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켓몬 듣고있는데 이해는 70%가는것같은데 정작 제대로 듣고 완전히 뜻을 알고 듣는건 50%도 안되는것 같아
그래서 영어자막도 1번볼려고하는데 이게 유튜브에서 음성을 컴퓨터에서잡아서 영어로바꿔주는거라 막 엄청틀리더라고....
이런 다른자막이라도 1번봐주는게낫나 아니면 걍 쭉쭉 보는게 나을까
그리고 못알아듣는거 이거 포켓몬 대본은 따로없어서 스크립트못보고 걍 넘기는데 계속 듣는다고해서 실력이 오르는느낌은 아닌것같거든??
즉, 1번들어서 모르는데 100번들어서 알것같지가 않아.... 이게 맞는 방법인가 싶기도하고..
근데 유튜브 자막이 몇초전부터 그 몇초뒤에 오디오 파일을 읽어서 자막으로 미리 깔아주는거맞나 미리미리나와서 자막만들어논것같기도한데 느낌이 근데 또 틀린것도잇고 어처구니없게
같은 걸 100 번 듣지 말고 시즌 에피 바꿔가며 100 번 다른 걸로 들으면 점점 좋아집니다. 어린이들도 다 알아듣는 거는 아니거든요. 어른이 되어 지각이 발달하다 보니 기대수준이 높아진 것인데, 그게 뒤집어 보면 어린이들이 일부 못알아듣는 거를 신경 끄고 넘기는 것도 일면 성숙한 자세라고 봅니다. 적어도 언어습득에 있어서 까탈스러운 구매자같은 부정적 태도는 여러모로 자신과 남들을 괴롭게 하여 효과가 반감할 듯 합니다.
영어와는 무관한 주제였지만 얼마 전에 누군가가 글을 올려 잠시 언급되었던 대량 비타민 씨 공급의 건강 효과 주제의 글이 있었지요.
massive dose -- 비타민 씨 뿐만 아니라, 언어에서 이 massive dose 를 다년 간 공급해 줘서 효과를 보고 누군가가 보고를 해 주면 매우 고맙겠어요. 얼마전까지만 해도 활동하다 악플러들과의 소모성 논쟁에 지쳐 영갤 활동을 그친 마호칸타란 사람이 역시 이런 방향의 massive dose 투여 방식을 활용해서 덕택을 본 사람 중 하나였지요.
몇 사람들이 농담 반 진담 반 섞어 영어 학습이 무슨 종교 같은 것이냐 이런 말을 했는데, 정말 어린이같은 순수하고 욕심 없는 마음가짐은 은혜롭습니다. 은혜롭다는 것은 어원이 grace 신으로부터의 선물인 것이죠. 어린이는 괴롭히지 않으면 대개 흡족해 합니다. 재미거리도 자기가 알아서 찾고 문법도 스스로 깨우치지요. 외부에서 언어 자극만 해 준다면.
그런데 어른에게 있어 소위 원어민 급으로 제2언어 습득할 때 언어발달의 결정적 시기가 끝난다는 가설은 어쩌면 이 부정적 자세하고도 깊은 연관이 있다고 봅니다. 청소년기의 초기, 이른바 사춘기 초기에 뇌의 변화가 일어나지요. 이른바 연역적 사고가 싹터서 논리적으로 세상을 구성하기 시작합니다. 한편 좋고 지능을 완성하기 위한 중요한 변화인데, 이때 생기는 비판능력이 역발사(backfire) 하는 부작용이 개시되지요. 그 결과 연역 능력이 대개 완성되는 청소년기(학자들 용어로는 사춘기 말기 end of puberty) 가 지나면 이 창이 닫힌다는 가설입니다. 저명한 촘스키 할아버지께서 제기하신 이론이지요.
그래서 처음부터 영상만으로도 문맥을 충분히 갖추어 말소리가 잘 안 들리거나 들려도 이해하지 못할 때 이를 영상의 문맥, 기타 영상이 주는 어떤 시사점으로부터 추정하여 알아맞춰 대부분 이해 가능할 만한 쉬운 자료로 보라는 권고를 하는 것인데, 일단 어떤 영상물을 보기 시작했다면 의심 말고 계속 보세요. 정 아니다 싶으면 다른 영상물로 교체하든가 보다 쉬운 영상물로 교체하든가 하세요.
감사합니다.. 그럼 계속 보겠습니다.. 자막은 좀이상해서 안보고 ㅎ..
