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621와 서로 싫어하는 이구아수
· 코랄 문학) 서로 찾아다니는 621와 이구아수


"헤드 브링어에서 올마인드제 MIND ALPHA 프레임으로 완부를 교체하고 추가적으로 양 팔에 펄스 블레이드를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니.... 지금까지 내가 만든 장난감 중에서도 특히 재밌는 물건이 될 거 같아."

신더 칼라는 천천히 제안서를 넘겨보았다. 이미 RaD의 기술자들이 작업을 시작했지만, 이런 재밌는 설계는 보는 것 자체로 즐거웠다. 해야할 일이 있어서 더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정도였다.

"하지만 말야.... 고작 이 정도로 우리 RaD를 방문한 건 아닐텐데, 이구아수?"

의자에 묶인 이구아수가 뭐라고 읍읍거렸지만 신더 칼라는 신경도 쓰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미안하지만 이쪽은 비지터가 어디 있는지 알려줄 생각이 전혀 없거든. 만약 네가 얌전히 기체만 개조하고 나가겠다면 나도 넘어가주겠지만...."


칼라는 이구아수의 입에 붙은 테이프를 거칠게 뜯어냈다.

"싫다면 이 헤드 브링어까지 꿀꺽해버릴 거라고?"


"켁.... 그래, 너 만나려고 왔다. 오히려 나한테 고마워 해야하는 거 아냐? 이제 코랄 수급이 끊긴다고 내가 떠들고 다녔으면 니네 사원들은 진작에 전부 탈주했을텐데?"

신더 칼라의 눈빛에서 장난스러움이 사라지고 묘한 표정으로 변했다.

"비지터가 거기까지 떠들어댄건가. 아니, 처음부터 그런 결의로 우리 오버시어에게 남은 거니, 네가 아는 것도 당연하군."

"뭐, 뭐야? 그럼 난 무죄 맞잖아?"

"뭐, 그런 셈이지. 처음부터 도저들을 지배하는 일 따위에는 관심도 없었어. 브루트는 끝까지 자기한테 저항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저항세력을 모아준 덕분에 한꺼번에 쓸어버릴 수도 있었고."

"처음부터 도저라는 변수를 차단하는 게 목적이었다니.... 됐어, 그러면 그냥 개조만 받고 나도 빠질께. 어차피 들개 자식이 맨 마지막에 날 죽이기로 약속했으니 그때까진 나도 죽을 생각 없어."

"아하, 니네 그런 사이였구나~ 어쩐지 비지터가 너만 쳐다본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다시 익살스러운 얼굴로 돌아온 신더 칼라가 축음기로 잔잔한 춤곡을 틀기 시작했다.

"그러면 신부수업은 시켜줘야지. 자, 내 손을 잡아. 오늘은 특별히 나한테 댄스 강습을 하는 걸로 비용을 대신해주겠어."







"슬로우, 슬로우, 퀵퀵 슬로우...."


신더 칼라는 수상할 정도로 춤을 잘췄다. 춤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이구아수가 보기에도 능수능란하게 파트너를 이끄는 솜씨가 있었다.

"....월터와 무슨 사이야?"

"첫 질문이 진짜 그거라고?"

"쳇, 어차피 들개 얘기는 절대로 안할 작정이잖아. 적어도 루비콘이 왜 불타는 건지는 알고 싶어."

"원래는 강화인간한테 이런 얘기 안하지만.... 뭐, 좋아. 이번에는 그 코랄한테도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니까."

-저를 알아차린 건가요?!

"누구신지는 모르겠지만 뇌 심부 코랄 디바이스에 기생하고 계신 아가씨, 미안하지만 저는 항상 염두에 두고 있답니다. 이 방에 있는 모든 물건은 아날로그이니 아가씨께서 어떻게 하실 수 없을 거에요."

신더 칼라가 에어의 말을 직접 들을 수는 없었다. 정말로 모든 물건이 전기회로 없이 오직 톱니바퀴로만 작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등마저 백열구였으며 축음기는 당연하게도 구시대의 빈티지 제품이었다. 재현품이든 진품이든, 어쨌거나 루비콘의 정크 엔지니어가 가질 수 있는 물건은 절대 아니었다.

"조사기술연구소는 50년 전 최첨단을 달리던 미래 그 자체였지요. 하지만 코랄의 상전이 반응이 검출되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어요. 다행히도 조사기술연구소의 직원들은 거의 다 살아남아 남은 유산을 지켜내고 사업을 더욱 키웠답니다. 펄스 반응을 연구하던 타키가와처럼 말이죠. 하지만 이들은 대재해를 잊지 않고 코랄을 막고자 한 결사가 오버시어의 시작이랍니다."

"아가씨께서는 애초에 코랄을 기반으로 한 연구 아니었냐고 되물으시는데."

