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비콘에서 독립 용병 일을 한 지도 꽤나 시간이 흘렀지
허구한 날 나오는 쌍짐머 쌍LRB는 질려가고, 회색 풍경도 이제는 싫증나던 와중에
PMU라는 곳의 모병 전단지를 발견했어
민간군사기업의 연합같은 건데, 거기로 가면 밥도 어지간한 외성 기업의 구내식당보다 더 좋고
커피도 진짜 커피를 마실 수 있고, 무엇보다도 생활관의 동료들에게 진짜 감정이 있고
너를 단순히 비즈니스 관계로만 취급하지 않는다고 했어, 축구도 할 수 있고 말이지
다만 AC와는 많이 다른 MS라는 물건을 쓰기 때문에 전환 훈련은 필요하다고 했지만 말이야
나는 어느 정도 망설이다가, 모병 전단지를 들고 PMU가 점거하고 있는 우주공항으로 향했지
PMU의 베이스캠프에 도착하자 눈 앞에 믿기 힘든 풍경이 펼쳐졌어
루비콘의 회색 식생과는 정반대로 눈 앞의 산과 초원은 실제로 푸르고
베이스캠프는 기업의 것과 달리 실제로 생기가 넘치는 공간이었어
그런데 기초적인 MS 전환 훈련을 받고 일을 시작하려니까 초기 부여 랭크인 D- 랭크를 주더라고
루비콘에서는 S랭크 용병이었지만 여기에는 여기만의 규칙이 있으니 일단 따르기로 했고, 실제로 그게 맞는 판단이었어
누구나 들고 있는 흔한 무장마저 AC- 아니 MS의 자세를 일격에 무너뜨릴 수 있더라고
게다가 기술적인 원인이 있는지는 몰라도 보행 자체도 느리고 부스터를 써서 고속 이동을 한다고 해도 여전히 내 기준에서는 느렸어
덕분에 처음에는 기체를 여럿 말아먹긴 했지
그래도 이곳의 속도와 사격과 포지셔닝에 적응하고 어느 정도 근접전도 할 수 있게 되니까 어느 순간 A랭크 용병이 되어있더라고
그런데 있잖아, 혹시 그 기분 알아?
마음 속 한 켠이 텅 비어있는 느낌 말이야
일단 여기서는 코랄을 구할 수 없는 것은 둘째치더라도 매일 밤에 침대에 누워서 잠에 들 때마다
고향의, AC의 감각이 나를 자극하는 꿈을 꾸고 있어
내 ACS의 부하를 조절하면서 어떻게든 상대의 ACS를 오버로드시킨 다음 빠르게 발로 걷어차 버린다던가,
근접전을 피하는 상대를 AB로 쾌속 추격하는 그 느낌이라던가 하는 것들 말이야
마치 정겨운 고향의 할머니가 나를 부르는 듯한 느낌이었다고
애초에 강화인간 시술을 받으면서 내게 가족이 있었는지조차 잊었지만
그 느낌을 굳이 감성적으로 표현하자면 이런 말밖에 할 수 없어
그래서 잠시 PMU 일을 쉬기로 했다
루비콘에 돌아가서 다시 독립 용병 일을 한다는 거는 비밀로 해두고 말이지
다시 돌아올 수 있을 지조차 모르지만 말이야
여튼 루비콘에 밀항해 들어오니 여전히 식생은 회색이고 주변에는 외성 기업과 원주민들이 치고박은 뒤의 폐허만이 보였지
그래도 코랄의 감각이 내 몸을 다시 찔러오는 것으로 만족해
오늘도 나는 코랄을 흡입하고 아무런 의뢰나 수주해서 돈을 번 다음
간만에 외성 기업에서 흘러나온 제대로 된 술을 몇 잔 걸치고
네스트를 켜서 코랄에 발이 묶여버린 이들을 상대한다
코랄에 엮이면, 빠져나오기 참 힘들다
잠깐 현탐와서 딴겜하다가 '아 이맛이 아니야' 하고 아코켜는 망자인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