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軒車使者 님. 접때 영어 관련 질문드렸던 한 유저입니다.
청소년기 이후로 영어를 외국에서 접하고 공부하는 사람도 원어민처럼
될 수 있냐는 질문을 드렸었거든요. 결론적으로는 가능하다고 말씀하셨고요.
이런 저런 연구도 공부도 많이 하셨던 거 같아서 매우 존경심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공부 비법이라고 軒車使者 님 글 쓰셨던 것도 죄다 다 찾아서
읽어보고 그랬습니다. 역시나 그런데 결론은 단 하나였더군요.
많이 읽고, 많이 해보는 것. 제 자신도 청소년기 미국 유학 시절 가장
많이 영어 실력이 향상되었다고 느낀 순간은 학교에서 Literature 시간에
과제로 읽어야 되는 책을 한 장, 한 장 사전 찾아가며 긴장되게 읽었던 때였네요.
그런데, 마지막으로 질문드리고 싶은 건,
제가 평소에 사전도 많이 찾고, 그걸 개인적인 단어장에 저장도 하고,
수시로 보기도 하며, 책을 처음 그래도 힘겹게 읽고 나면 이해는 가나
그것을 내 식으로 완전히 또 예쁘게 소화해서 글을 쓴다거나 하지는 못 하는 것 같습니다.
특히나 긴 문장에 있어서는 이해도가 떨어지고, 설령 원어민이 그런 긴 문장을
말하고 있으면 단어, 단어는 다 뭔지 알겠는데 전체적으로 다 말하고 나면 대체
무슨 말했는지 분간이 안 갈 때가 많네요. 단문으로는 그래도 쉽게 할 수 있는 편인데.
이것도 그저 아직 독서량의 부족에서 비롯된 것일까요? 이해력 속도 같은 거요.
그리고 긴 문장을 많이 외우면 그만큼 제가 나중에 자연스레 뽑아 쓸 수 있는 것도 늘어나는지요?
접때 노출된 것과 내가 내뱉을 수 있는 것의 비례는 10:1이라 했는데, 맞는지요?
P.S. 이런 저런 공부를 하고 많은 지식적, 언어감각적 역량이 늘었는데도
흑인 액센트나 영화에서 mumble하는 대사가 안 들리는 건 제 능력 탓인가요?
(특히나 액션 영화 볼 때, 배우들이 입을 크게 벌리지 않은 채 빠른 대사로 뭔가를 해버리면 참 난감하더군요.)
친숙도의 문제겠지요. 원어민도 늘상 하던 말만 하고 자주 안 쓰는 말을 갑자기 하려면 더듬더듬거리더군요. 한국 와서 원어민들끼지 full-time 소통에서 격리되어 2-3년 지내면, 가끔씩 갸우뚱거리며, 이랬던가 저랬던가? 하더라고요.
양들의 침묵에 재미난 대사가 나오는데, Dr Hannibal Lector 가 Clarice 한테 범인의 프로파일을 분석하는 한 방법을 암시해 주는 질문을 합니다. " what does one covet, Clarice? " 끝내 눈치를 못 채니까 답을 줍니다. " One covets what one sees everyday. "
저 자신의 말을 인용하겠습니다. 충분한 양의 노출이 중요한 것은, 그것이 하도 많이 들어보고 너무나도 당연하고 뻔하고 뻔하게 각인이 되어 있어야만, 그래서 나에게 상황과 생각이 부합하는 순간에 처할 때, 그 말이 나오려고 근질근질거려야 할 정도로 당연시되어야 한다.는 발견이자 전제입니다. 이미 겪어본 사람에게는 발견이고 반추이지만. 아직 그것을 한번도 겪어보지 못하거나 미처 깨닫지 못한 사람에게는 전제가 됩니다.
