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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냐!"

집에 강도가 들어있었다.

콜트 권총의 총구를 앞세워 마주 보니 범인은 지금의 나와 비슷한 나잇대의 여자애. 의자를 발판 삼아 왼손은 찬장에 있던 통조림을 꺼내고 있었고, 오른손은 뭔가 꾸깃꾸깃한 종이를 쥐고 있었다.

"저, 저기."

그건 화폐 같아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굉장히 꽉 쥐고 있어서 언뜻 보기에도 귀중한 물건 같아 보였다. 총구를 들이대며 목소리를 높인다.

"저기, 그...."
"일단, 손에 들고 있는 거 다 내려놔. 내 거니까. 의자에서도 내려오고."

사람을 직접적으로 겨누는 건 전생에도 해본 적이 없는 일이다. 조금 손이 떨려 총구 끝이 흔들린다.

"네? 네에."

눈과 눈이 마주친다. 쏘고 싶지 않다. 정말로.

다행히도 소녀는 순순히 왼손에 들고 있던 통조림을 찬장에 돌려놓았고, 의자에서 내려와 오른손에 쥐고 있던 종이도 손에서 놓아 공중에서 팔랑이다가 바닥에 떨어졌다.

"...."

총구를 여전히 소녀에게 겨눈 채, 나는 천천히 다가가 종이 뭉치를 집어 들었다. 손에 쥐어보니, 그것은「배급표」였다. 글자 자체는 영어로 적혀 있었지만 큰 무리 없이 읽을 수 있었다.

갱지에 레오네의 로고와 함께 6개의 도장 칸이 단색 인쇄되어 있어 한 칸당 통조림 하나를 받을 수 있는 모양. 요컨대, 이 아무것도 찍히지 않은 배급표 한 장이 저 통조림 6개와 동등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왜 남의 집을 털려고 한 거야?"

총구는 여전히 겨눈 채. 나는 물었다. 그러자 소녀는 눈물을 글썽이며 대답했다.

"그으, 흐윽, 살던 집이 화재로 타버려서.…"

잠시 망설였다. 소녀의 눈에는 두려움과 슬픔이 가득했다. 총을 내리고 한숨을 쉬며 말했다.

"....길거리를 전전하며 배를 곪다가 어쩌다가 문이 열린 집이 보였고, 홀린 듯이 집을 뒤졌다 이거지."

"예에...."

나는 잠시 침묵했다. 소녀의 말이 사실이라면, 꽤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었던 것이다. 이걸 매정하게 꺼지라고 할 수도 없고, 결국 나라는 인간의 속 알맹이는 21세기의 한국인이다. 총을 완전히 내린 뒤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알겠어. 하지만 다음부터는 이런 짓 하지 마. 위험하니까.”
"네, 다음부터는, 다시는, 훌쩍."

소녀는 즉각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눈물을 닦았다. 얼핏 보인 건 푸른 빛이 섞인 은발. 나는 그 색에 무심코 소녀에게 배급표 한 장을 돌려주며 말했다.

“이거 가지고 가. 당분간은 굶을 일은 없겠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소녀는 배급표를 받아들고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집을 뛰쳐나갔다. 하지만 소녀가 떠난 뒤,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서 생각에 잠겼다.

주된 고민은「식량 문제」일까.

방금 전의 강도 소녀에게 충동적으로 줘버린 배급표를 제하자면 지금 남아있는 건「영양죽」이라고 적힌 통조림 3개. 그리고 도장이 두 개 정도 찍힌 배급표가 하나.

이 꼬맹이의 몸이 어른보다는 열량을 적게 소모하는 걸 생각한다면 통조림 7캔, 적당히 일주일 정도의 식량이 있다고 보는 게 좋겠지.

그렇다면 애초에「배급표는 어디서 받지?」라는 의문이 들게 된다.

얼핏 기억나는 바로는 팍스 이코노미카 체제하의 콜로니 주민은 식량을 얻기 위한 노동에만 종사하게 된다고 하던가. 옛 시대의 공산주의 국가도 아니고 배급표를 그냥 나눠주진 않을 것이다.

