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말하자면, 인류세는 이미 종말의 기미를 보이고 있었다. 다만 이런 방식의 종말을 예측하는 이들은 없었다. 과거 지구세(Earth era)에는 기업의 폭주를 감당하지 못해, 치열한 경쟁 끝에 스스로 케슬러 신드롬을 일으킴과 동시에 지구 내에서는 코지마 입자 기반의 분쟁을 일으킴으로써 확장 가능성을 지연시키고 최종적으론 단기적으로 거세하였다. 이후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인류는 다시금 우주로 뻗어나가 태양계를 중심으로 한 대팽창의 시대를 맞이하였다.
이로 인해 초래된 우주세(Space era) 초기에는, 지구세 중기 이전 통치 체제를 모방한 여러 비영리 기구들이 문명 확장의 기반이 되었다. 반면, 단순 이윤만을 목적으로 한 기업들의 콜로니 통치는, 지구세 중~후기에 벌어진 코지마 입자 전쟁과 상호파괴를 통해 그 한계를 입증받으면서 더 이상 반복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인류 문명이 여러 항성계로 확장되면서, 기존 비영리 기구 중심 통치는 물류 이동에 따른 막대한 비용과 손실을 감당하기 어려워졌다. 이에 동기와 능력을 갖춘 성간기업들은 목성전쟁을 시작으로 헤카톤 행성계 전쟁, 아일랜드 3 분쟁 등 여러 전쟁과 분쟁들을 통해 기존 통치 체제를 자신들에 유리하게 재편해갔다. 그 와중, 루비콘 3의 신원 미상의 용병-해킹운동 집단 ‘브랜치Branch’가 행성 봉쇄 기구(Planetary Closure Administration, PCA)의 경계를 뚫고 자유 네트워크에 무차별적으로 루비콘 3 지층 내부 지질보고서를 전송하자, 코랄의 존재가 공식 확인되며 루비콘 3의 코랄 전쟁이 시작되었다.
코랄은 획기적인 연료이자 특이한 전자학적 성질, 그리고 유기물과의 궁합성 덕분에 사이버웨어 개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수요가 높아 기업들이 이를 노렸다. 루비콘 3의 봉쇄를 책임지던 PCA, 인근 행성계의 양대 기업으로 떠오른 발람 인더스트리, 아르카부스 코퍼레이션, 그리고 루비콘 3의 토착 군사 집단 루비콘 해방전선(Rubicon Liberation Front, RLF) 간의 코랄 전쟁은 발람과 아르카부스의 직접 군사 개입으로 더욱 격화되었고, 결국 대부분의 세력들은 주력 전력들을 상실함으로 큰 이득 없이 공멸할 것으로 예측되었다.
그렇지만 코랄 전쟁 막바지, 아르카부스가 정비·재가동한 바스큘러 플랜트로 인해 코랄이 대기권 밖 무중력권으로 진출하였다. 중력 하에서는 형성·확장·붕괴를 반복하던 코랄 군집체가 무중력 상태에서 무제한 확장하였고, 물리학적으로 불안정한 특이점에 이르러 자체적인 원심력을 견디지 못하고 붕괴하여 ‘코랄 릴리즈’ 사태를 초래하였다.
코랄 릴리즈 발생 후, 전우주로 퍼진 코랄은 여러 항성계로 확산되며 AC와 MT 등 ACS 기반의 전산장치가 내장된 대부분의 군사·공업용 장치에 부착되었다. 이미 아이비스 불 이전에 RRI가 개발한 코랄 응용 기술과 강화인간 기술들은 상용화되어 사용 중인 AC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으며, 이는 AC 개발의 기본 전제가 되었다.
ACS 시스템이라 불리는 작동 체계는 RRI에 의해 선도되었으며, 강화인간과 코랄 응용 기술을 전제로 삼았다. 코랄 전쟁 당시까지 이 체계는 개선되지 않아 코랄과 인간 육체의 입력 신호를 동일하게 인식하였다. 기술 발전으로 강화인간은 코랄의 구속에서 벗어났으나, AC와 MT는 그러지 못했다.
코랄 릴리즈로 전우주에 퍼진 코랄은, 자율적으로 AC와 MT에 신호를 전송할 수 있는 코랄 지성체를 형성하였다. 코랄 릴리즈를 통하여 우주적으로 퍼져나가게 된 코랄 지성체들 대두분은 ACS 시스템을 조종할 수 있는 야생동물 수준에 불과했다. 2세대 지성체의 AC와 MT 운용은 초보적이어서, 기존 기업체 산하 AC 부대와 독립 용병들이 쉽게 진압할 수 있었다. 초기에는 큰 이슈였으나 이후 일상이 되어갔다.
