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만큼은…”
안 된다고.
레이븐은 그 말 까지는 할 수 없었다. 그야-
“당장 의약품 찾아, 빨리!!!”
“여기! 여기에 사람 더 보내!! 다 무너져서 저 밑에 사람들이 깔렸다고!!!”
“중장비 없어?!! 중장비 없냐고!!”
“그 폭격인지 뭔지 때문에 중장비의 9할이 날아갔어!!!”
“죽고싶지 않아!!! 죽고싶지 않다고!!!”
“전기가 아직 살아있어! 그런데 지금 가스관들도 살아있다고!! 당장 가스부터 잠궈!!!”
“일단 전기 내려!!! 안 되겠으면 물리적으로 아예 끊어버려!!!”
“불, 불! 발전기에 불!!!”
“미쳤어?! 그러다가 스파크 튀면 폭발한다고!!”
“MT들은 당장 무기는 내려두고 잔해들부터 치워! 사람부터 구해!”
“AC는?! 가용 할 AC는 없어?!”
“지금 자리 깔아놓은 슈나이더 녀석들도 피해가 막심해! 인명 피해는 없는데 다른 피해가 커!!!”
“다리! 내 다리!!! 내 다리에 감각이 없다고!!!”
“안 돼, 아냐, 안 된다고, 형! 정신 차려!!! 형!!!!”
“사람 구하는걸 먼저 해!!!”
“사람을 구하려면 장비가 필요한데 장비가 없다고!!!”
혼돈의 집성체, 아비규환 그 자체, 땅이 뒤집혀 나타난 현세의 지옥. 그 위에서 신음하고 오열하는 피해자들의 절망이 울려퍼지고 있었으니까.
오버드 레일 캐논의 마지막 여력은 엘카노 파운드리 부지와 본사 건물을 포함해 6할에 달할 정도의 대규모 피해를 내버렸다. 본사는 별관이 아예 소멸했고, 절벽과 땅을 깎아 만들어 노출시킨 공장의 설비들은 거대한 섬광이 맞부딪혀 생긴 진동에 기암괴석이 무너지며 쇄도한 암석에 깔려 완전 파손. 물류 창고들은 육안상으로는 절반이 붕괴됐으며, 실질적 피해는 절반을 상회하고도 남을 것이었다.
그러나, 레이븐의 심상을 붕괴시키고도 남을 진정한 피해는.
“격납고 화재도 진화시켜!!!”
“수도관이 파손됐는데 어떤 수로?!!”
“어떻게든 해!!! 안 그랬다간 전부 불에 타서 없어지거나 추가로 폭발할 수 있어!”
AC와 MT를 보관 및 관리와 조립을 담당하는 격납고가 완전히 무너져내려 화마에 휩싸여 있었다는 점.
그 곳에는 레이븐의 AC, 로더 4가 격납되어 있었다. 일전의 엥게브레트 갱도 사건 이후 그가 뇌 심부 코랄 디바이스 긴급 적출을 받았을 때 엘카노 파운드리의 시설에서 했었으니까.
그런데, 지금 그 AC가, 자신의 소중한 수족과 같은 존재가 저 잔해 속에 파묻혀 있다.
그리고, 저 격납고에는 로더 4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월터…’
핸들러 월터, 자신의 옛 주인이자 상관이었던 남자, 그리고 그가 마지막으로 이 세상에 발을 디딜 때 사용했던 강철의 육신. 기술연구소의 유산 중 하나인 AC.
IB-C03: HAL 826.
레이븐에게 있어서는 보는 것 만으로도 심장을 쥐어짜는 것 같은 심적 고통을 가하게 만드는 그 AC 역시, 저 격납고 안에 있었다.
옛 주인 되는 이가 맡긴 것, 그리고 옛 주인 되는 이가 남긴 것.
그 모든 것이 저 아래 있었다고. 그러니 지금 당장 저 곳으로 달려가라고 그의 본능이 외쳤으나.
“여기 사람 더 붙어!!! 안 그러면 잔해가 밀려서 여기 사람 죽는다!!!”
그의 몸은 격납고 방향이 아니라 그 옆인 창고로 향해 달려가, 절박한 절규에 가까운 외침을 내지르고 있는 인부들이 붙잡은 채로 어떻게든 밀려나지 않으려 애쓰는 잔해에 붙어, 있는 힘껏 잔해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겨우 한 명에 불과한 힘이지만 그 힘이 정말 간절한 순간이었기에 기적적으로 잔해를 멈춰세워 그 아래에 허리가 깔려 있던 사람을 구할 수 있었다.