요새 계속 느낀건데 헌차센세 클라스가 올라간듯..ㄷㄷ 주옥같은 리플 많이 남기시네
이것이 바로 영갤 답변수준 향상에 있어서 어찌보면 필요악이라 할 수 있는 감시자들의 순기능이라 할 수 있죠. 수많은 견제와 갈굼질은 얼핏 영갤을 어지럽히는 것 처럼 보일 수 있으나 이로 인해 일종의 책임감에서 기인하는 답변자 차원에서의 자기계발과정도 수반허기에 헌차와 같은 위치의 답변자로 하여금 양질의 답변을 도출하게 합니다.
병신 지랄 떠네, 너랑 전혀 상관 없다. 이런 말이 하기 힘들거든? 그래서 정 안되겠다 싶을 때 나오는 거야.
너네 악플러들이 개지랄 떤 거랑 전혀 상관 없는 일이다. 착각 말거라, 지능 떨어지며 동시에 도덕성마저 부패상태임이 명백해진 아전인수의 개구라쟁이야.
이런 말을 하기 힘든 것은 인격을 존중하자는 뜻에서 참는 거라고. 사실 이런 식의 질문이 한두 번 나온 게 아니거든?
소리를 격하게 쳐서 정신 차리라고 호통을 치고 싶지만, 그동안 참아 온 거야.
그러나 끝에 가서 소리 치면 그간 참아 온 인내가 소용이 없어지니까 조금 더 참는 거야, 알간, 병신 새끼야?
얻다 대고 수준 평가하고 자빠졌어 개새끼들아!
좆도 모르는 것들이 어른 상투 꼭대기까지 기어올라서 허세를 부려요. 너희 천한 상것들의 집안에는 어른이 없어 아직 결례로 인하여 물고 나본 경험이 전혀 없지? 상 것들아.
순기능 지랄을 떨어요. 감시자는 나야. 너희가 언제 떠나나, 행패를 또 부리나 항상 감시하고 있다. 무식한 병신들이 허세 좆지랄들 하고 자빠졌어요.
헌차야 너 혹시 악플러들을 정말로 계도하려는게 목적은 아니겠지?(설마 그런 부질없는 짓을 정말로 시도할 리가 없다고 믿겠다. 그것도 디씨에서)
이 글을 명예의 전당으로 보내자. 보내서 헛소리 하는 병신 새끼들을 위해 두고두고 만인의 귀감으로 삼자.
그렇다면 왜 그리 매 이슈마다 발끈발끈질이니.. 저게 몇라인이야 ... 마치 과달카날 전투에서 참호 파놓고 부들부들 대기타다다 저 멀리 총소리 한번 탕 들리면 놀래서 엄한데가 저도 탕탕탕 총질하는 것만큼이나 부질없는 짓인데.. 넌 왜그러는거니..?
우주의 평형은 포텐샬 따라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흘러간다. 진실을 고수하는 측은 언제나 장기적으로 승리하도록 정해진 것이 우주의 법칙이다. 그런 고로 염려는 감사하지만 끄고 쉬어도 가하니라.
태생이 귀한 학자집안이라며.. 인내(忍耐)를 강요하는 건 아니지만 이건 개인적으로 궁금해서 그래
학자에게 유독 높은 기준을 강요하는 것은 허세니라. 기본 인권은 같은 것이다. 진실과 예법과 인간의 도리를 어기는 자는 학자건 뭐건 물고 나는 것이야! 남의 정당한 권익을 침해하는 자도 마찬가지 침해에 응당하는 반격을 받는 거라고. 나를 놓고 훈계하는 척 하지 마라. 역겹다.
어떤 글에는 우이독경이라고 낙담하면서 왜 니가 말해도 씨알도 안먹히는 애들한테 자꾸 어필하는거니? .. 언젠간 조금이라도 깨닳아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런거야? 궁금하니 답좀
니라체 쓰지마 지랄병신같아..;; 솔직히 ㅠㅠ
헌차센세 화이팅
어필이 아니야. 허위를 써갈겨서 거짓 퍼뜨리는 짓을 즐기려 하는데, 가만 있으면 안 되지. 틀린 소리 지적질하는 게 싫겠지, 싫으라고 하는 거야.
내가 취미로 낚시를 좀 하다보니깐.. 생선님들은 바로 옆에서 동료가 배스바늘에 윗입천장이 꿰여 처참하게 수면 밖으로 끌려나가는걸 목격하고도 같은자리에서 같은 미끼를 던지면 어김없이 물어주더라.. 난 헌차가 왜 생선님들과 같은짓을 반복하는지 그 진의가 궁금해서 그래...
더 대화 안 한다. 무슨 목적으로 지분들 거리는 건지? 이건 소위 수사학적 질문이라 하여 답변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니라. 통신 끝.
