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은 사실 지거국을 서울대급으로 만든다거나, 지역균형을 유지한다거나 하는 것에 회의적이다. 지거국을 더 지원해야 한다는 말이면 동의한다. 지거국이 지금보다 더 선호도가 올라야 한다는 말에는 더 강하게 동의한다. 지방의 인구소멸이 대한민국의 저출산과 파멸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 또한 몹시 공감하며 걱정하고 있다. 하지만 서울대가 너무 독보적이니 서울대를 10개 만들어야 한다거나, 서울으로 너무 인구집중이 심하니 서울을 약화시켜야 한다는 생각에는 쉽사리 동의하기 어렵다. 그 이유는 집적도의 중요성이다. 


한 곳에 뛰어난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단 것은 인류 지식의 수직적 발전을 가능케 한다. 떨어져 있으면 각자 그저 그럴 뿐인 재능들이, 모여 있으면 역사를 이루고 큰 흐름이 된다. 20세기 초 베를린, 19세기 말 빈, 18세기 말 독일의 여러 도시 등에 우리가 이름만 들어도 아는 유명인들 - 학자들, 예술가들, 작가들 - 이 사실상 이웃 수준으로 가깝게 살았다는 건 들어 봤을 거다. 마찬가지로 20세기의 뉴욕시는 우리가 세계 예술, 영화, 학술, 문학의 굵직한 사건들로 기억하는 일들이 한 거리 건너 벌어지던 곳이었다. 나치로 인해 쪼개지고 박살나기 전, 베를린 대학은 약 1000명 정도의 아주 소수의 엘리트들이 서로 모두를 아는 작고 농밀한 지적 교류를 가능케 하던, 세계 제일의 대학이었다. 그 곳에서 발생한 사건들만 모아도 20세기 지성사를 개괄할 수 있을 정도. 

우리나라에선 서울대 정도가 이런 기능을 한다. 마찬가지로, 서울 정도가 이런 기능을 한다. 그럼에도 한국의 보편성 추구, 공정함과 분배 추구라는 공동체적 가치는 서울대를 유럽식 엘리트 대학에서 미국 주립대처럼 대형 대학으로 만들었고, 서울을 계속 확장시켜 여러 도심핵이 공존하는 multipolar 도시로 만들었다. 이 결과 집적도는 낮아지고, 각 부위가 별개의 기능을 하는, 통합된 도시, 통합된 대학이 아니라 넓게 퍼진 여러 개의 핵들이다. 

대학은 정원을 줄여야 한다. 과를 줄여야 한다. 좁히고 또 좁혀서 한 나라의 최고 인재들이 분야에 상관없이 모두 서로를 알게 해야 한다. 그게 융합이고 그게 창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