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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화



정신을 차리고 보니 다행히 길바닥에 내버려진 게 아니라 익숙한 천장과 병원 침대였다.

처음부터 이랬으면 참 좋았을 텐데, 판잣집 스타팅이라니.

왼팔에는 카테터의 주삿바늘이 꽂혀 있었고, 연결된 수액에 진통 성분이 섞여 있는 건지 더 이상 AMS 피드백에 의한 고통은 없었지만, 머리가 조금 멍했다.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는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대마초를 하면 이런 기분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해본 적은 없지만, 2020년대 대한민국의 준법시민이 그런 걸 해봤을 리가 없지 않은가.

"으, 으극."

상반신을 일으키고 뭔가 사람을 부르려 했지만, 신경이 도통 따라주지 않아 괴상한 소리만 입에서 튀어나왔다.

대신 문이 열리며 누군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깨어나셨군요. 기분은 어떠신가요? 3시간 정도 기절해 있으셨습니다."

들어온 사람은 아까의 연구원이었다. 그는 내 상태를 확인하며 미소를 지었다. 묘하게 더 친절해졌다. 동시에 혀가 풀려 조금 어눌한 발음으로 말한다.

“괜찮아요. 조금 멍할 뿐이에요.”

역시 AMS 적성자. 대우부터가 다른가. 나는 힘겹게 대답했다. 연구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 상태를 태블릿을 두드려 기록했다.

"처음에는 무적성자나 그것과 다름없는 최저한도의 적성자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일정 구간을 넘어선 순간. 갑자기 스트레스 레벨이 급락하더군요. 그리고 그게 계속 유지되었습니다. 잠재되어 있던 리미터를 벗어던지듯이. 흔히 볼 수 없는 일이죠.

그리고 조금 늦은 감이 있긴 하지만, 축하드립니다. 당신은 상당한 수준의 AMS 적성자로 판명되었습니다. 이제부터는 저희 지시에 따라주시면 됩니다.”

그의 말에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모든 불안감이 한꺼번에 사라지는 듯했다. 콜로니에 갇혀 그저 썩어갈 뿐이 아닌, 링크스 양성 기관으로 갈 수 있다.

조금 눈물이 나왔다.

"...AMS 적성자라면, 링크스가 될 수 있는 건가요?"

그래도 할 건 해야겠지. 순진한 어린이를 연기한다. 여기서 대뜸 드디어 링크스가 된다! 야호! 를 해버리면 뭔가 속물 같아 보이고 알맹이를 의심받을 수도 있잖냐.

그랬다가는 아쿠아비트의 연구소라던가로 끌려가서 솔디오스의 FCS가 되어버릴지도. 아니, 레오네니까 이런 경우에는 크롬 헤드가 되어버리는 건가? 아무튼.

연구원이 답하려던 순간.

"정확히는, 링크스 후보생 신분이겠지."

벌컥 문이 열리며 잘 다려진 정장을 입고 인테리올 유니온의 로고 배지를 목깃에 단. 기업을 체현한 듯한 중년의 남자가 내 질문에 답해주었다. 본명이 스네일이신가.

"본래는 AMS 실험의 피험자 신분부터 시작이다만, 높은 적성을 보여준 자네는 특례로써 링크스 후보생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스네일(가칭)은 내게 다가와 오른손을 내밀었다. 나는 잠시 망설였지만, 그의 손을 잡았다. 피와 살로 이루어진 사람의 손이라기보단 차갑고 단단한 느낌. 의수인가.

"거절하는 선택지는 없죠?"
"아무렴, 그 소란이었지 않나. 자네가 거절하는 선택지는 없으리라 판단하고 있다."

하긴, 여기서 새침한 척해도 그렇게 이 악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면서 AMS 부하를 버텨냈다. 이 사람이 보기에도 이쪽에 뭔가 열망 같은 것이 있으리라고 보겠지. 나는 한숨을 쉬며 손을 흔들었다.

"루카 리입니다."
"레오네 메카니카 사, 인사부, 특채 9과, 자크 칸델로로 과장이다."

스네일이 아니라 그쪽이었나. 친분이 늘어난다는 점에선 좋게 생각하자. 설령 그게 내 VOB에 나사를 빼놓는 여자와 관련이 있는 사람일지라도.

악수를 끝마치자 아까 보았던 의사가 카테터 바늘을 빼준 뒤. 거즈를 덧댄 밴드를 붙여주었다. 그리고 나는 자크 칸델로로 과장을 마주 보고 물었다.

"그럼 지금부터 학교라던가, 가는 건가요?"

링크스 양성 기관이라고 한다면 다소 수상한 감이 있으니까 적절히 순화. 그러자 자크 칸델로로 과장은 즉답했다.

