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테르미도르하고 윈디하고 또 싸웠다고? 매일 있는 일이잖냐. 신경 쓰지 말고 침대로 가있어.


....아니, 고민이 있는 표정이구나. 그래, 살인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고. 그 점에서는 테르미도르가 불리할 수밖에 없긴 하지. 윈디는 방어자의 입장이니까. 테르미도르는 많은 인명을 해치고 있다.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


너도 그게 걱정이구나. 살인을 저질렀다는 죄책감. 아니, 그건 부끄럽고 창피한 일이 아니야. 인간이라면 응당 느껴야할 감정이지. 인간이 인간다운 건 자랑스러운 일이란다.


링크스라고 해서 전지전능한 건 아니야. 진짜 신은 넥스트니까, 링크스는 넥스트를 현세에 강림시키는 사제왕인 거지. 배움의 기회는 많았지만 힘의 논리에 지식을 잃어버리고 넥스트만을 떠받드는 왕도 많지. 심지어 내 스승도 그런 왕이 되어버렸다. 테르미도르도 윈디도 왕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니까 가끔씩 무지하고 오만할 때가 있어. 하지만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이유는 따로 있다.


말이 조금 샜군.... 우리가 하는 행위는 물론 폭력이다. 값어치를 따질 수 없는 생명을 지우는 무거운 책임을 지고 있지. 하지만 말이야, 그 책임을 짊어져야 오히려 우리의 행위를 정당화할 수 있어.


임마누엘 칸트라는 철학자 얘길 해주마. 그 사람은 철저한 원칙론자였어. 인간이 인간으로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윤리적 의무라고 봤지. 당연히 그 의무에는 남을 해져선 안된다는 원칙도 있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사형제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지.


자신이 한 일에 책임을 지는 것도 인간의 의무니까. 너도 알고 있지만 오늘날에서 힘이란 것은 누군가를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지상의 자원을 빼앗아 하늘로 올려보내는 착취의 수단이 되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 거대한 수탈을 위해 봉사하고 있지. 그런 범죄에 대한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이 과연 단지 폭력이라는 이유로 잘못이라고 욕할 수 있을까?


오히려 범죄자라고 해도 그 사람의 인격을 인정할 수 있으니까 할 수 있는 행위라고 할 수 있지. 윈디는 자기 아래에 있는 사람을 인간으로 보지 않고 단지 시스템의 부품으로만 보니까 그들의 무죄를 주장할 수 있는 거야. 너는 그렇게 되지 말아다오.


자, 이제 가서 자라.






너.... 또 안자고 뭐하고 있냐....


나? 나는 야반도주 중이었다. 맞아, 테르미도르는 타협을 했다. 크레이들이라는 체제에 면죄부를 줘버렸지. 클로즈 플랜이라니, 결국 우주에 콜로니를 세우겠다는 개발계획이잖아. 지상 콜로니의 인민들은 그걸 위해서 오르카 여단을 도와준 게 아니었는데.


그래서 난 오르카로부터 떠날 예정이다. 배신하는 건 아니니까 걱정하진 마라.


뭐? 왜 떠나는지 알 것 같다고? 너도 테르미도르한테 실망한거냐. 어른의 세계란 이런 것이다. 끝까지 이상을 지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 테르미도르.... 그 이름도 프랑스의 대혁명이 타협하는 순간에 붙여진 것이고. 처음부터 그런 지독한 이름을 썼다는 걸 아니까 이제 와서 실망하는 건 사치에 불과하지.


....너도 납득 못하는 눈빛이구나. 너, 혁명이란 건 왜 하는지 알고 있냐.


원래 인간에게는 사회라는 것이 없었다. 그대신 인간이 인간을 잡아먹으며 짐승처럼 살았지. 그땐 어떠한 짓도 잘못이 아니었어. 인간이 하는 짓은 그냥 생물학적 현상에 불과했으니까. 코지마 입자가 사람을 죽이는 게 코지마 입자의 잘못은 아니잖아? 비슷한 거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인간은 같은 인간끼리 해치지 말고 서로 같이 살아남자고 합의를 맺었다. 그 계약이 사회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사회가 있어 문명이 생기고 지금 우리가 아는 세상이 생겨났지. 사회가 발달하면서 어떤 사람은 누군가를 이끄는 역할을 맡게 되었어. 그러다가 나쁜 마음을 먹고 자기를 뒤따라오는 인간들을 인간 취급하지 않기로 한 거다. 그러면 그 사람들의 모든 것을 빼앗을 수 있으니까.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분노하고 저항했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질서의 적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시체가 되었다. 그러다가 생쥐스트라는 혁명가가 그 목소리를 더 크게 외쳤지.


진짜 적은 왕이라고. 사회를 만든 계약 위에서, 인간들의 사회 위에서, 사회에서 벗어나서, 사회로부터 군림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문명의, 사회의, 인류의 적이라고.


인간이 인간으로 살아남으려면 계약의 효력 밖에 위치하고서, 인간의 권리를 억압하는 왕이라는 것들을 물리쳐야만 한다고. 군중이 모여서 왕을 물리치는 게 아니란다. 개인이야말로 왕을 적대하는 존재지. 자유로운 개인이라는 개념은 군림하는 왕과 논리적으로 양립할 수 없으니까.


그래서 왕을 죽였다. 덕분에 개인은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자유는 인류를 해방시켰다. 이건 역사적 사실이다.


오늘날 왕이 누군지는, 말할 필요도 없겠지.  스스로 망쳐놓은 세상을 책임지지 않고, 세상의 법으로부터 떨어져 저 하늘 위에 떠있는 크레이들 안에 있다.


크레이들이라는 구조물은 오히려 부차적인 문제야. 크레이들 안에서 군림하는 왕들은 정당한 처벌을 받아야한다. 평결은 이미 내려져 있지. 사형, 그 것만이 인간으로서 크레이들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존엄이다.


단두대는 죽음을 구경거리로 만들지 않고 모두에게 올바른 결과를 가져다주는 아름다운 발명품이지. 너는 사형수가 백명쯤 된다고, 너무 많다고 반쯤 살려준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목숨을 구걸하며 인간들이 짐승으로 전락하는 모습을 즐기는 거야말로 잔인한 짓이라는 건 너도 알잖아?


골라서 죽이는 건 전쟁광들이나 할 수 있는 잘난 척이야. 혁명이란 건 이익 따위가 아니라 전부 죽이려고 하는 짓이다.


나는 크레이들을 부수러 갈 생각인데, 너도 끼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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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킹이 테르미도르보다도 더한 이상주의자였다면.... 하는 생각으로 굴려본 프롬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