뭔가, 노동을 해야 받을 수 있겠지.

또 정보가 필요하게 된 셈이다. 팍스 이코노미카 체제하의 아동 노동이야 흔한 일이라곤 하지만, 애초에 지금의 내가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상황인지는 모를-

ㅡ꼬르륵.

"....일단 밥 먹고 할까."

생각해보니 깨어나자마자 아침도 안 먹고 무턱대고 뛰쳐나왔었지. 지금 시간이 12시 40분 정도인 걸 보면 하마터면 점심도 거를 뻔했다.

한국인은 밥심이라는데 그건 곤란하지.

일단 손에 쥐고 있던 배급표를 야전상의의 안주머니에 적당히 쑤셔 넣고, 문을 안쪽에서 잠근 뒤. 바닥을 굴러다니던 영양죽 통조림 하날 주워 살짝 틈새를 열어두어 페치카 위에 올려둔다.

생긴 건 페치카지만 딱히 목탄을 떼는 것 같진 않아 보였다. 집안을 뒤져 찾아낸 조개탄 비슷한 무언가가 담긴 꾸러미를 질질 끌고 와 페치카 안에 넣고, 라이터로 점화.

서서히 열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동시에 긴장이 탁 풀리면서 조금 몽롱해졌다.

이제야 체감이 오는 거지만, 지구의 금성화에 의한 이상 기후로 말미암은 것인지 밖은 9월 주제에 완전히 겨울이나 다름없는 날씨였다. 그런데 고작 야전상의 하나 걸치고 미친 듯이 뛰어다녔으니 몸이 버틸 리가 있나.

AMS는 아니고, 피로가 역류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페치카 앞에서 무릎을 끌어안은 채 앉아 통조림으로부터 보글보글 끓는 소리와 쉬쉬 김이 새어나오는 걸 보며 한동안 멍때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화르륵. 갑자기 페치카에서 불길이 치솟는 걸 전신이 느끼고 발작적으로 깨어난다.

"우, 우와아아악!"

급히 바가지에 받은 흙탕물을 끼얹어 진화한다.

앞으로는 밥 기다리다가 조는 건 금물이다. 하마터면 방금의 강도 소녀하고 똑같은 꼴이 될 뻔했다. 거기에 통조림이 조금 타버린 감도 있나.

아마 맛은 원래도 좋지 않던 게 최악으로 변했겠지.

그럼에도 몸 안에 EN을 채워넣는 일이다. 먹어야겠지. 나는 한숨을 내쉬며 페치카에 재차 흙탕물을 끼얹어 남은 불을 끄고, 아랫부분이 새까매진 통조림을 장갑 낀 손으로 집어 식탁으로 가져왔다.

조심스럽게 통조림을 열고, 그 안의 내용을 천천히 숟가락으로 떠먹는다. 맛은 뭐라고 할까. 간이 희미하게 된 멀건 옥수수 죽에 석탄을 플레이버로 끼얹은 맛일까.

아무튼 사람이 주식으로 삼을 법한 물건은 아니었다.

문제는 기업에 속하지 못한 콜로니 주민은 보통 사람 이하라는 것이고, 이렇게 된 거 맛을 느낄 새도 없이 입에 죄다 털어 넣어 식사를 마무리했다.

아무렴 배만 차면 됐지. 지금 식사의 질마저 따질 고상한 상황이던가.

일단 링크스가 된다. 이것저것 따지는 건 그 뒤다.

나는 그렇게 다짐하고 통조림 깡통을 흙탕물로 닦아 대강 구석탱이의 상자에 던져두었다. 콜트 권총은 도로 야전상의의 안주머니에 넣어둔 상태. 밖으로 나가 문을 잠그고 거리로 나선다.

콜로니는 말하자면 고대 그리스의 도시 국가와 같은 팍스 이코노미카 체제하의 자치 행정 단위랬나.

