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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심한 뒤. 600장의 시말서. 진심을 담은 도게자. 부채로 배를 긋는 할복. 하루 동안 세 가지의 과정을 거친 플로리안이 향한 곳은 공창 내부의 전자적 패닉 룸이었다.

본래 어떤 의도로 만들어졌는지는 모르지만 - 건설 당시의 도면과 자료가 아이비스의 불로 소실되었다 - 방 전체가 1m 두께의 납으로 둘러싸여 있고.

주변에는 상시 고출력 재머가 가동되고 있으며 전자기기의 반입도 금지되어 에어와 같은 C펄스 변이 파형이라 한들 이 방만은 액세스할 수 없다.

어떤 자물쇠든 딸 수 있는 만능 열쇠를 가지고 있다 한들 아예 문이 없으면 진입 시도조차 할 수 없으니까.

그럼에도 왜 평소에 쓰던 공장장실이 아닌 코랄 전쟁 이후 한 번도 쓰인 적이 없는 이 방에 모이게 한 건지 소집 요청을 받은 모두가 원형 테이블에 앉아 웅성거리던 찰나.

뒤늦게 입장한 그레이엄 공장장이 꺼낸 말은 모두가 침묵하게 하였다.

"모여줘서 고맙네. 우선.... 공창 내에 적의 내통자가 있다고 생각되어 중요 인원만 여기에 모이게 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알아주었으면 하네."

내통자. 그리드 135로부터의 침공 이후 모두가 애써 부정하던 가능성이었다.

전에 말했듯이 기업이란 곧 가족이라는 개념의 확장. 거기에 직원 대부분이 이 벨리우스 북부 출신인 BAWS 제 2공창은 그러한 가족 의식이 더 강하다.

그 탓에「가족이 그럴 리 없다」라는 마음을 내심 품고 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마음은 방금 배신당했다.

"그럼 공장장. 그 내통자들이 엿들을까 봐 저희를 이쪽으로 부르신 겁니까?"

가장 먼저 발언한 건 경비부장 오브라이언이었다. 4일 전만 해도 경비 부대의 일개 소대장이었지만 ORC의 포격으로 윗줄이 모조리 쓸려나가며 승진한 자다.

그 질문에 그레이엄 공장장은 즉각 답했다.

"아니, 이제 와서 엿들을 우려는 없네. 로쿠몬센 공이 적절한 처리를 해두었으니. 다만, 혹시라는 것이 있으니 말일세."

동시에 공장장은 손가락을 튕겼고, 그 순간 테이블 중앙의 홀로그램에 띄워진 것은 BAWS의 로고와「구출 계획」이라고 10pt 큰 글자로 제목이 붙여진 무미건조한 텍스트들의 나열이었다.

"그럼 본제에 들어가지."

플로리안은 몇 가지 눈에 띄는 낱말을 먼저 메모장에 적어두었다.「양동」과「딥 스트라이크」다.

다른 하나는 어느 정도 이해가 갔지만 딥 스트라이크란 뭘까. 플로리안의 의문이 뇌리를 스칠 무렵. 그레이엄 공장장이 입을 열었다.

"본 작전의 목적은 자사 소속의 강화인간 C3-935의 구출과 더불어 ALBA 양산 타입 시제 1호기.

통칭 스노우 화이트의 탈환. 그리고 4일 전. 공창을 습격해온 도저 집단「크레톤」의 섬멸에 있다.

하여, 작전은 3단계로 구성된다.

양동, 침입, 격파.

먼저 양동이다."

공장장이 재차 손가락을 튕기자 홀로그램이 변화해 그리드 135의 입체 도면이 띄워졌다.

그리드 086만큼 그리드 135도 만만찮은 마굴인 만큼 ORC의 사격 원점과 적의 심부로 추정되는 구획 정도가 추가로 기록된 정도의 낡은 맵 데이터였지만 대략적인 지형을 알아보는데 큰 문제는 없었다.

