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소리냐? 방금 식사하고 오는 길이잖나."


:"아 뭐, 아무것도 아냐. 혹시 좀 취했나 해서 말이다."


빈말로라도 분위기가 낭만적이라고 할 순 없지만 어쨌든 조용한 술집, 조명이 로이 서랜드의 낯빛을 가렸다.

맞은편의 윈 D는 어딜 봐도 통상주행, 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그녀를 컬러드 시절부터 그럭저럭 봐 온 로이의 생각은 달랐다.



"너, 일부러 잔뜩 마시고 취하려고 드는 거면 고치는 게 좋아."


"걱정 말도록. 주량 정도는 충분히 파악하고 있다."


"그거 알콜 중독자의 간판 멘트인데."


"컬러드에 진짜 알콜 중독자는 따로 있지. 해서, 불러낸 이유는 또 있나?"


"얼굴이나 좀 보자는 거지. 그리고 너, 오늘 여러가지로 힘들었을 거 같고."



어느 정도는 진심을 담은 로이의 말을 듣고, 윈 D 팬션은 다시 현실의 벽을 떠올렸다.



/



"코지마 감축 조약...입니까."


"개인으로서는 굉장히 동의합니다만, 저희 쪽 상층부가 어떻게 판단할지는 잘..."


"이 점에 대해 아직 논의할 시기는 이르다고 생각합니다. 윈 D 팬션."



세계를 통치하는 팍스 체제 하의 기업들은 서로 분쟁하고 있음에도 국제기구의 일종인 기업 연합의 호출에 따라 정기적, 또는 비정기적으로 회의를 개최하는 경우가 있다.


참석 권한은 "기업, 또는 그에 준하는 권력자일 것". 명시적인 조건은 모두 세분화되어 있지만, 줄여 말하자면 이 정도다.


팍스에 참가할 수 있을 정도로 몸집을 불린 신진세력은 지난 10여 년 간 거의 없었고 기껏해야 이전 기업이 사명을 바꾸거나 하는 정도였으나, ORCA 사변 이후 '기업에 준하는 능력을 획득한 개인'이 다시 발생함에 따라, 기업 연합은 이 두 명에 대해 정상 회의의 참석 권한을 마련했다.


바로 윈 D 팬션과 그 파트너이다.


그러나, 이는 '자신들이 결코 폐쇄되어 있지 않으며, 기업간의 청정한 경쟁에 참전하는 자를 환영한다'라는 더미 제스처임과 동시에, 컬러드에서 거의 벗어나버린 이 두 사람을 연합의 체제 속에 묶어놓으려는 또 하나의 목줄에 가까웠다.



"토러스로서는 반대합니다. 코지마 기술은 아직 발전 도중일 뿐이며, 그 잠재력을 생각하면 장기적인 환경 관리 역시 가능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저희 오메르는 아직 여러 가지 문제가 산재한만큼 일단 말을 아끼도록 하죠."


"인테리올로서는...뭐라고 드릴 말씀이 없군요, 윈 D 팬션."


크레이들의 노인들을 대리하는 지상 근무 인원들의 발언이란 이 정도가 한계일 것이다.




아르테리아 크레이니엄 방어전 직전, 윈 D 팬션은 기업 연합 및 인테리올 유니온과 손을 끊었다.


그리고 컬러드에 목이 제대로 매여 있지 않았던 독립 용병 중 가장 강한 자였던 셀렌 헤이즈의 제자를 자기 사재를 모두 턴 뒤 빚더미에 올라앉아가면서도 지원기로 고용, 그와 함께 최악의 반란 세력 ORCA 여단의 수괴를 타도하는 것에 성공했다.


일견 이것은 기업 연합에 치명상이 될 수 있는 반란 행위의 일종으로 평가될 수도 있었으나, 노인들은 이를 역수로 취해 그 두 명에게 커다란 재물과 권력, 어디까지나 개인 단위로써의 대규모 자산과 청정 구역의 작은 콜로니 1개소라는 구색을 갖추어주는 것으로 새로운 개집을 마련했다.


강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며, 살아남은 자가 강하다.

그리고 살아남은 자는, 대체로 더 민첩하고 교활한 보신주의자 쪽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의제로 제출된 적이 있다는 사실만이라도 기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속기사의 타이핑 소리를 들으며 그녀는 이것이 세상이 앞으로 천천히 나아가는 길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벽은 사람 한 명이 두 손으로 민다고 쉬이 밀리는 것이 아님에도.



