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루비코니언들이 기업에 맞서서 싸웠던 것은 아니었다.


개중 일부는 기업 편에 서서 동포들을, 제 고향 땅의 사람들을 착취하고 억압하는데에 앞장섰고, 기업이 몰락하리라는 그 미래를 등한시한채 자신들만의 이익을 좇다가 결국 기업들이 영향력을 상실하며 루비콘 성계를 떠나게 되었을 때, 기업의 개로서 충성하고 충정을 바쳐온 이들은 루비콘 3에 남겨졌다.


자신들을 기업 소속이라 자부하면서도, 기업들에게 있어서는 이용해먹다 버릴 잡패나 다름 없던 이들.


이들에게 착취당한 루비코니언들은 이들을 ‘부역자’ 라고 불렀다.


그리고, IB-C03: HAL 826을 사신으로써 마주하게 된 카르민 헥스.



‘난....난 여기서 죽는 건가...?’



그녀도 부역자 중 한명이었다.


아르카부스 코퍼레이션의 부역자로서 꽤나 깊이 있게 활동해왔던 그녀는 해방 전쟁 당시 아르카부스가 상황의 주도권을 휘어잡고 바스큘러 플랜트를 재건해 끌어올렸을 당시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기술연구소의 유산 되는 저 붉은 빛의 흉험하게 생긴 AC를 처음 보았던 그 순간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 순간이, 지금 그녀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죽음을 앞두고 한 눈 팔아서는 안 되지만, 이상하게도 지금의 그녀의 머릿속에 자리잡은 것은 그 순간에 대한 기억.


불길한 기운이 느껴지는 붉은 와인 빛깔 색의 AC. 그러나 당시 그녀에게 있어서는 그 불길함조차도 아름다움으로 느껴졌었다. 자신이 살면서 이토록 아름다운 존재는 본 적이 없다는 생각을 했을 정도로 그녀에게 있어서 HAL 826은 정말로 아름다워서 절로 무릎 꿇어도 이상하지 않을 존재였고, 그 감상과 평가는 해방 전쟁 종전 이후로도 이어져 홑몸이 된 자신만을 이끌고 그 아름다웠던 AC를 계속 떠올리며 그걸 신처럼 떠받드듯 하는 사이비 교단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교단은, 자신이, 자신들이 섬기던 그 신적 존재의 손에 의해 분쇄되고 있었다.


자신이 쏘아 올렸던 그 작은 공은, 엄청나게 불어나버린 거대한 얼음덩어리가 되어 자신을 짓뭉개려 하고 있었으나 도망갈 틈 같은 건 아예 없었다. 애초에 이 상황을 만들어버린건 그녀 자신이었고, 저 AC는 그녀를 절대로 살려 보낼 생각은 일절 없어보인다는 점이다. 오히려 고통스럽게 죽인다면 더 고통스럽게, 살아있는 것 자체에 대한 환멸을 느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고통을 주겠지.



‘웃기는 소릴…’



그러나, 자기 자신의 파멸을 목도하고도 그걸 인정하지 않은, 사리분별을 할 수 있는 판단력을 상실해 흐릿해진 그녀의 눈에 서린 것은 오기, 그리고 오만이었다.



“내가, 우리가, 동포들이! 어떠한 핍박 속에서 살이 찢겨나가는 고통을 견뎌내야 했는지를 알고 있다면 이럴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난동을 부릴 수 없을 것이다!”



레이저 라이플과 플라즈마 라이플이 빛을 반짝이며 에너지를 뿜어내고, 천사의 날개마냥 하얗게 칠해진 살포형 미사일 수프에서 미사일을 쏘아대나, 가호와 같이 코랄 실드 아래에서 부스트 순항 이동을 하긴 커녕 그저 걸어오고만 있는 HAL 826에겐 하등 의미가 없는 공격에 불과할 뿐. 실드를 전개한 상태로 IB-C03W3: NGI 006 코랄 미사일을 과충전하기 시작하던 저 붉은 AC는 사람이 숨을 내쉬고 들이마시듯 움찔 멈춰서더니 사슬에 매여 십자가형에 처해진 순교자처럼 매달려있는 자신의 레플리카를 향해 머리를 들어 시선을 고정했다.


