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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너레이터의 발열도 감당하지 못하는 구형 다펑제 코어의 콕핏 안.

말년의 몸이 느낄 부담은 안중에도 없는지, 파일럿 슈트 대신 화려한 수도복을 수의처럼 제 몸에 걸친 채. 하얀 수염을 제멋대로 기른 노인이 조종간을 붙잡고 있었다.

노인은 저 멀리의 공창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으로 AC를 몰았다. 무한궤도는 초계형 MT의 잔해를 짓뭉개며 그로테스크한 특수 분장이 뒤덮인 제 몸을 부지런히 옮겼다.

노인, 위대한 도저 선지자 갈겐벡의 눈에 BAWS의 MT들일 작은 점들이 들어왔다. 교전을 시작하기엔 멀었지만 여기저기 뿌려대는 광역 통신이라면 충분히 닿을 거리.

갈겐벡은 목을 가다듬었다. 떠들 헛소리의 소재는 마땅한 게 없었지만, 수십 년의 관성이 그의 등을 부드럽게 밀어주었다.

"오오, 그대. 죽음의 상인들이여! 이 순례자가 그대들의 원죄를 SOUP의 세례로서 사하려니. 문을 열고 맞이할지어다!"

갈겐벡은 자신의 말을 남 일처럼 관조했다. 죽음의 상인들이라. 하긴, 결국 BAWS도 피를 받아내는 기계를 팔아 제 몸을 불리는 쓰레기들이지.

갈겐벡은 스스로의 말에 납득해 고개를 세로 저었다.

시야에는 습격의 목적이었던 새하얀 ALBA 프레임의 AC가 들어왔지만, 교전을 시작하기엔 아직 못다 한 괴설이 있었다.

"이 몽매한 새끼들아. 네 죄를 모르겠느냐! 포주마냥 제 MT들을 팔아치워 그 피로 배를 채운 돼지들에게 고하나니. 나는 너희 기업들을 마중하는 멸망, 도산이니라!"

개소리에도 흥이 나기 시작했다.

갈겐벡의 비웃는 듯한 거친 목소리는 생기를 품었고, 혀는 다시 헛소리를 장전했다.

아쉽게도 그 방아쇠는 당길 수 없었지만.

록온 경고음이 널널한 콕핏 전체를 울렸다. 갈겐벡은 혀를 차며 하얀 AC에서 발사된 미사일에 대비했다.

그의 AC. 모르크보르그는 무거운 기체였다. 각부를 버리고 단 차체는 차치하더라도, 그 위에 붙은 프레임과 무장도 하나같이 무지막지한 질량을 자랑했으니.

따라서 갈겐벡이 할 수 있는 대응은 단 하나였다.

미사일의 피탄쯤은 감수하며 반격에 집중하기. 갈겐벡이 그런 판단을 내리자마자, 모르크보르그의 양어깨에 달린 미사일이 포문을 열었다.

"저승의 사냥개가 그 뒤를 쫓으매, 고유도 미사일과 SOUP가 나의 종이다!"

실재하는 그의 종들에게 들려주기 위한 헛소리와는 다르게 갈겐벡은 이 미사일의 떼에 큰 기대를 품고 있지 않았다. 기껏해야 회피 기동에 부담을 주는 정도일까.

예상대로, 하얀 AC는 무던히 SOUP의 비를 피해냈다. 꽁지에는 고유도 미사일을 매단 채였지만 안정적인 기동을 보아 파일럿에게 크게 부담이 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접근하는 ALBA의 속도 탓에 교전 거리는 200m 안팎으로 줄어든 상황. 갈겐벡은 노구가 느끼는 두려움에, 혹은 전투의 흥분에 떠는 손으로 조종간을 거세게 붙잡았다.

두 라이플의 탄환이 모르크보르그를 때렸다. 워낙 두꺼운 장갑 탓에 ACS 부하는 아직 여유였지만. 이대로 가면 일방적으로 말라죽는 것은 갈겐벡 자신이 될 터였다.