"지금 당장은 무리지. 나조차도 계측된 AMS 적성치에 놀라 VTOL을 타고 몸만 급히 왔을 뿐이다.

한... 익일 정오 즈음에 자네를 양성 기관으로 이송할 장갑 차량이 이 콜로니에 도착할 테니 그때까지 뭔가 채비라도 갖춰두는 게 좋지 않겠나."

채비라고 해봤자 지금 가방에 가지고 있는 게 전부긴 했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대답에 과장은 흡족한 표정을 지은 뒤. 곧바로 병실을 나갔다. 꽤 공사가 다망하신 몸인가 보다.

나는 자크 칸델로로 과장이 나간 후에도 잠시 침대에 누워있었고, 오후 4시가 될 무렵에 진료소를 벗어났다.

해는 여전히 중천에 떠 있었고, 이상 기후로 인한 추위로 몸이 떨리는 것도 여전하다. 하지만 몸 안에 무언가를 이루어냈다는 기쁨이 충만했다.

"이송 차량은 내일 정오 즈음에 온다니까... 그동안 적당히 집에서 뒹굴거리고 있으면 되겠지."

그리고 그 말을 꺼낸 직후. 나는 강렬한 위화감을 느꼈다.

아.

나 집 불태워버렸지.




콜로니에 기본적으로 숙박 시설 같은 건 없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있긴 있는데 높으신 분 전용이다. 배급표를 일절 받지 않고 오직 COAM으로 지불해야 하는 호텔 비스무리한 것이 있긴 하니까.

그렇기에 나 같은 고아가 이 이상 기후의 칼바람을 피하기 위한 방법은 그 판잣집 정도였건만, 결의를 다질 겸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데 불태워버린지라 지금은 소멸했다.

후드를 급히 쓰긴 했지만, 살을 에는 듯한 바람이 야전상의를 파고들어 온다. 좆됐다.

체감 온도는 대략 영하 10도쯤 되는 것 같았다. 나는 몸을 움츠리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어디든 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곳을 찾아야 했다.

비어있는 창고. 어지간한 창고는 전부 CCTV가 설치되어 있어서 내쫓겼다. 가끔 기관총 터렛이 달린 것도 있어서 위협사격도 가해오는 무시무시한 놈들도 있었다.

다른 판잣집. 들여보내 주는 사람이 있을 리가, 당장 나도 전생하고 첫날부터 전자 도어락에 익숙해져 있던 탓에 수동 잠금을 깜빡해 강도질을 당할 뻔했다.

그렇다고 노숙자들 소굴? 미친 짓이다. 공장에서 일하다가 얼핏 들은 소문으로는 남자든 여자든 잡아다가 성노예로 부리고 못 써먹게 되면 자연육로 만들어버린다나.

이건 거의 해병성채다. 갈 리가 있나. 그런 이유로 계속해서 콜로니의 외곽부에서 길을 헤매던 중, 오래되고 방치된 성당이 눈에 들어왔다.

성당은 한때 웅장했... 을 것 같진 않은 건물이었지만, 아무튼 지금은 반쯤 폐허가 되어 있었다. 그래도 바람을 피할 수 있을 것 같아 나는 성당으로 향했다.

입구에는 작은 표지판이 녹슨 채 서 있어 이 성당의 이름이 한때「생 레미(Saint-remi)」였다는 것만 알 수 있었고, 성당의 문은 반쯤 열려 있어 나는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는 어둡고 차가웠지만, 바람을 막아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서서히 앞으로 나아가다 보니 불빛이 보였다. 타닥거리는 소리와 일렁이는 불빛의 색깔을 보아 아마 모닥불.

여기도 이미 사람이 있는 걸까.

하지만 여기 말고는 이제 바람을 피할 곳이 없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가방 속에서 콜트 권총을 꺼내 주머니에 쑤셔 넣고는 계속해서 나아갔다.

그러자 눈에 비친 것은 색이 바래버린 스테인드글라스. 성당 중앙에 세워진 단상 위 성모 마리아상. 그리고 지난번에 보았던 강도 소녀가 무릎을 끌어안아 웅크린 채 모닥불을 쬐다가 깜짝 놀라는 얼굴이었다.

나는 순간 멈칫했다. 강도 소녀는 나를 보자마자 허리춤에서 녹슨 나이프를 뽑아 바들바들 떠는 손으로 움켜쥐었다. 소녀의 눈에는 경계심과 두려움이 가득했다.

"너, 왜, 왜 여기에...?"

설마 복수하러 왔다고 생각한 건가. 배급표까지 쥐여주긴 했는데 이 동네가 원래 그렇다. 원체 사람을 잘 믿지 못하게 만드는 구조다. 일단 오해를 풀어보자.

