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인간 C4-621, 레이븐이 스스로 불타오르는 괴조, 불사조의 심장이 되기를 선택하기 전, 벨리우스는 일방적인 파괴를 경험하고 있었다. 해방 전쟁 당시 발람 인더스트리나 아르카부스 코퍼레이션이 가한 공세와 침범 행위가 오히려 양반이자 신사적이고 합법적인 무력 행사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붉은 늑대들은 자신들의 행동에서 약탈을 일절 배제하고 오로지 파괴에만 전념했다.


오버드 레일 캐논의 일격과 이어진 반 미들 플랫웰 세력의 내란 행위에 휩쓸리지 않은 루비콘 해방 전선의 MT 파일럿과 병사들은 항전했으나, 스스로를 묵시록의 짐승이자 세계 멸망의 메뚜기 떼라고 자부하듯 몰려온 붉은 늑대의 MT 병력에 비하면 한줌의 모래나 다름 없는 수준의 격차.



“조금만 더 버텨라! 아니, 스스로 방패가 되겠다는 일념으로라도 버텨라! 우리가 일궈낸 해방이다. 우리가 마주하게 된 해방이다. 그 해방을 무로 돌리려는 반역자와 저 테러리스트 놈들 따위에게 굴복해선 안 된다!”



“재를 뒤집어 쓴, 우리 있나니!”



이들은 불리했지만, 그렇다고 패색이 짙은 상황은 아니었다. 우선 붉은 늑대들은 반란 세력의 병력도 가리지 않고 공격했기에 양면전선 구도가 될 뻔한 RLF의 병사들에겐 조금이나마 숨을 돌릴 기회가 되었으니까. 물론, 빈말로라도 우수하다고는 절대 말 못할 반란 세력은 피처럼 붉은 메뚜기 떼들한테 산채로 뜯어먹히는 꼴이 되었지만 어쩌랴. 그저 시대를 읽고 보지 못한, 한심한 세대의 작태인데.


그리고 해방 전쟁 당시만큼 군기가 잡혀있고, 자신들의 터전을 지키려는 의욕으로 가득 찬 RLF 병사들이 기다리던 희망의 빛줄기는 먹구름으로 어두워진 하늘을 뚫고 내려왔다.



[“레드 건, 루비콘 해방 전선의 방어선에 합류한다!”]



G6 레드의 외침을 필두로 부스터에서 연료를 분사하는 소리들이 일제히 들려오다 쿵, 하고 착지하며 벨리우스의 공기를 뒤흔들었다. 현재 레드 건의 유일한 AC 전력인 AC 허밋이 고지대를 점거하듯 건물 위로 올라서서 모습을 드러내자 붉은 늑대의 MT들은 놀랐는지 순간적으로 멈춰서는 모습을 보였다. 그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고 레드 건 소속 MT들이 RLF의 방어선 사이에 자리를 잡으며 견고함을 더하면서 힘의 균형을 뒤바꾸기 시작했다.






연안을 넘고 달려와 BAWS 공창 방면의 벽을 예전에 월벽을 시도하듯 불법적으로 넘어온 것이 아니라, 벽의 관문을 아군의 입장으로 통과하게 된 레드 건 소속 군인들은 자신들이 발람 산하에 있을 때 제 동료들과 G4 볼타를 희생해서까지 억지로 넘으려고 했던 벽을 이렇게 통과하게 될 줄은 몰랐다며 씁쓰름한 반응을 보였지만, 그런 반응을 겉으로 드러낼 정도는 아니었다.


패잔병에 불과한 자신들에게 그나마 쉴 수 있는 곳을 내어준건 루비콘 해방 전선의 선택이었고, 자신들에게 발 뻗고 머물 수 있는 쉼터이자 정을 붙일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한건 BAWS의 결정이었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도 G1 미시간을 따르며 그의 사람됨에 감화되었고, 그의 의지를 이어나가겠다 결심한 G6 레드를 전적으로 신뢰하기에 이들은 그 누구도 타의에 등 떠밀려서 나온 것이 아니다.