그럼에도 갈겐벡은 신중히 지형을 살폈다. 적기가 왼쪽으로 몸을 튼다면 벽을 등지게 되는 상황. 타개책은 기체의 양손에 있었다.

오른손의 GOU-CHEN이 불을 뿜는다. 좁혀진 거리와 탄속에 적 AC는 왼편으로 퀵 부스트를 썼고, 그와 거의 동시에 왼손의 DIZZY가 유탄을 쏘아 넣는다.

갈겐벡의 예측대로. 벽에 꽂힌 유탄의 폭발이 적 AC의 후면을 휩쓸었다.

『....일부러 벽에 쏴서 후면에서의 폭발을 유도했어? 935, 등 뒤에 벽을 두지 마! 아까처럼 얻어맞는다!』

한편, 935와 스노우 화이트의 분전으로 갈겐백이 묶인 틈을 타 차례대로 잔존 경비 MT 부대가 철수하는 가운데 행렬의 최후미에는 플로리안이 있었다.

조종은 오토파일럿을 켜둔 채 사내 데이터 링크를 통해 보고 있는 건 당연히 935의 전황. 그리고 경악했다.

이 정도의 실력자가 쳐들어왔단 말인가.

『확인.... 했습니다!』

935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림에 조금 안심했고.

갈겐벡은 훑듯이 주변을 둘러봤다. 전장과는 이질적인 소녀의 목소리. 그리고 지시하는 듯한 청년의 목소리. 근접 감청에 걸릴 만큼 하얀 AC와 가까운 기체는 단 하나. 오렌지색의 정비용 MT였다.

주인을 지키지 않는 사냥개는 없으니, 저 멀리의 MT를 붙잡으면 갈겐벡의 일은 간단히 끝날 터였지만. 갈겐벡은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 전투가 즐거워서? 저 눈앞의 가련한 소녀를 깔아 눕히고 싶어서? 그럴지도 몰랐다. 아니, 9할 이상의 확률로 그 까닭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갈겐벡은 그 욕구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곧바로 자기 합리화가 가득 찬 변명이 노인의 머릿속을 채웠다.

그리고, 그 틈은 스노우 화이트의 반격을 불렀다.

미망에 빠진 갈겐벡을 현실로 되돌린 것은 12발의 불꽃이었다. 이미 쏘아진 미사일을 피할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기에, 모르크보르그의 장갑은 미사일의 폭격을 온전히 감수해야 했다.

라이플의 발사음. 착실히 우그러져 가는 기체의 장갑. 갈겐벡은 다시 양어깨의 미사일을 조준했다. FCS의 연산이 끝나고 그가 방아쇠에 손을 얹은 순간.

그 한순간. 스노우 화이트의 움직임이 멈췄다.

겨눠지는 건 리니어 라이플의 총구. 고전압에 의해 로렌츠 힘이 총신에 걸린다. 차지샷.

갈겐벡도 망설이지 않았다. 이젠 누가 먼저 뽑느냐의 싸움이다. 차탄을 장전. 유탄을 쏘아낸다.

사격음은 거의 동시에 울렸다.

이미 미사일에 의해 아슬아슬했던 기체의 ACS 부하가 차지샷의 피격으로 오버로드되어 스태거 상태에 돌입. 갈겐벡은 혀 끝에 감도는 오랜만의 긴장감을 맛보았다.

하지만 하얀 AC는 유탄을 즉각 퀵 부스트로 회피. 인간의 것이라고 보기 힘든 반사신경. 갈겐백은 오랜 경험에서 즉각적으로 추론했다.

"구세대형 강화인간....!"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기술연구소의 유산이 눈앞에 있었다.






한편, 스노우 화이트의 콕핏 안. 935는 긴장으로 굳어버린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장전된 미사일을 모조리 때려 박고, 비장의 수인 해리스의 충전 사격까지 써서 겨우 저 무시무시한 AC를 멈췄건만. 아키텍트의 대피까지는 아직도 한참 남은 듯했다.

935는 이를 악물었다. 애초에 승리를 바라고 시작한 싸움이 아니었으니, 자세가 무너진 상대를 무리하게 추격할 필요는 없었다. 섣불리 접근했다간 영거리에서 유탄을 맞아 그대로 격추될 가능성도 농후했고.

