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또 무슨ㅡ 아니. 그 전에 뭘 입고 있는 거냐?"

여느 때와 같던 어느 날. 세상이 '정상화' 되려는 첫 삽을 뜨는 기념으로 각 콜로니의 너덜너덜한 실태를 기업과 오르카가 합동으로 손보는 와중에 테르미도르는 자신의 앞에 나타난 릴리엄의 질문과 그 복장에 복잡한 기분 잔뜩인 어조로 입을 열었다.

제복 같긴 한데. 기업에 어울릴 만한 '어셈블리'는 아니다. 오히려 구시대의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그래. 교복에 가까워 보였다. 그마저도 그가 그렇게나마 아는 교복의 디자인과는 좀 더 차이가 있어서. 단정하고. 화려함을 적당히 겸비하면서도 어쩐지 모르게 색기가 흘러넘치는 그 모습에 그의 황당함과 경악이 뒤섞인 시선이 꽂히는 것을 느꼈는지. 릴리엄은 천천히 홍조 핀 얼굴을 살짝 테르미도르에게서 돌리며 입을 열었다.

"기업 연합 회의에서. 기업의 미래를 위한 공교육 제도를 부활시킬 필요가 있다는 결론이 내려져 각지에 학교가 재건되고 있다는 것은 익히 아시겠죠."

그야 뭐.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걸 강력히 주장한 게 기업 측이 아니라 전현직 인테리올 링크스 인사 셋의 뒤에 있는 소년이란 것도 안다.

"그래서. BFF에서도 구역내에 학교를 여러 군데 재건축하는 동시에. 기업내 간부진들의 자녀들과 재능을 보이는 이들을 특채로 입학시키는 엘리트 육성 목적의 사내학교 역시 건설했습니다. 구시대의 제도를 따져보면 저 역시 충분히 입학이 가능한 나이고. 선전효과도 확실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야. 첫 입학생 중에 BFF의 왕녀도 있다. 라고 한다면 그 학교에 원서를 내려는 이들이 미어터질 법 하겠지."

그런데 그게 자신과 무슨 상관이고. 내가 무슨 색을 좋아하는지는 또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 의문 섞인 시선을 알아차리고 그녀는. 그의 앞에서 천천히 한 바퀴 돌아 보았다.

"지금 입고 있는 것은 수정을 여러 번 거친 사내학교의 교복입니다만... 어떠십니까?"

"어..."

어떠냐고? 그래. 뭐. 사실 뭘 입어도 예쁘다. 하지만 그런 대답을 원하는 건 아닐 것이기에 테르미도르는 제럴드가 로젠탈 광고탑으로 설 때 노블레스 오블리주로 으레 하는. 양발을 좁혀 서고 양팔을 양 옆으로 살짝 올린 우아한 포즈를 취한 그녀를 마주 바라보았다.

분명 그녀의 체형에 맞춰 장인들이 손수 제작한 것일 텐데.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그녀의 '제네레이터' 는 와이셔츠에 달린 단추들의 AP를 실시간으로 감소시키는게 보이고 있었다. 그 윤곽 또한 실제 그녀의 블레이저에 달린 명찰에 그려진 BFF 로고를 연상케 했다. 주로 지름이.

식단관리도 철저한 그녀 답게. 아래로 내려가면 군살이라곤 하나 없는 허리에 맞춰 줄여진 핏은 여과없이 몸매를 드러내고. 다른 곳은 하나같이 고급지면서 어째서 치마는 그렇게 짧아서 063AN의 레그파츠와도 같은 순산형의 골반과 '후방 스태빌라이저'를 가리면서도 돋보이게 하는지 묻고 싶다.

"완벽하군."

그런 감정을 가능한 압축해 낸 대답에. 릴리엄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음?"

어디가? 라고 묻는 시선에 그녀는. 치마 아래로 쭉 뻗은 자신의 다리를 가리켰다.

"디자인은 대부분 정해졌습니다만. 이 부분...스타킹의 색에 다소 의견이 분분했기에."

"스타킹...이라고."

"네. 그래서 테르미도르 님의 의견을 듣고자...테르미도르 님께선. 흰색이 좋으십니까? 검은 색이 좋으십니까?"

"나...는..."

그러니까 학교용 제복에 내 의견이 왜 필요하냐는 말이다. 굳이 따지자면 검은색이 좋지만...그렇게 생각하며. 다리를 훑어보며. 천천히 시선이 위로 올라가면... 어. 치마가 더 짧아진 건가? 허벅지가...아니다. 이건.

