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거대한 기동병기였다.
미쳐버린 관리자의 마지막 발악.
막아내지 못한다면 레이어드의 인류를 절멸시킬, 그런 병기였다.
그가 그 병기를 막아내지 못한다면 모든 인류는 그렇게 땅 속에서 괴사하고 말 것이었다.
그 거대한 몸뚱아리에서 나오는 미사일과 유탄은 그를 긴장하게 만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설레게 만들었다.
그것이 항상 아슬아슬한 외줄 위에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할지라도, 그는 전장이 좋았다.
쏟아지는 적의 미사일 포화를 피해가며, 그는 적기를 향해 로켓을 발사했다.
거대한 천사에게서 쏟아지는 미사일 포화는 그의 눈 앞에서 서서히 작은 미사일 여섯 발로 변해 갔다.
그는 그 중 두 발을 피했다.

그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관리자의 중추 유닛이었다.
그는 많은 것을 쓰러뜨리며 나아갔다.
물 위를 호령하던 거대병기도, 하늘을 가로지르던 기동병기도, 거대한 에너지포와 관리자의 인간형 병기들도 모두 그의 손에 불탔다.
그런 그에게 마지막으로 나타난 것은 관리자의 중추 유닛이었다.
그 중앙부의 동력로, 그것을 파괴한다면 관리자는 기능을 정지하고 인류는 구원받을 것이었다.
레이어드의 영웅이 된 그의 어썰트 라이플은 사정없이 중추 유닛의 중앙부를 향해 발사되었다.
그리고 거대한 중추 유닛은 점점 작은 인간형 병기의 모습으로 변해 갔다.
백발백중이었던 그의 라이플은 백발십중이 되어 형편없이 빗나가기 일쑤였다.

그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배신자였다.
그녀는 MT를 몰던 시절부터 그와 함께했다.
그녀가 AC 파일럿이 되었을 때 가장 먼저 축하해 준 사람이 바로 그였다.
그와 그녀는 정말 많은 작전을 함께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를 떠났다.
적들을 요격하던 그녀의 든든하던 오비트 캐논은 이제 그를 맹렬하게 몰아붙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다시 한번 그를 떠났다.
그녀의 오비트 캐논은 이제 이름도 모르는 한 신입 레이븐의 코어 속에서 다시 한번 그를 맹렬하게 요격하고 있었다.

그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푸르게 빛나는 칼날이었다.
관리자를 정지시키기 위해선 관리자의 중추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만 했다.
그는 그것을 알아내기 위해 미라주의 데이터뱅크에 잠입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앞에 나타난 것은 레이븐들 중 최고의 근접전 실력을 가졌다 평가받는 남자였다.
그 자부심으로 인해 적에게 블레이드로 공격을 받으면 광분하던 남자.
임무 도중 탄약이 전부 소진되었기 때문에, 그는 그 레이븐을 근접전으로 상대해야만 했다.
푸르게 빛나는 칼날은 항상 그와 함께였다.
그를 이끄는 달빛과 함께, 그는 황홀한 기분으로 똑같이 칼날을 전개하고 달려드는 적 레이븐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의 칼날은 더 이상 푸르게 빛나지 않았다.
그는 적을 베었고, 적도 그를 베었다.
그리고 더 큰 손상을 입은 것은 적이 아닌 그였다.

그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아레나에서 공포 그 자체로 알려진 남자였다.
쓰러뜨린 AC의 조종석에 큼지막한 구멍을 낸다 알려진 남자.
그런 강적과의 결투에서 그는 피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빠른 속도로 기동하며 머신건을 발사해 대고 블레이드로 치명적인 일격을 가하던 그 남자.
그는 그 남자와의 대결에서 수 차례 위기에 몰렸다.
구석에 몰린 채로 열 폭주까지 발생한 그의 눈앞에,
자신의 것과 같은 푸른 블레이드를 전개하고 달려오는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푸른 블레이드의 형상은 이내 거대한 유탄의 모습으로 변했다.
한때 항상 그의 왼 어깨를 장식했던,
레이븐 사이에서 전설로 불리던 그의 상징과도 같은 무장이었던 유탄 발사기.
그의 왼어깨엔 이제 유탄 발사기 대신 레이더가 달려 있었고, 거대한 유탄 발사기는 적의 왼어깨에 달려있었다.
적의 왼어깨를 바라보는 그의 눈 앞에, 그의 가장 찬란했던 시절이 스쳐가는 듯 했다.
그 왼어깨에서 격발된 거대한 유탄이 조종석 앞으로 날아들었다.



...



시스템 정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