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차원적 행복을 추구하는 인생살기

 

 

정의

고차원적 행복이란 자아를 실현하며 느낄 수 있는 행복을 말한다.

 

자아란 성향, 취향, 인생가치관, 인생철학, 인생목표 등 를 떠올리게 하는 개념, ‘하면 생각나는 것, ‘를 상징하는 추상적이면서 또 구체적일 수도 있는 무언가를 말한다.

 

자아를 실현함이란, 자아에 충실하게 인생을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바깥생활보다 집이 좋은 성향이라면, 집안에서 주로 생활한다든가, 그러다가 또 한 번 씩 바람 쐬는 것을 좋아한다면 차를 끌고 바다를 보러 간다든가. 깨끗하고 부지런한 성격이라면 매일아침 청소를 하고, 반면 지저분하고 게으른 성향이라면 그런대로 지저분하게 사는 것에 만족하며 사는 것. 미식에 취향이 있으면 맛있는 것을 먹으러 다니고, 게임에 취향이 있다면 게임을 하고, 꾸미는 것을 좋아하면 자기를 가꾸는 등 소위 꼴리는 대로 사는 것을 의미한다. 핵심은 타인의 평가나 시선, 오지랖과 무관한 본인만의 만족감이다.

 

방법

너 자신을 알라, 그리고 인정해라

가장 핵심적이고 중요한 절차이다. 같은 인간으로 태어나더라도 누구는 인류공영에 이바지해 수천수백 년이 지나도 그 이름이 남아 존경받기도 하고 누구는 사회에서 도태되어 독방에 스스로를 가두고 무의미하게 시간을 썩히며 지낸다. 무엇이 이러한 차이를 만들어내는 걸까. 아마 수가지의 이유들이 있을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인간이고 동물이고 고대고 현대고 시대만물을 관통하는 진리는 세상은 평등하지 않다는 것이다. 하찮은 미물인 모기만 해도 타고나는 능력차이가 있을 것이고 그 차이에 따라 누가 더 오래살고 더 많이 피를 빨지가 달라질 텐데 인간은 오죽할까. 무슨 일을 했는지는 몰라도 우리가 이름은 알고 있는 과학자들, 경제학자들, 역사적인 위인들과 나의 머리는 크게 고민해보지 않아도 많이 다를 것이다. 이재용의 자녀들이 물려받을 재산과 우리 부모님께서 내게 물려주실 재산도 많이 다를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벌어지는 차이가 나의 지능차이인지 부모님의 재산차이인지 구체적으로 그 항목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 말은 설령 부모님의 재산차이라도 뭉뚱그려 나와 타인간의 차이라는 것이다. 부모가 물려줄 재산도 결국 와 타인간의 수많은 차이 중 하나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 차이를 내재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을 받아들이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태어나면서부터 불가항력적으로 주어진 조건들을 가지고 내 인생을 가능한 행복하게 살아가자는 것이 이 글의 취지이다. 게임은 이미 시작됐고 물리기는 없다. 이 차이가 잘못 된 것이 아님을 인정하고, 그 다음을 생각할 것인지, 첫 단계에서부터 막혀 이 시작점의 차이를 탓하고 그것을 메워주지 않는 국가와 사회, 부모를 탓하며 인생을 살아갈 것인지는 당신의 선택이다. 국가는 우리의 인생을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하자. 국가의 모든 시혜적 정책은 국가의 재량이지 의무가 아니며 최소한의 보장의무를 가질 뿐이다. 국가는 돈이 떨어지면 언제든지 지원을 끊을 준비가 되어있다. 국민은 국가에 인생을 대신 살아 달라 할 수 없고, 설령 부탁한들 그렇게 해주지도 않는다.

좋든 싫든 우린 이 세상에 태어났고, 왜 나는 고작 이런 집에서 이렇게 태어났을까 탓해봤자 달라지는 건 없다. 만약 집이 여유 있는 편이라면 부모님께 무한히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그게 아니라면 어쩔 수 없다. 받아들이자.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로 했으면 냉정하고 가능한 최대한 철저하게 자신을 파악하자. 틀을 대충 잡아보자면 경제적 여건, 사회적 여건 등의 외부적 요인과 내부적 요인 중 성실성, 타고난 머리, 체력 등의 능력과 성향, 취향, 인생가치관, 목표 등의 자아가 있을 수 있다. 외부적 요인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이는 외부적인 이유로 형성되었다는 말이 아니다. 외적으로 보이는 나의 특징이라는 말이다. 부모님의 것을 제외하고, 현재의 본인의 사회적 위치와 수준은 온전히 본인이 인생을 살아오며 형성해낸 결과이다.

 

외부적요인

경제적 여건

부모님의 지원가능예산, 수중에 있는 돈

사회적 여건

현재시점에서의 사회적 위치, 경력

내부적요인

능력

성실성

체력

타고난 머리

멘탈

자아

성향, 취향

인생 가치관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

인생 목표

사견이지만 굳이 뭐가 더 중요한가를 따지자면 외부적 요인보다는 내부적 요인이 중요한 것 같다. 적어도 대한민국에선 최소한의 경제적인 여건은 보장해주고 취업준비 시 지원을 해주는 등의 제도가 마련이 되어있고 사회적위치의 경우 아직 취업을 준비하는 단계라면 기업에서 대졸사원 공채등과같이 명시적으로 어떤 신분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면, 어차피 취업 전엔 다 같은 무직백수이기 때문에 크게 중요치 않다고 본다. 하지만 사회적 위치, 경력 등은 지금껏 본인이 살아온 인생을 보여주는 것이긴 하다. 그것이 비루하다면 반성하고 앞으로 어떻게 더 나은 인생을 살아갈지 지금부터 고민하면 된다.

