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차 여행은 즐거운 법이다.
덜컹거리는 소리와 스쳐지나가는 주변 풍경을 보는 맛이 있고.
유명 관광지에 정차했을 때는 잠깐 내려 역에서 기념품을 구입하거나 특산물로 혀를 즐겁게 할 수 있다.
하지만, 단언컨대 이번 열차 여행은 최악이다.
아무리 지상 최강의 열차를 탔다고 한들 한달 내내 내리지도 못하고 카스피해 - 이미 다 말라버렸지만 - 저지대 사막 부근을 빙빙 돌고 있는 게 무슨 여행인가.
여행을 위한 열차라기보다 차라리 열차형 이동식 감옥이라고 표현하는 게 나을 것이다.
여기, 암호화 통신 콘솔이 놓여진 연락실처럼 정신에 윤활유를 칠해주는 곳이 없다면 진작에 돌아버렸을테지.
"다음, 621번 입장해주십시오."
나는 그렇게 속으로 구시렁대며 번호표를 점퍼 주머니에 구겨넣고는 AF 그레이트 월의 생활에 있어 유일한 위안이 되는 곳. 연락실로 향했다.
모처럼 링크스니까 특혜를 받을 수 없나 생각도 해봤지만, 그런건 없었다. 말단 승조원부터 함장까지 이 연락실의 사용만큼은 선착순이었으니.
"사용 시간은 5분입니다."
"아이, 아이 서."
문을 열고 들어가니 단촐한 의자 하나와 콘솔이 놓여져 있다. 암호화 통신 콘솔이라 해도 그다지 복잡한 무언가 같은게 놓여져 있진 않고 평범한 군용 콘솔이다.
나는 키보드로 그녀의 GA 사내 인트라넷 ID - 본래 외부인에게는 인가가 나지 않지만 특례로써 허용되었다 - 를 입력하고, 헤드셋을 낀 채 연결을 기다렸다.
그리고, GA 로고가 한번 점멸하고는 지직대는 모니터에 그녀가 보였다.
『너무 늦었잖아. 약속에 늦어서 여자를 기다리게 만드는 남자는 꼴사나워.』
연락이 늦어진 탓인지, 아가씨는 조금 뾰로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사정은 이해하고 있는지 크게 불평할 생각은 없는 듯 했지만.
오늘의 그녀는, 어째선지 크레이들에 들렀을 때처럼 완전무장 상태였다.
"그건 미안하게 됐네. 경로 상에 ECM 지대가 있어서 좀 늦게 됐어. 곧 작전도 끝나니까, 뭐라도 사갖고 갈테니 그걸로 용서해줘."
나는 멋쩍은 듯 머리를 긁고는 말했다. 카스피해, 요컨대 구 러시아령인 이곳은 오메르 그룹의 일원인 알제브라와 테크노크라트 사의 땅이다.
그런 만큼 GA 최대의 AF를 경계하기 위한 ECM 지대를 이동 경로마다 깔아둔 것이다.
『하아. 선물은 됐으니까 무사히 돌아오기나 해. 요즘 위험한 작전은 없었지?』
"위험? 도리어 지루해서 죽을 마당인걸. 그것보다 재밌는 사실을 알아냈는데. 들을 생각 있어? 아가씨."
『헤에, 거기서 재미있을 이야기가 나올거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뭐- 치직, ....야?』
밖에 코지마 모래 폭풍이라도 불기 시작한건지. 통신 감도가 조금 불량해져 모니터와 헤드셋 음성이 치직거리기 시작하자 나는 그걸 조금 조정한 뒤 입을 열었다.
"아리사와의 사장님. 소문은 돌았지만 진짜 넥스트에 타고 있었더라. 무지막지한 대포를 얹고 있길래 화력 바보라고 생각했는데. 댄디한 중년 신사라고 해야 하나. 쿨한 사람이었어."