전혀 예상 못한 도움을 다른 사람도 아닌 그 유명한 독립 용병, 아니, 루비콘의 해방자에게서 받을 줄 몰랐던 인부들은 그를 경외감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보았으나.
[“모든 루비코니언들이여, 거짓된 해방, 진실되지 않은 해방에 지쳤으리라 사료되기에 이 중요한 말을 잘 듣기를 바란다. 이것은 권유이자 충고가 아니라 권고사항이니-”]
이윽고 들려오는 낯선 목소리에 긴장한 채로, 이 재난 속에서 휘말리지 않았기에 꼿꼿하게 세워진 송신탑에 달린 스피커로 시선을 향했다.
그리고, 레이븐에게 있어서는 듣기 싫은, 그리고 배알이 뒤틀려 속에서 핏물이 솟구칠 것 같은 말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강화 인간 C4-621, 이름 하나 없이 식별명에 불과한, 사람조차 되지 못한 불쾌한 존재! 이 존재가 주인이라며 섬긴 인간같지 않은 자에겐 우리 루비코니언의 피와 살을 불사르다 못해 뼈까지 갈아 분쇄해버릴 악의로 가득 찬 그릇된 대의가 있었다!”]
인간같지 않은 자? 웃기지 마, 내가 알던 그 남자는 인간적인 존재였어, 그 남자의 대의가 그릇되었다고? 대체 무엇을, 그 남자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기에, 그 남자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는 주제에 그 사람의 대의를 평가하는거지?
[“오버시어, 그들은 코랄을 위험한 물질로 규정하여, 모든 코랄을, 이 루비콘 항성계에 존재하는 모든 코랄을 전부 불사르며 그 기록조차 우리들의 목숨과 함께 태워버리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그 목적은 결국 우주 전체의 안위를, 그 우주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안위를 위한다는 대의가 있었어! 그 대의가 옳다고는 인정하진 않는다. 그러나 오버시어가 의도한 바를, 그들이 경험한 것을, 그들의 생각은 이해해!
이해할 뿐, 동조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나는 내 목줄을 스스로 끊고, 내가 쥔 총칼을 그들에게 겨누었기에.
나한테는 우주 전체의, 얼굴도 목소리도 모르는 다른 사람들의 목숨보다는 내가 직접 지켜보고, 마주하고, 소통했던 사람들의 목숨이 더 중요했어! 그들의 계획, 그 계획의 중추에 내가 있었고, 진행시켰으나, 결국 그들의 계획은 내가 막아세웠어, 오버시어의, 그들의, 그 남자의 사냥개였던 내가!
“헛소리... 하지 마…”
뿌드득-
레이븐은 자신에게서 한 발 정도 떨어져있는 사람들이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이를 갈며 중얼거렸다. 짓씹은 입술에선 피가 흘러나오고, 목울대가 떨리며, 주먹 쥔 손의 손톱이 파고들어 손에 피가 고이게 만들 정도로, 저 목소리는 그에게 있어서는 망언만을 내뱉었고, 그의 역린을 건드렸다.
그토록 지켜내고자 했던 루비코니언 중에서, 그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배척하는 존재가 있는 것은 당연했기에 배신감조차 느끼지 않았다. 애초에 배신감을 느끼려거든 상대를 향해 기대를 해야 했지만, 레이븐은 그런 기대 따위는 전혀 하지 않았으니까.
“MT들이다, 이 쪽으로 오고 있어!”
“저건.... 잠깐, 저건 아군이 아닌 것 같아, 우리를 도우러 오는 게 아닌 것 같다고!”
그런 기대조차 하지 않은 덕분에, 레이븐은 적으로 규정해야 할 대상과 아군으로 규정해야 할 대상을 쉬이 판별할 수 있었기에 가라앉아 빛을 상실한 눈빛으로 이 곳을 향해 몰려드는 MT들과, 그 선두에 있는 차량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하얀 색으로 도장이 된 MT의 코어, 그리고 차량.
‘적’
저건 적이다.
그러나 이 참사의 현장은 군사 시설이 아니다. 변변찮은 대장갑 무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존재하긴 하지만, 저 불타오르는 잔해 속에 처박혀 있을 뿐. 거기에 적으로 규정하기로 결정한 저 병력들이 여기 사람들에게 우호적이겠느냐 한다면 그건 절대 아니다.
[“엘카노 파운드리의 노동자들은 전부 항복하라! 미들 플랫웰을 향해 반기를 들어라!”]
보라, 확성기로 저런 소리를 하고 있는데 어찌 적이 아니겠는가.