사람 된 도리가 있기에, 입은 은혜는 갚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준 존재가 있었으니까.



“쉴드 MT는 해방 전선의 쉴드 MT들과 교대, BAWS가 제공한 중장 4각 MT는 직사포 전개, 박격포 유닛을 장착한 MT들은 중장 4각을 엄호하면서 고지대 점거하고 적 후위에 포격! 적의 숫자는 많다. 그러나 시가전이니 각 구획을 나누고, 구획별 사격각을 겹치게 진형을 재구성해!”



G6 레드가 전달하는 지시사항에 레드 건 MT 파일럿 중 그 누구도 토를 달지 않고 그대로 이행하기 시작했다. 레드 건 기수의 말단이라 해도 G1 미시간의 눈에 들었을만큼 G6 레드는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선임 기수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자 많이 배우고 경험하려고 노력했다. 비록 모든 선임들을 잃어버리게 된 상황에서야 그가 의도한만큼 노력의 결실을 맺었으나, 그 맺힌 결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활용하는 것은 그저 그에게 잠재된 능력들 중 하나.


레드 건 MT들이 집결과 분산을 반복하며 진형을 재구성하려고 했기에 당연히 붉은 늑대들은 다시 공세를 시작했다. 바보가 아닌 이상 당연한 행동이니까. G6 레드는 콕핏 모니터에 표시된 HUD를 통해 레드 건 MT들의 진형 구성을 실시간으로 확인하면서도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역사적으로 저지대의 병력이 다수여도 고지대를 확실하게 점거한 소수의 병력을 상대하기는 어렵다는게 증명되어 있는 상황. 거기에 비대칭전력인 AC의 존재는 전세를 뒤집고도 남는다.


투캉-


AC 허밋의 코퀼렛 핸드건이 앞서 전진하던 MT의 코어를 꿰뚫고, 슈안거 바주카는 그 뒤에 있는 MT들을 공략했다. 등 무장인 직사 6연장 미사일을 다중 조준으로 사격해 적의 주의를 최대한 끌고, 아직 발사하지 않은 8분열 미사일은 MT 부대와 좀 동떨어진 위치에서 사각으로 파고들려는 적성 AC, 마인드 알파 AC를 향해 사격했다.


잠시 날아가던 미사일이 분열되어 갈라졌으나.



‘갱도 때와 비슷하다. 그때 프로이트가 말했던 것처럼 저 움직임은 유인기 느낌이 아니야.’



마치 자로 잰 듯, 분열 미사일의 자탄을 AQB로 회피한 마인드 알파 AC는 에츠진 머신건을 AC 허밋에게 겨누며 그대로 날아오는 중이었다.


삑!


그러나 G6 레드는 더 이상의 견제사는 가하지 않았다. AQB 기동으로 EN 소모를 유도할 수 있겠지만.


카가각-


그랬다간 멋들어지게 하늘에서 뚝 떨어지며 레이저 블레이드로 마인드 알파 AC를 반토막내버린 AC 록스미스의 파일럿, 프로이트가 귀찮게 만들었다며 투덜거렸을테니.



[“내가 좀 늦었나?”]



“그렇게 말 하는걸 보니까, 늦었다는걸 알기는 해서 다행이네.”



[“으, 자기객관화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머리는 남아있거든?”]



G6 레드의 비아냥을 웃으며 흘려낸 프로이트의 AC 록스미스는 허리가 절단당했음에도 마지막 발악을 하듯 까딱이던 마인드 알파 AC의 헤드 유닛을 그대로 발로 밟아 뭉개버렸다. 뭐, 그런 조종을 하는데도 그냥 귀찮은 쓰레기 뭉개듯이 하며 G6 레드를 상대로 태연한 태도로 시덥잖은 농담을 하던 프로이트는 자기 회선으로 들려오는 레드의 허탈함 섞인 자그마한 웃음소리를 듣곤 자신도 피식 웃으며 옅은 미소를 띄웠지만.