모르크보르그에서 다시 제너레이터의 비명이 들렸다. 스태거 상태에서 회복된 것인지, 무한궤도의 차체에서 다시 엔진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꽤 애를 먹이는구나, 어린 살인자야. 남의 피를 얼마나 마셨기에 나를 이리 몰아붙이느냐!』

"당신한테 그런 비난을 들을 이유는...!"

대답하는 소녀의 신경은 끊기지 않았다. 뒤로 물러나는 적기에서 쏘아진 미사일을 보고, 그 뒤를 쫓으며 머릿속으로 미사일의 궤도를 그린다.

종류는 두 가지. 고유도형 미사일 두 발과 유도력이 낮은 살포형 미사일. 935는 전진하며 퀵 부스트를 쓸 타이밍을 머릿속으로 계산했다. 3~4초 뒤, 고유도 미사일의 착탄 직전.

그 때였다. 갈겐벡의 놀리듯 캑캑 대는 목소리가 진중히 가라앉은 것은.

『이유? 있지. 당연히 있어. 사람 죽이려고 만들어진 년아.』

조롱에 가까운 유머, 고풍스럽다 못해 우스꽝스러운 말투, 그와 대조되는 기묘한 어휘들. 위대한 도저의 선지자를 만들어낸 재료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선지자 갈겐벡을 대신해 말을 던진 것은, 노인의 본성이라고 해야 할 해묵은 냉소였다. 935의 손이 그 차가움에 저도 모르게 얼어붙은 순간.

『낚였구나, 머저리 애새끼야! 으하하하하하!』

뒤로 물러나던 모르크보르그가 하늘을 날았다. 미사일의 떼에 쫓기며 다가오던 스노우 화이트를 향해서.

정면으로 다가오는 거대한 질량. 뒤를 무섭게 쫓아오는 미사일의 비. 정면으로 날다간 들이받혀 그대로 미사일에 격추당할 상황.

깊은 당혹감 속에서도 935의 반사신경은 제 몫을 다해냈다. 아슬한 타이밍에서 좌측 퀵 부스트. 모자란 출력은 후면 메인 부스터의 각도를 틀어 보충한다.

나쁘지 않은 대처였다. 그녀의 등을 쫓고 있던 미사일은 갈 곳을 잃은 채 허공을 지나쳤으니.

하지만 그것조차 노인의 교활한 노림수였다.

『쳐먹어라-!』

꽃아놓을 비수는 마지막까지 숨겨두는 법. RWR에 록온 신호가 감지되지 않도록 매뉴얼 제어로 변경. 투쾅! 예측 사격을 노린 DIZZY가 불을 뿜는다.

미숙한 강화인간의 맹점이 여기서 드러난다.

AC 조종에 최적화되어 인간을 초월한 반사신경과 더불어, 맨 머신 인터페이스의 신경 접속에 의해 기체를 자신의 몸처럼 다룰 수 있지만. 반대로 말해.

기체가 인지하지 못한 것이라면 자신도 인지하지 못한다. 아니, 정확히는 인지하려 하지 않는다.

물론, 어느 정도는 평범한 파일럿에게도 적용되는 맹점이지만 정보를 읽어내기 위해 계기에 항상 주의를 두어야 하는 그들과 달리 실시간으로 정보를 받아들이는 강화인간에게 방대한 정보는「당연한 것」이기에.

기체로부터 정보의 전달이 없다면, 그럼에도 눈앞에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면.

미숙한 강화인간은 당황하게 된다.

동시에 소녀의 등을 강타하는 충격. 그레네이드의 직격과 함께 기체의 부스터가 꺼지고, 추락한다. 단순히 스태거 상태라기엔 이상한 감각.

"메인 부스터가...?! 노렸습니까, 갈겐벡...!"

굉음과 함께 수면에 충돌하는 기체. 고장난 부스터 탓에 스노우 화이트는 자세 제어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쓰러진 소녀의 시야 가득히. 천천히 다가오는 괴물의 AC가 들어왔다.