헌차같은 사람이 국회에 있었으면 조금이나마 더 공명정대한 세상을 만드는데 일조할 수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저리 불의를 못참는 인재는 여기에 묶어두기 아까워 ㅠㅠ
헌차 또 난동부리냐? 에효....
악의는 없었으니 부디 오해좀 하지마라;;
언어 학습은 continuum임. 이런 견지에서 모르는 부분이 생길 때 흐름을 끊지 않기 위해 일정 스킵하고 넘어가는 학습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음. 그러나, 물량적인 공세의 input으로 이를 메꾼다거나 스스로 찾아보게 되는 자연발생적 학습 태도를 낙관하는 것은 그야말로 이상에 지나지 않음. 일정 참조하는 습관을 거세 당한 학습자에게 다른 걸 100번 바꿔 보는 관성이나 추진력 또한 크게 기대하기는 힘듬. 일전에도 덧글을 통해 이야기를 했지만, 그때 안 한 걸 나중에 반드시 하리란 보장이 없음. 어차피 그조차 안 할 놈은 결국 하다 맒.
언어의 베이스와 이성이 갖추어지기 이전인 어린이들과 그 반대에 있는 성인들의 언어 학습이 같을 리 만무함. 이미 성인의 머리 속에 들어 있는 모국어인 한국어는 영어라는 제 2의 언어를 받아들이는 데 상충되는 역할도 하지만, 다른 면에서는 일취월장하는 언어능력을 키우는 데 좋은 받침 역할도 함. 이 말은 초등학교 어린 아이들에게 영어의 변음에 대한 발음 조음 과정의 음성학 강의를 했다면 정신이 나간 것일 게지만 성인들은 이 말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서 오히려 감성만 가진 어린 아이들보다도 그 '지력과 이해력'를 통해서 훨씬 빠른 속도로 데이터를 받아들이고 진보를 이룰 수 있음.
성인의 교육의 다른 점은 바로 이 점에 있음. 어린 아이는 감각을 통한 인지 훈련이 주된 것이지만 성인은 이성을 동원해서 훨씬 많은 정보를 처리하기 때문이 빠르게 습득하는 성인은 훨씬 더 빠르게 습득함. 한국의 성인들이 그러한 결과를 보이는 이들이 적은 것은 영어를 가르치는 이나 방법론, 교재, 사전 등이 엉망이었기 때문임. 영아기나 유아기의 영어교육은 아이에게 영어의 소리에 대한 익숙함을 키워 주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님. 그런데 어떤 부모들은 일찍부터 텍스트에 대한 일치까지도 꿈꿈. 그렇지만 성인의 학습 과정이나 행태를 통해서도 알겠지만 텍스트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스트레스가 발생하는 정보 인식 체계임. 어른들도 텍스트 혐오증이나 공포증에 걸리는 이들이 많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는 점.
그래서 요즘 웹상에서 세 줄 요약 좀 해 달라는 미친놈들이 많음. 아이들은 대개가 마치 사람들이 캄캄한 극장 안에서 큰 스크린으로 영화를 보듯이 세상을 경험하고 또 영어를 배울 수 있겠지만, 성인들은 집에서 조그만 브라운관 화면으로 중간 중간 전화도 받고, 얘기하고, 울리는 현관 초인종에 나가보기도 하면서 영화를 보는 식으로 영어를 공부하게 됨. 개인차가 있겠지만, 일단 집중도에 엄청난 차이가 생기게 되는 것은 사실. 그리고 이러한 주의력의 차이는 바로 감각 인상의 강도의 차이로 직결되고, 그것은 기억의 충실도에의 차이로 이어지게 됨. 화면의 크기와 음향의 차이에서 오는 효과도 있지만, 극장이 한 눈 팔 일이 없는 환경이라는 데 주목해야 함.
어린 학생들일수록 다른 언어를 쉽게 배울 가능성이 크다는 것은. 언어적 가소성(plasticity)이 남아 있다는 전문적인 표현으로만 이해할 것은 아님. 대부분의 어린이들에게는 대부분의 성인이 잃어버린 신선도 높은 불수의적인 성격의 감각적 기억 용량이 주어져 있음. 그뿐만 아니라 어린이들은 어른들처럼 복잡하고 고단한 인생살이란 직접적인 짐을 지고서 분투해야만 할 의무가 면제돼 있는 경우가 대부분임. 성인 학습자는 이렇게 여러 가지 이유와 사정으로 사물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파악하는 직접적인 방식의 기억력이 흐려질 위험이 산재해 있는 것임.