/



"로비라도 배워야 할까."


"너 좀 변했다."



술병이 하나둘 쌓여 갔으나, 대부분은 여자 쪽의 몫으로 돌아가고 남자는 술잔을 비워둔 채 가끔씩 안주 리필 주문만 누르고 있었다.


여자는 턱을 괴고 손가락을 자기 앞머리를 돌돌 감으며 생각에 잠겨 있다.



"긍지라. 고리타분한 걸지도 모르겠어."


"네가 그런 말을 하면 어떻게 하냐. 황금의 기사를 보고 배우는 링크스 후보생들도 많아."


"글쎄. 나 같은 건 반면교사로 충분하지 않을까 하고 최근 생각하던 참이다."


"윈디 너, 정말로 취한 것 같구만. 슬슬 나갈까?"


"취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만, 제 시간에 숙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있군. 일어나자."




"그리고 로이."


윈 D가 계산대 앞에서 로이를 뒤돌아보았다.


"너, 작업 멘트 낡았으니 바꾸는 게 좋아."




/




윈 D 팬션과 릴리엄 월콧은 BFF 전용기의 회장 기밀실에 들어섰다.


선글라스를 낀 경호대장이 말없이 그녀들의 외투와 가방을 받아 맞은편의 백 룸으로 사라지고, 그녀들은 소파에 앉아 몸을 뉘었다.




"의석에서 직접 도와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윈 D 팬션 님."


"아니다, 릴리엄. 즉시 반대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노인들도 BFF가 아무 행동을 취하지 않았던 것에 무언가 실마리를 잡겠지."


"BFF로서, 공식석상에서의 발언은 하나하나를 신경쓰지 않으면 안 되니까요. 저희도 당장 코지마 기술의 사용을 모두 멈출 수는 없습니다만..."


"무리하지 않아도 된다. 에코파시스트 같은 발상 따위를 바라는 게 아니니."


"BFF와 저는 전투력을 판매하는 것을 주 사업으로 하는 개인 기업 '윈 D 팬션', 그리고 불출석한 다른 쪽과도 어느 정도 협약이 있다, 이번 회의는 그 정도의 제스처로 충분할 테죠."




설치류가 고대로부터 그 기민함과 위기관리 능력으로 번성해 온 것처럼, 기업을 다루는 자들 역시 그 자신들의 처신과, 또 잠재적 적들의 행동에 대한 분석에 능했다.


특히 이러한 중요 공식 석상에서의 발언이나 행동은 하나하나가 그 의미를 담게 되는 경우를 생각해야 하며, 그 점에서 완전히 실패한 윈 D 팬션과는 달리, 유일하게 크레이들이 아니라 지상에서 근무하는 기업의 수장인 릴리엄 월콧은 '기업 BFF'로서의 모습을 완벽하게 갖추었었다.


물론 최근 이루어진 'BFF 회장 거주지의 위치이동'에 관한 사항은 응당 그것이 극비인만큼 외부에 전혀 알려진 바가 없어, 그들 간의 관계를 파악하는 것에는 시간이 걸릴 것이었다.




경호대장이 내온 차를 마시며, 릴리엄 월콧은 말을 이어갔다.


"광역 환경 관련 사업은 팍스를 기점으로 해 완전한 사양세에 접어들었었으니까요. 더 이상 막을 방법이 없으니 가치가 똑같이 사라졌다, 라는 것일지도요."


"그리고 20년도 안 돼서 이 꼴이지."



창 밖으로 혼슈를 뒤덮는 일본 대사막의 끝없는 모래언덕들이 지나쳤다.



"하지만, 왕 대인이 지금 아무 말이 없는 것은...저로서도 어찌할 수 없습니다."


"침묵인가. 뭐, 놈도 노인이니까. 슬슬 은퇴할 때가 됐다고 생각하는 걸지도 몰라."


웡 샤오 룽의 직접적인 간섭은 ORCA의 패퇴와 그에 따른 오메르의 실각 이후 완전히 끊기다시피 했다. 권력을 잃은 것도 아닐뿐더러 아무 활동도 하지 않고 칩거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기에 BFF의 임원으로서 릴리엄의 손이 닿지 않는 다른 비즈니스를 대행하는 것 자체는 평소대로였으나, 신기하게도 릴리엄 월콧 본인에게는 사담 이외의 아무 말도 하지 않게 되었고 릴리엄이 셀렌의 콜로니로 적을 옮긴 뒤부터는 대외 활동 비중도 크게 줄어들었다.