철컥, 코랄 미사일 유닛의 개폐기가 열리며 붉은 빛에 휩싸인 미사일의 탄체가 역시 코랄을 머금은 자탄과 함께 분리되어 비행하기 시작하자 연소된 코랄이 내는 소리는 마치 비명처럼, 통곡 소리처럼 울려퍼져나가며 HAL 826의 레플리카인 고철 덩어리를 향해 쇄도했고, 그 존재를 신의 형상이라 일컫던 카르민은 미사일을 휘감고서 이글대는 코랄이 레플리카를 집어삼키며 어설트 아머에 버금가는 대폭발을 일으키는 것을 무력하게 지켜보는 것이 전부였다.


콰앙-!


대폭발에 휩쓸린 파편들은 붉게 녹아내리며 무너지는 천장과 함께 쇄도했고, 그 파편을 짓밟으려는 듯 다가오는 HAL 826을 향해 AC 토르케마다가 모든 화력을 쏟아부었으나 무의미함에 가까웠다. 절망이 한데 뭉친듯한 비명을 내지르고 있는 제네레이터에 직결된 코랄 실드는 펄스 아머 이상의 무언가였으니까.



“도움을 요청해도, 구원을 바라도, 그 누구도 손을 내밀어주지 않았다! 루비콘 해방 전선은 그랬단 말이다! 어딜 봐서 저 악독한 위선자들이 루비코니언의 대표를 참칭할 수 있다는 말인가, 도움이 필요하다고, 죽어가고, 고통에 신음하던 이들을 구원해주지도 못할 망정, 기업과 독립 용병이란 외세를 끌어들인 불순분자들 주제에!”



물리적 공격으로 저 AC를 멈출 수 없었던 카르민은 악에 받친 듯이 마음 한 켠에 꾹 담아두었던, 그러나 루비콘 해방 전선을 향해서 하고 싶었던 말들을 일제히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녀가 루비콘 3 행성의 토착민이자 구성원으로서 기업들에게, 도저들에게 고통받고 유린당했을 당시에 아무리 도움을 바라도 해방 전선은 자신의 비명과 호소에 귀를 기울여주지 않았다는 것이 그녀가 주장하는 논지.



“그런 극악인들의 세력을 모두 불태우겠다. 그놈들이 쌓아올린 모든 것을 파괴하겠다. 이것이 죄라도 된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냐, 네 녀석은!

힘 없는 어린 양들이, 희생제에 바쳐지는 양들이, 그렇게 무수히 죽어나간 희생양들이 구원자를 바라는 것이 사치인가? 자신들을 이 지옥 속에서 건져내주는 신을 바라는 것이 무슨 죄인가? 아무런 힘이 없기에, 그런 자신들을 지켜줄 수 있고, 그런 자신들의 뜻과 소원을 대리하여 이루어줄 수 있는 전지전능한 절대신을 바란 것이 죄냐는 말이다!”



그렇기에 이것은 합당한 복수다. 라고 분노에 가득 차서 말을 하고 있으나 그녀의 논리에는 허점이 있었다. 그렇기에 HAL 826은, 그것의 동력원이 된 강화 인간 C4-621은 자신이 듣고 있기에도 그 허점이 너무나도 방대하여 논리 자체를 역으로 집어삼켜 궤변으로 만들고도 남을 소리였기에 입을 열어 반박하려고 시도했었다.


뒤에서 날아드는, 불행하게도 어설트 아머로 죽지 못해버린 AC 파나틱의 레이저 캐논이 아니었다면 입을 열어 말했을지도 모르지만.