그렇다는 건 기업으로부터 위탁받아 그「행정」을 수행하는 곳이 어딘가에는 있을 것이고, 구체적으로는 이 콜로니의 도심. 그 중심부에 있을 확률이 높아진다.

그리고 도시의 중심부란 대체로 사람과 정보가 몰리는 법이다. 일단은 배급표를 얻을 수 있는 법. 그리고 정기 건강검진 날짜까지 알아낼 수 있다면 베스트다.

조금 긴 여행이 되겠다마는.

"준비됐나? 나."
"예, 그럴 생각입니다."

수몰의 주문을 홀로 읊으며 용기를 얻는다.




결심을 굳히고 콜로니의 중심부로 향했다. 길을 찾는 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길거리에 순찰을 돌던 기업 헌병에게 물어보았더니 생각보다 잘 대답해주었다.

내 생각이지만, 좀 당당하게 물어본 것이 주효한 듯했다.

어버버하면서「저, 저기, 이 콜로니에서 가장 큰 도심이 어디인가요...?」했다면 불법 체류자인 줄 알고 즉시 체포행이었겠다만.

대놓고「저 첫 출근인데요. 공장이 중앙 시가지에 있다고 하는데 어디에요?」라고 하니 헌병은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조금 기특한 눈으로 볼 뿐.

그렇게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도심으로 갈수록 건물들이 높아지고, 사람들의 표정도 다양해졌다.

내 집이 있는 외곽 부분만 해도 완전히 슬럼가였건만, 중심 시가지까지 와선 21세기의 소도시와 크게 다름없는 풍경이다. 이 콜로니. 생각보다 잘 사는 곳인 건가.

시시콜콜한 생각을 하며 인파를 빠져나오니 보인 건「동레미 콜로니(Domrémy Coloni)」의 간판이 걸린 대형 행정 센터와, 어쩐지 사람들의 줄이 늘어서 있는 부속 창구 같은 곳이었다.

"여기, 프랑스였구나."

동레미라면 잘 안다. 백년전쟁을 승리로 이끈 구국의 처녀, 잔 다르크의 고향. 작은 마을이었을 것이 어쩌다가 기업 산하의 콜로니가 되었는지는 솔직히 의문이지만. 내 위치를 재차 파악할 수 있어 다행이라 할 수 있을 터다.

조금은 감상적이 됐지만, 양 뺨을 탁탁 쳐서 정신을 차린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지금 저 창구 앞에 늘어선 줄이 뭔지 알아보는 게 중요하지.

작은 체구를 살려 잽싸게 줄에 끼어든 뒤. 앞에 선 아저씨의 코트 옷깃을 붙들고 물어본다.

“저기, 아저씨.”

피로에 절어있는 듯한 몰골의 아저씨는 잠시 놀란 듯 나를 쳐다보더니, 이내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무슨 일이냐 꼬마."

“이 줄이 뭐 하는 줄인가요?”

그러자 아저씨는 잠시 등신을 바라보는 듯한 눈으로 날 보더니, 내 얼굴을 빤히 보다가「아.」하는 소릴 내곤 조금 가래가 끓는 목소리로 설명해주었다.

"작업 배정소다."

전쟁 고아라고 생각한 건가. 어느 의미에선 맞는 말이지만, 아저씨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줄을 따라 앞으로 나아갔다.

그나저나 작업 배정소라니, 딱히 직업의 자유 같은 건 없는 셈인가. 팍스 놈들, 아까의 배급표도 그렇고 기업 주제에 공산주의 국가 같은 짓을 한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작업을 배정받고 생각하자. 그렇게 줄이 천천히 움직이는 동안, 나는 주변 사람들의 대화를 엿들으며 정보를 모았다.

“이번에 새로 들어온 공장은 꽤 괜찮다고 하더라구.”

“그래? 난 그냥 어디든 상관없어. 일만 있으면 되지.”