물론, 아무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팍스 이전부터도 정치에 관한 한 전문가 이상의 능력을 지닌 어둠의 실력자 같은 존재이며, 실제로 세계 무력의 절반이 자신의 통제를 벗어났던 ORCA사변 전까지는 BFF를 뜻대로 하지 않았던가.


"혹시 그 점에 관해 무슨 일이 있다면 나나 그 녀석들에게라도 꼭 얘기해봐라. 옆집 사람이 말하는 걸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말씀만이라도 천군만마입니다."




둘의 대화가 오가는 동안 경호대장이 BFF 로고가 새겨진 검은색 타블렛 PC를 가져와 옆에 섰다.


"그럼, 이 자리에서 BFF의 향후 계획에 대해 설명드리고자 합니다. 공개는 이 곳이 최초가 되겠네요."


"이륙하기 전에 말했던 그건가."


"예. 대외비이긴 합니다만, 상대 첩보진에게 최근까지 잠잠하던 BFF가 무언가 행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는 보여야 했기에 탑승구획에서 살짝 한 마디 흘렸습니다. 레코더 재머로 인해 아마 기사로는 나가지 못하겠지만 말이죠."


새삼 릴리엄의 강인하면서도 정교한 행동력을 실감하며, 윈 D가 스탠드로 세워진 타블렛 PC를 함께 들여다보았다.



"최근 운용시험 중인 신규 넥스트 시제 부품입니다. 이번에는 주로 무기 쪽을 집중하고 있습니다만, 향후 계획에는 내부 부품의 개발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가능하다면 풀 프레임을 목표로."


"언뜻 보기엔 BFF적이지는 않군. 새 프레임은 안 만드나?"


"061AN과 063AN의 개량을 준비중이기는 합니다만."


"조금 신기한 카탈로그 스펙이군. 명중률에 투자했다는 기색이 들지 않아."


"후후. 제가 곧 BFF라면, BFF를 저에게 맞추는 것이 맞지 않겠어요?"


"하긴. 나도 그 점에 대해 최근 약간 생각한 바가 있긴 하다. 혹시 시험사격할 일이 있다면 나도 참관하게 해 줘."


"알겠습니다."


경호대장이 리모콘을 조작하고, 화면이 다음 장면으로 넘어갔다.



"노멀도 있군. 지금까지 없던 형태인데."


"구 상해에서 첫 실전을 치렀던 노멀의 개량 형태입니다. 당시의 전훈을 통해 경량화를 실시, 방어력을 유지한 채 기동성을 향상시키는 것을 주 목표로 하였습니다. 다목적용이므로 작업용으로도 전용할 수 있죠."


"스나이퍼캐논 장비형은 고정형인가?"


"캐논을 접철식으로 하여, 조준 및 사격 중에만 정지합니다."


"확실히, 사일런트 아발란치 대의 최대 약점이 굼뜨다는 거였지. 스펙대로라면 이 기동성은...놀랍군. 지상에 한해서라면 최대 속도는 아르진 수준이야."


"BFF는 노멀 사업에도 꽤 적극적이니까요. 아마 꽤 많은 상품군이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다음 화면은 조금 생소한 이미지와 함께 텍스트만이 드러났다.


"그리고, 이것이 BFF의 신규 사업인, 전투 보조와 환경 재생에 관한 프로그램입니다."


"환경 재생?"


"네. 오메르 정도가 아니라면 모방할 수 없을 최신형 강인공지능에 의한 합리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죠. 지금 시험가동하겠습니다."


경호대장의 조작에 따라 실내가 약간 어두워졌고, 두 사람 앞에 프레젠테이션 스크린이 내려왔다.


BFF의 로고가 왼쪽 위로 축소된 뒤, 처음 보는 엠블렘과 함께 인간의 그것과 거의 차이가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처음 뵙겠습니다. 기업의 전투 보조 및 환경 재생을 담당하게 될 강인공지능."


그렇게 이 세계, 현실에 대한, BFF라는 거인의 또다른 수단이 베일을 벗었다.




"캐롤 도리라고 합니다."






/






캐롤 도리를 fA 세계관에 꺼내버린다는 폭거


이번 화는 좀 재미가 없었다. 장면을 묘사하거나 뜬금없이 개그칠 부분이 없어서 힌트를 뿌리기로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