어떤 극을 보는데, 영어는 전혀 문제가 안 되는데, 거기에 나오는 여러 등장 인물의 이름이 빨빨리 접수되어서 그것을 기초로 사건을 정리해야 하는 추리극에서 답답할 때가 있습니다. 늘상 듣고 말하는 이름들이 아니라서 처리하는 데 쓸데없는 걸로 시간이 들고 멈칫 하게 됩니다. 친숙도의 문제로 귀결되는 것입니다.
양들의 침묵에서 범인이 늘상 보던 풍만한 여인의 피부를 탐하듯, 그렇게 늘상 듣보고 말하는 이름들, 낱말들이 아닌 이상 단순히 학습했다 하여 그것을 실시간 무리없이 처리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지나친 것이라고 봅니다.
하하하하. 안 그래도 아까 읽었던 헌차사자 님 글 중에 그 대사 쓰셔서 얼마나 반가웠다고요!!! 제가 몇 십 번이고 돌려본 영화였거든요. "It puts the lotion on its skin~" 할 때 it 쓰던 것도 참 재미있었어요. 저도 그런 식으로 계속적으로 수도 없이 반복해서 보고 또 보다 보니깐 대충 어떤 intonation으로 대사가 돌아가는지는 다 파악이 되고 짧은 문장들은 외우는 지경까지 갔는데, 역시나 어렵고 긴 문장들은 안 외워지네요. "Fly, fly, fly." "A census taker once tried to test me. I ate his liver with fava bean, and some nice chianti!!!"
이렇게 본다면 언어는 매우 정직한 것이지요. 들어간 대로 나오니까요. 비율이야 10:1 로 막연하게 정했지만, 아무튼 많이 넣어주는 정도가 100:1이 될 수도 있겠지요. 더군다나 제2언어로서 학습하는 외국인의 신분이라면 이처럼 비율은 더욱 과장된 방향으로 조정될 것입니다. 또 들어가서 안착하고 숙성하는 소위 rewiring 이란 시간도 요구되겠지요. 어떤 것은 수 개월. 어떤 것은 보다 짧게. 어떤 것은 수년 에서 수십년 이후에나 원어민과 차이없이 술술 나와 주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결국엔 역시 제 예상이 맞았네요. '아직 많이 안 읽었다. 아직 충분이 많이 반복해서 안 들었다. 아직 충분히 말하기 연습 안 했다.' (제가 겁냈던 부분은, 뭔가 단어 암기에도 그렇고 반복적인 노력을 하는데도 자꾸 앞의 것을 까먹거나, 교포 친구들처럼 자연스레 절대 안 나오기 때문에 어차피 노력해도 안 되는 거 아니었나, 이런 생각이었거든요.) 그런데, 헌차사자 님처럼 어릴 때부터 bilingual로 지내면 그래도 자연스레 터득되고 성장판 닫힌 이후에 배우는 것보다는 확실히 이점은 있나요? 제 말은, 어릴 때 현지 생활해서 공부하는 게 커서 몇 억씩 쳐들여서 과외하고 영어 공부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지 않나요?
그러셨군요. 참 심리극 영화로서는 양들의 침묵이 최고의 작품이 아닐까 합니다. Anthony Hopkins 로서도 아마 생애 최고의 연기, 전무 후무한 연기였다고 봅니다. 양들의 침묵에서 얻는 언어학습자를 위한 교훈은 다음이라고 생각합니다 : " 언어의 각인은 탐욕과 질투에 이를 지경으로, 반사적으로, 충동적으로, 분출할 정도로 각인되어야만 (원어민 급으로) 쓸모가 있다. "
그럼 간단하게 다시 요약해서 질문 드리면, accent나 dialectical difference에 대한 접근법은 결국 "익숙해져라."가 답인가요? 그리고 두 번째 질문은, 제가 아무리 영화를 반복해서 보고 따라해도 단문만 자연스레 외워지는데, 장문은 결국 대사 보고, 분석한 다음, 기계적으로 외우는 것이 맞나요?
