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와 살쾡이의 다른 점이 무엇이냐 물어본다면 사람들은 다들 이렇게 답할 것이다.
까마귀는 날 수 있는 새고, 살쾡이는 날 수 없는 고양이과의 동물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내 답은 다르다. 답은 코지마 입자와 AMS 적성, 그리고 넥스트의 여부라고 말할 것이다.
이게 무슨 개소리인가 싶을 것이다.
당연하다. 이걸 아는 사람들은 신작이 8년째 나오지 않아 옛날 게임을 가지고 몸은 투쟁을 원한다! 를 외쳐대는 사람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나는 살쾡이였다. 4로 입문해 fA 하드까지 전부 해본 그야말로 오리지널.
녹색 입자가 화면 가득히 뿌려지면 기분이 좋았고, 화면이 좁아지며 쌔앵 소리가 나면 행복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까마귀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푸른 하늘 대신 인공적인 하늘이 보이는 곳에서.
...
우리 집의 거실에는 낡은 플레이스테이션이 한 대 있다. 내가 아주 어렸을 적에, 대략 초등학교 5학년 쯤 되었을 무렵 미국으로 이민 간다던 외삼촌이 작별 선물이라며 넘겨주고 간 것이다.
PS3라 하던가. 작년에 5세대 기종이 발표된 지금에 있어서 2세대나 뒤떨어진 구식의 플레이스테이션이지만 나는 그것이 썩 마음에 들었다.
집에 하나 있는 데스크탑 컴퓨터는 철저한 사무용 워크스테이션이라 제대로 된 PC 게임을 돌리지 못할 성능이었고, 핸드폰도 학생폰이었던 탓에 모바일 게임도 힘들었으며. 무엇보다, 내 취향의 게임이 잔뜩 있었다.
그러니 나는 오늘도 TV와 기기 전원을 켜고 패드를 잡았다. 흔히 아는대로 패드의 버튼이 내 얼굴과 마주하게 잡진 않는다. 패드를 거꾸로 잡고 거의 모든 버튼에 손가락을 올린 채 로딩을 기다린다.
요컨대, AC 잡기다.
누군가는 이게 무슨 미친짓이냐고 힐난하겠지만 지금 로딩이 끝나고 실행되고 있는 게임. 아머드 코어 fA의 특성상 부스터가 많아도 너무 많아서 손이 안 꼬이고 조작하려면 이렇게 할 수 밖에 없다.
달성률을 재차 확인해보니 역시 100%
솔직히 이제 더 할 것도 없다. 초등학교 5학년부터 지금까지 14년간 사장포 얹은 슈퍼 프라질이라던가 아쿠아비트맨이라던가 순정 알리야라던가 라이덴이라던가.
등등등 평범한 것으론 만족하지 못해 온갖 정신 나간 컨셉들을 잡아가며 n회차를 수십 번쯤 돌려서 이젠 미션을 키기만 해도 앞으로 나올 대사가 술술 나올 정도다.
문득 권태감이 들어 기기를 껐고, 나는 한숨을 푹 쉬며 거실에서 내 방으로 돌아가 외삼촌이 PS3와 함께 넘겨준 게임 CD 뭉치를 뒤지기 시작했다.
뭔가 새로운 건 없을까, 재미있는 건 없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플라스틱 부딪히는 소리 끝에 손에 잡힌 건 하나의 CD였다. 아머드 코어 3, 넘버링을 보면 4의 이전작인 것 같은데 겉표지의 AC가 꽤 특이하게 생겼다.
넥스트보다는.. 그래, 잡몹으로 자주 나오던 노멀이나 MT하고 조금 더 비슷하게 생긴 모양새였다. 설마 국가 해체 전쟁 당시 정부군 소속 노멀로 기업의 넥스트를 잡기라도 하는건가.
흥미가 생겼다.
나는 뭉치에서 AC3의 CD를 빼내 다시 거실로 향했고, 기기의 전원을 킨 뒤 그걸 집어 넣었다. 하위호환이 되는 기종이라고 듣긴 했는데 잘 될지는 의문이다.
"잘 된다면 좋은 것이고, 안 된다면 다른 수단을 생각해내면 그만이지."
나는 혼잣말하며 소파에 앉아 다시금 패드를 잡았고, 실행에 성공했는지 FROM SOFTWARE의 로고가 떠오르는 TV 화면을 바라보았다.
로고가 사라진 뒤 조금 조잡해보이는 인트로 애니메이션이 지나가고, 유튜브의 애니버서리 OST에서 들어본 적 있는 배경음이 깔리자 마침내 NEW START 버튼이 보였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패드의 O 버튼을 눌렀고, 그러자 TV에서 막대한 섬광이 뿜어져 나와 나와 방을 삼켰다.
시발.
도대체 뭘 건네준거야.
...
정신을 차리고 보니 눈 앞의 풍경은 기묘하기 짝이 없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 어째 익숙해 보이지만 익숙하지 않은 계기가 떠 있는 건담이나 타이탄폴 같은 메카닉 특유의 직선형 콕피트 인테리어가 보였다.
전면과 양 측면에 큰 모니터가 있고 의자에 앉아 레버와 페달로 조작하는 그거 말이다. 거기에 몸은 무슨 점프슈트 같은 걸 입었는지 조금 조였고, 머리는 어느새 헬멧이 씌워져 있었다.
평범한 오토바이 헬멧 같은 것도 아니다. 전쟁 영화에서 꽤 자주 봤던 공격헬기 조종사들이 쓰는 헬멧과 비슷한 부류다. 거기에 모니터가 투영하고 있는 화상에는 방금 전 CD 커버에서 보았던 AC가 보였다.
음, 이건 겜빙의물이군. 확신이 들었다.
ㅡㅡㅡ
방금 PCSX2로 아코 3 첫 미션 깨고 뽕차서 쓰기 시작함
데수웅 - dc App
독백체 느낌있어 재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