기'인 "꿈"을 파괴하여 우주를 지킨다는 괴상한 서사가 만들어졌는데

알고보니 그 정의의 주인공은 메뚜기의 프락치였고, 우주의 꿈 자체도 우주가 새로운 우주를 창조하여 번성하는게 아니라

우주가 스스로를 파괴하여 새로운 우주로 바뀌는 파괴의 연쇄로 희망을 삭제하는데 성공한 것임.


그래서 우주의 꿈은 서사가 없는 것임. 메뚜기가 진작에 "파괴"했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결말"이 났다고 하는 것임. 인류는 메뚜기에게 줘털렸다는 결말로 결정된거라는 것.


하지만, 정작 본 편에서는 메뚜기가 아니라 북극성이 있다. 여기가 과연 메뚜기 원발지 우주가 맞을까?

그리고, 애초에 인류는 결국 승리하기로 "결말"이 나있었다면?


생각해보면, 연방은 우주의 꿈을 완성하지 못하였다고 믿고 있음. 압점 입력 전에 파괴당했으니까.

그런데 우주의 꿈 편에서, 의도한대로가 아니었고 자기파괴 법칙이 되었어도, 새 우주를 만들긴 했음.


게다가 이 망가져버린 꿈이라 해도, 연방이 우주의 꿈을 만드려 하기도 전 부터 이미 존재했단 말임?

그러니까 우주는 어떤식으로든 새로운 우주를 만들도록 이미 "결정" 되어있단 것이고,


메뚜기가 새로운 우주를 만드는 법칙을 오염시켰다고 생각하는 것은 메뚜기와 연방의 "착각"이라는 것임.

애초에 그 우주는 우주의 꿈을 연방이 만들어보기도 전에 이미 우주의 꿈을 가지고 있었음.


그리고 메뚜기는 한가지 실수를 했다. 결말 나레이션에서 "꿈이란 사형수의 발악일 뿐이다."란 뇌절 코멘트를 첬지


인류의 패배가 결정된 것이라면 그런 대사를 넣을 이유도 없었던 것임.

인류가 어떤식으로든 패배한다면 메뚜기가 개입했단 서사가 필요하지 않음.


하지만 메뚜기는 굳이 "패배하는게 법칙"이라고 뇌절을 친 바람에

오히려 승리의 길을 만들어버린 것이다.


결국 꿈녀가 메뚜기의 프락치이고, 꿈이 메뚜기에게 오염당한 연방의 서사였다는 걸 알게 하는 것으로

다른 서사가 창조되어버렸고, 결국 우주의 꿈은 원래 존재한 것으로, 인류가 결국 승리하리란 서사로 결정되어버린 것임.


왜 그렇게 되어버렸을까?


예시로, 파우스트는 결정론적인 서사를 가졌고, 신이 초장에 파우스트를 구원한다고 결정된 이야기지만,

그 "과정"은 "신이 파우스트의 투쟁을 인정하였다" 란것을 생각해야한다.


즉, 파우스트를 구원하겠다고 결정한 바람에 파우스트의 투쟁이란 서사가 생겼고

그 서사로 인해 파우스트를 구원하겠다는 결말도 결정된 순환 논리 구조라는 것임.


인류의 수레바퀴는, 그것을 초월한 절대자의 수레바퀴로 편입되는 "운명"으로 "결정" 된 것이다.

라는 해석을 주는 게 파우스트의 기독교 신학적 요소가 된다.




그렇다면 장군은 무엇일까?

꿈이다. 승리의 길이다. 본래 메뚜기가 오염시킨 것이나, 결국 인류가 승리하게 하는 설계이다.


우주의 꿈에서는 사랑한 제자가 살해당함으로써 꿈녀가 복수한다는 것으로 꿈녀를 주인공으로써 정당화하여

꿈의 서사에서 정당성을 강탈함으로써 꿈을 오염시키는데 성공한 듯 했지만


결국 막판에 메뚜기가 친 뇌절로 인하여 주인공의 권리가 다시 연방에게 돌아가버렸고


꿈이 꿈을 파괴한다는 "법칙"은 장군 김송이 스스로 쿠데타를 유도해서 남부 자연당이 자멸하게 만드는 것으로 대체

그리고 꿈이 새로운 우주를 만들어 "멀어지면 옅어진다. 증오는 결국 선의로 변한다."란 "법칙"을 이어가게 되는 것.


요컨데, 메뚜기는 장자의 권리를 팥죽 한 그릇에 인류에게 팔아넘겨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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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스트의 메세지는 결국, 구원을 향해 투쟁하는 한 "나" 라는 개인은 아직 천주의 시공간 속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과연 내가 구원되기로 결정되어 있는지, 패배하기로 결정되어있는지 모를지언정, 나는 결국에 승리할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권은 천주에게 있으므로 내가 승리를 결정한 것이 아니라, 원래 결정되어있는 것도 성립한다는 것.


아, 이제야 생각났는데 요한의 묵시/계시에서는 황충, 곧 "메뚜기"가 천주가 설계한 "법칙, 곧 죽이는 기계"로 "결정" 되어있다.

그래서 계시이지만, 사실은 이미 일어난 일을 드러내주는 것이라 "묵시"로도 번역하는 것임.

(누구 주장으론 실제로도 계시록의 내용은 결국 계시로 인식되는 묵시로써 새로운 사건이 없다고 하던가..?)


그리고, 결국 죽은 자의 부활이 결정되어 있으므로 모든 인생은 저 황충에게 한번은 "죽도록" 결정되어있다고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