 

반면 내가 공부를 위해 몇 시간을 책상에 앉아있을 수 있는지, 그걸 위한 체력, 멘탈을 갖추고 있는지와 새로운 지식을 얼마나 빠르게 습득하고 이해할 수 있는지를 아는 것은 앞으로의 미래를 결정하기 때문에 정말 중요하다. 그리고 자아를 아는 것은 취향의 문제인데, 도전적인 성향의 사람과 안정적인 성향의 사람, 새로운 환경에서 즐거운 사람과 변화를 기피하는 사람간의 직업선택의 문제는 분명히 다를 것이다. 명예인지 돈인지, 사회생활을 할 것인지, 내가 사장이 될 것인지 등도 고민해보아야 한다. 이것들은 오직 나만이 알 수 있고, 그것이 가장 정확하다. 이렇게 나의 취향과 능력에 대해 알았고, 그것을 인정할 수 있게 됐다면, 선택할 차례이다.

 

 

최적화, Optimizing

경제학을 선택의 학문이라 부른다. 뜬금없이 경제학 얘기를 하는 이유는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선택을 잘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생은 BD 사이의 C‘(life is choice between birth and death)라는 격언도 있지 않나. 경제학에서는 이 선택을 가장 최적으로 할 수 있는 도구로써 최적화를 이용한다. 최적화란 주어진 예산제약 하에서 경제주체의 효용을 극대화시키는 실현 가능한 조합을 선택하는 것을 의미한다. , 최적화를 하기 위해선 우리의 예산제약과 개개인의 효용함수(취향이라 생각하면 편하다)를 알아야하고, 이 둘 만 안다면 우린 최적의 선택을 할 수 있다. 직업을 선택함에 앞서 우린 현재의 를 알아보는 과정을 거쳤다. 그 중에서 경제적 여건능력등으로 주어진 제약조건 하에서, 자아혹은 취향에 맞는 직업을 고르면 되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선택 가능한 다양한 직군들이 있다.

공기업 / 사기업 / 공무원 / 전문직 / 사업 등등 이 중에서도 일용직, 사무직, 현장직으로도 나뉘고 각 업계에 따라서도 수없이 많은 가지들이 나뉜다. 본인이 지금껏 살아오며 가꾸어온 능력으로 할 수 있는 것을 추리고, 그 중에서 취향에 맞는 직업을 고르면 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이 글의 취지는 행복한 인생 살기이지 좋은 직업 찾기가 아니다. 사람마다 추구하는 행복의 기준은 다르고 이룰 수 있는 방법도 다르다. 내가 10만큼의 능력을 가지고 10정도의 능력을 필요로 하는, 취향에 맞는 직업을 찾았으면 최적의 선택을 한 것일 테고, 본인만 만족한다면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자기가 가진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서 누릴 수 있는 최고로 좋은 직업을 자기가 직접 선택한 것이니 만족스러울 것이다. 그럼에도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만족스러운 직업을 가질 때 까지 능력을 키우면 되는 것이다. 예컨대 나보다 똑똑한 어떤 아이는 1시간이면 할 것을 나는 10시간을 들여야 겨우 할 수 있다 치자. 둘이 똑같이 노력한다면 당연한 얘기지만 저 아이는 나보다 더 나은 직업을 가질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나만 그 차이를 인정하고, 분수에 맞는 직업을 갖고 만족하면 문제될 것이 전혀 없다. 그 아이도, 나도 행복할 수 있다. 문제는 내가 만족하지 못 한다는 것이다. 나도 저 아이만큼 대우받고 좋은 직업을 갖고 싶다. 그렇다면 저 아이가 1시간 노력할 때 나는 10시간을 하는 것 외엔 다른 방법이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선 부모 잘 만난 것도 능력이다. 분하지만 현실이 그렇다. 이것을 부정하면 그때부터 불행해진다. 오로지 본인의 능력만으로 성공한 사례는 수두룩하다. 이들은 본인에게 주어진 비루한 조건을 탓하고 거기에 머무르지 않았다. 그저 지금보다 더 나아지기 위해 당장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했을 것이고, 생각대로 행동했을 것이다. 그만한 노력을 하지 않으면서 상황이 나아지기만을 바란다면 이게 무슨 양심 없는 소리인가. 그런 태도는 스스로를 불행에 빠뜨리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타고난 차이를 받아들이고 분수에 맞게 살던지, 그게 안 된다면 부족함을 채워서 쟁취해내든지, 행복한 인생을 위한 선택지는 두 가지다. 방구석에서 사회를 탓하고 부모를 탓하는 것으론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성격만 피폐해지고 그나마 있던 몇몇 주위 사람들만 떠나갈 것이다. 만족하던가, 만족이 안 된다면 만족할 때까지 스스로의 가치를 키워라.

이솝우화에 나오는 여우와 신포도이야기를 아는가. 여우는 자신이 먹지 못하는 높은 위치에 있는 포도를 보며 저 포도는 맛이 없을 거야.” 라며 뒤돌아선다. 개인적으로 포도에 대한 여우의 대처는 현명하다 생각한다. 아마 그 여우는 못 먹는 포도를 빠르게 포기하고 비축한 에너지로 더 맛있는 먹이를 잡아먹었을 것이다. 우리도 이런 현명한 여우가 되자. 못 먹는 포도를 보며 욕이나 해대며 인생 버리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