HAL 826은 후방에서 가해지는 공격을 그저 옆으로 퀵 부스트 기동을 하는 것으로 손쉽게 회피하고는, 그대로 퀵 턴을 하며 뒤를 돌아 자신을 향해 느릿하게라도 어설트 부스트로 접근하던 AC 파나틱의 측면을 잡았다.


-!!!!


공기를 찢어발기는 코랄의 비명 소리, 그리고 전개되어 붉게 벼려내진 광검을 생성한 코랄 발진기. 그것이 이 공간 속에서 건조하고 탁한 공기와 함께 베어가른 것은 AC 파나틱의 날개처럼 달린 레이저 캐논과 코어 뒤편의 부스터 유닛이었다.



[카르민, 도망-]



모든 추진 장치를 파괴당한 저 뒤틀린 천사, 그리고 그 뒤틀린 천사의 주인 되는 이가 감정을 읽을 수 없는 음성 합성기를 통해 애절함을 담아 다급하게 말을 하려 했으나.


콰직!!!


광검이 거둬들여진 코랄 발진기는 이미 반쯤 녹아버린 코어의 후방을 꿰뚫어 부숴 으깨며, 코어 앞으로 형용할 수 없어진 형상을 해버린 무언가를 그 끝에 매달고 튀어나와버렸다.


그리고, 카르민은 보았다.


코랄 발진기, 그 뾰족한 끝에 내걸려있는 자신에게 있어서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남자의 모습이.



“아...아..아냐.... 안 돼…”



코랄 발진기에 밀어붙여지고, 척추와 갈비뼈가 으스러져 몸 속의 모든 장기를 헤집어 난도질해 고기반죽으로 만들었기에 즉사해도 모자라지 않을 정도의 치명상을 입었거늘, 그 남자는 불길하게 느껴질정도로 코랄의 잔향이 선명한 무구의 끝에 상반신이 꿰뚫려진 채, 목에 붙어 있던 음성 합성기조차 충격으로 분리되어버린 상태로 피를 흘리며.


AC 토르케마다를 향해 손을 뻗으며, 그것은 피가 울컥이며 흘러나오는 입을 열어 한 단어를 웅얼거렸다.


어머니.


아마도 그런 단어를 입에 담은 듯 했으나, 그 목소리의 뒤를 이어 흐르는 눈물만큼은 카르민 헥스에게 닿지 않았다. 분명 닿고 싶었을테지만, 그럴 틈 따위는 단 하나도 주어지지 않았다.


그 웅얼거림이 끝나며 입이 닫히는 순간.


키이잉-!


HAL 826의 렌즈가 발광함과 동시에 코랄 발진기에서 뿜어져나온 코랄은 그 남자를 말 그대로 소멸시켰으니까.



“아...아아아..!!!”



카르민 헥스, 가족이란걸 이룰 수 없는 몸을 후천적으로 갖게 된 그녀에게 있어서, 자신에게 있어서는 정말로 친 자식, 아들과 다름 없었던 존재가 눈 앞에서 잔혹하게 살해당하는 그 광경은 이성을 상실하게 만들기에 충분했고, 그녀는 절대로 해선 안 될 선택지의 손을 들어주었다.



“안 돼!!!!!”



AC 토르케마다, 제 명을 스스로 단축하듯이 어설트 부스트를 전개해 HAL 826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제 주인 되는 이에게 있어서 자식 같았던 존재의 복수를 위해서든, 아니면 소중한 존재를 완전히 상실해버려 삶의 가치를 잃어버렸기에 스스로의 죽음을 위해서든.






아이러니하게도, 이 자리에서 스스로의 죽음을 위해 달음박질하는 인물은 한명 더 있었다.


강화 인간 C4-621, 그는 코랄 실드에 감싸인 HAL 826 안에서 자신을, 이 AC를 향해 AB 기동으로 접근하는 AC 토르케마다를 보며 쓰게 조소했다. 자조에 가까운 웃음이었지만.


