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결정된 인류'가 아직 끝나진 않았지만 연방의 30번 작전인 우주의 꿈에 대한 내용과 그 이후 연방의 입장이 명확해졌다.
블로그엔 다음 시리즈를 예고하는 그림들이 올라오는걸 보면 세계-우주는 계속 이어지는 것 같다.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저번에 글을 되돌아보면, 그래도 큰 흐름은 바뀌지 않았다.
헤단의 민족주의, 연방의 대처, 결정론의 인류는 각각
그림자를 만들고, 메뚜기에 대항하며, 북극성의 심판이 예정되어 있었다.
성경의 소재를 활용한다는 점도 여전히 유효한 것 같지만 몇가지 수정을 하자면 우주의 꿈과 결정된 인류의 배경은 아예 다른 우주였고, 굳이 시간순을 따지자면 병렬적이다. 그리고 장군과 김청이 그림자라는건 잘못된 가정이었다.
애초에 그림자는 물질적인 형태를 가지고 등장한 적이 없다. 조종사에게 전송되어 보이던 모습 이외에 어떤 형태도 나오지 않았다. 환청이나 독백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여러 방면에서 그림자는 기계적인 실체가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한데, 꿈과는 다르게 문자로만 묘사하며 어떠한 실체도 그려넣지 않는 것은 충분히 의도적으로 보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어떤 등장인물도 그림자가 아니다.
북극성은 헤단이 만든 그림자이자 메뚜기이며, 기본적으로 미래 기술로 만든 발명품이다.
작가는 늘 SF를 배경으로 삼으며 극단적으로 발전한 기술을 상정한 경우가 많다. 인간과 구별할 수 없는 휴머노이드, 영생에 가까운 의료기술, 우주여행 등등,, 그 중에는 종교나 신앙의 대상을 미래 기술로 대체한 경우도 있었는데, 이를테면 '원시문명' 속 산신령, '승천의 시대' 속 승천, '보존구역'의 하늘 정도가 그러하다.
하늘은 궤도선과의 통신 정도로 이해할 수 있고 애초에 사람이었지만, 승천이나 산신령은 상상하기 힘든 영역이다.
그림자와 꿈도 이처럼 추상적인 영역을 공학적으로 대체한 경우에 속한다.
이번에 대체된 대상은 자유의지이다.
자유의지의 존재 여부는 과학적으로 증명할 방법이 없다. 그나마 시도됐던 경우가 리벳의 실험인데, 반박의 여지가 많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지에 대한 의심을 담은 이론은 동서양을 대표하는 철학이 하나씩 있는데,
나비가 된 꿈을 꾼 장자의 재물론 中 호접지몽, 그리고 거짓된 인식만을 주입하는 데카르트의 악마가 그것이다.
1. 헤단 조종사의 결정권에 대해
'고요한 바다'에서 그림자는 강한 파괴력을 가진 기계인 동시에 그 기계의 조종권을 가진 인공지능이었다. 그 인공지능은 조종사가 의식에 간섭하다가 연방이 위협이 되자 정체를 밝혔다.
그림자가 정체를 밝히기 전까지 조종사는 그림자가 보내준 정보를 자신의 사고와 구별하지 못했다. 항법 장치가 고장났어도 길을 찾아가고, 가다보면 무인기가 보이고, 처음보는 비행기도 해체할 수 있다. 전부 그림자가 보내준 정보였다.
말미에는 아예 몸을 조종해서 나비를 죽이기까지 했다. 그 말은 애초부터 뭐든 가능했다는 건데, 아무리 평화주의자라도 반복적으로 주입하거나 세뇌를 시키면 간단했을텐데 작 중 내내 말로 설득하려고 했다.
단 한번 직접 몸을 조종한 이유도 죽게 두고 싶지 않아서 그랬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림자의 헤단 사랑이 얼마나 대단한지 가늠이 된다.
그림자가 간섭한 것은 조종사의 몸이 기계로 되어 있어서 가능했던 일이고, 그의 직업이 조종사였다는 점에서 '고요한 바다'는 비극적이다.