"아무리 어중이떠중이 투성이인 도저 집단이라 해도 저 대군과 정면 힘 싸움을 하는 건 현실적으로 무리가 있네. 당장에 4일 전만 해도 공창이 털렸지.

그래서 우리는 적의 심부 구획만을 타격해 수장을 배제한 뒤. 강화인간 C3-935와 스노우 화이트만을 회수할 필요가 있고, 그 선결 조건이 양동 작전이네.

이렇게 심플하지 못한 작전 구성은 취향은 아니네만. 어쩔 수 없지. 이번 작전에는 BAWS 본사의 전력 제공이나 루비콘 정부로부터의 협력을 바랄 수 없기 때문이네.

ORC의 문제도 있지만 개입하기 상당히 애매한 선의 문제라는 걸세. 고작해야 엘카노의 파견 직원 하나. 고작해야 AC 하나. 효율과 가성비의 문제가 어쩌고저쩌고.

내 입장에서 뭐라고 하긴 뭣하지만 등신 같은 놈들이지. 하지만 우리는 결행한다. 암만 파견을 왔다 해도 여태 우리 밥 먹으면서 지냈으면 우리 직원 아니겠나."

동시에 그리드 135의 입체 도면상에 무수한 점이 명멸하기 시작해 다종다양의 루트로 진입하는 선이 그려진다. 마치 뻗어져 나가는 인체의 혈관과도 같이.

하지만 플로리안은 그 선의 움직임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해내었다.

명백하게 자사의 MT가 할 수 없는 기동을 암시하는 곡선이 다수 있다. 분명 정부나 본사로부터의 지원은 없다고 했을 터. 거기에 케이트나 로쿠몬센도 나갈 수 없다.

그렇다면 잘해야 경비 MT 부대를 공수 투하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건만. 뭔가 더 있는 것인가. 의문을 품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플로리안은 곧장 손을 들었다.

"그래, 뭔가 질문이라도 있나?"

"양동 작전은 본 공창의 전력으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닌 겁니까? MT로는 불가능한 움직임이 몇 보입니다."

그레이엄 공장장은 그 질문에 마치 기다리고 있다는 듯이 대답했다.

"좋은 질문일세. 지원은 없다고 했지만 당장 실탄으로 쓸 예산은 어느 정도 있지. 그래서, 양동에 쓰는 건 독립 용병이 될걸세."

회의장에 약간의 웅성거림. 분명 그레이엄 공장장은 기업의 체면 문제 때문에 독립 용병을 쓸 수 없다고 했었다.

이제 와서 말을 바꾼 건 아닐 텐데. 플로리안이 그리 생각한 찰나. 평소의 호랑이가 아닌 너구리 같은 표정을 지은 공장장이 말했다.

"그래, 확실히 체면 문제가 있긴 하지. 하지만 식사에도 전채와 메인 디쉬가 있지 않나. 전채는 독립 용병 놈들에게 던져주고 우리가 취할 것은 메인 디쉬. 즉, 직접 침입에 의한 적 수뇌부 타격일세!"

쿵! 주먹으로 테이블을 내려치는 소리. 홀로그램이 반응해 - 아무래도 일일이 움직임에 반응하는 시스템이 부설된 모양이다 - 조금 멀리까지 홀로그램을 투사.

BAWS 제2공창으로부터 뻗어져 나오는 하나의 긴 직선을 투영한다.

AC의 항속 거리로는 불가능하고, 수송 헬기를 쓴다 치면 양동과의 연계가 확실하게 늦을 것이고, 그렇다고 섬 돌마얀이나 인덱스 더넘을 썼다간 ORC에 강습함째로 노려져 가던 도중에 격침당할 거리.

플로리안은 무심코 입을 열었고.

"....침입하는 건 좋습니다만 대체 무슨 수단을?"

공장장은 씨익 웃었다.

플로리안은 미지의 공포가 엄습하는 걸 느꼈다.






회의가 끝나고 개러지로 돌아와 보니 검은색으로 도색 중이던 BASHO 대신 익숙한 녀석이 행거를 차지하고 있었다. 파이어스타터.