『엑, 뭐? 그 사장 얘기가 진짜였다고?! 프로파간다나 뭐 그런게 아니라?』
기겁하는 그녀의 얼굴에 나는 웃음을 흘릴 수 밖에 없었고, 항공점퍼의 앞주머니에서 그때 받은 명함 - 두 손으로 공손히 받았다 - 과 아리사와 중공의 최신 제품 카탈로그를 꺼내보였다.
"봐라, 진짜지?"
『전장 한복판에서 그런 화력 바보 넥스트로 싸우는 사장이 실존했구나.... 만화나 코미디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소재로만 보였는데. 현실은 언제나 상상 이상이네.』
"대통령이 몸소 파워드 슈트 입고 때려부수는 게임도 있잖아. 그런 사람도 있는 법이겠지. 그래서, 아가씨 쪽의 근황은 어때?"
『예의 슈퍼 루키가 도와준 덕에 그렇게 위험한 일은 없었어. 컨디션도 나쁠 때 넥스트를 상대하는 건 조금 힘들긴 했지만.』
"기가 베이스랑.... 스피릿 오브 마더윌하고 카브라칸의 그 녀석? 출발했을 때 듣기론 스티그로도 기어이 때려눕힌 모양인데, 네 아군이어서 다행이네."
스트레이드. 독립 용병으로 나이도 젊은 모양이던데 벌써 기업의 주력급 AF를 4기나 격파하고, 넥스트도 7기나 - 하나는 항복한 모양이지만 - 격파한 괴물이다.
그 대단했다던 오리지널 링크스를 혼자 17명이나 담가버린 링크스 전쟁의 영웅 정도는 아니겠지만. 무시무시하기 짝이 없는 슈퍼 루키다.
『정말로. 로디 선생님도 몇번 봐서 그런 괴물에는 좀 익숙해진 줄 알았는데.... 그보다 더하더라. 적으로 만났다면 전투 공역 밖으로 도망치는게 고작이었을 거야.』
"허, 말은 들었지만 선생님 급이야? 적으로 만났다간 손도 못 써보고 저승 가게 생겼구만."
『뭐, 거기도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까 너무 방심하지 마. 다녀오면.... 예전에 밥 사준 답례도 할 겸, 아는 가게에서 저녁이라도 사줄테니까.』
"그래, 다녀오-"
답례로 저녁인가. 콜로니 LA에서 먹었던 타코의 살사가 너무 매웠던 건지 급히 물을 찾던 게 정말. 피식 웃으면서 대답하려던 찰나.
팍. 콘솔의 모니터가 무정하게시리 꺼져버렸다.
5분이 지나버린 것이었다.
"...."
좁은 방에 정적이 흘렀다. 나는 남겨진 것이다, 이 감옥 같은 열차 안에. 그리고 한숨. 의자를 뒤로 밀고 일어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다음 사람이 기다릴테니.
그렇게 문을 열고 나온 순간.
어째서인지 흰색 정장의 사장님이 문 뒤에 있었다.
"젊구먼, 젊어."
"....아리사와 사장님?"
댄디한 미소를 지은 중년의 신사는 내 어깨를 툭툭 치고 연락실로 들어가며 귀에 속삭였다.
"젊은이들의 연담에 노인이 참견하는 건 꼴불견이지만. 내가 넥스트에 타고 있다고 말하는 건 참아주게."
"예? 예....?"
"사내 기밀이라서 말이야."
연락실 안이 도청되고 있었나. 그리고, 나는 사내 기밀이라는 단어에 완전히 얼어붙고 말았다. 사장은 괘념치 않는다는 듯 껄껄대며 문 안으로 들어갔지만.
살짝 지린 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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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이 지났다.
예정대로라면 내일 작전 종료다. 본사에서 보내온 스텔스 VTOL 수송기에 타고 금의환향. 뭘 사가야 할까.
그레이트 월 내에 배정받은 링크스용 개인실 안 - 1인실일 뿐이지 일반 승조원용 침대와 그닥 다르진 않았다. 사장님은 예외적으로 VIP실에 있는 모양이지만. - 에서 나는 태블릿으로 카탈로그를 뒤져보고 있었다.
