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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릿 오브 더 마더 윌이 격파된 뒤. 얼마 되지 않아 알제브라의 AF인 카브라칸마저 격파되었다. 첫번째는 운이 좋았다. 상대가 10년도 더 된 구형이었다라는 핑계라도 있었지만. 카브라칸의 격파는 의미가 달랐다.

넥스트라곤 기껏해야 원더풀 보디 - 그의 장례식에는 나도 참석했었다 - 밖에 잡아본 적이 없는 신인 링크스가 갑자기 연속으로 자이언트 킬링을 성공해낸 것이었다. 즉, 초신성 - 이레귤러 - 의 탄생이었다.

하여튼, 하나는 이쪽 의뢰였지만 AF 2기가 격파된 탓에 본사는 비상이 걸렸고. 나와 그녀가 탄 기가 베이스 01 분함대는 본래 목적지인 콜로니 산타페에서 크게 꺾어 파나마를 넘어 호주의 독립 도시 그리폰으로 향했다.

적대 기업으로부터 환태평양 경제권의 방위를 견고히 하기 위함이랬지만 저 먼 아라비아 반도에서 스크랩 비용 밖에 안 들 정도의 고물 AF 하나가 작살났다고 이럴 필요까지야 있나 싶었다. 노인들이 다 그렇긴 하다만.

그렇게 한달 간의 무의미한 주둔이 이어졌고.

나와 그녀는 노인들의 발작이 잦아들 무렵. 즉, 지난 주에 이르러서야 간신히 북미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래서, 크레이들 21로 올라오라고? 이제 간신히 집 왔는데? 아가씨까지 에스코트해서?"

운명에 지독한 역마살이라도 끼어버린 건지 내 다리가 쉴 틈은 주어지지 않았다.

『그래, 크레이들 21에 있는 GA 본사 중역이 너희들을 좀 뵙자신다. 방금 집 와서 기분 좆같은 건 알겠지만. 알잖냐. 노친네들 심기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허, 댁은 노친네 아냐?"

『이 새끼가, 미리 체험하게 해주랴?』

영감이 통신을 걸어온 것이었다. 그 내용은 GA 본사 중역의 디너 요청. 표면 상으로는 호주 방위의 공을 치하하기 위함이지만 도대체 무슨 꿍꿍이가 숨겨져 있으련지. 타이밍 한번 끝내주게 지랄맞았다.

"알았어. 알았어. 어차피 이후 일정 없으니까."

『젝스텍스 국제 공항행의 장갑열차와 차량을 수배해뒀으니 내일 출발해라. 아가씨 쪽에도 연락을 돌려놨으니 거기서 랑데부다.』

"라저. 잘 자고."

『여긴 아침 8시다. 바보 같은 놈이.』

"....."

그렇게 새벽 일찍부터 장갑열차에 타 콜로니 LA로부터 캐나다 퀘벡, 래브라도 반도에 위치한 젝스텍스 국제 공항까지 가는 건 반나절이나 걸렸다. 아무리 최신형 자기 부상 장갑열차라지만 항공기보단 훨씬 느렸다.

물론 가능하면 여객기를 썼겠지만. 못한 이유는 전적으로 내 신분 때문이었다. 링크스에게 있어 가장 효과적인 대처법은 넥스트에 타기 전에 공습이나 저격으로 암살하는 것. 그런데 여객기에 타면 어떻게 되겠는가.

자칫하다간 공중에서 콰쾅이다.

다행히 크레이들 21로 가는 항공편은 GA가 준비한 중역이나 링크스용 스텔스 여객기라 문제 없지만.

고로 퀘벡에 도착해 열차에서 내린 뒤로는 방탄 차량에 노멀의 호위까지 붙었고. 바다를 가로지르는 고속도로를 통해 북미 본토와 연결된 해안에서 수십 마일 떨어진 공항에 도착할 때까지 이 요란한 짓은 계속됐다.

이래서야 여기 링크스가 있다고 동네방네 떠드는 것이 아닌가 싶지만. 어쩌겠는가. 까라면 까야지.

그리하여.

젝스텍스 국제 공항의 기업인용 라운지에 도착해 소파에 늘어졌을 무렵의 나는 이미 진이 다 빠져있었다.

"....그냥 넥스트용 수송 헬기로 왔으면 수고도 덜 들고 귀찮지도 않았을텐데. FUCK. 더럽게 힘드네."

라운지 안은 창문 밖의 삭막하고 살풍경한 모습과는 정반대로 마호가니로 된 우아한 장식들과 이것저것 번쩍번쩍이고 비싸보이는 것들이 천지였지만 도저히 손을 댈 기분이 나지 않았다. 차를 무슨 3번이나 갈아타나.