그렇기에 레이븐은 자신에게 AC만 있었더라면 저것들을 치워버리기 위해 누가 제지한다 한들 무시하고 달려나갔을것이 분명했다. 그러지 못하는 것은 당연히 AC가 없기에 그런 것이고.
“젠장, 당장 치울 수 있을 만큼 잔해를 치워! 루비콘의 해방자에게 AC를 내줘야 해!!!”
“수숙을 배신하라고?! 그 분 덕분에 우리 회사가 컸는데 무슨 소리야!!!”
불안한 정적을 깨트린 외침은, 당연히 엘카노의 사람들의 외침이었다.
저들은, 반란 세력은 나름 머리를 썼다.
쿠웅-
저 강철로 이루어진 질량들을 맨몸으로 맞아들여야 하기 직전, 전신이 긁혀서 도색을 하다 만 꼴이 되어버린 AC가 저들을 막아세우듯, 그리고 자기 스스로를 지킬 무기조차 없는 사람들의 방패막이가 되기를 자처하듯 나타났고.
[“신의 없는 자들이여, 스스로의 욕망에 눈이 먼 자들이여.”]
그 AC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레이븐에게 있어서는 낯설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친근하게 느껴지는 목소리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목소리는 이 곳의 사람들에게 희망의 씨앗을 심어주기에 적절했으니.
[“소인, 로쿠몬센은 비록 독립 용병이나, 나에게 지킬 수 있고 돌아갈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해준 이들을 위해 나 자신 스스로를 화마에 맞서는 방화벽으로써 세우겠다!”]
엘카노 파운드리제 AC 프레임인 피르메자 풀 프레임에서, 코어 파츠만 알바 프레임의 코어로 바꾼 AC는 오른손엔 발람제 할데만 샷건을 들고, 왼팔에는 아르카부스제 VP-67LD 레이저 대거를 장착한 채로 전투 태세를 취했다. 아마도 파편 속에서 빠져나온 직후였는지 행거 유닛을 장착할 목적으로 튀어나와 있어야 할 어깨의 연장 부품은 아예 파손되어 있는 상태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AC는, 로쿠몬센은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는 듯 외쳤다.
“재를 뒤집어 쓴, 우리 있나니!!”
독립 용병의 외침으로 흘러나오는, 루비콘 해방 전선의 구호. 그것은 암묵적으로 해방 전선의 식객이면서도 구성원으로서 대접받아온 로쿠몬센이 자신의 은혜를 갚기 위해, 성치 않은 몸으로, 성치 않은 AC로 이들을 위해 싸우겠노라고 스스로에게 다짐하고 맹세하는 것과 같았다.
로쿠몬센이 붉은 늑대들에게서 구출받았을 때, 빈말로라도 상태가 좋다고는 할 수 없었다. 아무래도 그 테러리스트들을 상대로 최후까지 저항하며 분투한 AC 파일럿이었기에 그랬을까, 선을 넘었다 싶을 정도로 육체적 고문을 받은 결과로 의료진들이 로쿠몬센의 두 다리를 절단해야 할지를 심각하게 고민했을 정도로 그의 건강은 심각했다.
그러나 그가 은혜갚기라며 루비콘 해방 전선의 궂은일을, 어지간한 잡일들을 자진해서 해결해왔기에 그의 은혜갚기에 반대로 은혜를 입은 자들이 존재했고, 그런 사람들 덕분에 로쿠몬센의 다리는 회복의 길을 향할 수 있었다. 그와 더불어서, 바스큘러 플랜트의 활성화를 통해 엘카노 파운드리에게 전달된 코랄을 이용한 의료 기술의 힘을 빌려 죽어버렸던 다리의 신경계를 재건했으니.
삑-
로쿠몬센은 조금만 움직여도 척추를 마비시킬듯이 저릿하게 올라오는 다리의 통증을 참고, 얼굴에 흐르는 식은땀을 닦아내기 위해 손을 들어 훑으며 콕핏 내부의 모니터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성치 않은 몸이라 해도, AC 없이 MT만으로 구성된 중대 단위의 적 부대를 격파하는 것은 가능하다.
거기다가 저기 몰려온 적들은 한때 해방 전선의 일원이기에, 그 자신이 지키려는 자들은 제 손으로 무기를 들어 한때 동지였을 자들에게 겨눌 수 없으리라.
그렇다면, 그 무기를 그들을 대신해서 자신이 겨누면 된다.
“소인과 함께 가십시다. 시노비. 저치들에게 노잣돈을 쥐여주어야 하지 않겠소이까.”
자신과 세월을 함께 해온 AC의 이름을 읊조리며, 로쿠몬센은 초연한 태도로 중얼거렸다.