"....뭘 좋아할지를 모르겠는데 이거."
하지만 나는 선물 센스가 괴멸적인 편이다. 지난번 병문안에서 뼈저리게 느꼈다. 그리하여, 적당히 추천 상품을 픽업해둔 뒤 태블릿을 닫았다.
벽면의 전자시계가 어느새 0900을 가리키고 있었다. AF 그레이트 월에 동승한 링크스는 2명. 2교대로 3시간마다 경비를 서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장기간 AMS를 접속 상태로 두면 사람이 맛가지 않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 대답하자면 YES다. 그래서 대부분의 시간은 절전 상태다.
AMS의 접속 감도를 한계까지 낮춰 최대한 스트레스를 경감하면서 유사시를 대비하는 것이다. 보통은 시도조차 못할 정신 나간 짓이기야 하다만.
산하 링크스가 조제남조 투성이인 우리 GA 사의 특성상 넥스트 자체도 최대한 부하를 주지 않는 쪽으로 개발되었기에 가능한 묘기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럼, 일하러 가보실까."
옷장에 넣어뒀던 파일럿 슈트를 챙겨 입고, 격납고행 직통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간다.
격납고에 도착해선 이제 일과나 다름 없이 건메탈색의 거인에 타서 AMS 접속의 격통을 느끼며 그레이트 월의 후부 해치 쪽으로 걸어나가는 것이다.
"그레이트 월. 여기는 바이퍼, 후부 해치에 배치 완료. 경비 임무에 들어간다."
『라저, 현 시간부로 경비 임무를 개시합니다.』
함교로부터의 말이 귀에 들어오자 IRS가 내 의지를 읽어 자동적으로 AMS의 접속 감도를 한계까지 내렸다.
대가로 몸이 천근만근 쇳덩이가 된 듯한 느낌이지만 반면 뇌를 무수한 바늘로 찌르는 듯한 고통은 없다. 이대로 3시간을 버티면 되는 것이다.
이럴 때 영감이라도 있었으면 덜 지루했을텐데. 안타깝게도 최근 들어서는 뭐가 그렇게 바쁜지 오퍼레이터 일보단 본사의 일에 집중하고 있다.
"쯧, 괜한 잡생각 피어오르는 건 안 좋은데."
고개를 살짝 돌려 - 넥스트의 헤드 파츠도 천천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 정신을 차린다. 그리고 시각 데이터 상에 표기되는 전술 정보를 읽기 시작했다.
그레이트 월의 현위치. 기동 계획 상의 경로. 풍향은 동북동. 풍속은 4.0. 내가 생각해도 뭘 하는건지. 지리멸렬한 시간 때우기지만 별 수 없다.
이런 거라도 하지 않으면 도저히 시간이 가지 않는다.
그렇게 2시간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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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월이 바이퍼에게, 미상의 넥스트 접근 중! 긴급 요격을 요청한다!』
지루함과 천근만근한 몸 탓에 각성 상태와 수면 상태의 선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이어나가던 내 뇌를 함교로부터의 통신이 두들겨 깨웠다.
"....미상의 넥스트? IFF 확인은."
『무응답. 선두 방향으로 상당히 고속으로 접근해오는 걸 보아 명백한 적의를 가지고 있다고 추측된다. 컨택트까지 120초.』
마지막 날에 일이 터질 줄은 몰랐는데. IRS가 자동적으로 AMS의 접속 감도를 올린다. 몸이 한결 홀가분해지는 대신, 끔찍한 격통이 뇌를 덮쳐 침음이 흘러나온다.
"흐으...."
『결코 시간이 많다고는-』
"알았어 알았어. 격파하면 될 거 아냐. 작전 행동 시의 넥스트 격파에는 보너스가 붙어있었지. 다녀온다."
절전 모드로 내내 축 처져 있던 건메탈색 거인의 몸에 생기가 돌아오고, 이내 OB를 기동.
