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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리우스 북부의 BAWS 제2 공창에서 출발한 수송 헬기는 장거리 비행 끝에 이제는 사적지로 지정된 - 지정 선언만 했지 시간과 예산의 문제로 전혀 관리되고 있지 않다 - 무장채굴함 EB-0309 스트라이더의 잔해가 있는 보나 데아 사구를 넘어 그리드 086의 목전까지 도달했다.

『포토맥 반장, 아무리 그래도 제가 여기 탈 이유는 없지 않습니까?』

조종간을 잡고 있는 건 플로리안이었다. AI의 오토파일럿으로 운항하고 있어 할 일은 거의 없었지만.

『그럼 그 아가씨를 혼자 태울 셈이냐? 이야, 이거 못되먹은 놈일세.』

거기에 격납고 쪽도 조용하기 그지 없어 할 일이라곤 저 멀리 떨어진 포토맥 반장과 장거리 통신으로 말다툼을 하는 정도였다. 아까 그 우악스러운 손길에 잡혀 수송 헬기의 조종석에 앉혀진 뒤. 그대로 출발당한 것이다.

『아니, 그런 얘기가 아니라. 저는 그녀의 담당 아키텍트지 딱히 오퍼레이터 같은 게 아니지 않습니까. 에어의 서포트를 받-』

『엉? 그쪽의 아가씨는 오늘은 일 못해. 프로이트가 놀자고 쳐들어와서 파트너랑 러스티랑 요격 나갔다.』

『....그렇다고 쳐도 애당초 저는 전문 오퍼레이터가 아닌뎁쇼.』

그렇다. 어쩌다가 붙어다닐 뿐이지 아키텍트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란 말이다. 플로리안은 억울하다는 듯 말했고, 포토맥 반장은 껄껄 웃어대며 대답했다. 장거리 통신 특유의 코랄 간섭 노이즈가 섞인 게 묘하게 열받는다.

『도저 출신에, 해방전선 전사였고, 지금도 행거에 자기 AC를 처박아둔 놈이 고작 오퍼레이터 일을 못하겠냐? 네놈도 알다시피 우리는 만성적인 인력 부족이다. 토 달지 말고 빨리 해치우고 오기나 햇-!』

"...."

이래서 회식 술자리에서 과거사 같은 걸 꺼내는 게 아니었는데. 플로리안은 뚱한 표정으로 신경질적으로 통신을 끊은 뒤. 조종석 전면 모니터에 표시된 935의 바이탈 신호를 확인했다. 자고 있다. 전원이 꺼진 기계처럼.

사라지지 않는 이명. 기계의 전원을 꺼버리듯이 취하는 수면. 구세대형 강화인간을 상징하는 문장이다. 그렇다면 그 수면 속에서 꿈은 꾸고 있는 걸까. 알 수 없다.

조금 있으면 사출 포인트에 도달할 터다. 그때까지는 자게 해주는 게 좋겠지.

모래바람 속에서의 피카는 씁쓸하기 그지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리드 086의 상층부가 보이기 시작했다. 특징적인 대륙 간 수송용 카고 런처와 그 근처에 널부러져 있는 C병기의 잔해를 보니 확실하다. 목적지인 구 RaD의 거점은 그리드의 중층부.

원래라면 봉쇄 기구의 위성 레이저 포격 탓에 그리드 상층으로부터의 접근은 불가능에 가까웠지만 고맙게도 코랄 전쟁 이후로는 죄다 - 루비코니언들에게 엿을 먹이기 위해 풀어둔 일부의 무인기를 제외한다면 - 철수했고, 이젠 헬기로도 간단히 접근할 수 있다.

COM에 파일럿의 각성 명령을 내린다.

"그 녀석을 깨워줘."

『알겠습니다. 플로리안 2급 아키텍트.』

엄연한 사람을 이런 식으로 깨우는 게 맞나 싶지만. 그렇다고 두들겨 깨울 수도 없는 모양이니. 플로리안은 웨이 포인트의 갱신을 알리는 조종석 전면 모니터의 HUD 표기를 보고 마른 세수를 했다.

『뇌 심부 코랄 관리 디바이스 기동.』

『강화인간 C3-935 각성했습니다.』

그리고 헬멧의 마이크를 내리고, 목을 가다듬고, 채널을 켜서 말한다.

"....935, 일할 시간이야."

귀에 익은 목소리가 소녀의 잠을 깨웠다.

AC 수송용 컨테이너 모듈을 장비한 TH-E-012 수송 헬기의 행거가 90도 회전하며, 거기에 매달린 AC를 사출 레일에 고정시켰다. 현재 위치는 그리드 086의 상층.

임무는 플로리안이 말했던 대로 간단했다. 현 루비콘 정부에게 행성을 좀먹는 암덩어리나 마찬가지인 도저들은 여유가 있을 땐 온갖 방법으로 쓸려나가고 있었고, 이번 테스트도 그런 체제 안정의 일환이었으니.

