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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기를 머금은 바람이 머리를 헤집었다. 긴 머리칼 속에 들어온 바닷바람은 열기를 식히는 대신, 짜증을 돋구는 소금기만을 남겨놓고 사라졌다. 그래. 마치 그 남자처럼.

"망할...."

치밀어오르는 욕지기를 억지로 끊으며 나는 긴 항해로 쌓인 짜증을 억누르려 애썼다. 기분전환을 위해 기껏 갑판에 나왔으니 조금은 자연풍을 즐겨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생각했음에도, 저 멀리 상하이의 해역에서 불어오는 텁텁하고도 더운 바람은 여전히 내 짜증만을 일으켰다.

나는 즐기지 못할 것을 즐기려는 헛수고 대신, 고개를 떨궈 다른 방법을 시도했다.

소득은 그다지 없었다. 파도가 기가 베이스 두 척의 동체에 부딪혀, 무수한 물방울이 되며 비산하는 모습은 그럭저럭 볼만했지만. 그럼에도 내 의식을 완전히 돌리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때, 귓속의 전술 인컴에서 오퍼레이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어, 아가씨. 산책하는 중이야?』

답답하고 불쾌한 파일럿 슈트에서는 벗어날 수 있었지만, 전술 인컴만큼은 긴급 작전의 수행에 필수적이라는 이유로 나를 여전히 옥죄고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지금처럼 일방적으로 걸려온 오퍼레이터의 잡담을 듣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내게 대응책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

『얼레. 심기가 영 불편하시네. 역시 그 형씨가 아가씨는 내버려두고 딴 여자랑 돌아가서 그래?』

이런걸 두고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고 하던가. 내 유치한 침묵의 대가는 인정하기 싫어 조용히 파묻어놓은 진실의 폭로였다.

그 지적에 대답할 말이 없었기에 나는 또다시 귀머거리 흉내를 냈다. 오퍼레이터도 내 화를 돋구고 싶은 것은 아니었는지 그가 대답을 재촉하는 일은 없었다.

다시 찾아온 나른한 적막 속에서, 나는 고개를 돌려 조금 떨어진 채 있는-그러니까, 교대 절차가 끝나면 상하이 해역에서 나가게 될- 기가 베이스를 올려다봤다.

물론, 지겹디 지겨운 항해에 고생할 녀석에게 공감이나 연민 따위를 느낀 것은 아니었다. '대충 끝내고 빨리 집에나 보내줘라'라는, 지극히 단순한 항의를 짜증 속에 담아 시선으로 보냈을 뿐.

당연하게도 0.4km짜리 고철 덩어리가 내 시선에 뭐라 대답하는 일은 없었다. 질 수 밖에 없는 눈싸움보단 더 의미있게 시간을 쓰고 싶었기에, 나는 미적거리길 그만두고 발걸음을 돌렸다.

"더 말걸지 마. 낮잠 잘 생각이니까."

『상관은 없는데. 얼마나 잘 생각이야?』

"몰라. 기분 같아선 그리폰에 도착할 때까진 잠들어 있고 싶지만."

『알았어. 깨우지 말라 이거지?』

통풍도 시원찮은 선실의 공기는 언제나처럼 꿉꿉했다. 피부에 스며드는 습기는 금방이라도 땀으로 변해 나를 괴롭힐 것만 같았고, 피부에 달라붙는 침대 시트는 날씨를 저주하게끔 만들었다.

그 모든 고난에도, 나는 기어코 눈을 감고 배게에 얼굴을 파묻었다. 실로 필사적인 시간 때우기였다.

그리고 해가 넘어가기엔 지나치게 이른 시간에, 나는 잠에서 깼다. 물론 자의는 아니었다. 범인은 축축하게 젖어버린 티셔츠의 불쾌감도, 눈을 찌르는 햇빛도 아니었다.

유감스럽게도, 나를 깨운 것은 선내 전체에 울리는 시끄러운 경보였다. 여지없이 찾아온 기상의 두통은 머릿속에 기능 부전을 일으켰지만, 귀청을 때리는 경보가 무슨 의미인지는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일할 시간이었다.




『좋아. 최대한 간략하게, 구두로만 설명할게. VOB를 단 넥스트가 접근 중. 목표는 그 녀석의 요격이다.』

일어난 지 2분도 지나지 않아 나는 프로일라인의 콕핏 속에서 오퍼레이터의 브리핑을 듣고 있었다. 사출 캐터펄트가 지금 당장 날아가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인 탓에, 출격 전의 한 곡 같은 사치는 어림도 없었다.

평소의 바디슈트를 입기엔 젤 주입과 감압 공정까지 할 시간이 없었기에, 나는 GA 표준의 커버올 타입 파일럿 슈트를 입은 채였다.

극단적인 경량화를 위해 대G 방호 따위는 고려하지 않은 라히르 프레임의 콕핏에, 느려터진 GA의 넥스트 용의 파일럿 슈트인가.

"....죽기 딱 좋네."

『뭐라고?』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타겟은 쫓아내기만 하면 되는거지?"