어린 나이는 항상 언어의 승자가 아님. 어린 시절에 영어를 배우는 것을 선호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다름. 언어학적인 면에서 어린 나이의 언어습득을 따지지만 한국의 성인들이 잘못 배웠기 때문이고 '중요도의 차별화'가 없이 무작정 배워서 그렇지 성인의 영어 습득 속도는 아이들보다 훨씬 빠름. 특히 습득 양은 큰 차이가 남. 정작 사람들이 주목해야 할 것은 심리의 차이임. 어린이가 어른으로 커 가면서 이 사회에서 정신적으로 끊임 없이 길들여지고, 정리된 토론의 기회가 거의 없는 사회에서 자라나면서, 그리고 대중 앞에서 말하는 기회가 점점 없어지면서 어린 시절의 말하려고 하는 욕구는 닫히게 됨. 어릴 때는 말을 잘하는 사람도 성인이 되서는 심리적으로 말을 잘 못 하게 되는 환경을 말하는 것임.
그런데 일반인들은 이런 면보다는 사람이 어린 시절에 성인보다는 영어를 더 쉽게 배운다는 논리로 쉽게 일반화함. '한국인 성인이 아무리 해봤자 박사를 따도 영어는 완벽하게 안 돼'라는 논리를 교수들이 이런 것을 자기 합리화의 수단으로 슬쩍 이용하기도 함. 또한 성인들의 이중언어 학습에서 모국어의 간섭은 어떻게 보면 커다란 선입견과의 싸움이기도 함. 개방적인 태도와 유연한 자세가 없으면 그러한 언어문화적 선입견이 언어습득을 심리적으로 방해하는 경우도 적지 않음.
처음부터 탐탁치 않게 보았던 촘스키의 변형문법을 보면 촘스키가 애초에 '의미'를 넣지 않은 것은 불가사의한 일임. 그러니 배척 당함. 더욱이 우리나라 학계에서 영어도 능숙하지 않은 이들이 생성문법을 파고 있음. 착각도 큰 착각인데 그것은 언어학임. 언어의 구조를 연구하는 것이며 보편적으로 아는 언어가 영어라 영어를 분석수단으로 한 것 뿐임. 그런데 멍청한 자들이 이것을 영어학에 거꾸로 대입하고 있음. 그래서 영어를 못하면서도 GB니 LFG니 따지고 다니는 이들이 늘어나는 이상한 현상도 보임. 직시해야 할 것은, Otto Jespersen 같은 이는 덴마크 사람이면서도 영문법의 권위자였고 언어에도 능통한 사람이었다는 점.
성인이라고 해도 결코 절대적으로 늦은 것은 아님.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 다시 기초부터 제대로 밟아가면 되는 것임. 어린 학생이라면 지금 당장 제대로 하지 않으면 나이가 어리다는 것과 젊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그저 소진되고 말 기회로 바뀌어 갈 뿐임. 그러므로 결국은 현 단계에서 인생의 진전 정도는 큰 의미를 갖지 못할 수도 있음. 결국은 각자가 스스로 어떻게 하겠다는 마음 가짐과 구체적 노력이 중요한 것이지 젊다느니 나이가 들었다느니 하는 점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것임. 오히려 가장 중요한 것은, 제대로 나아갈 길을 파악할 수 있느냐는 것임.
아주 똘똘하게 잘 정리해 줬네...
답변 퀄리티 보소ㅎㄷㄷㄷ 헌차사자랑 180.231 이사람들은 언어학 전공자인가?
모두 잘읽었습니다. 그러나 두분의 의견이 좀 갈릴뿐더러... 음..1님의 말에서 결론을 유추하기는 쉽지않네요. 헌차님은 그냥 계속 보던거 고수하면서 깨달음이라던지 실력이 오를때까지 계속 영상물보는데 익숙해지는것 ,, 1님은 모르는거 넘어가는게 좋지않고 성인으로서는 성인다운 방법으로 습득양과 습득하는방법이 효율적으로 훨씬 빠르게 익힐수 있다. 라고 하시는것 같네요. 근데 1님 그 방법은 ... 듣기부터 일단 좀 잘하고싶은데 (현재 아무리 생각해봐도 제 실력이 읽기 >> 듣기 라서.) 영어 텍스트를
많이 보면서 모르는단어도 체크하고 한번외우고 (물론 안외워지겠지만) 여러번보고 여러번보고해서 텍스트로 많이 봐서 외운게 듣기에도 적용이 잘 될까요 아니면 ... 뭔가 아주 구체적이지는 않아도 방법적으로 묻고싶네요 성인으로서 효율적인 방법을..