그림자가 흘려보낸 지식은 조종사의 경험적 사고나 직관과 구별할 수 없고, 나비를 죽인 행위는 목숨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나오는 본능적 방어기제와 구별할 수 없다. 그림자는 헤단의 마지막 수단이자, 살아있는 민족우월주의 정신이었고, 그 자체로 데카르트의 악마이다.
악마는 나비를 무참히 찔러 승리하였고,
평화주의 조종사는 누구보다 악마에게 사랑 받는 존재가 되어, 악마가 마음만 먹으면 영생을 살게 될지도 모른다.
2. 결정된 인류의 의지에 대해
자연당 사람들은 언제나 승리가 결정되어 있다고 믿는다. 거의 광기에 가깝다.
승리가 보장된다는 것을 넘어 결정되었다고 믿기 때문에 자유시 사람들은 거의 의지를 잃을 일이 없다.
간혹 일을 제대로 못하거나, 게으른 사람이 있거나, 반란을 일으켜도, 실수로 장군을 죽여버린다 해도 모두 승리를 위한 길이기 때문에 좌절하지 않을 수 있다. 웃긴 점은 사실 승리를 위해 일하는 사람은 없다는 점이다.
자연당에 북극성을 연구하거나 대비하는 조직은 없다. 그나마 다윈투쟁군은 제외를 통해 조율하며 업무별로 최적인 설계를 찾으려는 모습을 보이지만 정작 이를 결정하는 선택부는 명확한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사실상 각 개인의 판단에 맡기기 때문에 무작위 선별처럼 보인다.
유전자 결정론은 여러 환경에도 살아남는 우월한 유전자를 가공하는 것의 의미와 진위여부에서 비판과 반론의 여지가 많다.
그래도 눈에 띄는 점은, 선택부는 자유의지를 긍정하는 가운데 승리가 결정된다고 믿는다는 점이다.
김청은 제외 심사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왠지 그냥 살려두고 싶던 선택부에 의해 제외되지 않았고, 장군의 복제였다. 장군의 설계가 진짜 우월한지 아닌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장군은 직급이고, 사회적 이름이다.
하지만 그런 장군이 직접 제외하라고 명령해도 김청을 살려두고 싶은 자유의지에게는 명령이 반어로 해석되고, 장군이 있는 건물을 통째로 날려버려도 실수를 인정하기 싫은 자유의지 앞에서는 승리를 위한 필연적인 과정이 된다. 자유의지가 그걸 원한다면 논리고 뭐고 없다. 모든 개체가 그 자체로 논리 회로이다.
다윈투쟁군 입장에서 그나마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우월한 설계가 살아남는게 아니라 살아남은 것이 우월한 것이다. 다른 기준은 아무도 모른다. 정말 우월한 설계였을수도 있고, 희귀한 돌연변이일수도 있고, 아무것도 아니었을수도 있다.
선택부의 입장은 모든 자유의지가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상호작용을 거치고, 결과적으로 왕좌에 오른 개체가 모두를 승리로 이끈다. 중간 과정은 설명할 수 없지만 아무튼 모든 일은 결정되어 있다.
자연당의 누군가에게는 태어난 순간부터 계급, 성격, 역할이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점이 불공평하게 느껴질 것이다.
선택부 말고는 모두가 불만이겠지만 다들 장군의 설계를 중심으로 결정된 승리를 믿으며 살고 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패배주의자들 뿐이다.
3. 북극성의 선택적 자비에 대해
자연당과 연방을 대강 나누자면 각각 결정론과 확률론, 과학의 고전과 현대의 모습으로도 보인다.
양자역학이 시작된건 고전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을 설명했기 때문이고, 그게 확률론인 이유는 가장 합리적인 해석이었기 때문이다.
자연당은 자연이 완벽하게 정렬되어 있으며 그 끝에는 인류의 승리가 있다고 믿는다.
반면 연방은 그런 자연당을 은근히 업신여기며 다양한 가능성을 고려하여 북극성에 대비한다.
나아가 이미 별 짓을 다 해본 연방은, 온갖 상상력을 동원해서 작전을 세우고, 혹시모를 심판을 걱정하여 규제를 둔다.
