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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전 전에 잠을 잘 정도로 배짱이 크면 좋은 레이븐이 될 수 있다.

전생에 어렴풋이 읽은 적이 있는 구절이다.

아마 홍보용의 특전 소설이었을텐데, 자세한 기억은 나지 않는다. 기억이 나려 해도 뇌에 안개같이 깔린 옅은 졸음이 정보의 부상을 방해한다.

탑승할 때 너무 긴장해버린 탓일까.

헬기가 순항을 시작하자마자 곧바로 긴장이 풀리고 수마가 몰려왔다.

헬기의 엔진음은 일정했고, 그 소음에 맞춰 몸이 흔들릴 때마다 졸음이 깊어졌다. 그런데 잠결에도 전파를 타고 흘러 들어오는 아일린의 목소리는 유독 선명하게 들렸다.

『저기, 루카. 지금까지 트레이너는 몇 번 타봤어?』

아니, 선명하다기보단 침잠해가는 의식의 흐름에 잘 스며든다고 해야 할까. 목소리 자체는 속삭이듯이 얘기하는 것이 잠을 더 밀려들어오게 하는 목소리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조금 늘어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처음 한번 이후로 없었을 걸? 어차피 우리 거의 같이 다니니까 알잖아."

『역시 그렇지? 에헤헤.... 혹시 나만 모르는 새에 다들 한 두번씩 더 탄 건 아닌가 싶어서.』

그 순간 떠오르는 건 화장실에서의 장의 모습이다. 변기에 한바탕 게워내던 창백하고 초췌한 몰골. 나는 장의 그 처참한 모습을 떠올리며 떨떠름하게 답했다.

"한 두번씩은 무슨. 그렇게 끔찍한 걸 한번 더 탔다면 지금 졸고 있을 컨디션이 아니겠지."

아일린이 그 장면이 생각났을 리는 없지만, 적어도 본인이 게워낸 기억이 있어 다소 웃음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고보니, 장은 왜 그렇게 많이 탄걸까? 그 사람만 유난히 불려나가던데.』

"글쎄다...."

나는 곧바로 답변하지 않고 잠시 고민했다.

불현듯 한 생각이 든 것이다.「과연 내가 알고 있는게 맞을까」라는 생각이 말이다.

다행히 그간은 대부분이 맞아 떨어지긴 했지만 내가 알고 있는 링크스 양성 기관에 대한 지식은 오로지 미도 아우리엘의 리포트에서 비롯된 것. 회사부터가 오메르와 인테리올로 다른 마당에 이번에도 같을 수 있을까?

조금 의문이었다. 링크스 리포트 대로라면 AMS 적성이 높은 듯한 사람이 자주 타게 된다지만, 이번에 있어선 가설을 벗어나지 못한다. 어떻게 대답하면 좋을까.

그렇게 말끝을 하염없이 늘려대던 중.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의 AMS 적성이 가장 높았던 게 아니겠사와요?』
『에.』

체칠리아였다.

『시설의 넥스트 트레이너는 1기 밖에 없고, 커리큘럼 상 AMS 적성이 높은 사람부터 집중적으로 시키는 경향이 있으니 말이어요.』
『우와아아앗! 언니?! 프라이빗 채널로 해뒀을텐데!』

동시에 아일린의 비명이 들렸다. 나도 당연히 프라이빗 채널로 통신을 걸어온 줄 알았다.

그도 그럴 것이 꽤나 사적인 내용이었으니까. 하지만 아니었다. 내 콕핏 모니터의 한 구석에선 마치 우릴 비웃듯「OPEN 1-1」의 텍스트가 명멸하고 있었다.

짧은 한숨.

"...언제 그렇게 친해진거야?"

평소에 자주 붙어다니는 건 봤지만 저렇게까지 친밀도가 쌓인 줄은 몰랐는데, 아무튼. 그 한숨을 계기로 여기저기서 봇물 터지듯이 말문이 쏟아져 나왔다.

들을 법한 건 헬기 로터 소리 뿐이라 지루하던 와중 재밌는 구경이다 싶어 이놈이고 저놈이고 다물고 있었겠지.

『푸흡... 반응이 좀 격한 거 아냐?』
『으하하하! 꼬리 잡힌 고양이가 펄쩍 뛰어오르는 것 같구만!』
『큼. 너무 놀리진 말게나, 아이의 실수잖나.』

채널이 잠시간 왁자지껄해졌고, 소란을 일으켰지만 소란을 잠재우기도 한 건 체칠리아의 헛기침이었다.

『큼큼, 아무튼. 아스피나 기관이 정립한 이래의 링크스 커리큘럼은 그렇답니다. 높은 AMS 적성을 가진 자 위주로 교육하게 되어있지요.

아나톨리아 연구소에서 제안한 보다 보편적인 방식도 예전에는 있었던 것 같지만 경영난에 빠진 지금에 와서는 과거의 퇴물이랍니다.』

그러자 한창 낄낄대던 장이 너스레를 떨기 시작했다.

