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린스턴은 아이비리그 대학 중 유일하게 의과대학, 법학대학원, 경영대학원 등 전문대학원을 두지 않는다. 단순히 설립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만들 기회가 있었음에도 택하지 않은 선택이다. 실제로 프린스턴은 19세기 중반 잠깐 법학 과정을 운영했다가 스스로 폐지했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논의가 있었지만 결론은 같았다. 그 이유는 철학에 있다. 


프린스턴은 처음부터 직업 훈련이 아니라 깊이 있는 사고력을 기르는 데 집중해왔다. 모든 학부생은 전공과 무관하게 다양한 교양 과목을 이수해야 하고, 소규모 세미나와 졸업 논문을 통해 스스로 문제를 발견하고 풀어내는 경험을 한다. 이건 형식적인 커리큘럼이 아니라, 그 학교가 어떤 인간을 키우려 하는가에 대한 하나의 강력한 선언과도 같다. 


발명가 에디슨이 지식은 암기에서 온다고 주장하던 1921년, 아인슈타인은 정반대의 입장을 밝혔다. "교육의 가치는 많은 사실을 익히는 데 있지 않다. 사고하도록 마음을 훈련하는 데 있다. 그것은 교과서로는 배울 수 없는 것이다." 프린스턴이 지향하는 교육이 정확히 이것이다. 프린스턴의 17대 총장 윌리엄 보우엔(1972~1988 재임)은 대학의 의무가 단기적인 수요 충족에 있지 않다고 거듭 강조했다. 2000년 옥스퍼드대학교 로마네스 강연에서 그는 디지털화와 상업화 시대에도 대학이 지켜야 할 본질적 가치에 대해 발언했다. 그의 핵심 논지는 일관됐다. 대학은 시장 논리로 환원되지 않는 지식을 보존하고, 비판적 목소리를 보호하며, 문화적·도덕적·지적 가치를 지키는 공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의사, 변호사, 기업인일수록 인문학적 판단력과 윤리의식이 필요하다는 역설을 프린스턴은 일찍 간파했다. 전문성은 교양 위에서 완성된다는 이상, 그것이 전문대학원 없이도 프린스턴이 각 분야의 리더를 배출해온 실제 배경이다. 반면 근래 한국 대학에서는 반대 방향의 움직임이 진행 중이다.


인문학이 '비실용적'이라는 이유로 철학, 역사, 언어학 관련 학과들이 통폐합되거나 폐지되고 있는 현실이다. 단과대학 구조 조정이라는 말로 포장되지만, 실은 어떤 인간을 키울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포기하는 것에 가깝다고 본다. 기술과 전문성이 고도화될수록 그것을 뒷받침할 사고의 기반이 더 필요하다. 방법은 알지만 왜 그래야 하는지 묻지 않는 전문가가 넘쳐나는 사회가 어디로 가는지는, 이미 여러 차례 확인한 바 있다. 인문학의 위기를 단순히 학문의 문제로 보면 안 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