ㄴㄴ 분명 도움이 되겠지요. 역시 노력하는 사람에게나 효과가 있는 것이고 둔재나 게으르거나 관심 자체가 없는 사람이 어렸을 적 해외체류만 믿고 성과 없이 사는 사람들도 많으니 방심하거나 누구처럼 황금알 낳기도 전에 뽑아서 장삿속부터 채우려는 일부 몰지각한 연예인 같이 부정직한 마음을 스스로 경계한다면 좋은 성과를 볼 가능성이 훨씬 올라가겠지요. 성과도 부딛쳐 봐야 나는 것이고, 여권에 찍힌 해외체류 기간을 훈장인 양 믿는 것은 도끼처럼 발등을 찍는 수가 있으니까요. 더군다나 그것마저 부풀리고 허위로 섞어쳐서 순박한 대중을 속이는 파렴치 짓은 정말 악한 행위라고 봅니다.
ㄴㄴ 그런 문제라면, 아직 젊고 기회가 많으니까 해외로 가셔서 acting lesson 을 받아보세여. 성악 딕션이나 연극 영화 계의 연기 레슨에서 배울 수 있는 상당한 경험적 지식이랄까 기술이랄까 하는 것이 아직 미발굴의 여러 방법들이 잠재해 있다고 봅니다. 저야 영어가 관심이 아니었기에 신경을 안 썼는데, 이쪽으로 전문인으로 성장하시고 연구도 하실 거라면 전문적인 경험을 반드시 쌓으세요. 개인적으로 발전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여기서 하는 것 조금 하시다가 다 정리하시고 한 10년-20년 다녀 오세요. 범을 잡으려면 범의 소굴로. 영어를 잡으려면 원어민 국가로. 이게 정도입니다. 그냥 고급 지향이 아니고 더 높이 보시니까 한국어 아무리 해 봐야 기껏 고급 학습자이지 원어민의 영어 첨단을 경험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정정 : 한국어 > 한국에서
늘 좋은 조언 너무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다시 미국으로 갈 수 있는 여건은 개인적으로 안 되어서요. 지금 제가 스스로 원하는 것은 발음의 중요성보다 문장을 자연스럽게 입으로 길게 잘 뽑아낼 수 있고 이해도 잘하는 거였거든요. 수준은 SONY사의 회장 Kazuo Hirai 님 정도로 딱 맞춰서 잘하고 싶습니다. 그 분 presentation도 수도 없이 보고 따라하고 했습니다만, 일상적인 대화에서는 막상 입에 익숙해졌던 문장들도 잘 쓸 일이 없으니 좀 어버버 했던 기억이 많이 나네요. (여담인데, 한국인이 영어에 쳐들이는 돈을 일본어에 쳐들인다면 훨씬 잘하지 않을까요? 유럽 친구들을 보고 연구했던 부분이에요.)
하하하하, 영혼의 짝처럼 비슷하신 두 분의 글 잘 읽었습니다. 환상 의 궁합입니다.
Kazuo Hirai 이 사람 방금 동영상 봤는데, 일본인 중에서 이렇게 영어 잘하는건 처음보네요;;
히라이 회장은 제가 알기로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서 어렸을 때부터 외국을 나가 살았다고 하네요. 대학은 일본에서 나왔는데 주로 영어를 쓰는 캠퍼스 community였던 거 같고요. 그런데 주근거지는 왠지 미국이었을 거 같네요. 외교관 아버지인데 또 오죽 교육을 이리저리 받으시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요. 그런데 행동하시는 거나 말투 자체가 영어를 잘한다기보단, 그냥 미국인이라는 느낌이 더 많이 드네요.
ㄴ 흠 역시나 외교관 자제였군 ㅋㅋㅋ 역시 일본 토종 중에서 저런 유창함이 안 나옴.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진짜 환상의 궁합이네 결론은, 나도 몰라 네가 언제 영어를 잘하게 될지는 이 말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