그나마 사람을 고민하게 만든 부분인 그리드 086으로의 진입도 AC에 더해 수송 헬기까지 동원하면 쉬운 일이다.

사출 포인트에 도달한 헬기가 정지한다. 배치된 MT병들의 육안에는 보일지도 모르지만, 도저가 굴리는 MT의 록온에는 잡히지 않을 거리.

헬기의 램프 도어가 열리고, 스노우 화이트를 매단 행거가 레일을 따라 도어 밖에 고정되었다.

메가스트럭쳐의 잔해로 흐트러진 고고도의 거친 바람이 분다. 두부의 카메라가 기동을 알리듯 발광하고, 후면의 4연장 미사일이 포문을 앞으로 한다.

"너를 사출한 직후. 통신 중계와 데이터 수집을 겸하는 관측 드론이 뒤따라 사출될거야. 기체 조심하고, 탄약 아껴서 쓰고, 무엇보다도 몸 조심하고. 다녀와라."

『메인 시스템, 전투 모드로 기동합니다.』

"작전, 개시합니다."

행거의 고정이 풀렸다. 스노우 화이트는 그대로 추락하는 듯 싶더니, 이내 방향을 잡고 비행을 시작했다. 맹렬히.

제너레이터의 푸른 불꽃이 공중을 수놓는다. 어설트 부스트의 가속에 대기가 기체를 훑고, 중력 가속도가 무겁게 콕핏 속의 소녀를 짓누른다.

하지만, 935가 그 반작용에 불평할 틈은 없었다. 스노우 화이트는 순식간에 그리드 086 중층의 교각에 발을 디뎠고, 록온 사이트는 다가오는 MT 부대를 가리켰다.






교각 위. 4각 MT에 타고 있던 분대장은 세상을 원망하고 싶었다. 기업들 틈바구니에서도, 코랄 전쟁에서도, 그리고 도저들 간의 세력다툼에서도 어떻게 살아남았는데. 저런 괴물딱지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말이 되는가.

날아오는 수송 헬기와 허여멀건 AC를 볼 때까진 이런 기분까진 들지 않았다. 가슴은 좀 철렁하긴 했지만.

그래도 여리여리한 프레임을 보니 포위해서 화력으로 제압하면 잡지 못할 것도 없어 보였다. 자신들이 굴리는 MT가 밸런스가 나쁜 건 주지의 사실이지만, 그 대신 화력 하나는 기업의 MT 이상이니.

문제는, 저 빌어먹을 흰둥이가 너무 빨랐다. 바주카나 대형 미사일은 조준이 맞지도 않았고, 다연장 미사일을 쏟아부어도 한발쯤 스칠까 말까였다.

최후의 자비인지 무장만은 가벼워 그레네이드 한 발에 MT 서넛이 날아가진 않았지만, 끊어 쏘는 라이플만으로도 시체가 되기엔 충분했다.

『저거! 러스티란 놈의 그거 아니야?!』

『다루기 어렵다곤 들었지만, 최신형이 질 리가 없잖아...!』

폐급들의 한심한 목소리가 통신에 섞이자, 기세가 전부인 도저의 MT 분대는 눈에 띄게 소극적으로 변했다. 공세를 이어가지 않으면 순식간에 전멸될 터. 분대장은 욕지거리라도 퍼부어 사기를 올리려고 했다. 그 순간.

분대장의 시야 가득히, 펄스 블레이드의 창백한 빛이 다가왔다.

『식별한 전 MT의 격파를 확인. 아직까진 문제 없네. 쭉쭉 가자고.』

그렇다. 최신형이 질 리가 없지. 플로리안은 MT 파일럿의 말을 곱씹으며 즉각 관측 드론 4기를 투하했다. CD-E-086 소형 무인기에서 개틀링을 떼어내고 복합 센서군과 통신 중계기를 결합한 모듈을 단 제 2공창 특제다.

단순히 영상을 중계 받는 거라면 굳이 드론을 써야 할 필요는 없지만 이건 엄연한 실험. 온갖 대용량의 데이터를 고철과 잔류 코랄이 가득한 환경에서 실시간으로 끊임없이 전달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 계속 보도록 할까.

드론들은 교각 위 플랫폼까지 도달한 스노우 화이트를 쫓았다. 어째선지 플랫폼에서 멈춰선 채 머리만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지만. 플로리안은 설마 하는 마음에 입을 열었다.

『...위쪽. 통로가 열렸잖아.』

『아.』

짧은 탄성과 함께 스노우 화이트가 날았다. 아무래도 935는 정말로 길을 헤매고 있던 모양이었다.