"고르기 힘드시다면. 좀 더 전체적인 면적을 봐주셔도 됩니다."

아슬아슬히. 안 그래도 짧던 치마를 속옷이 드러날랑말랑 한 높이까지. 치맛단 중간을 잡고 끌어올린 그녀의 표정은 여느때와 같이 무덤덤했지만. 테르미도르는 안다. 여기서 대응을 잘못 하면 꼼짝없이 '오더 매치' 당하고 만다. 이러쿵 저러쿵한 사연으로 그런 사이가 되었음을 알 사람은 다 알게된 시점이지만 설마 그 나이차에 식을 올리기도 전에 '오더 매치' 를 하고 있는 것도. 보통 신청하는 사람이 릴리엄이란 것도 아는 사람은 꽤 적었다.

"잠깐. 잠시 그건 내려놔도 괜찮을 것 같다만ㅡ"

"아닙니다. 제대로 봐 주시지 않으면 곤란합니다."

치마 아래쪽까지 복장검사를 하게 할 기세로. 그녀는 빤히 테르미도르를 바라보며 한 걸음씩 다가갔다.

"무언가 불편한 부분이 있으신가요?"

"그게 아니라ㅡ 검은색. 검은색으로 하자. 이제 됐지?"

"아하. 그렇군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제 취향에 따른 색을 다급히 실토하는 테르미도르. 그에 굴하지 않고 다가와 집무실 의자에 앉아있던 그의 앞에 선 릴리엄이 그를 그늘진 눈가의 눈동자로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반응해버리신 건가요? 잘 알겠습니다. 스타킹은 검은 색으로 하면 되겠군요."

"...알았다면 이제..."

"추가로. 테르미도르님이 배움의 장소에서 소년 소녀들이 입는 제복에 평소보다도 훨씬 빠르게 반응하는 글러먹은 어른이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컥. 하는 숨이 막히는 소리. 그런 매도는 어디서 배워왔는지 모르겠다. 뭐 실제로 그의 '플라즈마 캐논'은 전개되고 말았으니까. 하지만 이건 불가항력이란 말이다. 그런 말은 좀 너무하다고 항변하기도 전에 릴리엄은 어느새. 테르미도르의 허벅지 위에 올라타고서. '제네레이터' 를 그의 흉부에 밀어붙이고선 그의 귓가에 입술을 대었다.

"그런 글러먹은 남자라고 해도. 릴리엄은 그런 테르미도르 님을 사랑합니다."

"..."

그건 반칙이다. 라고 입안에서 중얼이며. 그는 몸에서 힘이 쭉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이런 상황이어선 거부할 수도 없다. 그럴 기분도 더 이상 들지 않는다. 손이 천천히 릴리엄의 '후방 스태빌라이저'를 움켜쥐는 순간ㅡ

"실례하겠습니다. 단장."

무미건조한 목소리와 함께 들리는 모터 구동음. 전동 휠체어에 앉아 나타난 전 아스피나-오메르의 링크스 프라질은 홀로 있다가 급하게 자신에게 몸을 돌린 테르미도르를 바라보았다.

"뭡니까. 오츠달바."

"막시밀리앙 테르미도르다. 주워줬으면 좀 알아먹을 때도 되지 않았나. 무슨 일이지 프라질?"

"제가 할 말입니다. 주운 사람 이름 정돈 외우십시오. 저는 CUBE입니다."

라고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고 신경쓰지 않고 신경쓰지 않을 지적을 하며 프라질은 이제는 산적으로 전락한 릴리아나 잔당 토벌 보고서를 책상에 밀었다.

비록 프라질의 프라질은 프라질이 역류당하며 수몰되어 산산조각나긴 했지만. 스테이시스를 인양하는 겸사겸사 같이 끌어올려 그나마 수복한 프라질의 레그, 암, 스테이시스의 코어와 헤드를 조합해 다시금 쓸 만한 기체를 만들었다.

그 동안 병상에 누워있다가 다리를 못 쓰는 정도로 후유증이 끝나 목숨을 건진 프라질은 기관이 자신을 구조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씁쓸해하며 비공식적으로 오르카의 일원으로 활동중이었다. 사실. 기관에 있을 때보다 나은 점도 있다며 불만도 그다지 갖지 않았다.