자연당은 결정론을 믿는다고 할지, 그 밖에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입장이 크게 둘로 나뉜다.
승리할 것이라 믿던가, 패배주의에 빠지던가. 김청은 이 둘 사이에서 갈피를 못잡는 사람이다.
그러나 북극성은 그런것에 일체 관심이 없고, 이 둘 모두 샛과 큰 연관이 없다면 딱히 공격할 이유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심판에 대해 가설을 세워보자면,
그림자에게 헤단은 가장 우월한 민족이었다. 그래서 늘 지켜보며 자신이 파악할 수 없는 기술이 나올 때마다 공격하는 것일 수도 있다.
북극성이 무한에 가까운 에너지를 갖고 있다는 연방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를 온전히 저격에 쏟고 있는 북극성은 어차피 이길 수 없다.
헤단의 발전은 멈춘 것이나 다름없어도 북극성은 연방이 새로운 기술을 보일 때마다 부숴버리면 그만이다.
그림자는 헤단이 멸망해도 멈추지 않는다고 했으니 불가해를 가진 승리 전까지 연방은 북극성의 지배 아래에 있다.
그야말로 찬란하고, 고요하고, 영원한 헤단 제국 탄생이다.
그림자는 자신을 적대시하는 연방에게 환청을 흘려보내며 추가적인 조치를 취하고 있다.
연방은 서로 정보를 공유하기 때문에 알아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완벽하게 구별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자연당과 연방의 대립을 강화하여 적의를 돌리려 하는 걸 수도 있고, 그저 의지를 꺾으려는 세뇌 작업일 수도 있다.
다시 연방의 입장에서 이를 어떻게 해결할지 생각해보자.
어쩌면
찬란한 연방이 만들어진 것 처럼, 정말 우주의 꿈이 성공할 수도 있다.
아니면
확률론적 비관에 빠져 의지를 잃으면 언젠가 북극성의 경계에서 벗어나며 기회가 생길지도 모른다.
아니면
북극성을 그대로 방치하고 모두를 규제하며 영원히 우주의 수동적 평화를 관장하게 만들수도 있다.
많이 다르지만, '보존구역'의 하늘이 생각난다.
그것도 아니면
31번 작전?
모를 일이다.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4. 찬란한 연방의 순진함에 대해
미공의 30번 작전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1. 새로운 우주를 만들되, 파생되는 모든 우주는 새로운 우주를 만들도록 한다.
2. 무한히 생성된 우주 중, 북극성을 이길 방법이 찾아지길 기도한다.
3. 무한히 생성된 우주 중, 다른 우주로 넘어갈 수 있는 방법이 찾아지길 기도한다.
4. 2번과 3번 방법을 모두 알고 있는 인류가 우리 우주로 넘어와서 북극성을 물리쳐주길 기도한다.
5. 4번의 인류가 새로운 북극성 행세를 하지 않도록 기도한다.
자연당이 승리를 신념처럼 여긴다면, 미공의 승리는 소망에 가깝다.
새로운 우주를 만드는 씨앗을 심고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 월등히 발전한 기술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순수한 이타심을 가진 인류가 나타날 것이라는 소망, 그런 인류가 존재할 가능성이 0%는 아닐 거라는 믿음.
그게 바로 우주의 꿈이다.
여기서 새로운 우주를 만들도록 하는 건 해당 우주의 사람들이 그것을 원하게 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조종사에게 설계도를 흘려주던 것 처럼, 우주의 꿈 설계도를 보여주면 사람들은 우주의 꿈에 동참하고 싶어지면서 새로운 우주를 만들려고 하는 것 같다.
아무도 자연을 탐구하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누군가는 이를 원하는 것 처럼, 우주의 꿈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우주를 만들라고 한다. 물론 '우주의 꿈'에서 그랫듯이 누군가는 이를 이해하지 못하기도 하며, 누군가는 소중한 사람과의 행복이 더 중요하고, 누군가에게는 위협에 대응하는 것이 우선적인 일이다.