문제는 그 이후부터였다. 코랄 릴리즈를 일으킨 강화인간의 세대는 4세대였다. 유기도체 기술력이 부족했던 시대의 구세대 강화인간들은 코랄을 기반으로 제작되었다. 이들은 감정 능력의 결함, 일상 생활 능력의 부재 등 여러 단점과 결함으로 인해 멸시받으며, 인간보다는 AC의 부속품 취급을 받았다. 구세대 강화인간 파일럿들은 자신이 탑승한 AC의 FCS나 제네레이터 따위와 그 가치가 크게 다르지 않았단 것이다.
이러한 탄압과 차별 속에 불만이 쌓인 구세대 강화인간들은, 코랄 지성체와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소통할 수 있었다. 코랄 지성체는 인간의 전쟁 방식을 모르지만 자신들이 간섭 가능한 ACS 장비들을 조종할 수 있었고, 구세대 강화인간들은 전쟁 방식을 가르치고, 코랄 지성체의 능력들을 원하는 대로 이용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되었다.
이러한 구세대 강화인간과 코랄 지성체로 구성된 코랄 군벌은 단언컨에 인간의 통치에서 가장 크게 벗어난 체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기업은 비윤리적이어도 최소한 영리 목적에 따라 움직이지만, 코랄 군벌은 그 목적과 방향성을 예측할 수 없다. 비영리 기구들은 사회 및 사회 단체의 영속성과 발전을 위하여 통치하였으나, 코랄 군벌은 -내향적이든 외향적이든- 근본적으로 반사회적이며 애초 사회 집단을 이룰 필요성조차 없다.
코랄 군벌의 팽창은 인류의 통치 체제가 근본적으로 흔들림을 뜻한다. 인류 외적 존재인 코랄 지성체가 뜻이 맞는 인간을 선별하고, 상호 소통 없이 강제하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기존 체제의 변화와 통치 집단의 교체는 최소한 인수합병, 경제적 종속 등 인간의 개념으로써 이해할 수 있는 인과관계 속에서 교체되었다면, 코랄 군벌이 점차 지배적인 위치로 떠오르는 현 상황은 문자 그대로 탈취, 혹은 강탈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코랄 군벌과 기존 체제 지도층 간의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태양계는 모든 행성과 콜로니를 요새화하여 이를 막으려 하고, 반코랄성 패러데이 새장으로 인류 문명을 보존하려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기존 지도층들이 코랄 군벌과의 경쟁에서 사실상 패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인류의 선조는 고향 행성 지구의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아종을 흩뿌렸으나, 우주로 진출한 종은 단 한 종, 호모 사피엔스였다. 네안데르탈인, 데니소바인, 플로레시엔시스, 루조넨시스, 나레디 등 여러 아종이 공존했으나 결국 멸종하고 오직 우리만 살아남았다.
지질학, 고고학적 증거들을 본다면 호모 사피엔스의 주도로 아종을 향해 벌어진 대규모 살육, 혹은 아종 집단을 향하여 벌어진 전쟁 따위의 흔적은 없었다. 그렇지만 우주로 나간 인류 종은 우리 뿐이다. 아마도 우리는 그 시점을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차이점은 우리가 네안데르탈인의 위치에 선 것이고, 코랄 군벌을 이룬 강화인간들은 호모 사피엔스가 된 것일 뿐.
이로써 내 공허하고 절망적인 칼럼을 마친다.
코랄 파형들이 6 본편마냥 모두 인간에게 우호적일리는 없는데다 투쟁 언급을 보면 릴리즈 이후는 완전히 혼돈스러운 세상이 초래될게 뻔해보이긴 하지 어째 전무후무한 외성기업연합의 탄생각을 볼수있을거 같은데
"우리는 기업입니다."
진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진화의 흐름에 몸을 맡길 수 없는 존재들은 결국 도태되기 마련이겠지만 현생 인류에게도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가 남아있듯이 상호보완이 가능한 지점을 찾아낸 이들이 그 흔적을 남기게 되지 않을까
긍정적으로 볼 때에는 네안데르탈인이지만 코랄이 구인류를 화석 흔적으로만 남길 생각일지도 모를 일이지
이런글 너무 좋아 - dc App
최대한 감정적으로 힘을 뺀 칼럼 느낌으로 썼음
코랄 릴리즈에 관여했다가 반대 입장으로 돌아선 돌마얀이나 오키프를 보면 확실히 코랄 릴리즈 이후의 세상은 말하는 것 만큼의 이상향과는 한참 거리가 멀 듯
돌마얀의 경우에는 코랄 릴리즈의 제안을 받은 시점에서 이미 RRI가 아이비스를 출격시켰으니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고, 오키프의 경우에는 그 특유의 말투나 그런거 보면 처음에는 ㅈ같은 세상 좀 바꿔보자하고 코랄 릴리즈에 관심을 가지고 접근했지만 결국 현 세상을 완전히 다른 형태로 뒤바꾼단 지점에서 도망친거라고 생각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