이 이상 반격의 수단은 전혀 없었다. 멈춘 채로 라이플로 난타전을 벌여봤자 그레네이드의 직격 화력에는 상대도 되지 않을 테니. 935는 단념하고 긴급 사출을 준비했다.

다시 들려온 악몽처럼 캑캑 대는 목소리가 그것을 가로막았지만.

『자, 자. 다들 그 자리에 서 있어. 아니, 뒤로 가는 건 괜찮다. 앞으로 와서 이 ALBA에 손대려고 하면, 그때는 이년 씹구멍에 DIZZY가 박힐 거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

『여기 애새끼 너도. 탈출 레버에서 손 치워라. 그거 눌렀다간 저기 멀리 보이는 오렌지 MT 콕핏에 예쁘게 불꽃이 필 거다.』

허언이 아니었다. 이 MT의 RWR이 고장난 것이 아니라면 저 모르크보르그인지 뭔지 하는 AC의 그레네이드 런처가 이쪽을 록온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록온 경고음이 시끄럽게 삑삑 울리고 있는 와중. 플로리안은 지금 이 상황에서 스스로의 무력감을 곱씹었다.

"이런 씨발...."

파이어스타터가 멀쩡한 상태였다면.

AC에 다시 탈 수만 있었다면.

하다못해 조금 일찍 935를 데리고 나왔더라면.

이런 일까지 벌어지진 않았을 텐데. 스노우 화이트는 미동도 하지 않았고, 도저 MT 부대가 점차 접근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935째로 끌려가고 말겠지. 상황판단을 하는 거다. 플로리안 큐비스. 녀석은 가능한 한 935와 스노우 화이트를 온전히 가져가고 싶어한다. 고로 여기서 공격을 재개한다고 한다면 날려지는 건 단 한 명.

나 혼자다. 플로리안은 결단했다.

여기서 935를 놓쳐버리면 돌아가서 포토맥과 박사를 볼 면목이 안 서고, 앨리스에게도 경멸받지 않겠나. 플로리안은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기 위해 실없는 생각을 함과 동시에 언젠가 들었던 말을 중얼거렸다.

"....잿더미로 칠해진 격언을 아무리 외운들 상황을 바꿀 힘은 없다였나."

그럼 겁이 나더라도 행동하는 수밖에. 탈출 레버에 항상 손은 올려져 있다. 나머지는 무전기를 들고 말할 용기 뿐.

"반장님. 들립니까."

포토맥으로부터 곧바로 답신이 오진 않았다.

아무리 당신이라도 갈팡질팡하고 있는 겁니까.

"저는 알아서 탈출할 테니 신경 쓰지 말고 화력을 집중해서 935의 구출을...."

아니었다.

"....?!"

포토맥만이 침묵한 것이 아니었다. 뒤돌아보니 2각 MT 부대도, 4각 MT들도, 유개호의 이설형 포대도, VLS 포대도. 이미 전투 속행이 힘들 정도의 피해를 입었다.

둘 중 하나를 고른다도 애초에 불가능했던 것이다.

박장대소하는 비웃음 소리. 빌어먹을 저 노친네의 목소리가 전장에 다시 울린다.

『으하, 으하하하하하! 이거 걸작이군! 그래. 내가 인질을 잘 잡긴 했지? 자기 목숨이랑 그걸 필사적으로 지켜준 아가씨! 그 둘중 하나라니! 너무 아쉬워하지 말라고. 젊은 친구! 으하하하하하!』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잘 알고 있다. 그럼 이대로 보고만 있어야 하는가. 아니다, 적어도 MT에 무기라도....

....없다. AC에 타격을 줄 만한 백 마운트의 그레네이드 캐논은 커녕 머신건도 없는 정비용 MT다.

"쏘라고...."

할 수 있는 게.

"제발 좀 쏘라고...!!"

없다.

플로리안은 입술을 짓씹었고, 붉은 선이 턱을 타고 흘렀다.

하얀 공주가 언덕 위의 괴물에게 잡혀가는 걸 지켜보며.












피치 공주가 잡혔으면 마리오가 구하러 가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