아마도 엥게브레트 갱도 사건 당시에 G6 레드에게 나름의 조언을 해준 것이 약간이지만 호재로나마 작용한 것일까, 아니면 그 조언대로 G5 이구아수와 짧은 대화를 했던 끝에 자신만의 결론을 내리고 감정을 정리할 수 있게 된 레드의 성장에 의한 것일까. 그건 당사자 말고는 모를 일이지만 프로이트는 G6 레드와 나름 친분이 있다고 과시해도 될 만한 정도의 사이가 되었다.



[“뭐, 그건 그거고.”]



그래, 그건 그거다. 이렇게 사적이고 평범한 대화를 나눌만한 상황은 아니다.


프로이트는 자신을 향해 기계적인 움직임으로 접근하는 마인드 알파 AC들을 바라보고, G6 레드는 회색빛 건물들 사이로 밀려들어오는 불개미 떼와 같은 MT들을 바라보았다. 그래, 이렇게 시선을 옮겼으면 할 일은 하나 뿐이지. 자신들 같은 파일럿에겐 대화를 나누는 것 자체가 사치이며, 쓸데 없는 부연설명에 불과한 거니까.


AC 록스미스가 날개깃을 연상시키듯 푸른 분사염을 내뿜으며 전진하고, AC 허밋은 모든 무장을 전방을 향해 조준했다.


한때 루비코니언의 적이었던 이들은, 현재의 루비코니언들에겐 희망의 빛줄기로써 자리매김하듯 각자 해야만 하는 일을 위해 멈추지 않았다.








[“여기는 걱정하지 말라고, 벨리우스의 구원이 제일 우선이야.”]



현재 새로운 전장이 되어버린 벨리우스의 상공에서 일정 궤도를 유지하며 비행 중인 수송 헬기 안. 통신을 통해서 들려온 러스티의 목소리에는 적잖은 피로가 묻어나오고 있었지만 그와 함께 신경을 쓰지 말라는, 이 곳의 전력과 사기에 대해서 당차게 자부하는 느낌도 함께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중앙 빙원 역시 반 체제 세력의 내전 시도가 있었던 듯 했지만 그 곳에는 마침, 정말 마침 운이 좋게도 컨디션을 회복한 러스티가 재수복된 자신의 전용기, AC 스틸 헤이즈 오르투스를 막 수령받은 상태에서 일이 벌어졌기에 발 빠르게 제압되었다고 했다.


팔에 심각한 수준의 복합골절이 일어나 파일럿으로서 땅을 밟을 일은 없을 수도 있다는 경고를 받았었으나, 엘카노 파운드리가 전달받은 코랄을 이용한 신경 재건술을 가장 먼저 받았기에 회복을 마칠 수 있었던 덕분이기도 했고.



[“덕분에 한참 굳어 있던 몸을 깨우는데 성공했으니까. 아무튼 걱정은 접어둬.”]



“러스티 씨…”



진통제를 복용하면서까지 헬기의 조종간을 잡았던 아실은 안도하면서도 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상황에 대한 불안감을 담아 중얼거렸다. 진즉에 해방 전쟁을 펼치면서 그의 부모나 가족은 모두 사라졌기에 루비콘 해방 전선이, 함께 동고동락한 루비코니언들이 그의 가족이나 마찬가지였다. 자기보다 나이 차이가 크지 않은 러스티를 내심 형제로 여기며 따르던 그였기에, 러스티의 말은 마치 자신에게 있어서 걱정을 덜어주려고 애쓰는 의젓한 큰형이 하는 말로 느껴졌다.



“그 쪽은, AC 전력은 없었나?”



[“AC 전력은 커녕 MT도 몇대 없더라고, 이 쪽은 소수의 병력으로도 제압할 수 있다고 자만한거겠지.

AC 이야기가 나온걸 보니, 그쪽에는 있나보네.”]



상처 때문에 피가 흐르는 얼굴을 응급처치로 지혈하고 있는 미들 플랫웰의 지친 기색이 역력한 물음에 답한 러스티는 벨리우스에서 펼쳐지고 있을 상황을 짐작했는지 깊은 침음을 흘렸다.