『물론. 격추하면 보너스를 얹어주기야 하겠지만, 아가씨도 베스트 컨디션은 아니니까. 무리하지 말자고.』

"라저."

출격 직전. 기가 베이스 측면의 해치가 열리고, 캐터펄트의 사출부 유닛이 프로일라인의 '힐'과 연결되었다.

이번의 무장은 07-MOONLIGHT가 아니었다. 넥스트 상대로 월광을 맞출 수 있다는 자신은 내게 없었으니. 그 대신, 비교적 손에 익은 샷건이 오른손에 쥐여졌다.

제너레이터와 각 부스터에도 문제는 없었다. 정비사들을 혹사시킨 덕인지, 프로일라인은 언제나처럼 만전이었다.

역시, 문제는 나 하나밖에 없었다.

머리가 지독하게 어지러웠다. 잠이 덜 깬 머리는 좁은 콕핏에 들어왔을 때부터 다시 멍해지기 시작했고, AMS의 부하는 오퍼레이터의 짧디 짧은 브리핑도 이해에 상당한 노력을 들이게 만들었다.

조금이라도 정신을 차리기 위해 머리를 세게 흔들고, 조종간을 붙잡았다. 상태가 어떻던 내게 싸우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없었으니까.

"....이제 됐어. 출격시켜."

『그 전에.... 아가씨?』

"왜?"

『별 건 아니고. 그 슈트, 일부러 그걸로 맞춘거야?』

"뭐? 무슨 뜻-"

말을 이으려다, 무심코 가슴팍을 내려다보곤 그 말뜻을 이해했다.

투박한 갈색의 GA 표준형 링크스 슈트. 손에 잡히는 걸 적당히 골랐다고 하기엔, 좋아하는 검은색이나 선홍색 대신 굳이 그 남자와 같은....

아니. 아니다. 쓸데없는 의미부여는 필요없었다. 이건 단순히 GA의 표준에 맞춰주기 위해 고른 물건이었다. 그래. 그저 우연의 산물이다. 그러니 지금 뜨거워지는 얼굴도, 동요하는 심장도. 전부 이 옷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었다. 그러니까-

『무슨 생각을 했는진 알겠는데, 그거 아니야. 지금 느슨하게 감압됐으니까 이대로 나가면 위험할지도 모른다고.』

"아."

황급히 슈트의 매니퓰레이터를 조작해 다시 감압했다. 다시 디폴트 사양대로 전신을 강하게 조이는 슈트에, 무심코 신음을 흘렸다.

"큿...."

『불편해도 조금만 참아줘. 아가씨의 건강을 위해서니까.』

"하아, 나도 알아. 이제 됐지?"

『오케이. 거기 레일 제어권은 아가씨한테 갔으니까, 바로 나가면 돼.』

"라저. 프로일라인. 출격한다."

시위에 걸려 있던 화살처럼, 사출부 유닛이 열린 해치를 향해 쏘아졌다. 동기화된 후면의 부스터가 자동으로 추진력을 더했다.

"크읏....!"

VOB로 출격하는게 아닌가 싶은 충격이 전신을 짓눌렀다. 계기에 표시된 속도는 대단치 않았지만, 오메르의 링크스 슈트 개발 부문의 기술력을 뼈저리게 역체감한 순간이었다.

사출 컨테이너를 나오자, 전신을 짓누르던 G가 조금 덜해졌다. 여유가 생기자 시야 가득히 펼쳐진 바다와 햇빛이 망막에 새겨졌다.

그리고, 수면으로 추락하는 VOB의 잔해와 다가오는 섬광도.

"적 넥스트 포착. 정보는?"

『랭크 22, 새비지 비스트로 추정 중. 평소 무장은 건실한 타입이지만....』

"암즈 포트가 상대니, 뭘 들고왔을지는 모른다는 거지. 알았어."

나는 이를 꽉 깨물었다. OB로 기가 베이스에서 떨어져 상대를 요격하는게 최선의 판단이겠지만, 내 몸에 가해질 부담은 셈에 들어가지 않았다.

각오하고, OB를 켰다. 그리고 곧바로 후회했다.

횡경막이 쪼그라드는 기분을 느끼고, 한순간 시야가 하얗게 변했다. 급격히 좁혀지는 거리와 반비례하듯, 의식이 호흡과 함께 멀어져갔다.

거의 본능적인 판단으로 OB를 끈 순간. 시야의 가장자리에서 미사일이 언뜻 보였다.

"빌어먹을...!"

따라올 충격을 직감하고, 숨을 참으며 QB로 해상을 질주했다. 현명한 판단이었다. 프로일라인 대신 엉망이 된 내 몸에서 눈을 돌린다면.

혀에서 불길한 쇠맛이 느껴졌지만, 대처할 방법도 여유도 없었다. 반격을 위해 무장을 미사일로 바꾼 순간.

『헷, 느려터졌구만. 댄스 못 추는 여자는 입맛에 안 맞는데.』

음성 통신으로 들어온, 뭐라 평하기도 힘든 센스의 대사가 귀에 들어왔으니.

