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삽도: 피카추는 성문종합영어의 예문을 기억하며 외쳤다. '이거는 비문(非文)이야!' >
이 질문에 답 한다면 사람마다 다른 말이 나올 수 있음을 인정하지만서도 (여기까지는 양보절)
만약 내가 답해 본다면 (여기까지는 조건절), 그것은 다음일 것이다 (여기까지는 가정법 절).
"얼마나 소설가들이 영어를 문법적으로 구사하는가!"
가 아니라
"얼마나 소설가들이 흔히 비문을 자유로이 구사하는가!"
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언어의 조합을 확대하는 소설가와, 언어의 질서를 관찰하고 논리 정연하게 체계적으로 가다듬는 문법학자의 역할이 각각 달리 있다는 것이다.
소설 문장을 많이 읽어 보면,
성문종합영어에 소개된 문법적 문장 외에도, 수많은 비문이 있으며,
이를 그대로 표준으로 삼으려다가는 망가진다는 비참한 현실.
바꿔 말하자면, 영어~영문법의 최고봉은 성문종합의 수준을 능가할 여지가 별로 없다는 것.
"아, 나는 이제 에베레스트 최고봉에 올라 온 세계를 발 아래 굽어보며, 맹자의 호연지기를 외치노라. 야호~!"
"게 누구 없소? 성문종합영어를 읽지 않고서, 영어의 세계를 알았다 자랑할 수 있는 사람 어디 없소?"
이거다.
성문을 독파하고, 또 소설을 섭렵하면, 영어의 한계를 보아, 더 이상의 고민이 사라진다.
이제는 더 오를 곳이 없네?
그대들도 우리 성문학파 문도처럼, 영어에 대한 실망감과 함께,
자신감 또한 획득하여 자기의 것으로 가지기를 원하노라. 어허허~!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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