사실 러스티도 벨리우스에서 일방적으로 전해진 폭로를 전해들었다. 그러나.



[“망할 영감탱이들이......

자신들이 보고 들었기에 믿고 있는 것을 이야기한다면 그게 진실이 된다고 생각하는거야? 가담자들 중에서 전우를 직접 만나본 사람이 일절 없을텐데, 겨우 그 표면적인 내용만으로, 진위여부가 불분명한 그런 내용만으로 선동이 가능하다고 생각한거야? 난 전우를 알아, 아군 혹은 적으로서 전장에서 조우한 끝에 이 사람을 온전히 평가할 수 있었으니까, 근데 다른 사람 말만 듣고 이건 뭔 병ㅅ-”]



“그만, 러스티.”



잘 걸렸다는 듯, 저렇게 속사포로 털어놓다 못해 막바지에 가서는 그 답지 않게 욕설을 내뱉으려던 것을 미들 플랫웰이 말을 자르면서 그 문제의 단어가 튀어나오지는 않았지만, 아무튼 정리하자면 이렇다.


독립 용병 레이븐의 정체가 오버시어라는 비밀결사의 사냥개라 한들, 자신이 한때는 아군으로, 한때는 적으로 조우하며 마주함으로써 평가하게 된 레이븐은 그렇게 단순하게 정의 가능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 역시 한명의 인간이었고, 겉과 다르게 섬세한 마음을 지녔지만 다른 사람과 교류하는 것을 조금 어려워할뿐인 존재.


그게 러스티가 평가해본 레이븐이었고, 그 평가는 조금 다르기는 해도 비슷한 평가로써 해방 전선의 일원들도 어느정도는 하고 있었을 정도로, 현재 레이븐의 본질은 저러했다.



“...수송칸 쪽으로 통신이 안 새어나가서 다행이군.”



[“아.”]



문이 닫혀있는 수송칸 쪽으로 고개를 돌렸던 플랫웰은 얼굴을 타고 피가 흘러내렸던 흔적을 닦으며 입술을 짓씹었다. 이렇게까지 하고는 싶지 않았지만, 하지 않으면 루비콘 해방 전선이, 모두가 피땀흘려가며 희생해온 끝에 쌓아올려진 결과물이 무너져내릴 수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이로 인해 루비콘 해방 전선 내부에서 자신의 입지가 축소되거나 사라질 수 있었다.



“그래도, 내가 한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을걸세.”



그러는 한이 있어도, 지켜야 할 것을 지켜야만 했기에.


수송칸은, AC 록스미스의 뒤를 이어 나머지 한 기의 AC가 출격 준비를 마쳤다.








루비콘 임시 정부 청사는 혼란에 빠졌다. 아니, 심지어 청사 점거를 시도했던 세력은 청사 전체를 점거하지도 못했는데, 내부는 아예 문을 틀어막으면서까지 농성을 하며 모두가 반란 세력의 점거를 방해하는 중이었다. 예를 들자면 프로이트에게 붙잡히고, 러스티한테 제대로 낚인 대어가 되어버려 사무직으로 강제 배정된 전직 베스퍼 6대장이라던가 말이다.



‘이런 상황은 원한 적이 없다고!!!’



루비코니언들 틈바구니에 껴서 졸지에 농성을 하게 된 입장에서 이걸 하지 않으면 진짜 물리적으로 죽을지도 모를 상황이라, 생존을 위해서 루비콘 3으로 도망쳐온 이 불쌍한 양반에게 있어서는 눈물을 삼키며 온 힘을 다해 문을 틀어막고 미는 것이 최선.


뭐, 불행 중 다행이라고 점거를 시도하는 세력도 제 코가 석자인 상황이라 청사 전체를 점거하는데에 여력을 쏟을 상황이 아니었다.



“젠장, 막아라! 어떻게든 막아!!”