『그런 이유랍신다. 궁금증 해결은 됐냐 꼬맹이? 이야~ 너무 뛰어나도 피곤하단 말이야.

애초에 이놈의 시설은 왜 트레이너가 1대만 있는거냐고 아가씨. 두 대나 세 대였으면 같이 죽어나갈 놈이라도 있을테니 혼자 억울해할 필요는 없었을 거 아냐?』

조금 허세를 부리는 것 같기도 했다. 힘 없는 목소리에 억지로 힘을 쥐어짜넣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장의 너스레에 체칠리아는 능글맞게 대답했다.

『후후, 당연히 예산 문제 아니겠나요?』

"그럼 그걸 해결해달라고 카스틸리오네 영애님. 장부 상의 예산 조작이야 특기잖아?"

『훗, 긍정적으로 검토 후 가문 내 의사결정 과정을 거쳐 답변드리도록 하죠.』

"최소한 이사회에서 해라."

채널 곳곳에서 다시 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이번에 터져나온 웃음보를 틀어막고 꿰맨 건 고귀하신 카스틸리오네 영애님이 아니었다.

『예에, 즐거우신 대화 중에 죄송합니다만. 슬슬 거기까지 해두시죠. 머지않아 도착입니다. 강하 준비를.』

카도르 씨였다. 한창 재밌었는데, 참으로 풍류가 없는 남자였다.




헬기의 고도가 점차 낮아지며 황폐화된 지상의 모습이 모니터에 비쳤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 밑에서 맨몸으로 직접 구르다가 온 마당이니 이제 와서 큰 감흥은 들지 않지만 방금 전의 설국과 비교하자니 아무래도 기묘하긴 했다.

같은 행성인걸까. 하고.

일정 고도에 도달한 헬기는 그대로 공중에서 정지. 호버링하기 시작했고, 카도르 씨의 통신이 귓가를 때렸다.

『01부터 순차적으로 강하합니다. 강하 후에는 체크 포인트를 표시할테니 그 쪽으로 이동해주시면 되겠습니다.』

"예이, 예이."

철커덕, 노멀의 고정이 풀리는건지 머리 위에서 기계음이 들렸고 나는 조금 빈정대며 강하를 기다렸다.

시설 내의 시뮬레이터로는 몇번 해봤지만 실제로는 처음이다. 아무리 코어가 진동과 충격과 중력 가속도를 경감해준다 해도 두려움이 있을 수 밖에 없다.

그걸 감추기 위한 빈정거림이었다.

덜커덩! 얼마 안되어 내 차례가 왔고, 순간적으로 느껴진 것은 강렬한 부유감이었다.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롤러코스터를 탔을 때 느껴지는 일시적인 무중력 같은 감각. 오금이 저리는 감각. 고등학교 수학여행에서 뭔지 잘 모르고 T 익■프레스를 탔을 때의 공포가 엄습해온다.

이를 꽉 깨문다. 눈은 모니터을 응시한다. 내 몸이 아래로 끌려가듯 느껴진다. 심장 박동이 커지고, 중력의 힘이 나와 강철의 거체를 아래로 끌어당긴다.

그리고, 쿠웅! 굉음이 울리며 회색 흙먼지가 흩날렸다.

맨 몸이었다면 그대로 즉사해 토마토 호떡이 되었을 높이였지만 다행히 대부분의 충격은 코어까지 닿지 못해 조금의 진동만이 닿았다.

"씨이..."

살짝 지릴 뻔 했다. 시뮬레이터 때의 무모한 기동 따윌 실전에서 했다간 사방팔방에 토사물을 흩뿌렸겠는데.

그랬다면 재앙이 따로 없었겠지. 이마의 식은땀을 소매로 닦고 메인 모니터에 표시된 체크포인트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혹시나 해서 뒤를 돌아보니 아일린도 나와 대체로 비슷한 상황인지 착지 후 한동안 굳어있다가 시선이 맞닿은 뒤에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간 걸어 도착한 체크포인트는 간이 무장 컨테이너가 신전의 기둥처럼 늘어선 곳이었다.

『각 컨테이너마다 자사 표준 무장 일체가 적재되어 있습니다. 원하는 무장 구성을 취해주십시오.』

8명 전원이 집합하자 미리 대본이라도 써둔 - 진짜 써뒀을 가능성도 있다 - 것처럼 카도르 씨가 대사를 읊었다.

시뮬레이터도 초창기에는 레이저 라이플과 실드 구성만으로 시험을 치렀어야 했지만 뒤로 갈 수록 무장의 자유도가 높아졌다.

링크스도 링크스 나름대로의 선호하는 무장이나 적성이 있을테니 말이다. 이번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그리고 지금의 내가 가장 선호하는 건 이거다.

"1번, 6번, 세트."

간이 무장 컨테이너에 진입하자 행거가 내려와 괴퍼르트를 잠시 고정시켰고, 음성으로 명령을 내리자 컨테이너 내부가 철컥대며 움직이더니 양 완부에 무장을 장착했다.