마음 속으로 한창 투덜거리고 있을 때.

뒷편의 문이 열렸다.

"....좋은 아침. 아니. 딱히 좋지도, 아침도 아니지만."

"아가씨도?"

신물이 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곤, 그녀가 말을 이었다.

"하아, 크레이들 거주권을 따도 이러면 의미가 없잖아."

"별 수 없지. 링크스와 넥스트는 크레이들의 순항 고도에선 코지마 오염 때문에 쓸모가 없다고. 지상 근무의 운명인거야."

나는 그 모습에 피식 웃고는 벽의 시계를 확인했다. 영감이 전달해준 대로라면 20분 뒤 출발이다. 걸어가는 시간을 생각하면 10분 정도나 더 앉아있을 수 있겠군.

그 와중 피곤한 발걸음으로, 그녀는 자판기 - 길가의 흔한 그런 것은 절대 아닌 외장에 금 도금이 된 무언가였다 - 앞으로 걸어갔다.

라운지에 사람이 두 명 뿐인 탓에 선명히 들리는 구두 소리. 걸음걸이에 맞춰 함께 스텝을 밟는 플래티나 블론드의 머리카락.

그리고, '뭘 마실까' 하는 사소한 고민을 하는 듯. 그 발걸음이 멈춘다.

"커피는.... 비행기 안에서 잠을 못 잘테고. 아침부터 탄산은 싫은데."

"언제는 아침 아니라며? 적당히 캐모마일 같은 거라도 있으면 마셔두던가. 수면에 좋대."

"고상하시네. 그런 거도 알고. 근데, 그런게 이런 자판기에.... 있구나."

잠시 뒤, 덜컹거리는 소리가 자판기에서 울렸다. 따뜻하게 데워진 듯한 캐모마일 차 - 당연하지만, 페트병에 포장되어 있었다 - 와 함께, 그녀가 내 옆자리에 안착했다.

"어릴 적에 엄마한테 들었을 뿐이야. 허어, 자판기에 별게 다 있네."

단정한 검은 원피스에 가벼운 코트를 입고 있었고, 옅게 화장도 한 것 같은 것이 확실히 중역을 상대하기 위한 완전 무장을 한 듯 했다.

"....그런데, 당신네 VIP들은 그런 옷으로 가도 별말 안하는거야?"

무릎 사이에 캐모마일 차를 끼운 채 페트병의 뚜껑을 열며, 그녀가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뭐.... 아마도. GA의 노인들은 좋아하는 모양이니까. 항상 파일럿 슈트 입고 있는 거. 임전태세가 어쩌고."

그렇다. 지금 입고 있는 건 커버올 타입의 파일럿 슈트였다. 그 위에 엠블럼과 GA 로고. 킬카운트 등의 와펜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항공 점퍼를 걸치긴 했지만 중역을 만나는 자리에선 그닥 어울리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링크스의 존재는 그 자체로도 프로파간다인 만큼 원하는 이미지.... 아니, 사실은 그냥 귀찮아서 안 입은거지만. 넘어가자.

"또, 의외로 쾌적하다고. 안에 에어컨도 들어있어."

"하아, 기업에 단단히 뿌리박아서 좋으시겠어. 이쪽은 고용주 심기가 불편해지면 길거리에 나앉을 걸 걱정해야 하는 처지인데."

"그렇게 되면 넥스트 팔고 지상으로 내려가면 되잖아?"

3대 기업 그룹에 속한 링크스와는 다르게 뒷배가 없는 독립 용병의 일거리란 실제로 기업의 심기에 대부분이 좌우되는 편이니. 나는 그 말에 장난스레 답했지만 의외로 말 속에 뼈가 있었다.

"....." "으읍!?"

그 순간. 그녀가 마시고 있던 캐모마일 페트병이 문답무용 내 입에 쑤셔박혔고, 그녀는 뾰로통해 있는 표정 절반. 쌤통이라는 표정 절반으로 말을 이어갔다.

"지난번에 얻어마셨던 맥주 값. 이걸로 됐지? 아, 프로일라인을 팔면 된다는 헛소리까지 계산에 넣었으니까. 모자라다는 소리는 안 들을거야."

"켁. 거 성격하고는."

입에 쑤셔박힌 페트병을 돌려주자 그녀는 그게 승리의 미주라도 되는 양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원샷했고. 때마침 GA의 경호원이 문을 열고 들어와 우리를 비행기까지 인도했다.

