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데 왜 ‘노가다’ 하냐고? AI는 못하니까”…기술직 뛰어든 여성 청년들


수정 2026.05.29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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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혜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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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경기 구리시의 한 주공아파트에서 김효진씨(24)가 필름 작업을 하고 있다. 하주언 기자

지난 25일 경기 구리시의 한 주공아파트에서 김효진씨(24)가 필름 작업을 하고 있다. 하주언 기자


지난 25일 경기 구리시의 한 주공아파트에서 일하던 김효진씨(24)의 무릎은 시멘트 가루로 하얗게 덮였다. 한 손엔 평평한 끌칼을, 다른 손엔 길쭉한 흰색 인테리어 필름을 든 김씨가 현관문 위 틈새에 필름을 붙이고 모서리를 꼼꼼히 눌렀다. 들뜬 부분이 없는지 살피느라 고개를 젖힌 김씨의 목선의 근육이 도드라졌다.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김씨의 눈빛은 진중했다.


생성형 인공지능(AI) 확산으로 사무·서비스직 일자리 불안이 커지는 가운데 여성 청년들이 기술을 배우기 위해 현장으로 향하고 있다. 이들이 올린 작업 영상은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 조회수 수만 회를 기록하며 관심을 끌고 있다. 경향신문이 만난 기술직 여성들은 “손으로 하는 기술은 생성형 AI가 쉽게 대체하지 못할 것 같았다”고 입을 모았다.


‘노가다요정’으로 활동하는 김효진씨(24)가 올린 영상들. SNS 캡처

‘노가다요정’으로 활동하는 김효진씨(24)가 올린 영상들. SNS 캡처



욕실 리모델링 업체에서 ‘타일 조공’으로 일하는 A씨(35)는 예체능 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지난해 일을 그만뒀다. A씨는 “생성형 AI가 발달하면서 ‘지금 하는 일을 계속해도 괜찮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결국 사람 손으로 해야 하는 기술을 배우고 싶었다”고 말했다. A씨는 국민내일배움카드로 타일 학원 과정을 수료한 뒤 타일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지금은 철거와 방수, 타일 시공 등을 배우며 현장에서 보조 업무를 하고 있다.


필름 조공 일을 하는 김효진씨 역시 비슷한 이유로 현장 일을 택했다. 고등학교를 자퇴한 뒤 광고디자인학과 유학을 준비했던 그는 코로나19로 계획이 무산되자 디자인 작업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그러던 중 오픈AI의 생성형 AI ‘챗GPT’가 일본 애니메이션 ‘지브리풍’ 그림을 만들어내는 모습을 봤다. 김씨는 “이제 그림도 금세 대체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인테리어 필름 시공 기술을 배우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AI가 청년·여성의 고용 불안을 키우는 현실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지난해 한국은행이 발표한 ‘AI 확산과 청년고용 위축’ 보고서에 따르면 생성형 AI가 본격 확산한 2022년부터 2025년까지 청년층 일자리는 21만1000개 감소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세계경제포럼(WEF)은 사무·보조 업무를 수행하는 청년·입문층 일자리 타격이 상대적으로 크다고 분석했다.


여성 노동자는 더 취약한 위치에 놓였다고 평가된다. 국제노동기구(ILO)가 지난 3월 세계 여성의날을 맞아 발표한 ‘생성형 인공지능 일터에서의 차별과 성평등’ 보고서를 보면, 여성 중심 직종의 생성형 AI 노출 가능성은 29%로 남성 중심 직종(16%)보다 높았다. 자동화 위험이 큰 직군 비율 역시 여성 중심 직종(16%)이 남성 중심 직종(3%)의 다섯 배 이상이었다.


지난 25일 경기 구리시의 한 주공아파트에서 김효진씨(24)가 작업을 위한 장비를 옮기고 있다. 하주언 기자

지난 25일 경기 구리시의 한 주공아파트에서 김효진씨(24)가 작업을 위한 장비를 옮기고 있다. 하주언 기자


현장에서 일하는 기술직 여성들은 공통적으로 “눈에 보이는 결과”에서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4년째 도배 일을 하는 이연재씨(36)는 “텅 빈 공간이 제 손을 거쳐 화사하게 변할 때 가장 뿌듯하다”며 “노력한 만큼 결과가 눈에 보이고, 연차가 쌓일수록 실력이 곧 경쟁력이 된다는 점이 좋다”고 말했다. 입주·퇴거 청소업체를 운영하는 김현지씨(21) 역시 “오염이 심했던 공간이 깨끗하게 바뀌고 고객이 만족해할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며 “단순 노동처럼 보이지만 현장마다 다른 약품과 장비를 써야 하는 전문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SNS는 기술직 여성 청년들을 서로 연결하는 창구가 되고 있다. 닉네임 ‘노가다 요정’으로 활동하는 김효진씨가 올린 첫 영상은 150만명이 넘게 봤다. 이들이 현장에서 작업하는 모습을 올리면 “멋있다” “나도 배우고 싶다”는 반응이 이어진다고 했다. 이씨는 “예전엔 기술직이 거칠고 힘든 일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면 요즘은 자기 관리에 철저한 전문가라는 인식이 생기는 것 같다”며 “기술직에 대한 자부심도 커졌다”고 말했다. 김현지씨 역시 “예전에는 청소업을 단순히 힘든 일로만 봤는데 요즘은 전문 기술직으로 바라보는 분위기가 느껴진다”고 했다.


기술직 여성 브이로그(일상 영상 기록)에 달린 댓글. SNS 캡처

기술직 여성 브이로그(일상 영상 기록)에 달린 댓글. SNS 캡처


현장의 장벽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가장 먼저 꼽히는 건 체력 부담이다. A씨는 “남자들이 시멘트 25㎏짜리 두 포대를 한 번에 들 때 저는 한 포대도 겨우 든다”며 “한 번에 많이 하기보다 한 포대씩 여러 번 나르는 방식으로 버틴다”고 말했다. 김현지씨도 “하루에 많게는 다섯 집까지 청소하면 체력 소모가 정말 크다”며 “몸이 따라주지 않아 힘들었던 적이 많다”고 말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실력을 의심받는 경험도 여전하다. A씨는 “현장에서 ‘여자가 여기 와서 뭐 하려고 하냐’는 말을 듣기도 했다”며 “SNS에는 ‘어차피 못하니까 시작도 하지 말라’는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현장에 여성 화장실이 거의 없어 위생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불편한 경우가 많다”며 “기본적인 환경이 개선돼야 더 많은 여성들이 현장에 정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여성 청년들의 기술직 진출이 새로운 가능성이 될 수 있지만 현장 환경 개선 없이는 또 다른 불평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는 “여성들이 다양한 직업군에서 일하는 모습은 긍정적이지만, 기술직 현장은 오랫동안 남성 중심 구조였던 만큼 여성 노동자를 위한 안전 체계나 성희롱 예방 시스템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배 대표는 “여성 화장실 같은 기본 인프라부터 현장 노동자 교육, 관리·감독까지 정부 차원의 예방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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