레이저 라이플 2정. 실드는 쓰지 않는다. 어차피 프라이멀 아머도 없는 노멀의 방어력이란 좋은 편이 아니다. 실드를 쓴다고 해도 중량 대비 가성비는 좋지 않다.

차라리 무게를 줄이고, 공격 수단을 확충한 뒤. 맞지 않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 낫다. 어딘가의 가면남이 말했듯이 맞지 않으면 별 것도 아니니까.

"마지막으로 확인할 건..."

이 기체에 설치된 훈련 프로그램의 정상 작동 여부.

EN 무장의 경우 어딜 쏴도 콕핏을 관통할 수 없도록 출력을 20% 정도로 억제하고, AS 미사일이나 그레네이드 같은 경우는 모의 탄두를 장착했는지 확인하는 용도다.

거기에 만에 하나 있을 불상사 방지를 위해 아예 콕핏부의 조준을 락하는 기능이 들어있다.

체칠리아에게 얼핏 듣기로는 Sir 마우로스크의 기수에서 대참사가 난 이후 도입된 프로그램이라던데, 대체 뭐가 일어났던건지.

ㅡ삐빅.

비프음이 울린다. 자가진단 결과 올 그린. 고정을 해제. 간이 무장 컨테이너를 나선다.

그리고 컨테이너를 나서 갱신된 집결 지점에 도착하자마자 모니터에 비친 것은, 누군가가 콕핏을 걷어차여 뒤로 처날려지는 장면이었다.

반사적으로 IFF를 조회해보니 걷어찬 건 레이븐. 처날려진 건 클라우디아 씨다.

어떻게 조준이 불가능한 콕핏을 노렸는지는 모르겠으나 레이븐은 걷어차여진 충격으로 공중에서 자세 제어를 시도하며 허우적대는 클라우디아 씨를 가만 놔줄 생각이 없었다.

곧바로 추격타로 날려진 레이저가 클라우디아 기의 사지를 끊어놓았다. 체감 시간으로는 5초도 안되는 짧은 시간. 모니터에 표기된 실제 시간으로는 고작 15초 밖에 걸리지 않은 일이었다.

나는 침음을 흘리며 체칠리아에게 통신을 걸었다.

"...실기로 격투전 걸지 말라고 경고 들은 건 우리였던 거 같은데."

『허점을 제대로 노렸사와요.』

"허점?"

『...수업 때 졸았나요? 훈련 프로그램은 기본적으로 RWR이 록온 신호를 감지하는 것에 반응하는 것이랍니다.』

"그렇다는 건..."

『예에, 저 남자는 록온 신호를 발신하지 않는 방법으로 콕핏을 노린 것이겠죠.』

록온 신호를 발신하지 않는 방법이라면 하나 밖에 없다.

FCS를 쓰지 않고 수동으로 부스트 킥을 맞췄다는 거겠지. 지난번 시뮬레이터 때의 정확무비한 수동 사격도 생각해보면 무시무시한 남자다.

"...그 결과가 저 부스트 킥이라면 소름이 다 돋네."

한편, 클라우디아는 충격 탓에 안경에 금이 가고 입가에 토사물이 조금 묻은 채 연기가 피어오르는 괴퍼르트에서 간신히 몸을 빼내 빠져나왔다.

실전이었다면 저러던 도중 밟혀 죽었을테지. 거기에 넥스트 간의 전투 에리어가 이번처럼 코지마 오염 농도가 낮진 않을 것이고.

게임이었을 적에는 격투 무장을 맞아도 잠시 스태거로 뻗어있었을 뿐, 곧바로 재기동이 가능했지만 현실이 된 지금은 다르다. 기체는 곧장 재기동할 수 있어도 사람의 재기동은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아야야... 속도 안 좋고 머리도 띵하고오. 무장 구성은 적절했는데, 바로 당할 줄이야. 엿같네에...』

집결 지점의 전투 구역에서 빠져나온 클라우디아는 입가를 소매로 슥 닦으며 중얼거렸다.

바깥과 콕핏은 장갑판으로 단절되어 있기도 하거니와 강한 바람 부는 소리와 AC의 제너레이터 돌아가는 소리 때문에 보통은 들리지 않았을테지만 기체의 AI가 인간의 목소리만을 필터링해 헬멧에 전달한 것이었다.

얼마 가지 않아 훈련장 소속의 MT가 파괴된 클라우디아기를 견인해 신속하게 이탈했고, 메인 모니터에 관제실로부터 보내진 텍스트가 명멸했다.

「NEXT TEST : 03 - 07」

아무래도 다음 라운드는 나와 체칠리아인 모양이다.






아슬아슬하게 한 달 직전에 낼 수 있어서 다행이다

늦은 사유는

내가 기업이라 그렇다

직장 다니면서 쓸 시간이 점차 줄어들다보니 이놈이고 저놈이고 날 화나게 해

맛쨩의 대참사는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