“물량 차이가 너무.... 너무 많-”



붉은 늑대들이 파괴 목표에 우선순위 따위는 두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파괴를 행하고 있는 상황이라 임시 정부 청사에 가해지는 공세는 약한 편에 들었지만, 그렇잖아도 파일럿들의 평균 나이가 상당히 많은 편인 반란 세력은 그마저도 버거워했다. MT 한 기가 아까운 형편에 방금 한대가 터져나갔기에 더더욱.


철근 콘크리트로 이루어진 청사 벽을 몸으로 밀어붙이며 무너뜨리는 붉은 빛의 MT들이 벽을 넘어오기 시작하자, 돌발 상황 대처 훈련 따위는 하지 않은 저들은 늑대 떼, 아니, 승냥이 떼에게 물어뜯기는 한심한 비렁뱅이들에 불과했다. 총을 들었으나 쏠 줄 모르고, 칼을 들었으나 휘두를 줄 모르는 말 그대로의 천치들. 그것이 반란을 꾀했던 세력을 설명하는 적당한 단어였다.


청사만 점거하면 된다고, 비밀을 폭로하기만 하면 된다고. 그러기만 하면 모든 것이 자신들의 것이 되어, 자신들이 원하는 순리에 따라 진행될거라고 상상의 나래만 펼치는 우물 안 개구리나 다름없는 이상주의자들의 세력은 그렇게 파도 앞 모래성처럼 점차 무너져가, 붉은 늑대들의 아가리에 루비코니언의 모든 것들이 바쳐지려는 찰나였다.


콰앙-!


핀 포인트. 정확히 MT 코어 유닛의 콕피트에 직격한 철갑탄은 그대로 코어에 구멍을 내 찌그러트리며 붉은 늑대 한 마리를 그대로 저승길로 직행시켰다. 한 마리가 쓰러지는 것을 기점으로 화력들의 일제사가 펼쳐지며 늑대 사냥이 시작되었는데, 이 광경에 얼 빠진 표정을 지으며 기뻐하려던 반란 세력들은 자신들을 구원해준 격이 된 존재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는 낯빛이 흙 색으로 칙칙하게 물들어갔다.


사선으로 그어진 붉은 십자 엠블럼이 그려진 MT들과, 그 MT들의 지휘관처럼 앞서 등장한 발람제 AC.


그렇게 배척하려 했고, 수틀리면 죽여서라도 묻어버리려던 레드 건 부대가 자신들을 구원해주었다는 운명의 장난은 이들의 마음 속에 터무니없는 증오심을 들끓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증오만을 앞세우기엔 늑대가 울타리를 넘어 들어오듯 붉은 MT들의 공세는 계속되어, 이들이 다시 한번 위기에 빠지려는 찰나, 하늘에서 한 기의 AC가 뚝 떨어지며 펄스 블레이드로 MT의 몸통을 내리그어 양단했고, 흙빛으로 물들었던 얼굴에 화색이 돌다가, 그 색감이 그대로 죽어버려 파리한 안색이 되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BAWS제 구형 AC, 바쇼 풀 프레임의 기체.


란세츠 RF와 펄스 블레이드, 4연장 핸드 미사일과 네이팜 런처.


그리고, 부스터 유닛에서 흘러나오는 붉은 빛의 선명한 코랄 분사염.


AC 아스트힉.






루비콘 해방 전선의 창시자, 수부 섬 돌마얀은 MT가 일격에 양단되어 쓰러지자 주춤하는 붉은 MT들에게 시선을 향했다. 아무리 광기와 광신으로 포장했다 한들 피륙으로 이루어진 인간들, 그러나 그런 인간들이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어서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불러일으키는 광경을 수도 없이 지켜봐왔다. 젊은 시절부터, 그리고 아이비스의 불의 생존자가 된 현 시점까지도.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 AC 아스트힉의 콕핏 안에는 제대로 닦이지 않은 먼지가 가득해서 그의 폐부를 괴롭혔으나 그런 먼지 따위에 아랑곳할 여유 같은 건 없었다. 이미 생명체로서의 반감기가 종점에 달하기 직전인 그의 몸은 이런 상황에서 숨을 들이마시는 것 자체로도 고역이었으나, 그런 고통 때문에 여기에서 멈춰서는 안 됐다.