시노비, 닌자. 참아내고 인내하며 목적을 수행하는 자.
그리고 그 자신의 이름, 로쿠몬센. 불교 신앙에서 삼도천을 건너기 위한 뱃삯을 의미하는 육문전을 의미하는 단어. 누가 보기엔 우스꽝스럽게 느껴질 이름의 조합이나, 지금은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조합이 되었다.
‘가자.. 가자.. 넘어 가자, 모두 넘어가서 무한한 깨달음을 이루자…’
시야를 아득하게 만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통증을 시노비라는 이름 그대로 인내하며, 로쿠몬센은 무고한 이들을 지키기 위해 저들과 격돌했다.
저들이 머리를 썼으나, 그 정도가 한계라는 것을 보여주어야 하기에.
“루비콘의 해방자! 여기, 잔해를 들춰 냈습니다만…”
레이븐은 인부들의 외침에 격납고 였던 것을 향해서 한달음에 달려왔으나, 그 아래에 말로 설명 못할 광경을 싸늘해져 흔들리는 시선으로 내려다보았다.
마치 운명의 장난처럼, 그의 애기(愛機)인 AC 로더 4는 무언가를 감싸듯이 주저앉은 자세로, 전신이 휘어진 철골에 관통되고 부숴진 콘크리트에 짓뭉개져 있었고, 그것이 모든 충격과 잔해를 받아냈기에 멀쩡할 수 있는, 다른 AC는 한 점의 도색조차 벗겨지지 않고, 온전한 상태로 마치 레이븐에게 탑승을 권유하듯, 코어 유닛 전면부의 해치가 열린 상태로 엎어져 있었다.
핸들러 월터, 그가 최후에 남기고 간 기체.
IB-C03: HAL 826이 레이븐을 기다리고 있었다.
로쿠몬센 재입갤
내가 이해한 로쿠몬센의 캐릭터성은, 이윤을 우선적으로 추구하는 독립 용병이 아니라 자신의 로망을 실천하기 위해 감정적으로 움직이는 인물로 이해했다.
그래서 스윈번 살려보냈을때 나 까버리러 온거 보고 딱히 배신감은 안 들었음. 애초에 일방적으로 계약 파기한 플레이어 쪽이 쳐죽일 짓을 한게 맞으니까.
다만 그걸 정식 멤버가 아닌 일개 독립 용병이 무단으로 하려고 했다는게 문제라면 문제겠지만.
여담으로 마지막에 로쿠몬센이 마음 속으로 중얼거린 저 말은, 그 유명한 반야심경의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이 구간임
컨셉질을 하다보니 컨셉에 먹혀서 혼모노가 되어가는 중인 로쿠몬센이다...
그리고 레이븐이 본 것은 트라우마 스위치 딸깍 눌려도 이상하지 않을 광경...
이번에도 글을 읽어준 모두에게 늘 감사하고 있다.
다음 화에서 HAL 826 타는 621 기대합니다.
이쯤 썼으면 다음화는 사실상 스포일러된거 아닐까
그리고 Hal 뽕맛에 가버리겠지 아 유사 화글은 못참지
@ㅇㅇ 코랄 도핑한 발테우스로 간접묘사하긴 했지만 내 문학속 아이비스들은 유사 넥스트다
사바하...
컨셉충도 컨셉에 먹히면 간지가 난다
아이고, 적들에게 애도를 표해야겠구나!!
깨워서는 안 될 숭한 것을 깨워버렸어...
코랄블레이드 차지 찌이ㅣ이이이ㅣ이이ㅣ잉
로그헌트 만렙 보상의 힘을 맛봐라잇
결국 돌고돌아 HAL이 최종 탑승기가 되는건가 그건 그렇고 로쿠몬센은 올마파츠 싹다 뺐네 ㄷㄷ
앞으로 상대할 적들을 상대하면 로더 4로는 힘드니까... 로쿠몬센은 코어만 다른 경량기 컨셉 유지시켜야해서 알바로 갈았는데 알바가 제일 무난하지 싶었음
로쿠몬센 살아는 있었구나 죽으면 안되는데 그나저나 기스 나면 절대 안되는 아빠 차 + 이레귤러의 조합은 가히 공포로구너 - dc App
기스 나면 안될거 같은데 기스가 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어...
이정도로 컨셉에 충실하면 이젠 낭만이 된다
낭만 추구는 컨셉질에서 출발하는 법!
레드글린트 갈겨주죠, 이제 MT들은 한바퀴 돌려진 우주의 먼지로 보시면 되겠습니다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