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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피는 한 동안 멈추지 않았다.

AMS의 신경 과부하로 혈류가 쏠려 꽤 큼직한 핏줄이 터진 모양이지. 수도꼭지가 박살난 급수기처럼 뜨뜻한 게 흘러내려 턱 끝에서 뚝, 뚝.

오른손을 오목하게 모아 받치자 얼마 안 가 손 안에 작은 붉은 웅덩이가 생겼다.

표면에는 멍하니 그걸 바라보는 내 얼굴이 띄워져 때때로 떨어지는 핏방울의 파문에 일그러졌다. 그리고 아주 잠깐. 혹은 꽤나 길게.

나는 멍하니 붉은 웅덩이 속의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나를 일깨운 건 다소 째지는 소리였다.

"당신! 정신 차리셔요! 피를 그렇게 흘려대는데 지혈조차 않고 멍하니...!"

눈알이 삐걱대며 움직여 소리의 근원을 쫓았다.

보이는 건 아름다운 금색. 체칠리아가 당황한 표정을 하고 손수건으로 내 코를 틀어막으며 말했다.

"정말이지, 어디에 머리라도 잘못 박은 것이어요?! 일단은 의료반을..."

"...아니, 그냥 코피니까. 괜찮아."

틀어막은 손수건이 점차 붉게 물들었다. 그런 나를 체칠리아는 쌍심지를 켜고 노려보았다.

"그렇다고 해도, 코피를 흘릴 정도의 무리라니... 벌써부터 이런 식으로 몸을 축내면 링크스 일도 길게 못 한다는 걸 아는 것이와요?"

"...별 수 없잖아. 그 남자가 강해 보였으니까."

잠깐의 충동이었다.

강해보이는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 하지만 힘이 모든 걸 결정하는 세계에서 증명을 받고자 하는 게 나쁜 것인가. 적어도 나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걱정하게 해서 미안."
"미안하다고 할 사람은 하나 더 있지 않던가요?"

체칠리아는 그 말과 동시에 자신의 어깨 뒤편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일린이다.

아일린은 지혈 스프레이를 손에 쥐고 있었다. 내가 멍 때리고 있었을 때 잽싸게 움직였던 거겠지. 눈이 마주친다. 괜찮냐는 무언의 물음을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답한다.

"신경 쓰이게 해서 미안. 그리고 피가 영 안 멎는 거 같으니까 스프레이 좀 뿌려주라."
"으, 으응."

아일린은 조심스럽게 손수건을 빼낸 뒤. 지혈 스프레이를 뿌리기 시작했다.

차가운 약물이 코에 닿자 약간의 따끔거림이 느껴졌다. 지혈제 성분과 함께 나노머신이 섞여 있다고 했던가.

그래서인지 정말 빠르게 피가 멎었다. 코 안에 피딱지가 생겨서 조금 걸리적거리는 느낌이지만.

"이제 좀 괜찮아?"

아일린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응, 이제 괜찮아. 고마워, 아일린."

짧게 대답하고, 자리에서 일어서려던 도중 무언가 잡아당기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미미한 통증이 느껴지길래 확인해 보았더니, 아직 연결되어 있던 AMS 잭 때문이었다.

다행히 시스템은 꺼져 있었지만, 켜져 있었다면 조금 위험했을지도.

AMS 잭을 뽑고 일어나니 여전히 비치되어 있는 아이스박스가 보였다.

피를 흘려서인지 목이 탔고, 나는 홀린 듯이 얼음물 속의 팩형 에너지 드링크를 집어 구석으로 향해 앉았다.

레몬 맛의 청량함이 지친 몸에 다소 활력을 불어넣는다.

그럼에도 목마름은 영 가시질 않았고, 나는 결국 아이스박스로 향해 에너지 드링크를 하나 더 집어들고 왔다.

두번째 팩을 쭉 빨아올려 쪼그라들게 만든 뒤 고개를 돌려보니 곧장 훈련이 재개되는 것이 보였다.

이번에 훈련을 받는 건 아일린과 귀도 씨.

훈련을 지켜보며 아까의 감각을 되짚어보려 했다. 아직도 환상의 팔다리가 저려오지만, 귀중한 감각이다.

인지의 확장. 머신와 육체의 동조. 잠깐 엿봤던「파도타기」의 기분...

"잠깐, 괜찮나."

그렇게 생각에 빠지려할 때, 레이븐이 조용히 다가왔다. 바닥에 철판이 깔린 군화를 신고 있는데도 발소리 하나 나지 않는 무시무시한 보법이었다.

"괜찮지 않을 것도 없죠."

나는 손등으로 바닥을 톡톡 치며 자리를 내주었고, 레이븐은 특유의 무표정함을 유지한 채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먼저 질문해도 괜찮을까요."
"...상관없다."

아일린이 AMS 시트에 앉아 식은 땀을 흘리며 인형 기체를 조작하는 모습을 멀찌감치서 보며 나는 질문했다.

"아까의 간격 벌리기. 어떻게 한거죠?