근 3년 동안 개러지 구석탱이에 방치되고 있었던 터라 이곳저곳이 상해 있었는지 수리 작업이 한창이었다.

파이어스타터의 수리 작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건 당연히 포토맥 반장. 옆에는 무슨 이유인지 케이트가 붙어서 태블릿을 들고 있었다.

포토맥 반장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케이트는 무슨 일이지. 플로리안은 의문을 품고 다가갔다.

"그래서 올마인드 사의...."

"이 녀석의 정비.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답한 사람은 포토맥 반장이었다.

"말도 마라. 본체는 그럭저럭 관리가 되고 있던 것 같지만, 무장은 하나같이 죄다 삭아 빠져있고, 견부 무장은 데이터 상으로는 있던데 왜 실제로는 달려있지 않은 거냐?"

첫 질문은 이건가. 플로리안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예전에 팔았습니다. 생활비가 필요해서."

"뭐?"

포토맥 반장은 뜨악한 표정이었다.

그야 그럴만한 대답이었지만, AC를 몰고 다니던 사람이 생활비라니 웃기지도 않는 말이다. 하지만 종전 직후의 상황이란 언제나 웃기지도 않는 법 아니던가.

아르카부스와의 전면전에서 승리하긴 했으나 대타격을 입은 당시의 해방전선은 더 이상 군비를 유지할 수 없어 기존의 AC나 MT 파일럿들을 내보내야 했고, 플로리안 또한 그 중 하나였다.

도저로써의 경력이 있는 만큼 근근이 AC의 정비 의뢰를 받으며 연명하곤 있었지만, 지금같이 BAWS라는 거물이 뒤를 봐주고 있는 것도 아니고, 가끔은 굶는 날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퇴직금 대신 가져온 파이어스타터의 무장류를 하나씩 떼어다 팔면서 버틴 것이다.

다행히 견부 파츠 2개 정도만 날아가고, 그 전에 회사에 취업하는데 성공하긴 했다마는. 아무튼.

"그래서, 새 걸 어떻게 구하신 겁니까? 하나는 회사가 도산해서 구할 길도 없었을 텐데."

이번에 대답한 건 케이트였다. 뭔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고 태블릿을 들이밀며 말하는 것이 묘했다.

"흠흠, 플로리안 2급 아키텍트의 AC가 사용했던 것이 올 마인드의 우수한 제품인 만큼 그것에 대해서는 저 독립 용병 케이트 마크슨이 손을 썼습니다."

케이트가 보여준 화면에 띄워진 건 폭발 미사일『45-091 JVLN BETA』의 블루프린트. 회사의 판매 카탈로그에 적힌 게 아닌 명백한 내부자용 자료였다.

"회사 도산 전에 가져온 물량이 조금 있어서 말입니다. 이 우수한 제품들을 넘기는 게 살짝 아쉽긴 하다지만 BAWS가 정당한 값을 쳐주길래 넘겼습니다."

결국 받을 값 받고 넘겼다는 거군. 플로리안은 생각했다.

또 걸리는 부분이 하나. ....제품'들'을? 미사일 외에 올 마인드제 부품을 쓸 일이 또 어디 있다는 말인가.

눈을 살짝 치켜뜨니 포토맥 반장도, 케이트도 알아챈 눈치다. 그리고 둘이 눈빛으로 말하는 바는 같았다.

'일단 한번 보고 와라.'

동시에 포토맥 반장이 따라오라며 손짓으로 가리키는 곳은 습격 전까지만 해도 섬 돌마얀이 정박 - 습격 이후 돌마얀 시티로 긴급 피항했다 - 해 있던 도크.

도대체 무슨 괴물딱지를 건조하고 있길래 거길 쓰고 있단 말인가. 일단 발을 옮기고 회의 때의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을 무렵. 그것이 눈에 들어왔다.