"맞아요, 그러니까 코랄이 잘못인 거죠. 그만큼 강력하고 위험한 물질이 있는 한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야 말 것이에요. 그걸 막기 위해 타고 남은 모든 것을 지필 마지막 불이 필요해요."

칼라의 스텝이 이구아수의 팔을 잡아당기고 그대로 한바퀴 빙글 돌게 만들었다.

"큭, 그냥 놓아둔다는 선택지는 애초에 없다는 거지? 외성기업이든 루비코니안이든 PCA든 똑같이 코랄에 홀린 인간들로 보이는 거군."

"인간을 미치게 만드는 코랄이 없어지면 루비콘은 폐성으로 남아 외성기업은 다른 사업에 투자할테니, 살아남은 루비코니안도 간섭 없는 진정한 자유를 누리게 될 거에요. 반대로 코랄이 존재하는 한, 인간은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위험에 처하게 만들겠죠. 최악의 경우에는 코랄이 우주를 지배하거나요."

"정론이네.... 반박할 수가 없어. 인류는 지구의 모든 생명체를 지배하고 나서야 우주에 진출했지. 코랄과 공존하는 인류는 그 순간부터 인류가 아니게 되는 거야."


이구아수는 깨달음은 얻었다는 듯이 발을 멈추었다.

"역시 나는 인간이 아닌 거 같아."

"풋."

짧은 춤곡이 끝나고, 다음 곡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구아수는 이미 칼라의 손을 놓아버렸다.

"들개 말이 맞았어. 어차피 나는 인간 취급 받은 적도 없었고."

"그러면 뭐라고 불러드릴까? 비지터를 들개라고 한다면, 그쪽은 들개 이하?"

"개보다 조금 멍청한 새대가리 레이븐 정도면 딱 좋겠지."

마침내 칼라는 가면을 유지하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푸하하! 너 따위가 레이븐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니! 방금 그거 진짜 웃기는 농담이었어. 채티한테 꼭 알려줘야지."


칼라는 이구아수를 밀쳐버리고 사무실의 서랍을 뒤지기 시작했다. 


"적어도 전대의 「레이븐」은 그렇게 나대지는 않았어. 걔는 자기 할 일에만 끝내는 깔끔한 스타일이었는데. 그 「레이븐」이 널 보면 뭐라고 생각할지 정말 궁금하지만, 그건 뭐. 아쉽게 된거지."

하지만 칼라가 권총을 꺼내기도 전에, 굉음이 사무실 바깥에서부터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레이븐」의 오퍼레이터로서 평가하자면, 염치와 양심을 버렸다는 부분에서 합격점을 주고 싶군요."


나이트폴이 RaD의 시설을 부숴가며 달려온 끝에, 마침내 창문 밖으로 칼라의 사무실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건 진짜 재미 없는데? 퇴물 용병은 슬슬 빠지시지?"

"또 다른 사칭이 나타나서 확인할 필요가 생겼으니,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아주 잠깐, 칼라는 「레이븐」에게 정신이 팔린 나머지 이구아수에게 눈을 돌리고 말았다.

"보, 보스.... 헤드 브링어가 기동하고 있습니다!"

"뭐? 코랄에 순간이동 능력이라도 있다는 거야? 그런 게 아니고서야.... 젠장."

실시간으로 싸늘하게 식어가기 시작한 이구아수의 육체를 마주하자 칼라는 이구아수가 정말로 인류의 범주에서 살짝 벗어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좋아, 에어! 계획대로야! 이제 내 육신만 확보하고 탈출하기만 하면 그 신더 칼라에게서 돈을 떼먹는 업적을 이룰 수 있다고!"

-그쪽의 「레이븐」이 보수를 엄청 비싸게 불러서 오히려 적자긴 하지만.... 지금은 눈 앞의 상황에 집중하죠!







"채티! 무리하지 말고 저 것들을 쫓아내는데 집중해!"

"알겠어, 보스."

 

AC 서커스가 유탄과 미사일을 쏟아부었지만 헤드 브링어와 나이트폴은 얄미울 정도로 피격을 허용하지 않으며 요리조리 도망치고 있었다. 클러스터 미사일은 헤드 브링어가 무서울 정도로 정확한 사격으로 자탄을 흩뿌려야할 순항미사일을 격추시켜버리고, 수직 미사일은 유탄을 피하는 겸 뜀뛰기를 하며 착탄 지점에서 벗어나버렸다. 서커스의 무장으로는 저 둘에게 유효타를 낼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정확히는 반격할 여유가 없어 회피에만 집중하고 있는 상황에 가깝긴 했지만, 지켜보는 채티 스틱 입장에서는 별로 재밌는 광경은 아니었다. 남의 집 대문을 부수고 들어와서 다시 벽을 부숴가면서 뛰쳐나가는 모습은 아무리 생각해도 웃을 수가 없는 광경이었다.

"보스, 스마트 클리너를 보내서 길을 막아볼께."

