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찾은 '고대유사'라는 책에서 발췌
1947년 가을 이야기이다.
당시에도 개빡센 문화로 유명하던 고대는 모종의 이유로 우르르 몰려가 서울상대 (현 서울대 경영대/경제학과) 학생들과 교수들을 패는데
"학교 앞에 있던 장작 가게의 장작을 한 개비씩 뽑아들고는 현재 KIST가 들어서 있는 홍릉 임업시험장 쪽에서 서울상대 쪽으로 쳐들어갔다"
남초 문화의 본질이라 부를 수 있는 린치 문화. 그 핵심에는 장작 가게의 장작을 뽑아들고 남의 대학의 학생들과 교수들을 패러 가는 어떤 싸나이다움이 있었다.
서울대 측에서 친 바리케이트를 뚫고 들어가 건물의 문짝과 유리창을 박살내는 꼬라지 앞 선봉에는 사학과가 있었다.
"사학과는 그중 진취적 의욕이 강하여 서울상대 습격 때도 많이 가담하였다"
진취적 의욕이라니. 더 진취적이면 쿠데타도 하겠다.
"정내길 교수는 머리가 터져서 온 얼굴을 눈만 내어놓고 붕대로 감고 있었다"
서울대 교수와 학장, 지금으로 따지면 터치도 불가능한 높으신 분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무려 교수를 패서 머리를 깼다. 내 표현이 아니라 고려대 법대 유진오 교수의 회고에서 사용한 상스러운 표현이다.
그럼 이 사건의 발단, 즉 원인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사실 체육대회 럭비 결승전에서 "조그만 트러블이 빌미가 되어" 서울대 상대 응원단 일부가 고대 선수를 구타, 싸울 테면 나오라 하고 시비를 건 것에서 시작되었다... 라고 고대신문은 전한다.
이에 "전 고대생들이 학교 강당에 모여 '명예회복 긴급 학생대회'를 열고 상대 측에 대하여... 3개항을 결의하고, 당일 3시까지 고대에 나와 사죄할 것을 통고하였다."
즉 서울상대가 고대생 하나를 구타하자 고대생들이 단체로 몰려가 서울상대를 교수고 뭐고 없이 아주 개박살을 내 놓았단 것.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연대와 고대의 축구 경기가 있었는데 서울상대에서 600명 원정대를 보내어 시비를 걸고, 대표자가 마이크를 잡고선 "우리는 생명을 걸고 고대를 때려 부숩시다" 라고 발언한 것.
그리고 나서는, 고대 측 주장에 따르면, 연대와 상대 측이 미리 준비한 돌과 맥주병을 던져 고대생 16명을 부민병원에 입원시켰다고 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고대도 격렬히 맞섰지만, 수적인 열세에" 밀렸다고 주장하는 부분이다.
서울상대와 연대 측이 입은 피해는 어느 정도였을까? 고대는 왜 고대의 서술에서도 몇 번이고 맞고만 있을까? 고대에서만 16명이 입원했을까? 아니, 애초에 이 시절 대학생들은 수업은 언제 듣고 시험은 언제 보는가?
어쨌든 이리 되어 고대생들이 서울상대를 복날에 개패듯 때려부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상대 측 피해는 다음과 같다.
중경상자 총 50명
입원 19명
기물 파손으로 인한 3일간 휴교
고대 측 피해(?)는 다음과 같다
다수 폭행치상 혐의로 검거
24명 송치
1명 기소, 23명 기소유예 석방
25만원 변상
여기서 본인이 이 글을 쓰게 된 경위가 되는 문단이 나온다.
"5일간의 사건 경위가 <고대신문>측의 보도에만 의존한 것이어서 그 객관성의 문제는 남는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그동안의 이 사건에 대한 세간의 평가가 그 원인이나 동기를 감안하지 않은 채, 사건 당일의 고대생의 행위에만 초점을 맞추어 재단되어 왔다는 점이다. 이렇게 될 경우 고대생들은 무지한 폭도요, 불량배일 수밖에 없고, 그들의 행위는 폭거요 난동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그날의 고대생들의 상대 습격은 그 이전 2차에 걸쳐 고대가 상대, 연대로부터 당해 온 경기장에서의 수모에서 오는 누적된 분노가 젊은 혈기에 의해 폭발한 것으로 본다."
그러니까 고대도 다 이유가 있었단 말이다.
이를 '고대유사'의 저자는 일제 vs 조선의 구도로까지 승화시킨다.
"일제치하에서 일본과 싸워서 이길 수 있는 길은 스포츠밖에 없다. 이는 식민지하, 보전이 스포츠를 통해 현실적 울분과 불만을 표출할 수밖에 없던 피맺힌 절규였다. 그래서 일본계 학교와의 운동경기에서는 물론, 여타 라이벌 학교와의 경기와 응원에서도 어느 학교보다도 강한 대결과 승리를 구가해 왔고..."
그래서 일단 고대 짱이다 라는 게 글의 요지인데.
1. 서울상대는 일본계 학교는 맞다. 관립 경성고등상업학교가 경성경제대학으로, 그게 1946년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상학과가 된 것이니 대략 일본계열 학교라 하면 말은 된다. 그런데 문제는 1947년도에 가면 일본인 교직원과 학생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다 일본으로 복귀한 시기라는 것. 일본인을 패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같은 조선인을 팬다?
2. 연대는 그럼 조선계가 아닌가? 호레이스 언더우드가 미국인이니 미국대학을 공격한 건가? 이건 대체 뭔가?
어쩌면 필자는 여기서 자기네 학생이 맞았다 하니 화끈하게 장작 한 개비씩 들고 남의 대학 쳐들어가 교수고 학생이고 다 패버리는 모습에서 오늘날의 한남들에겐 볼 수 없는 마초이즘, 상남자스러움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확실히 당시 사람들은 더 강하고 더 용감했구나 하는 인상을 받은 것이다.
고대 그곳은 대체 어떤 곳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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