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가 충격파…대한항공 벌써 年1.4조 비용 폭증

이동인 기자 외 3명
재계 초비상…비상모드 돌입
유류비 비중 높은 항공업계
운임 인상땐 여객 수요 급감
유가發 글로벌 경기 둔화땐
해운업계도 물동량 축소 비상




이란 전쟁으로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서는'초고유가' 국면에 진입하면서 산업계 위기감도 급격히 고조되고 있다. 비용 관리와 공급망 관리에서 동시에 비상등이 켜졌기 때문이다.

9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 SK, 현대자동차, LG, 한화, HD현대, GS 등 주요 그룹은 관련 부서를 중심으로 상황 점검 회의를 진행하며 유가와 원자재 가격 변동을 자세히 모니터링하고 있다.

업종별로 보면 항공업계가 가장 센 직격탄을 맞고 있다. 항공사는 전체 영업비용 가운데 유류비 비중이 높아 유가 변동이 수익성과 현금흐름에 곧바로 반영되는 구조다. 국제 유가가 100달러를 돌파하면서 다음달부터 국제선 항공권에 부과되는 유류할증료도 큰 폭으로 오를 가능성이 제기된다.

대한항공의 연간 예상 유류 소모량은 약 3050만배럴로, 유가가 1달러 상승하면 3050만달러(약 450억원)의 손해가 발생한다. 최근 일주일간 유가가 약 30달러 오른 것을 고려하면 연간 1조4000억원에 가까운 추가 손실이 우려되는 셈이다.

대형 항공사들은 유가 헤지를 통해 충격을 일부 흡수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연간 예상 유류 사용량의 최대 50%, 아시아나항공은 약 30% 범위에서 유가 헤지 전략을 운용하며 비용 변동성을 관리하고 있다. 화물 운송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점도 여객 수요 감소 충격을 완화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반면 저비용항공사(LCC)는 화물 비중이 낮고 여객 의존도가 높아 부담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유가 상승이 항공권 가격 인상과 수요 둔화로 이어질 경우 재무적 타격이 더욱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석유화학업계도 긴장 상태다. 국내 화학 산업의 핵심 원료인 나프타는 절반가량을 해외에서 들여오는데 상당 물량이 중동을 거쳐 들어온다. 여기에 국내 원유 도입량의 약 70%가 중동산이라는 점도 부담 요인이다. 이미 여천NCC는 원료 공급 차질을 이유로 거래처에 공급 불가항력을 통보했다.

정유업계 역시 비용 부담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 원유 도입 가격 상승과 함께 해상 운임, 보험료 등 부대 비용까지 동시에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해운업계도 연료비가 전체 운항 비용의 30~40%를 차지하는 만큼 고유가에 민감하다. 세계 해상운송 운임 수준을 나타내는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지난 6일 기준 전주 대비 156.08포인트 오른 1489.19를 기록했다. 국내 최대 컨테이너 선사인 HMM은 사태가 더 길어질 경우 화주에게 유류할증료(BAF)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해운업계가 가장 경계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유가 급등이 글로벌 인플레이션과 소비 침체로 이어져 전체 수출입 물동량 자체가 줄어드는 현상이다.

에너지 가격 상승은 제조업 전반에도 간접적인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전력 사용량이 많은 반도체와 철강, 디스플레이 업종은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연료비 상승으로 산업용 전기요금이 여러 차례 인상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AI) 수요 확대에 대응해 생산을 늘리고 있는 반도체업계는 전력 소비 증가와 맞물려 비용 부담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자동차업계도 시장 변화 가능성을 주시하고 있다. 고유가가 장기화하면 내연기관차 수요가 위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 비중이 확대되고 있지만 국내 시장에서는 내연기관차 판매 비중이 여전히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영향이 작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철강, 플라스틱 등 부품 비용과 물류비가 동시에 오르고 있다는 점도 부담 요인이다.

건설업계 역시 고유가 충격에서 자유롭지 않다. 대형 건설 장비의 연료비와 주요 건자재 가격이 동시에 상승하면서 공사 원가가 크게 오를 가능성이 제기된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팬데믹,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폭등한 건설 원가가 아직 정상화되지 않았는데 이번 이란 공습으로 추가 상승분이 더해질 수 있다는 것이 문제"라며 "기초 체력이 고갈된 상태에서 고유가발 원자재 폭등은 치명타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