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에는, 그래도 푸른 하늘을 보며 세상욕을 하면서 기분을 풀곤 했다. 세상은 그게 마음에 안 들었던 걸지도 모른다. 언제부턴가 도시는 거대한 공장들로 가득 메워져 있었고, 발 디딜 틈 하나 없이 빼곡히 들어선 공장들 사이에서 자라나온 굴뚝들은 하늘을 향해 검은 연기를 쉴 새 없이 내뿜고 있었다.

 

하늘을 떠받치는 기둥처럼 높게 솟아 있는 그 거대한 굴뚝들.

 

난 그것들이 싫었고, 몇 개를 부쉈다.

그리고, 뛰어내리려 했다.

 

난 죽지 못했다.

 

 

감옥의 존재 이유는 위험 분자의 사회 격리라 했던가. 그 말마따나 난 3천 년의 항해를 기약한 우주선에 강제로 태워졌다. 정부가 애용하는 방법이지. 진공과 방사선, 속도로 막힌 감옥.

..인생 개 같다.

 

승객 여러분, 우주선 주 인격 이나영입니다! 5시간 후에 광속 언저리까지 가속될 예정이니 인터넷 쓸 거 빨리빨리 쓰세요.”

하얗게 질린 채 넋이 나간 사람들 사이로 우주선 관리 로봇이 돌아다니며 조잘거렸다. 사회를 정화하는 원대한 여정의 일원이 되고 있다는 사실에 고무되기라도 했는지 잔뜩 들뜬 목소리였다.

그리고, 뭐 동시에 지구의 사법권에서 멀리 떨어지게 될 텐데요! 뭐 불미스러운 일이 있더라도 저희 관리로봇들이 대처하겠습니다. 그럼 이만 마지막으로 보는 고향을 감상해 주세요!”

다른 사람들은 지인들에게 전화를 하며 울었지만 난 옛날 개그 프로나 다운받고 있었다. 마땅히 전화를 걸 상대가 없기도 했고, 형은 날 안심시키려고 병신같이 웃을 것 같았기에.

 

시끄러운 엔진 소리가 잦아들고 온몸을 감도는 잔잔한 진동에 익숙해질 때쯤, 커다란 유리창 밖으로 짙은 회색의 구체가 눈에 들어왔다. 고향이었다. 어렸을 땐 푸른 색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어쩌다 저 꼴이 된 거냐.

사람들은 멀어져가는 먼지투성이 행성을 보며 울먹였다. 고향은,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다. 보고 싶던 얼굴도, 못다한 일들도, 그토록 바라 마지않던 꿈들도, 이젠 모두 없는 것이다. 애초부터 그랬던 것처럼.

 

..그래,

어찌됐든 난 저 병신 같은 사회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가속이 끝나고 안정적인 경로에 접어들자 관리 로봇이 앞으로 나와 가장 먼저 냉동장치에 들어갈 지원자를 구했다. 우주선에 탄 사람들은 반으로 나뉘어 300년씩 교대로 냉동되어야 한다나. 우주는 넓고, 정부는 쓰레기를 최대한 멀리 버리고 싶어했다.

사람들은 말없이 고개를 떨군 채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어색한 침묵 속에서 내가 조용히 손을 들었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들 놀란 듯 쳐다봤지만, 개의치 않았다. 신기하잖냐. 지구에선 변변찮은 냉장고 하나 없었는데.

 

300년 뒤에 깨워 드릴게요!”

입을 다무는 법은 입력되지 않은 건지 관리 로봇은 작은 창 너머로도 쉴 새 없이 조잘거렸다. 한기가 느껴지더니 천천히 시야가 흐려지며 졸음이 몰려왔다. 근데 이거 다시 깰 수 있는 건..

 

멋진 우주선의 생존자에 대해

 

[웨우….]

웅얼대는 듯한 소리가 귓가를 맴돌고 있었다. 그것이 단순한 소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천천히 문이 열리자 익숙한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웰컴 투 퓨쳐]

진짜 눈 깜짝할 사이네.

[워울 콤 투 퓨쳘]

그런데 저건 어디 말이야.

 

뻐근하게 굳은 몸을 움직이려 하자 묘한 이질감이 들었다. 동면을 너무 오래 해서 그런 걸까? 몸을 살짝 뒤척이자 그대로 둥실 떠오르더니 곧장 수 미터를 날아갔다. 중력이 꺼져 있는 게 분명했다. 스피커에선 어느새 알아들을 수 없게 뭉그러진 말만 반복해서 흩어져 나오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봐도 보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저기요?”

드넓은 우주선을 홀로 방황하는 것도 지겨워질 때쯤, 멀리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녕하세요!”

지나칠 정도로 발랄한 목소리. 관리 로봇이었다.

살아있네요! 그 기계가 고장난 게 정말 다행이었죠.” / “?”

그러나 내가 던진 물음은 곧이어 흘러나온 안내 방송에 묻혀 산산이 흩어질 뿐이었다.

[비상 복구 절차가 실행됩니다.]

[승무원 추적 중. 1]

 

[순환 체계 재조정/45112/34]

 

[중력 생성기 재가동.]

 

 

230년 전쯤이던가? 거주구역에서 싸움이 났었는데, ‘자유는 보류될 수 없습니다!’ 하고 하는 사람들이었죠? 그 뭐냐, 막 로봇 팔에 꺼 뜯어서 총 쏘고, 복도가 피칠이 되는데 잘 닦이지도 않고, 막판에 가서는 냉동장치 문도 열어서 자던 사람 머리통을 비상도끼로 깨부수는데, 어후..”

오랜만에 만난 사람이 반가웠는지 로봇은 또다시 쉬지 않고 조잘대기 시작했다.