며칠 지났지만, 댓글을 추가합니다. 지금처럼 묻고 싶은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 한 요소이겠고요, 그러나 그 중요한 요소 (목마름이져. 갈급함이져. 속어로 이른바 헝그리 정신?이라는 것) 를 질문으로 외부에 발산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판단 기준을 세워 (이미 드린 정보 속에 모두 숨어 있어요) 그 기준에 도달하기 위하여 개인 분발로 스스로 검증하면서 장기적으로 진행하는 에너지/ 그 에너지로 생산해 낸, 최저 퀠리티를 유지한 건전한 총 노출의 양이 결정한다고 봐요.
유태인 교육원칙 중 국내에 소개된 것 중에, 바로 답을 주지 않는 방법이 있어요. 외부에서 즉각 답변이 주어지면 시원하긴 하지요. 그런데 과학적으로 기계관에 따라 정밀, 단순하게 움직여 주는 간단한 시스템의 문제가 아니어요. 언어 습득이라는 복합적 과정이 말입니다.
이런 복합적 과정에서 단순 답변은 까딱하면 독이 되는 수가 있어요. 즉 단순화한 접근 방식으로 제시된 것을 또 다시 자의적으로 이해해서 거짓으로 안심해버리는 사태가 흔할 것이란 예측입니다. 문제는 복잡성을 배태한 본래 간단치 않은 것인데, 그것을 단순 시각으로 접근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이죠.
1께서 여러 좋은 지적을 해 주셨지만, 안타깝게도 그것은 이상론에서 어떻게 벗어났는가를 지적하는 장기적 플래닝을 위해서는, 또는 학술적 접근을 위해서는 진정 소중한 지적이었겟지만, 죄송하게도 지금 질문자의 요구에는 그다지 실현 가능성 없는 공허한 가능성만 제시하여 오히려 혼란을 가중시켰다고 안타깝게 봅니다.
될 수도 있었는데, 이래서 안 됐다는 점은 분명 미래의 교육백년대계를 위해서는 중요한 생각 포인트이지만, 그렇다 하여 과거의 영어 교습/학습법을 대치할 구체적 방안이나 방향 없이 막연하다고 봅니다. 구체적으로 따를 수 있는 간단한 판단 기준이 시급한 분한테, 그런 막연하고 이론적인 지적은 사실이겠으면서도 적용할 길이 막연한 것이지요.
여기까지 오기도 쉽지만은 않았을 터인데 이론적인 탁상의 막연한 가능성/(아이러닉 하게도 교수들이 핑게거리로 삼는 것이 다른 형태로 반복됨) 의혹을 제기하여 좋은 방향으로 돌파구를 모색하는 사람에게 빛 좋으나 먹을 수 없는 허상을 제시하신 것이 아닌가라는 점입니다.
지나치게 먼 것은 미래의 영어교육학자들에게 맡기시고, 다노출 방식으로 현행 학습법이 안고 있는 영어습득 상의 장벽을 헤쳐서 넘어가려는 사람에게는 독과 같은 덫을 치신 것에 대해서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차라리 독립적 글로서 제시하였다면 충분히 좋은 글이었을 내용이, 마침 때려도됨? 님의 질문에 답변하는 형식을 취하여 수요와 이에 대한 부응으로서는 안 어울리는 어그러짐이 발생하였다고 보는 것입니다.
촘스키의 원어민 급 언어습득의 창을 제시한 것은 내가 거기에 동의한다는 말은 아니었고, 일종의 각성을 촉구하는 꼬투리로 삼은 것입니다. 부정적 요소가 있음을 그리고 그 부정적 요소가 무엇인지 안다면, 그것을 가급적 억제/회피하여 어떻게 하면 보다 언어습득을 촉진할 수 있을까를 질문자 자신이 생각하도록 유도하는 말이었은데, 촘스키 비판으로 대응하신 점에 대해서도 저의 의도를 곡해하신 것이 아닌가 하여 안타깝게 여깁니다.
이 스레드는 영어습득 일반론을 토론하는 자리가 아니라, 한 개인이 다노출 방식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헤쳐나가야 할 학습자의 장벽 내지 일종의 존재론적 위기의 순간인 셈인데, 여기에서 이런 막연한 의혹과 반대 의견을 제시하여 혼란을 부추기시다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촘스키의 창 이론을 반박하시려 노력하신 점 빼고, 나머지 지적은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입니다. 혹시 나의 의도를 곡해하였다면 질문자 포함하여 내가 그런 주장을 한 것이 아니고, 촘스키의 그러한 장벽의 현상이 (그의 이론이 아니고) 분명 관찰되므로, 이에 대하여 현명하게 대처하는 길을 시사하려 노력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