나는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며 진정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아니아니, 딱히 복수라던가 하러 온 거 아냐. 딱 하룻밤만 바람을 피할 곳이 필요했거든, 다른 곳은 다 위험해서..."

강도 소녀는 여전히 경계를 풀지 않았지만, 조금은 안심한 듯한, 하지만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집이 있는데도? 왜?"

“그게 말이지... 집이 불타버렸어.”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살짝 긁곤 대답했다. 정확히는 내가 불태운 것이긴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이 강도 소녀와 똑같이 되어버린 것이다.

집이 불타버렸다는 말에 강도 소녀는 잠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나이프를 천천히 내렸다. 그리고 왼손으로 옆자리를 톡톡 두드렸다.

나는 소녀의 옆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모닥불의 따뜻함이 몸을 감싸며, 조금이나마 추위가 사라져간다. 그렇게 몸이 적당히 녹았을 무렵. 소녀가 시야에 들어왔다.

지난번에 보았던 피골이 상접했던 상태보다는 혈색이 많이 나아진 상태였고, 여전히 푸른 빛이 감도는 은발이 흘러내리는 소녀는 이제 눈동자에 불길을 깃들인 채. 나를 향해 말을 걸어왔다.

"이제부턴 어쩔 생각이야?"

그 말에 나는 홀린 듯이 대답했다.

"다른 곳으로 떠나보려 해. 그리고 언젠가 돌아올 거야."

AMS 적성 검사에 합격해서 링크스 양성 기관으로 간다는 말은 할 수 없으니 거짓말을 찾아보고 있던 참이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뇌가 아닌 입이 먼저 답했다.

돌아온다니, 딱히 고향도 아닌 곳이건만 왜 이렇게 말했을까. 그러자 소녀는 불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콜로니 밖은 많이 위험해. 도적단도 돌아다니고 있고, 길 곳곳에 전쟁 때의 불발탄이 남아서 종종 폭발해, 어머니도 그것에 당해서 죽었어."

소녀의 눈에 비치는 나는 분명 콜로니 안에서만 살아본 사람이 자포자기의 모험을 하려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겠지. 소녀는 잠시 망설이다가 계속해서 조곤조곤 물었다.

"그에 비해 여기는 기업 병사들이 있어, 바람을 피할 곳이 있어, 일하면 배급이 나와, 너는 왜 굳이 나가려고 해? 밖은 더 위험할 텐데..."

나는 그 말에 즉답했다.

"여긴 미래가 없어."
"미래?"

"그래. 미래. 이런 곳에 평생 살아봤자 아무것도 바꾸지 못해. 몸의 구석구석까지 오염 물질에 삼켜진, 걸레와 같이 눌러 짜내어져 가며 썩어갈 뿐이야."

"그리고 썩어서는 살아갈 수 없어. 나는 말이지. 이 세상에 태어난 의미를 찾고 싶어."

모닥불 앞에서 우리는 잠시 동안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불길이 일렁이는 소리만이 성당 내부를 채우고 있었다. 소녀는 나를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머나먼 이야기를 하고 있네. 너는, 지금은 무섭지만. 나도 언젠가 할 수 있을까. 그렇게 미래라던가. 태어난 의미라던가의 이야기."

"장담은 못하겠지만 아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

소녀는 잠시 침묵을 지키며 모닥불을 바라보았다. 불꽃이 일렁이는 소리가 성당 내부를 가득 채웠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여전히 불안과 의심이 섞여 있었지만, 그 속에서 희미한 불빛 같은 것이 보였다.

"...고마워."

"별것도 아닌데 뭘. 그것보다도 내가 밖에 나가서 잘할 수 있기를 기도해줄래? 말은 거창하게 했지만 사실 조금 불안해서. 히히."

소녀는 내 말을 듣고 살풋 미소를 지었다. 소녀는 손을 모아 성모 마리아상 앞에서 조용히 기도했다.

밤은 깊어만 간다.

나와 소녀는 추위 속에서 모닥불 하나를 이정표로 삼아 수마에 빠져들었고 내부는 고요함에 휩싸였다. 바깥에서는 바람이 거세게 불어왔지만, 성당 안의 둘은 잠시나마 평온을 찾을 수 있었다.




그렇게 아침이 밝아오자, 소녀는 눈을 떴다. 모닥불은 이미 꺼져 있었고, 성당 내부는 차가운 공기로 가득했다.

소년은 자리에 없었다. 가방만이 남아있었을 뿐.

두고 간 것일까. 소녀가 가방을 열자 그 안에는 배급표, 통조림, 권총 등의 물건과 함께 종이를 살짝 찢어 적은 듯한 쪽지가 남아있었다.

『나도 고마워.』

눈이 내리는 날이었다.





시발 드디어 인트로가 끝났다

저 성당은 실제로 동레미에 있고, 잔 다르크가 세례받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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