짧은 통로를 지나자 탁 트인 하늘과 그 너머의 플랫폼이 보였다. 플랫폼은 계단식으로 배치되어 있어, 심부 건물로 이어진 듯한 교량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문제는 저 편과의 수직적, 수평적 간격이었다. 어줍잖게 허공을 넘으려 했다간 동력이 모자라 온몸으로 루비콘 3의 중력을 체험할 게 뻔한데다, 플랫폼에 배치된 MT들도 그걸 노리고 요격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그 탓인지 935가 조금 멈칫했고, 플로리안은 살짝 등을 밀어주기로 했다.

『카탈로그 스펙 상 ALBA에 탑재된 부스터면 충분히 넘어. AB를 써.』

원래라면 아까 마커 정보를 갱신해줘야 하지만 내가 전문 오퍼레이터도 아니거니와 전후의 그리드 086은 완전히 마굴이다. 멀쩡한 맵 데이터의 입수가 불가능했다.

그리고 쓰레기 같은 AC를 몰고 다니는 도저 놈들도 왔다갔다 할 정도일텐데 기술연구소제의 고출력 부스터를 탑재한 최신예기가 못 넘을 리가 있겠는가. 계측 결과는 순조롭다. 이대로 별 문제 없으면 좋겠는데.

그의 말에 935가 결심을 굳혔는지, 활시위를 당기듯 스노우 화이트가 정지한 채 부스터에 동력을 집중했다. 직후, 메인 부스터가 푸른 불꽃을 맹렬히 토했다.

다시 전해지는 무거운 반동. 935는 이를 악물고, 록온 사이트에 집중했다. 보이는 적은 2각 MT 둘에 구 RaD제 중형 MT 하나.

거리가 400미터 가량으로 줄어들자 미사일의 록온이 잡혔다. 8발의 미사일이 가까운 2각 MT를 향해 날아갔고, 그와 동시에 935는 두 번째 2각 MT로 카메라를 옮겼다.

란세츠의 사거리 안. 라이플의 방아쇠를 당기며 MT 부대의 응사를 눈으로 좇는다. 미사일 서넛에 바주카 한 발. 우측 스러스터로 방향을 틀어 사선에서 빠진다.

『2각 MT 격파. 한대 남았다!』

그 말에 록온 사이트를 하드 타입으로 전환, 장갑을 풀어 교전에 들어간 RaD MT를 향해 펄스 블레이드를 기동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거리가 미묘하게 멀었다.

고주파의 펄스 참격이 RaD MT의 앞을 스쳤다. 곧바로 RaD MT의 기관포가 스노우 화이트의 코어를 때렸고, 935는 급히 퀵 부스트로 사선을 틀었다.

"....역시 블레이드 적성은 미묘한가."

플로리안은 관측 드론이 보내오는 데이터를 받아들고 곧장 체크했다. 처음 보내졌을 때. BASHO의 코어 모듈을 유용한 AC 시뮬레이터를 쓴 파일럿 적성 검사에서 이미 나온 사실이지만 실전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났다.

드론이 비추는 카메라의 화면 속. 하얀 AC는 자세를 회복해 미사일과 라이플로 RaD의 MT를 제압했다. 조금 전의 실수가 보인게 멋쩍은 듯, 935는 서둘러 교량 위로 스노우 화이트를 몰았다.

이후 건물 내부의 제압은 어렵지 않았다.

좁은 공간에서 미사일과 바주카의 다면 포화를 피하는 것은 평범한 파일럿에게는 꽤나 까다로운 일이겠지만, 근접 격투전을 제외하고는 그럭저럭 훌륭한 강화인간인 935에게 큰 문제가 되진 않았다.

물론 도중에 935가 이상한 방향을 길로 헷갈리거나, 오래동안 방치되어 있던 수직 캐터펄트가 작동하지 않아 드론으로 원격 수리도 해봤지만 결국 메인 부스터를 혹사시켜 도약하는 등의 사소한 문제들은 있었지만.

스노우 화이트는 그럭저럭 큰 손상 없이 도저의 본진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올라오는 이를 가로막듯 높이 세워진 레일 도로와, 그 너머에 포진해 935를 겨누고 있는 MT 부대. 그들이 최후의 보루인 양 가로막고 있는 격벽에는 구 RaD의 로고가 반쯤 벗겨져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4각 MT 한 대에 2각 몇 대인가. 무장도 특별한 건 없지만, 제압은 확실히 해둬라.』

『예.』

소녀의 짧은 목소리가 들리고, 드론의 카메라는 하얀 AC가 MT 부대의 앞에 내려앉는 모습을 비춘다. 선행하는 그녀를 뒤쫓아 플로리안이 드론들을 평지로 몰던 순간.

격벽을 부수며 펼쳐진 펄스 폭발이, 모두를 휩쓸었다.









분량 조절 실패해서 내일 하편 나온다

개추하고 댓글이 글쟁이의 코랄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