규정상 시체들은 잘 처리했죠.”

로봇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 덧붙이고는 히죽 미소를 지어 보였다.

로봇들도 다 부숴져서 청소도 저 혼자 해야 돼요. 이거 대청소 한 번 하는데 15년 걸리는 거 아세요? 다행히, 허황 씨 냉동기 문이 고장나서 살았네요. 추카해요!”

어디서 났는지 모를 음료를 들이밀며 로봇이 말했다.

 

100년 바닥 먼지를 닦다가 생각해보니 중력을 끄면 먼지가 바닥에 안 붙을 거 아닌가?’ 해서 중력 끄고 있었는데, 제가 생각을 잘못했죠. 정전기 때문에 사방에 먼지가 붙더라고요? 그래서 청소가 원래보다 8배가 늘어났었는데, 이제 다시 켜졌으니 다행이네요.”

로봇은 빗자루를 휘두르며 쉬지 않고 조잘거렸다. 하루 종일 이대로 끌고 다니면서 우주선 구석구석을 소개해주려는 모양이었다. 또 다른 문이 열리자 이번에는 흙과 덩굴이 어지럽게 뒤섞인 공간이 나왔다.

수경재배실.. 여기도 모르고 중력 꺼버려서 흙이 다 엎어졌는데, 그래도 숲 같고 좋지 않아요?”

사방에서 제멋대로 자라나온 줄기를 치우고 들어가자 바닥뿐 아니라 벽면과 천장까지 가득 메운 거대한 밀림이 눈에 들어왔다.

뭐 별로 필요 없긴 한데, 헤헤..”

무중력으로 나무를 키우는 건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닌 게 분명하다.

뭐라도.. 말 좀 해주세요..”

 

 

“..엄청 크죠? 그리고, ! 우리의 위대한 태양이 저쪽에 있죠! 사실 저쪽을 조금만 더 자세히 보시면..”

로봇은 거대한 창문을 향해 다가서더니 멀리 보이는 은하수를 가리키며 열심히 재잘거렸다..만 사실 별로 귀담아 듣진 않았다. 여기까지 와서 그런 게 중요한 건 아니잖아.

냉장고에 들어가 있는 동안 고향이 보이지도 않는 곳까지 왔다. 지구에서 354광년 떨어진 철덩어리에, 사람은 나 혼자다.

 

..아마 죽을 때까지 있겠지. 혼자.

아 뭐라 말 좀 해봐요. 혼자 떠들게 하면 재밌어요?”

이 시끄러운 로봇이랑 같이.

 

 

또 다른 재배실에 들어왔다. 이제는 여기가 몇 번째 재배실이었는지 세는 것도 포기한 지 오래였다. 온실과 그 안을 촘촘히 메우고 있는 식물들. 어느 것 하나 다를 것 없는 익숙한 모습이었다. 젠장, 이런 거에 익숙해지다니.

문득 밀려오는 자괴감을 외면하며 지루한 온실을 훑어보던 순간 흙 속에 반쯤 파묻혀 있는 낯선 물체가 눈에 들어왔다. 지금껏 어디에서도 본 적 없던..

해골..?

 

 

길고 긴 여정을 마치고 휴게실에 앉아 컴퓨터를 켰다. 이때를 위해 받아둔 개그 프로였다. 도무지 그칠 줄을 모르는 관리 로봇의 수다에서 벗어나 마침내 온전한 자유를 만끽하려던 찰나, 지긋이 눈을 감고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던 로봇이 입을 열었다.

이게 아니에요.”

뭐가.”

전 허황 씨 깨울 때 막 사람들은 다 죽어있고 우주선 막 황량한 거 보고 울고불고할 줄 알았단 말이에요.”

“..재미없는 사람이라서 미안하다.”

제가 그래서 혹시 몰라서 심리학 책도 보고 그랬는데. 어떻게 로봇보다 감수성이 없어요, 감수성이? 저도 그땐 막 울었는데!”

일어난 일은 곱씹는 거 아니야. .”

그래도.. 이 광활한 우주에서 시체 더미랑 같이 있으니 좀 무서우시죠?”

시체가 어딨는데.”

저쪽 상자에 넣어 놨어요.”

로봇은 구석에 놓인 상자를 가리키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위에는 화분이 놓인 상자에는 큼직한 글씨로 열지 말 것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아니던데.”

로봇은 당황한 듯 몸을 움찔하더니 입술을 삐죽 내밀며 쏘아보고는 시무룩한 얼굴로 벤치에 가 앉았다.

 

, 이게 얼마만의 고요함이냐. 정말이지

문득 외롭다 느낄 때~ 하늘을 봐요~”

..젠장.

그새를 못 참고 흥얼거리던 로봇은 고개를 쳐들고 천장을 유심히 살피더니 말했다.

외롭네요.”

서둘러 양치를 했다. 이렇게 빨리 할 생각은 없었지만, 생각해보니 굳이 더 미룰 이유도 없었다.

내일 보자.”

진짜 잘 거예요?”

.”

나는 도망치듯 수면실로 들어갔다. 로봇이 문가에 기대앉는 소리가 들렸다. 설마 여기까지 쫓아와서 말을 걸려고 하는 건가? 설마. 다행히 그 정도로 눈치가 없진 않은 모양이었다.

자요?”

아 왜.”

심심해요.”

..

말 걸 다른 사람들은 다 죽었으니까 이렇게 허황 씨만 괴롭히게 되겠네요. 영원히!”

제발 로봇 만들 때 입 다무는 기능도 넣어라, .

“..이건 좀 무서워요?”

그래 무섭네.”

그럼 상담 좀 해 드려요?”

아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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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자 편만 써봤어요.

어떤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