초반 스퍼트 타이밍도 거의 동일했고, 중간에 실수한 적도 없었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어째서 거리가 벌려졌던건지 모르겠거든요."

"마지막에 실속하지 않았나."
"그건 별개고요."

나와 같이 레이븐은 가지고 온 팩 드링크를 들이키고선 말을 이어나갔다.

"조금 앞에서 뛰었을 뿐이다."
"...조금 앞에서?"

레이븐은 다 마신 팩을 휙 던져 쓰레기통에 던져넣었다.

그리고 따라하라는 듯한 눈빛. 마침 다 마신 팩이 2개나 있는 마당이다. 던진다.

쓰레기통에 닿긴 커녕 체칠리아의 발치에 간신히 툭하고 닿는다. 와인드 업. 정석적인 투구 자세. 팩이 되돌아온다.

"쓰레기 던지고 놀지 마셔욧!"

"무얼 느꼈지."
"거리 부족?"

"같은 동작임에도 차이는 크다는 거다.

어른의 팔과 아이의 팔. 기본 구조는 동일하지만 크기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하물며 신장의 3분의 1 크기 밖에 되지 않는 인형이라면."

"...같은 움직임을 해도 다른 결과가 나온다는 겁니까."

레이븐은 무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의 형상을 본땄다고 해도 기계는 인간과 다르다.

그렇기에, 기계를 조종할 때 인간의 습관대로 움직이면 부자유해지기 마련이지. 기계에 맞추어 움직이는 것. 그것이 철칙이다.

그에 비해 너는 마치 인간처럼 움직였다. AMS가 알려줬을텐데, 카탈로그 스펙대로라면 도약 시의 발돋움 거리가 그렇게 많이 필요하진 않을 것이라고."

나는 잠시 침묵했다.

그야 인간의 습관대로 움직일 수 밖에 없는 조작 방식을 사용하고 있었으니까.

신체를 움직이는 감각이 아닌 기체를 조종하는 감각으로 움직이라는 이유가 이런 것 때문이었나.

"그래서 나는 사전에 파악한 인형 기체의 수직 도약력과 제동 능력을 감안해서 조금 앞에서 뛰었을 뿐이다.

그「조금 앞」의 거리가 중첩되고 중첩되다보니 인지한 순간 갑자기 거리가 벌어졌던 거라고 생각했던 거겠지.

답변이 됐나."

"...충분히요."

요컨대 기계와 인간의 몸은 큰 차이가 있으니 인간의 감각으로 움직이려들지 말고 세세한 스펙 등을 참조해서 어디까지 움직일 수 있는지 확인한 뒤 움직이라는 거니까.

공부가 됐다.

"그럼 이제 내 용건을 전달하지."

레이븐은 조금 전보다 아주 살짝 더,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그 방식에 의존하지는 마라. 돌아오지 못하게 될 거다."
"......"

그리고, 그의 짧고 굵은 선고에 나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티가 너무 났던 걸까. 그야 이상한 점이 한두개가 아니었으니 당연하겠지만.

갑자기 상정 스펙을 넘어 가속한다던가, 끝난 후엔 코피를 질질 흘린다던가, 조금만 주의깊게 관찰해 보면 알 수 있는 징조들이었다.

여태까지 레이븐이 보여준 일면들을 생각해 보았을 때에, 알아채지 못하는 게 역으로 이상한 일이겠지.

하지만, 진정으로 놀라웠던 것은 그 경고의 말에 담긴 기묘할 정도의 확신이었다.

"...알고 있던 건가요? 아까 제가 한 일에 대해."

내 질문에 레이븐은 천천히 고개를 흔들었다.

단, 세로방향이 아닌 가로방향으로.

순간 그 황당한 대답에 헛웃음이 튀어나올 뻔 했다. 자기도 모른다고? 자기도 잘 모르면서 이렇게 진지한 어조로 경고할 수가 있단 말인가?

다시 생각해보면, 그는 레이븐이다.

아직 링크스가 아니다. 넥스트용 AMS 시술도 이번에 새로 받은 것이었으니, 조금 전에 내가 사용한 그 방식을 미리 경험해 보았을 가능성도 낮다.

하지만, 그렇다면 방금의 말에 담긴 확신은 무엇이란 말인가. 이윽고 내가 따져물으려고 했을 때에─

"그저, 감이다."
"......"

다시 한 번, 레이븐의 말이 내 말문을 틀어막았다.

"용건은 전달했다. 그럼, 이만."

그렇게 말하고선 레이븐은 지체없이 몸을 돌려 걸어갔다. 방금의 침묵을 긍정으로 인식한 것인지, 부정으로 인식한 것인지조차 알 수 없는 얼굴을 한 채로.

조금 혼란스러웠다.

어쩌면 어느 쪽이든 그에게는 상관없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저 감이라고 하는 빈약한 근거.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적당히 흘려넘기는 것이 당연한 반응이다.