멈춰서고 싶어서 은거라는 선택지를 택했으나, 그저 자신의 안위와 평안만을 목적으로 한 그 행동은 이기적이었다는 사실을 이렇게 직접 목도하여 씁쓸함을 느낀 섬 돌마얀의 움직임에 따라 AC 아스트힉이, 그리고 코랄 제네레이터가 기계의 비명을 내지르며 엄청난 가속을 내주자 감속하는 일 없이 그 속도를 받아들이면서 붉은 늑대들 사이를 헤집었다.


펄스 블레이드가 전개되고, ACS의 입력에 따라 순간적으로 부스터가 분사되는 가속을 받으며 MT들을 베어냄과 동시에 란세츠 RF를 우측 행거의 네이팜 런처와 교체, MT의 추가 진입을 차단하기 위해 무너진 벽을 향해 네이팜을 투사해 불의 장벽을 만들자 레드 건 부대의 화력은 진입을 멈춰버린 적을 향해 AC 아스트힉을 지원했다. 별다른 통신 같은 건 없이 본능적인 판단력에 의거한 행동.


구 세대 AC의 움직임이라고는 전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유려한 기동을 하며 청사 일대에 침입해온 MT들을 다 베어내자, 레드 건과 RLF의 MT들이 전진하여 늑대들을 밀어내기 시작했기에 과열된 펄스 블레이드를 식히고자 작동을 중지시킨 섬 돌마얀은 레버를 당겨 코어가 흰색으로 칠해진 MT들 쪽으로 기체를 선회시키려다 문득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하늘 위를 가로지르는 붉은 유성이, 제 색과 똑같이 불길한 빛의 붉은 꼬리를 남기는 저 유성이 하늘을, 그리드를 향해 중력을 거슬러 날아가고 있었다.


그 붉은 유성을 올려다보며, 섬 돌마얀이 입을 열었다.



“루비콘 임시 정부 청사 점거를 시도한 반란 세력에게 고한다.”



이 말은, 그를 맹목적으로 따르고 충성했던 이들에게는 듣고 싶지 않은 말이 될 것이었다.


그러나, 맹목적인 충성이란 이름으로 포장된 탐욕과 광기는, 불러와서는 안 될 재난이 벨리우스의 땅 위로 현현하게 만들었기에 섬 돌마얀은 경멸심을 억눌러 담아 말을 이어나갔다.



“당장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라.”



루비콘 해방 전선의 초창기부터 섬 돌마얀과 함께 해왔으나 시대를 받아들이지 못해서, 자신들의 쇠락을 전혀 받아들이지 못해서 시대를 거슬러버린 자들이 피눈물을 흘려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


벨리우스를 집어삼키고 있는 화마는 아직도 거세게 타오르고 있었지만, 자기 자신의 이름을 더럽힌 자들의 반란은 이로써 종결되었다.


먹구름이 드리워진 하늘, 그 하늘을 가로질렀던 붉은 유성, 그리고 그 아래에서 불타오르는 벨리우스.


루비콘 해방 전선의 내전은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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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부 입갤


621이 HAL 826타고 그리드 직행하는 그 순간에 벨리우스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가를 이 편에 담았다


필요하다고 생각된 내용이라 이 편에 담았으니, 다음편은 유사 넥스트가 날뛰는 편이 될거임


어째서 방구석 노인네가 AC 끌고 나왔는지에 대해서는 좀 나중에 풀어질거다, 지금 당장 중요한 내용은 아니거든


기껏 벨리우스 재건하고 발전시키느라 개고생했던 인덱스 더넘만 고통받을 상황


아무튼 이번 글도 읽어준 모두에게 늘 감사하고 있다, 가능하다면 짧은 평가라도 해주면 좋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