얼빠진 소리에 집중력이 흐트러진 사이에도, 시야 뒤로 돌이긴 새비지 비스트는 공격을 이어나갔다. IRS가 비명지르는 피탄 경고음에 억지로 정신을 집중했다.

『왜 그러시-』

"음성 채널 닫아. 정신 사나우니까."

『예입.』

반 무의식적으로 사선에서 벗어나며 미사일을 전부 퍼지했다. 상대의 취미가 어떤지는 아무래도 좋지만, 최악인 컨디션에 저런 헛소리까지 들어줄 여유는 없었다.

QB 없이 통상 부스트 만으로 거리를 재며 머리를 굴린다. 상대에겐 특별한 빈틈은 없지만, 그렇기에 이쪽의 장기로 승부를 걸 수 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고, 상대가 미사일의 포문을 연 순간. 미사일을 전부 퍼지하며 QB로 급가속해 안으로 파고들었다.

실로 살인적이라 할만한 G였지만, AMS를 통한 넥스트 조작에 의식의 모든 리소스를 할애한 상태에선 그럭저럭 통증을 무시할 수 있었다.

싸울 방법은 단순했다. 그저, 상대가 쓰러질 때까지 탄약을 쏟아붓는다. 피해 따위는 무시한 채.

내 생각을 눈치챈 것인지, 새비지 비스트는 거리를 벌리려 시도했다. 방아쇠를 당기기 시작한 지금은 이미 늦은 짓이었지만.

발악처럼 발사한 미사일을 돌파하고, 뚫린 PA 너머의 맨몸을 샷건으로 부순다. 응사하는 라이플은 제법 따가웠지만, 그 이상은 아니었다.

HMD에 붉게 표시된 새비지 비스트의 PA에, 상대도 불안해진 듯 움직임에서 잔실수가 보이기 시작했다. 필사적으로 발 아래를 지나치려 하나, QB로 선회하고 거리를 좁혀 다시 한발.

AP가 한계였는지 수면으로 낙하해 도망치려는 패배견을 QB로 뒤쫓는다. 묵직한 샷건도, 가벼운 머신건도. 용서없이.

새비지 비스트가 주춤한다. 이대로 끝을 낼 수 있겠다고 생각한 그 순간.

프로일라인에 빠져 있던 의식이, 느닷없는 귀의 격통에 '나'의 현실로 급부상했다.

전투 중에 내 넥스트를 등진 대가는 지독했다. AMS 덕에 무시할 수 있던 육체의 통증이 한순간에 찾아왔다.

피 섞인 기침을 뱉으면서도, 폐부는 잊고 있던 산소를 급히 독촉했다. 코에서 흐르는 뜨거운 액체는 그 요구를 반송하듯 입술 속으로 흘려내렸다.

문제의 귀는 헬멧 속에 있어 정확히 진단할 수는 없었지만, 완충부가 꽤 심하게 축축했던 탓에 대충 상태를 짐작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고막이 찢어진 모양이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찾아온 전신의 고통들과 함께, 자연스레 현기증도 내 뇌를 침범했다. 프로일라인의 조종에 빈틈이 생기자, 카니스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OB로 도망쳤다.

그 뒷모습에 의식의 유일한 지지대였던 긴장도 무너졌다. 한계에 달한 정신이 역류해 AMS와 IRS 예하 시스템에도 영향을 끼쳤는지, 메인 부스터의 ACS가 먹통이 되었다.

『아가씨?! 아가씨! 정신....』

이명 너머에서 희미하게 들이는 오퍼레이터의 목소리. 추락하는 내 시야에 금방이라도 부딪힐 듯한 바다. 급격히 터져나오는 기침과 각혈.

그 모든 것은, 지금의 내게 아무런 흥미도 없었다.

그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걱정을 한가득 머금은 그의 얼빠진 얼굴이 보일까.

무의식의 세상에 빠져있을 나를, 다른 세상에 있을 당신은 얼마나 걱정해줄까.







시점은 이제 완전히 챕터 2로. 구 차이니즈 상하이 해역 미션 자체는 챕터 1의 것이지만 분쟁 지역 같으니까 한두번 더 치고 박았다고 해도 큰 상관은 없을거다.

그리고 바이퍼의 링크스는 메리랑 리치랜드 불태우러 갔다. 목줄이 이미 챕터 1에서 불질러놓긴 했는데 GA랑 알제브라는 식량 시장에서 앙숙이니까. 뭐 그런 거다.

오메르제의 넥스트는 경량화를 위해 코지마에 의한 G 경감 기구를 간략화하고 대신 전용 슈트에 기술을 집약해 버티게 했다는 컨셉인데 이거는 그냥 소설 쓰면서 지어낸거다. 딱히 설정집에 안 나와.

늦은 이유는 내가 플삼 터뜨려먹고 에뮬 다시 깔아서 S랭작 달리느라 늦었다 미안하다.

또 이번 챕터 2는 인게임에 나왔던 미션이 꽤 많을거라고 생각한다. 오리지널 미션 같은 거 의외로 쓰기 어려워.

댓글 많이 달아주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