나 - 바이퍼 - 는 후부 해치로부터 빛살같이 쏘아져 그레이트 월에 접근해오는 미상 넥스트에게 향했다.
다행히 센서의 성능은 이쪽이 위인지 들키지 않고 먼저 포착했다.
"누군지 몰라도. 지상 최강, AF 그레이트 월에 직접 공격을 걸어온 깡은 인정해주마."
줌인한 광학 센서가 보여준 건 1기의 03-AALIYAH였다. 정확히는 알리야를 베이스로 각부 파츠와 완부 파츠가 교체되어 있다.
조금 신경 쓰이는 점은 별도의 무장 없이 레이저 블레이드와 파일벙커만을 장비하고 왔다는 정도.
이러한 알리야 베이스의 커스텀 넥스트는 지난번의 스팅거나 이그니스 파투스와 같이 독립 용병 링크스들이 흔히 쓰는 스타일이다.
IRS의 데이터베이스 대조군 상에는 일치하는 대상이 없는 기체라고 나오지만 필시 독립 용병일 터.
일방적으로 두들겨 팰 수 있는 거리.
봐주지는 않겠다. 뇌 내의 트리거를 당긴다.
동시에 장거리 공격에 특화된 BFF제 분열 미사일과 산포 미사일이 대량 사출되어 길쭉한 뱀이 먹이를 휘감아 쥐어짜는 듯한 궤적을 그렸고.
이내 무수한 폭발광이 일며 놈의 신호가 소실되었다.
이것이 2기의 넥스트와 AF가 내뿜는 코지마 입자에 의한 신호 소실인지. 정말로 격파당해 신호가 끊긴 건지는 아직 알 수 없었지만 나는 승리를 확정지었다.
상식적으로 플레어도 탑재하지 않고, 대응할 원거리 화기도 탑재하지 않은 등신 같은 넥스트가 그 미사일 집중포화에서 살아돌아올 리가 없지 않은가.
"그레이트 월, 미상 넥스트의 격파를 확인. 이제부터 귀환한-"
『격파!? 그리고 미상 넥스트를 정정. 이레귤러 넥스트, 스트레이-』
하지만.
놈은 상식 밖의 존재였다.
『적 넥스트 신호 회복! 격파되지 않았습니다!』
"....?!"
그레이트 월의 관제관이 비명 같은 소릴 내지른다. 그걸 맞고도 살아남았다고, 어디냐. 어디에 있는거냐.
다급한 마음을 읽은 IRS가 즉각 반응해 바이퍼의 센서가 광범위한 영역을 훓고. 간신히 시야에 들어온 것은 폭발이 걷히고 멀쩡한 채로 나타난 스트레이드였다.
생채기 하나 나지 않은 채 유유히 부유하고 있는 놈은 보란듯이 레이저 블레이드를 겨누었고.
섬광과 함께 순간 시야가 암전되었다.
인지할 수 없었다.
뭘 당한거지.
선물을 아직 못 골랐는데.
그게, 나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목줄의 어셈블리, 보통 못 다룰 어셈이지만 목줄이니까 어떻게든 조종하겠지라는 심정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뒤진 거 같아도 제목처럼 아직 뒤질 때는 아니다.
작품이 조기 완결될 수는 없으니 로켓단처럼 명줄 질기게 살아남는다.
바이퍼가 격파당한 뒤로는 우리가 아는 인게임 미션대로 라이덴이 격파되고 그레이트 월은 와장창당했고.
다음은 다리 4개 달린 아줌마가 나온다.
주인공 죽은거야?
제목대로 아직 죽을 시간은 아니라 죽진 않음....
언젠가 죽겠군 ㅋㅋ
어이 621이랑 슈트 입은 대통령은 너무 대놓고인거 아니냐고 ㅋㅋㅋ 두번 푸흡했다 ㅋㅋ
라이덴 아재는 죽음? 여기선 막 탈출 장치도 있고 원작보단 생존률 높아보이던데
죽을 놈은 죽어
아... 가셨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