게다가, 내가 그 경고를 어떻게 받아들이든 그 자신에게 어떤 피해가 가는 일도 아니었을 터.

그럼에도 그는 구태여 나에게 그것을 경고하러 왔던 것이다.

"레이븐의 직감... 인가."

레이븐이 남기고 간 말을 되새기며, 앉은 자리에서 다리를 흔들었다. 적당히 흘려넘겨도 좋았겠지만, 그것은 레이븐의 직감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다지 일반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서 상념에 빠져있었다.

그 방식에 의존하지는 마라. 돌아오지 못하게 될 거다, 인가. 솔직히 그런 건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오히려 딴생각을 하고 있으면 있었지.

예를 들자면 이런 때에 리미터를 뚫으면 강해진다는 소년만화적인 감상이라던가. 웃기는 일이다. 지금 살아가고 있는 여기엔 소년만화적인 요소가 없을텐데.

그런 면에서 레이븐의 말은 다소 현실을 일깨워줬고.

"...신!"
"당신! 또 멍 때리고 있사와요?!"

체칠리아의 말은 상념에서 내 의식을 일깨워주었다.

그녀는 아까와 다름없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고, 나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 조금 생각할 게 있어서."
"또 빈혈이라도 도진 줄 알았사와요. 정말이지."

사람 심장을 철렁하게 만드는 재능이라도 있는건지 원. 체칠리아는 그리 투덜거리며 허리를 숙여 눈높이를 맞추고, 바닥에서 부스럭대는 무언가를 주워 내 손에 쥐여주었다.

"이건?"
"당신이 아까 집어던진 것. 아직도 안 버리셨으니 지금이라도 버리고 오셔요."

아까 던졌다가 돌아온 팩 드링크의 껍데기였다. 이번에는 내 발치에 떨어져 있었나. 쓰레기통까지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다. 갖다 버리고 오며 체칠리아에게 물었다.

"훈련은 끝난거야?"

그러자 체칠리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종료된지 조금 됐사와요. 저 이외에는 전부 만신창이가 됐지만서도."
"그건, 아일린도?"

"예에, 안 그래도 당신을 깨운 이유가 그거랍니다."

체칠리아는 그 말과 동시에 자신의 어깨 뒤편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데자뷰가 느껴진다. 조금 떨어진 곳의 바닥에서 아일린은 땀에 절은 채 대자로 뻗어있었다.

"아일린, 괜찮아?"

다가가 한쪽 무릎을 꿇고 묻는다. 가까이에서 보니 이마에는 식은땀이 뻘뻘 흐르고 있었고, 얼굴빛도 창백했다. 용케 버텼다 싶다.

"으, 으헤에..."

아일린은 어떻게든 최선을 다해「네」라고 대답하고 싶어하는 것 같았지만 숨이 차올라 있던 탓에 묘하게 기운빠지는 소리를 냈다. 어지간히 힘든가보지.

그렇다면 할 일은 하나다. 업고 가는 수 밖에 없지.

나는 아일린을 조심스럽게 들어 올리며 고개를 돌려 체칠리아를 바라보았다.

"꽤 무리한 것 같은데."

체칠리아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요. AMS 사용은 언제나 몸에 무리를 주니까, 당신도 조심하셔요."

"알겠어. 고마워."

조심스럽게 아일린을 등에 업고 의료실이 있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발걸음을 떼는 순간, 여전히 지친 내 몸은 약간의 저항을 했지만, 곧 익숙해졌다.

아일린의 체온이 느껴졌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그녀의 숨소리는 규칙적이었다.

길을 걷는 동안, 다시 레이븐의 말이 떠올랐다. 그의 경고가 단순한「감」에서 비롯된 것이라 해도, 그것이 경고로서의 무게를 잃지는 않았다.

직접적인 연결은 이번이 처음일지라도 비침습식 시스템이라면 몇번 이용해 봤을 터.

어쩌면 그는 이미 그 경계를 넘어본 적이 있는 걸까? 아니면, 나와 비슷한 상황에 처해본 적이 있기에 본능적으로 느낀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건, 지금 내가 그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행동하느냐는 것이다.

의료실에 도착해 아일린을 침대에 눕히고, 간호사에게 상태를 설명했다. 다행히 심각한 문제는 없다는 답을 들은 후,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섰다.

체칠리아가 그곳에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나를 향해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냈지만,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한 발짝 다가왔다.

"당신도 푹 쉬셔야 할 텐데요."

"그래야겠지."

체칠리아와 함께 걷는 동안, 나는 마음 속 깊이 다짐했다. 레이븐의 직감을 경고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는 걸.

잘못된 방향으로 한 걸음 내딛기 시작한다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못할 길로 들어설 수 있으니까.






아일린의 성씨가 오하라로 소소하게 바뀌었다
에이 플은 그냥 만우절 변형한 콜사인 같더라고

다음은 넥스트 트레이너 접속과 노멀을 사용한 실기연습인데

어쩌다보니 컬러드 학원물 떡밥하고 꽤 잘 맞아떨어질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