"그건 그렇고. 안색이 안 좋군요. 컨디션 불량입니까?"

"아. 아아. 조금...윽."

시선이 집무실 책상 아래를 향하던 테르미도르가 움찔 하며 고개를 살짝 위로 쳐들었다.

"배가 아픈 것 같군..."

"식단은 중요합니다. 링크스가 배탈이 나서 출격을 못 한다고 하면 그건 그것대로 놀림거리가 될 겁니다."

"아스피나에선 효율적이니 뭐니 하며 영양죽만 처먹던 네게 듣고 싶은 이야기는...웃. 아...아니군..."

"...정말로 상태가 안 좋은 모양이군요. 진찰을 받아보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됐다니까. 보고...후우... 끝났으면 나가."

오르카 내부에서도 단원들과 영 데면데면한 상태인지라 그나마 가장 친한 그와 잡담을 더 하고 싶었던 듯한 프라질은. 예사롭지 않은 상태의 테르미도르를 보고선 고갤 흔들곤 더 심해지기 전에 약이든 뭐든 찾아먹으라며 당부하고는 방을 나갔다. 그리고ㅡ 그 직후. 우윽 하며 몸을 경직시킨 테르미도르는 허리를 몇번인가 움찔이다가 지친 눈으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릴리엄. 이번엔 장난이 지나치ㅡ"

그리고. '플라즈마 캐논'에서 발사된 '플라즈마'를 한가득 입안에 담은 채 입을 벌리고 올려다보고 있는 릴리엄과 마주치자 훈계를 하려던 그의 입은 벌어진 채 닫히질 않았다. 접히려던 '플라즈마 캐논'이 다시 전개되기엔 충분한 광경이었으리라. 무엇보다 지금 그녀가 뭘 원하고 있는지도 명확했고.

"삼켜."

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몇 번에 걸쳐 얇은 목울대를 움직이며 '플라즈마'를 전부 삼킨 릴리엄은 엷은 한숨을 내쉬며 다시 입을 벌려 보이고선 속삭였다.

"죄송합니다. 릴리엄이 신뢰를 저버렸나요? 그렇다면...벌을 주셔도 달게 받겠습니다."

그걸로 테르미도르의 마지막 참을성도 바닥났다. 곧바로 그녀를 책상 밑에서 끌어내 어깨에 들쳐멘 그는 당황한 릴리엄의 약한 비명을 무시하고서 숙직할 때 쓰는 개인실의 방문으로 향했다.

"네가 시작한 거다."

물론 안다. 지금 '오더 매치'를 하면 그만큼 일이 밀린다. 그만큼 메르첼이 갈굴 것이다. 하지만 지금 '오더 매치' 하지 않으면 그건 남자도 아니다. 릴리엄을 침대에 내던지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방문이 거칠게 닫혔다.


조금 많이 뒤.

"교복. 빨아야겠네요."

"...미안하군. ...그건 그렇고. 그런 매도는 누구에게 배웠지? ...책상 밑에서의 일도."

"비정기 교류회에서. 윈 D 팬션 님께 조언을 받았습니다. 후자는 스틸레토 님입니다."

"...그 여자들이..."

물론 윈디는 그런 목적으로 쓰라고 가르쳐준 것도 아니고. 일견 테르미도르에게 한없이 약해보이는 릴리엄에게 테르미도르를 너무 오냐오냐해주지 말라며 조언해준 것이지만.

그녀가 간과한 것은 휘둘리는 것은 어느샌가 테르미도르 쪽이 되었단 것과. 벌써 두 사람이 몇 번이고 '오더 매치'했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것이겠다. 알았다면 내가 그런 식으로 어레인지 하랬냐 이 발랑 까진 것이 라고 소리치며 릴리엄의 뒤통수를 때리기 직전까진 갔을 것이다.

별개로 교류회가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남편이 '오더 매치'에서 얼마나 대단한가를 자랑하는 곳이 되는 데에 일조하는 스틸레토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아마 변명할 생각도 없을 것이다.











남들은 에렌베르크고 오가미인데 플캐는 후달리지 않냐는 나쁜 말은 ㄴㄴ

경플라라 연사도 빠르고 잔탄도 적다는 나쁜말도 ㄴㄴ

7-10개월쯤 후 입학식에서 만삭의 배로 와이셔츠 단추 두 세개쯤 푼 채로 입학생 대표 연설을 하는 릴리엄은 다른 누군가가 써줄거야 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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