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성문 종합영어나 수능 지문을 비판하면 흔히 이렇게 반박한다.
“그 글들은 교수나 유명한 학자, 문학가들이 쓴 수준 높은 글이다.”
그러나 이 반박은 논점을 벗어나 있다.
내가 문제 삼는 것은 ‘그 글의 수준’이 아니라, 그 글이 놓인 맥락에서의 적합성, 즉 ‘목적 적합도’다.
좋은 것이 언제나 적절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보자.
수학 경시대회 문제는 분명 아름답고 훌륭한 문제다. 치밀한 논리와 창의적 발상이 결합된, 그 자체로 높은 가치를 지닌 산물이다.
그러나 그런 문제를 예비 중학교 1학년 시험에 출제한다면 어떨까?
그 순간 그 문제는 ‘좋은 문제’에서 ‘나쁜 문제’로 변한다.
문제의 질이 떨어졌기 때문이 아니라, 대상과 목적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99%의 학생이 풀 수 없는 문제는 학업 성취도를 평가하는 도구로서 기능하지 못한다.
평가란 구별을 위한 것이지, 좌절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논리는 영어 교육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성문 종합영어의 문장이나, 논문에서 발췌한 듯한 수능 지문들은 분명 잘 쓰인 글이다.
문장 구조는 정교하고, 표현은 밀도 있으며, 사유의 깊이 또한 얕지 않다.
그 자체로 보면 비판할 이유가 없다.
문제는 그것이 누구를 위한 텍스트인가라는 점이다.
그러한 문장은 이미 영어에 충분히 익숙한 사람이
문장의 미묘한 뉘앙스를 감상하거나, 고급 독해 능력을 훈련하기에는 적합하다.
그러나 영어를 외국어로 배우는 일반적인 고등학생에게 필요한 것은 전혀 다른 종류의 능력이다.
그들에게 시급한 것은
복잡하게 꼬인 문장을 해부하는 기술이 아니라,
간단한 문장을 빠르게 이해하고, 기본적인 의사소통을 수행하는 능력이다.
즉, 문제는 ‘난이도’가 아니라 ‘우선순위’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