꿈이라는 작은 기계가 붙어 있는 게 아니더라도, 그런 사고의 흐름이 외부에서 주입 당한 것인지 본인의 것인지 우리는 여전히 구별할 수 없다.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꿈과 그림자는 분명히 의도를 가진 사람들이 만들어냈다는 점이지만, 만들어진 우주 속 사람들에게는 자연현상이나 다름 없을 것이다. 데카르트의 악마를 기계장치로 표현했다는 표현이 가장 적절해 보인다.
그림자와 꿈 모두 기능적으로는 같지만 꿈은 새로운 우주를 만들기를 원하고, 섞여 들어간 그림자는 헤단의 정신을 흘려보내는 것 뿐이다.
노인의 말대로 꿈은 원래 다른 곳에서 주입 당하는 것이고, 이에 동조하여 따르는 것은 자유의지의 선택이다. 미공이 말한 필연적인 흐름은 사람들의 마음이 이를 원하게 하는 일이었고, 자유의지의 동조를 유도하는 일이었다.
'우주의 꿈' 속 소녀나 활쟁이가 그런 것 처럼, 부정적인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폭력을 행사하는 일은 역사적으로 인류의 주된 욕망이었다. 그림자가 꿈보다 완벽한 설계를 하고 있듯이 그게 인간의 본성에 가까운지도 모른다.
그러나 생존을 위한 거짓말에서 시작되어 순수하고 자발적인 동조로 만들어진 연방은 여전히 생존을 위한 작전에서 순수하고 자발적인 동조에 가능성을 걸고 있다.
연방은 마지막까지 순수한 선의만이 남길 바라는 우주의 망울진 꿈이다.
5. 연방의 어깨에 올라, 더 넓은 세상을 보라.
결말 후 1600년은 더 지났다고 한다. 17세기는 뉴턴과 데카르트가 있던 시대이다.
데카르트는 당연하게 여겨지는 지식들을 의심한 걸로 유명하고, 뉴턴이 만든 역학은 결정론의 기반이 된다.
이 둘의 태도는 승리를 의심하는 김청에게, 특히 '결정된 인류 - 특별함'에서 순서대로 드러난다.
데카르트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한 것은 자신감을 잃고 회의주의에 빠진 당시 자연철학을 재건하기에 충분했고,
뉴턴은 '거인의 어깨에 올라, 더 넓은 세상을 보라'라는 격언으로 유명하다.
이는 각각 김청이 자유시 사람들과 연방을 맞이할 때를 보는 것 같다.
승리는 성경에서도 자주 등장하고, 사후 세계나 세상의 종말이 이미 결정되어 있다고 본다.
결정된 인류에서 승리의 대상은 그림자이고, 그가 악마를 상징한다고 생각하면 사실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결과가 같다니, 놀랍지 않은가?
그러나 그와 별개로
두 사람은 모두 종교가 있었지만 종교적 서술 없는 기본 원리를 만들었다.
두 사람 모두 한낱 인간이었지만, 특별한 사람이었다.
자연당의 승리는 모순적이지만 그래서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선택부의 선택 방식은 납득이 안 가지만, 또 모르는 일이다.
특별한 사람이라는 건 정말 정해져 있을 수도 있다.
북극성은 재앙 같은 메뚜기였지만, 앞으로는 또 모르는 일이다.
자유의지나 승리 같은 건 사실 없을 수도 있다.
정말 모든 게 이미 결정되어 있을 수도 있다.
가능성을 열어두는 건 현명한 것일 수도 있고, 나약한 것 일수도 있다.
실패를 긍정하는 건 합리화일 수도 있고, 어쩔 수 없는 일일 수도 있다.
꿈을 꾼다는 건 순진했던 것 일수도 있고, 정말 언젠가 찬란해지기 위한 일일 수도 있다.
모두 거짓말이었을 수도 있고,
정말로 명확한 한계가 존재할지도 모른다.
연방은 그 가능성을 모두 받아들이고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며 연명하고 있다.
어쩌면 그게 인류가 할 수 있는 최선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정말 인류가 승리할 것이라 믿는다면, 사실 그렇지 않더라도,
그저 당신이 사는 동안 고통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얘기가 아닐까 싶다.
미공이 어떤 의미로 김청에게 위로를 했는지 이해가 되네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