가던 도중의 통로에서 아가씨가 갑자기 홍조를 띄고 쓰레기통에 페트병을 던져버린 것에 대해선 영문을 모르겠지만.




스텔스 여객기는 우리들이 탑승하자 12년 전의 링크스 전쟁 때 아나톨리아의 용병이 이크발 - 현 알제브라 - 의 버라트 부대와 당시 넘버 2의 오리지널 링크스. 사다나를 격파했다는 활주로를 타고 금세 이륙했다.

오염 섞인 것이 보이는 회색의 하늘과 납색의 바다. 삭막한 캐나다의 대지가 창문에 비쳤고, 상승을 거듭해 구름층 너머로 나아가자. 보이는 건 푸른 하늘이었다.

기업이 지상을 버리고 향한 곳.

인류의 새로운 터전.

그리고 서서히 괴사해나갈 뿐인 호화로운 감옥.

크레이들 21이 아직 이쪽 공역에 진입하지 않아 랑데부는 조금 시간이 걸릴 듯 하다고 기내 방송이 울렸고. 나는 퍼스트 클래스의 리클라이닝 시트에 앉은 채 하늘을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

"하늘에, 새가 없어."

언제나는 아니어도 가끔씩은 보는 풍경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 말을 하곤 했다. 새가 보이지 않는다고.

"새?"

옆좌석에 있던 그녀가 물었다. 해발 고도 7000m에 왜 새가 있느냐인지. 아니면 지구 온난화의 가속으로 인한 금성화와 코지마 오염의 확산으로 이미 절멸한 것들을 이제와서 찾냐인지는 모르겠지만.

"독수리나 기러기, 알바트로스 같은 것들은 해발 고도 8000m. 크레이들보다도 높은 곳에서도 난다고 들어서. 혹시 있을까 했지."

"아무리 높이 나는 새라도, 땅에 발을 딛지 않고서는 살 수 없을테니까."

"하긴 땅이 오염되어서야."

착륙하자마자 죽을테지. 나는 수긍했고, 그 때. 상당히 떨어진 거리임이 분명한데도 창공을 대양과 같이 항해하는 방주의 윤곽들이 편대를 이룬 것이 보였다.

크레이들이었다.

지상의 사람들은 보통 1천만 정도의 인구를 태운 한 대의 기체를 크레이들로 알지만, 사실은 조금 다르다. 15기의 편대를 묶어 '크레이들' 이 되고.

그 15기를 각각 '케이브' 라 칭하며, 케이브에 탑재된 34개의 거주구가 '섹션' 으로 총합 510개의 섹션이 곧 하나의 크레이들인 것이다.

그리하여 오늘의 목적지는 정확히는 크레이들 21의 케이브 01이다.

크레이들의 편대가 눈에 들어오자마자 선체 후방으로 진입해 착륙할테니 엔진이 일으키는 난기류에 주의하라는 기내 방송이 한번 더 들렸고. 스텔스 여객기는 그대로 빙 선회해 크레이들에 착륙했다.

착륙한 뒤로는 젝스텍스 국제 공항 때와 같은 호위가 이어졌고. 거주 섹션까지 따라오려 하자 우리는 일제히 불만을 토해내 간신히 호위를 떨쳐낼 수 있었다.

그리하여 도착한 곳은.

멋진 신세계였다.

"....신축이라 그런가 끝내주는구만."

기업 연합이 공식적으로 발표한 크레이들의 인구당 면적대로라면 도저히 이렇게 될 수 없는 쾌적하고 화려한 유리와 불빛의 번화가. 실제로는 60% 정도만 태우고 있다는 말이 과언이 아님을 느낄 수 있었다.

"하아, 집에 돌아온 기분이네. 이렇게 보기 좋은 불빛도 오랜만이야."

비행기 여행으로 지친 듯 하면서도, 그녀는 번화가의 분위기에 조금 들뜬 모양이었다.

확실히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오후가 되어 따뜻하게 내리쬐는 햇빛 아래서,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화려히 춤추는 머리카락과 원피스 자락. 그 모습은, 어딘가 로마에서 휴일을 즐겼던 다른 아가씨를 연상시켰다.

"그렇네. 보기 좋네."

여러모로 말이다.

하여튼 거주 섹션에 도착한 우리는 그대로 곧장 번화가를 가로질러 디너가 예정되어 있는 백화점으로 향했다. 섹션의 전고가 40m인데 전고 37m 짜리인데다 겉면에 화려한 홀로그램을 띈 건물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다만, 걷는 도중. 여기저기서 시선이 느껴졌다.