30분 즈음 지나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창구 앞에 서자 마주 본 건 아까의 아저씨와 마찬가지로 피로에 절어 다크서클로 판다 꼴이 다 된 여자 사무원이었다.

"ID 카드 제출해주세요..."

그리고 나는 이 시점에서 얼어붙었다.

ID 카드라고, 뉘앙스를 보아 신분증 같은 것일 텐데 아까 집 안 구석구석을 뒤져보아도 그런 물건은 없길래 일단 무턱대고 나온 상황이다. 엿됐다.

순간적으로 머릿속이 하얘졌다. 어떻게 해야 할까? 도망칠까? 아니면 솔직하게 말할까?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고, 최대한 침착하게 대답했다.

“그으, 죄송해요, ID 카드를 잃어버렸어요. 어떻게 하면 재발급 받을 수 있을까요?”

사무원은 피곤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한숨을 쉬며 말했다.

“ID 카드를 잃어버렸다고? 그럼 여기서 재발급 신청서를 작성해야 해. 저기 오른쪽 창구로 가서 신청서를 받아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오른쪽 창구로 향했다. 다행히도「정말 이전에 발급받았느냐」라는 질문은 없었고, 재발급 절차도 복잡하지 않은 것 같았다. 과로하는 사람이 많아 보이니 아마 사람 부족일까.

그렇게 창구에서 신청서와 펜을 받아들고, 빈 공간에 앉아 이름, 생년월일, 주소 등 기본적인 정보를 기입하는 공란이 주어지자 나는 조금 망설였다.

'애초에 여기에서의「나」는 누구지?'

다른 이름이나 국적 같은 게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잘못 기재해서 위장 신분을 만들려는 시도로 여겨지면, 음. 끝장이지 않을까. 동맹 기업인 아쿠아비트에 넘겨져서 솔 디오스 부품이 될지도 모르겠군.

하지만 고민은 길게 가지 못했다.

오른쪽 창구의 판다 2호기가「빨리해라」고 눈치를 엄청나게 주는데 어쩌겠는가.

그리하여 적당히 생각하기로 했다. 전생에서의 이름이면 되겠지. 서양식으로「루카 리(Luka Lee)」인가. 이루카. 부모님께서 교회에 다니셔서 지은 이름이다. 나머지는 적당히 날림으로 적는다.

지금 나이가 대충 초등학교 6학년에서 중학생 즈음으로 보이니 적당히 13세.

생일도 적당히 6월 21일.

주소도 적당히 콜로니 외곽. 어차피 판잣집이라 제대로 된 주소도 등록되지 않았을 터다.

“여기요.”

사무원은 신청서를 받아들고, 컴퓨터에 입력한 후 나에게 임시 ID 카드를 건네주었다.

“이 임시 ID 카드를 가지고 작업 배정소로 돌아가. 정식 ID 카드는 며칠 후에 발급될 테니까.”

나는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다시 작업 배정소로 돌아갔다. 임시 ID 카드를 제출하자, 사무원은 내 정보를 확인한 후 작업 배정서를 건네주었다.

“네 작업장은 중앙 시가지에 있는 제2공장이야. 내일부터 출근하면 돼.”

나는 작업 배정서를 받아들었고, 집으로 돌아가기에 앞서 마지막으로 사무원에게 물어보았다.

"그, 마지막으로, 건강검진이라던가. 그런 건 언제 하나요?"

그러자 사무원은 피곤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대답했다.

"몰라, 분기마다 하던가. 더 이상 귀찮게 하지 말고 가봐라. 꼬맹이."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분기마다 건강검진이 있단 말이지. 생각보다 다소 간격이 넓긴 했지만, 수확이 있었다.

오늘이 딱 9월 18일. 3분기는 다 끝나가는 마당이지만 곧 4분기가 온다. 공장에서 일하면서 몇 주 정도를 버티다 보면 때가 오리라.

세계를 바꿀 힘을 얻을 때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다소 발이 가벼웠다.






2교대 공장 근무 하지마루욧

그리고 강도 정체는 조금 뜨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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