적어도 전함급으로 보이는 예비 부스터와 그것과 동급으로 보이는 대형의 고출력 제너레이터를 골조로 행거를 유용한 것으로 보이는 AC와의 접속 장치를 갖추고.

이런 멋진 것 - 설계자가 딱 이런 말을 했을 것 같다 - 을 AC 하나만 날리기에는 추력 대비 중량이 아깝다는 듯 창고에서 있는 대로 무장을 꺼내 와 때려 박은 흉물.

"장거리 침공용 대형 부스터. 가칭 VOB."

포토맥 반장이 이 항공우주공학적 악마의 진명을 알려주자 플로리안은 당장이라도 실신할 듯한 표정이었고, 그런 플로리안에게 추가타를 날린 건 포토맥 반장이 건네준 태블릿에 뜬 상세 카탈로그였다.

섬 돌마얀급 강습함의 예비 부스터 4기 묶음.

자일렘의 보조 제너레이터 카피품.

카라사와 2정을 묶어서 붙여놨을 뿐인 올 마인드제 카라사와 Mk-II.

펄롱제 분열형 미사일 144문.

엑드로모이의 레이저 랜스를 역설계해 그 대형화 버전을 탑재한 대형 암 2개.

기술연구소제 부품을 역설계한 전방위 펄스 아머.

그리고 소프트웨어 개발 시간이 촉박해 콕핏의 조작 레버와 각 무장과의 연동 기능 없음. 전부 콕피트 내에 부설된 인스트루먼트로 별도의 수동 조작을 행할 것.

....최악이다.

안 그래도 좁아터진 AC의 콕피트 안에 이것저것 인스트루먼트를 더 끼워넣고 그걸 일일이 수동으로 대처하라는 게 말인지 빙구인지. 탑승하는 사람이 공학적 지식이 없으면 제대로 움직이는 게 불가능한 설계가 아닌가.

플로리안은 포토맥 반장과 케이트를 확 째려보았다.

"....저 아니었으면 누구 태울 생각이었습니까?"

설계 자체는 옛날 옛적에 퇴짜 먹은 물건을 확대한 것인데다 겉으로 보이는 공정의 진행 상태를 보면 적어도 이틀 전에는 이미 조립에 들어갔을 것이다.

애초에 다른 누구를 태울 생각이 있긴 했던 건지. 조금 짜증을 담아 보니 둘은 슬슬 시선을 피하며 변명했다.

정확히는 변명이라도 한 건 포토맥 반장뿐이었다.

"아니 그, 플랜 B가 없던 건 아닌데 말이다."

"뭡니까. 플랜 B."

"그, C구역 21번 창고에 있는 아이비스 시리즈를 재기동해서 그리드 135에 떨구고...."

"...."

"...."

아무리 생각해도 현실적으로 말이 안 되는 계획이지 않는가. 기술연구도시에서 건져온 놈의 박살이 난 코랄 제너레이터를 어찌 수복할 것이며, 기동시키더라도 어떻게 말을 듣게 할 것인가. 난관이 산더미다.

결국 포토맥 반장과 플로리안, 둘은 입을 다물었다.

더 이상 말해봤자 이 이상의 헛소리만 나올 것 같았다.






"이게 어딜 봐서 부스터인지 원. 비행형 중장기동포대라면 모를까."

다음 날. 플로리안은 파이어스타터의 콕핏 안에 몸을 구겨 넣어진 채 대기하고 있었다.

파이어스타터의 콕핏 안은 VOB의 무장 제어를 위해 온갖 인스트루먼트가 부설된 지라 내부 모니터가 전혀 보이지 않을 정도였고, 그 탓에 플로리안은 AC의 카메라와 연동되는 별도의 HMD 헬멧을 써야만 했다.

그런 만큼 콕핏 내부의 정경은 아예 보이질 않으니 조작 레버의 위치나 무장 스위치의 위치는 밤새 달달 외워둬야 했는데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3시간 정도만 간신히 자두고 각성제를 투여해 정신을 붙들어뒀다.