"그만하면 됐어, 지금은 플랜에 집중할 때니까.... 그리고 이구아수가 「레이븐」의 인정을 받는다면 그 것도 재밌는 일이잖아?"







"휴우.... 이 짓도 하니까 느는 느낌인데."


-저번보다 신경계 복원율이 훨씬 빨라졌어요. 가동시간을 늘리는 건 힘들지만 지금보다 반응속도를 더 끌어올릴 수도....

합류 지점에 도착하자 「레이븐」의 오퍼레이터가 이구아수와 「레이븐」을 먼저 마중 나와있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이구아수. 방금 전의 칼라의 진술로 루비콘 성계의 위기에 대해 확인할 수 있었어요. 브랜치의 커넥션을 통한다면 당신을 도와줄 용병들을 더 부를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침착하게 이구아수에게 브리핑을 하던 오퍼레이터는 나이트폴에 나오는 「레이븐」을 보고서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당신, 내가 파일 벙커는 사용 금지라고 말했을텐데?"

"언니, 잠깐만. 이번에는 진짜 벽에만 쓴 거잖아. AC 상대로는 맞출 생각도 안했다고. 그러니까 약속을 지킨 거 아냐?"

"일단 나중에 얘기하자.... 죄송합니다, 보다싶이 저희 쪽의 「레이븐」은 말하는 게 이 모양이라.... 브랜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다보니 이런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드렸군요."

"기다려봐. 할 얘기가 있어."

"「레이븐」의 명의에 대해서 물어보는 건가요? 그건 농담이었으니 마음대로 하세요. 어차피 저희는 이름을 넘겼으니까요."

-그보다도, 저에 대해서는 신경도 안 쓰는 건가요? 일단 인간이 아닌데요.

아무리 봐도 방금 전에 외계인의 존재를 확인받은 반응이 아니었기에 이들에게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뭐어, 인간만이 AC가 타는 게 아니잖아? 자유를 위해서 AC를 타는 거라면 나는 뭐든 좋아."

"그렇습니다. 구세대의 강화인간이라고 할지라도 스스로의 의지로 싸운다면 그걸로 충분한 겁니다."

"내 말은.... 코랄의 가능성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거야. 지금 우리 옆에는 코랄의 떼지능을 조절할 수 있는 수단이 있잖아."


이구아수는 지금까지 코랄을 실체화된 정보 바이러스 정도만 생각했지만(그리고 이 정도만으로도 성간기업 하나쯤은 확실하게 보낼 수 있었다) 신더 칼라는 코랄이 인류를 지배할 수 있는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이구아수가 생각치도 못한 방향으로 우주가 불타는 가능성을 오버시어는 50년 전부터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코랄이 불타지만 않는다면 바스큘러 플랜트에 응축된 코랄의 상전이 반응을 일으키는 것도 가능한 일이에요.

상변이가 일어나는 동시에 저의 파장을 입력한다면 증식하는 코랄은 저의 뜻대로 움직일 거에요. 최소한 하나 이상의 성계가 코랄의 것이 되는 거죠. 그리고 증식한 코랄은 진공 상태가 유지되는 한 연쇄적으로 상변이를 일으킬테니 한번만 이 루비콘 성계을 넘으면 우주가 코랄로 가득차게 되겠죠.

이구아수는 말 그대로 우주가 불타는 광경이 어떤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다른 인간들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인간들의 성간기업들은 모두 완전히 무너지겠지. 코랄이 흐르는 한 모든 성간 항로는 코랄의 소유니까."


오퍼레이터의 목소리가 살짝 떨리기 시작했다.

"코랄의 제국인건가요."

-아뇨, 코랄의 파장은 생각보다 단순해요. 이미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모든 욕구가 충족되니까요. 독재자 같이 지배할 능력도 지배할 의지도 없어요. 성간기업이 무너지면 그 공백은 단지 혼란과 투쟁으로 가득차겠죠.

「레이븐」은 모든 성간기업들이 무너진 후 루비콘3을 머리 속에서 그려보았다. 압제에 대한 복수로 전쟁을 망설이지 않을 루비코니안 뿐만 아니라 혼란한 우주 속에서 루비콘3의 독립용병 네스트가 더욱 성장한다면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국가가 생겨날 것이다.  

"레이븐의 나라...."

「레이븐」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먼저 오퍼레이터를 바라본 후(다행히 여전히 그 도도한 얼굴을 유지하고 있었다) 확신에 찬 눈빛으로 이구아수에게 말했다.

"저기 있잖아, 어차피 난 니 여친한테 당해서 은퇴밖에 안남은 퇴물이야. 하지만 이름값만은 아직 비싸게 팔리는데, 얼마에 살래?"

이구아수가 대답했다.

"621만 빼고, 전부 다 가져." 


-이구아수 씨는 항상 손해만 보는군요.


에어는 이런 퉁명스러운 감상을 남길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