"....아가씨, 뭔가 사람들이 쳐다보고 있는 거 같지 않아?"

"그야 그렇겠지. 내 옆에 온 몸으로 전선에서 돌아온 지 10분도 안됐다고 소리치는 바보가 있는데. 사람들 눈에 안띄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겠어?"

"아."

그랬지. 파일럿 슈트. 그게 문제였나. 한 순간 링크스의 프로파간다적 존재성 탓인지를 생각한 내가 어리석었다. 크레이들의 인간이 컬러드 상위 랭커도 아니고 콜로니 LA에서나 알려진 토착 링크스를 알 리가 없지.

나는 입 안에 감도는 미묘한 쓴맛을 넘기고 백화점을 향해 계속 걸었다. 입구에서 맞이하겠다고 했으니 곧 컨택트할 터. 각오를 다진다.

"....?"

하지만, 어째서인지 백화점 앞에는 리무진은 커녕 경호원도 하나 보이지 않았다. '일정에 뭔가 문제가 생긴건가' 라고 생각한 순간. 타이밍 좋게 귓속의 전술 인컴에 통신이 걸려왔다. 영감이었다.

『사무라이, 도착했냐?』

"어, 지금 백화점 앞인데. 중역 노친네는 어딨어?"

『30분 전에 죽었다. 알제브라가 카브라칸 건으로 앙심을 품고 넥스트를 보내 공습했지. 뭐어, 전화위복이로군. 이왕 간 김에 쉬다 와라. 휴가 신청은 해두마.』

"....."

"무슨 일이야?"

"죽었다는데, 중역 양반."

"....뭐? 그러면 이 뒤는?"

"예상치 못한 휴가가 된거지."

"휴가라곤 해도.... 솔직히, 호텔에만 틀어박혀서 뒹굴거리고 싶은데."

"그 체크인 시간이 3시간이나 남았다고. 이왕 백화점 온 김에 구경이라도 하는 게 어때?"

그녀는 내 모습을 다시 위아래로 훑어보곤 말했다.

"하아, 어쩔 수 없네. 최소한 내일까진 같이 다녀야 할테니, 일단 당신부터 사람꼴로 만들어야겠어. 보수는.... 내 몫까지 당신이 계산하는 걸로. 어때?"

"....확실히 옷 한벌 사두긴 해야겠으니까. 라저."

돌아가는 비행기는 내일 저녁에 있다. 앞으로 하루는 더 크레이들에 체류해야 할 판인데 계속 파일럿 슈트로 있는 것도 좋지 않겠지. 적당히 한 벌 구해둬야 한다.

"그러면, 언제나처럼 내가 선행할까? 아니면...."

말끝을 흐리며, 그녀는 장난스레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이어서 말하길.

"에스코트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신사 분."

"카우보이한테 과분한 걸 맡기시는구만."

나는 그 손을 잡고 백화점으로 걸어들어갔다. 먼 기억이 겹쳐져 보였다. 여동생을 데리고 월마트에 갔을 때였나. 분명 이런 느낌이었을터다.

백화점의 안쪽은 18세기의 화려한 로코코풍 궁전을 연상케 하면서도 현대의 기술이 결합되어 하늘 위에는 하늘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나는 3번 정도 헤매인 끝에 남성복 코너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가만히 있어....! 너는 나의 링크스잖냐!"

"싫어."

"명령이다, 가만히 있어!"

"싫어....!"

30대 초반 즈음으로 보이는 흑발 벽안의 정장을 입은 미인이 양 손에 검은색의 레깅스를 들고.

소매가 기묘하게 긴 후드티에 그 아래로 가려질 정도의 핫팬츠 수준의 반바지를 입고 있는 10대 중반 즈음의 소년에게 입히려는 촌극이.

눈에 들어왔다.













시점은 이제 카브라칸마저 목줄에게 격파되어 챕터 2. 크레이들 21 방어도 끝나서 이제 복구를 끝내고 정상 영업 중이다.

디너 신청했다가 먼저 저승으로 가버린 GA 중역은 사미야 라비라비와 도 스 콤비가 죽였음. 레드럼과 스탈카 그놈들이다.

셀렌을 미친 쇼타콘으로 만들어서 내보내는 건 재밌었다. 솔직히 이번 편은 마지막 파트가 집필 동기가 됐다.

셀렌 얼굴은 근든링 팬아트 보고 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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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해체 전쟁 때 여고생이라 쳐도 포 앤서 때는 40줄 넘었을텐데 그건 그냥 인테리올의 끝내주는 노화 억제 기술을 믿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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