HMD에 뜨는 시간을 보니 작전 개시까지 앞으로 2분. 이번 일은 개인적인 희망이 걸린 일이지만 회사의 일이기도 하다. 잡념을 털어내기 위해 될 수 있으면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으려던 도중. 익숙한 목소리가 귀에 들렸다.

『플로리안, 들려?』

박사였다.

"예, 브리핑도 끝났고 작전 개시까지 2분 정도 남았네요."

『부담 주는 것 같아서 미안하지만.... 공주님을 잘 부탁해. 같이 살아봤으니 알 거 아냐. 외로움을 잘 타는 아이니까.』

"부담 엄청 주시는데요. 그리고, 이제 와서 잘 부탁한다는 말은 필요 없어요. 원래 서로 부탁하면서 사는 거니까요."

『....그래, 그럼. 잘 다녀와.』

"예입."

약간의 농담을 곁들인 짧은 대화가 끝나고 나니 콕핏 안은 다시 침묵했다. 제너레이터로부터 나오는 진동. 약간의 숨소리. 조금 떨리는 손. 각성제가 가져다주는 미미한 두통. 그뿐이다. 예전과 같이.

....아니, 역시 예전과 같이는 안 되겠다. 망할 박사. 간신히 생각을 비웠는데 잔잔한 호수에 자일렘을 풍덩 던져놓고 갔다. 플로리안은 별수 없이 루틴을 연상케 하듯 격언을 외웠다. 동시에 생각했다.

"코랄이여, 루비콘과 함께할지니."

935가 곁에서 사라지고 난 다음에야 깨달았다. 빗속에서 나를 애타게 기다리던 그 모습도, 마음 약한 공주님이 나에게 붙어 있던 순간도. 모두 나의 행복이었다고.

처음엔 그저 일로 맡게 된 소녀였는데. 소녀는 어느새 자신에게서 떼어낼 수 없을 만큼 커다란 존재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앨리스. 935가 잔잔한 불꽃이라면 이쪽은 거세게 확 불타오르는 불꽃. 어이없는 만남. 어이없는 첫 경험. 뒤돌아보면 폭풍에 떠밀려가듯 어리둥절한 일 투성이인 순간이었지만. 이 또한 자신의 행복이었다.

잡혀간 위치라도 알고 있는 935와 다르게 지금 앨리스가 어디 있는지는 모른다. 도저는 곧 불타는 하늘에서 춤추는 바람이니까. 도저 바가 폐업하고 돈 벌 곳이 사라진 탓에 소식이 잠깐 끊겼으리라.

하지만 다시 만난다면 그날과 같이 웃고 싶다. 그 맛이 진했던 밀웜 조림은 가족을 떠올리게 해주었으니까.

"코랄이여, 루비콘의 안에 있을지니."

그리고 내 마음 안에 있는 두 사람이 나에게 갖고 있는 감정은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935도, 앨리스도. 하지만 나는 어느 한 쪽에게 답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이기적으로 그 애매모호한 관계가 쭉 계속되길 바랐기에. 나는 둘 다 소중하다는 변명으로, 거짓말을 장대 삼아 둘 사이에서 외줄 타기를 하며 버텼다.

사람의 마음이란 건 코랄처럼 한 번의 불씨로도 완전히 불타버리는 것일진대. 나는 장님에 귀머거리 행세를 하며 그녀들의 마음을 모른척했다.

"....그 주사위를, 던져서는 아니 된다."

격언의 끝과 함께 후회, 반성, 그리고 각오의 감정들이 물밀듯 몰려왔다. 어째서 이미 주사위가 던져졌다는 걸 이제서야 인정했을까. 일단 구하고 나서, 모두에게 진솔한 말을 하자. 935든 앨리스든. 더 이상 도망치진 않겠다.

플로리안의 생각이 멈췄다.

카운트다운이 멈췄다.

중력 가속도가 덮쳐왔다.







VOB를 만들랬더니 덴드로비움을 만들어왔네

미친 청년들.

30분 뒤에 다음 화 바로 올라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