코랄 실드의 내구성은 AC들의 보편적인 익스팬션인 펄스 아머와 비교해서 그에 버금가는, 혹은 그 이상으로 뛰어난 방어력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그만큼 과열 수치는 상당했기에 반격을 하는 대신 그 자리에 서서 적 AC의 레이저 라이플과 플라즈마 라이플이 과열되기를 기다렸다가, 각 무기의 총신들이 붉게 달아오르며 쌓인 열을 급하게 방출하기 시작하자 HAL 826의 차례가 찾아왔다.



‘저 여자가 무슨 말을 했더라. 아, 기억났다.’



고출력의 부스터로 코랄을 불태워 급상승, 그리고 급강하를 눈 깜짝할 새에 행하여 AC 토르케마다를 짓밟아 강제로 멈추게 한 다음, HAL 826은 매니퓰레이터를 뻗어 자신에게 반항하듯이 미사일을 살포해 어떻게든 반격하려는 토르케마다의 날개 역할을 맡고 있는 살포형 미사일 런처인 수프를 붙든 뒤, 곧바로 출력을 개방해 새의 날개를 산채로 잡아 찢어발기듯 뜯어냈다.


코랄의 아우성이 마치 방금 전 그 여자의 비명처럼 들리는 환각 속에서, AC 토르케마다의 제네레이터가 출력을 끌어올리는 소리가 들리며 플라즈마 라이플이 필요 이상으로 충전되고 있는 모습에 왼팔의 코랄 발진기를 전개해 토르케마다의 왼쪽 어깨를 절단하고, 그것의 코어를 각부로 걷어차 날려버려 녹슨 쇳덩어리로 된 바닥을 구르게 만들고는 오른팔의 코랄 라이플을 격발하여 적의 마지막 저항 수단인 레이저 라이플을 유폭.


그리고 쾅, 코어의 외장이 찌그러질 정도로 그것을 밟은 HAL 826에서 음성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루비콘 해방 전선.....이들에게 모든 죄를 전가하고 있다는 것은, 자기 합리화에 지나지 않아. 그 발언에서 네 녀석이, 네 녀석들이, 테러리스트 주제에 자신들이 진정한 신의 권능을 이어받은 이들이라고, 스스로를 루비코니언의 대표라고 호기롭게 참칭하는 것은 오히려 너희 테러리스트들이다.

그마저도 존재하지 않는 신의 허울뿐인 이름에 기대, 자신들이 벌인 모든 악행을 그저 신의 뜻으로 돌리며 책임에서 자기회피를 벌이고 있을 뿐.”



[“존재하지 않는 신의 허울뿐인 이름이라도 빌려서, 구원받아야 했던 이들을 구원해주지 못한 위선자들에게 심판을 내린다는것이 무슨 문제라도 된다는 거냐, 그 위선자들이 구원해주지 않아서, 그렇기에 악마의 손을, 기업의 손을 잡아 그들의 노예가 되기를 자처해야만 했던 우리들의 아픔과 고통에 대한 복수를 외치는 것이 옳지 않다는 걸 논하느냐!!”]



기업의 노예, 부역자 선언을 들은 HAL 826에서 흘러나온 음성은.



“...하, 그런가.”



혐오감을 뒤집어쓴 비웃음.


그 비웃음이 끝나고 몇초 지나지 않아, 코랄을 머금어 불안하게 일렁이는 전격이 HAL 826의 코어 중심에서부터 뻗어져나오기 시작했고. 이윽고 활성 코랄이 폭발을 일으키며 어설트 아머를 전개, 각부 아래 짓밟힌 AC 토르케마다는 영거리에서 코랄을 한껏 뒤집어써 사람이 화마에 휩싸여 녹아내리듯 외장이 녹아내려 징그러울 정도로 더 기괴하게 뒤틀려졌다.


그리고 전신의 장갑이 개방되어 익스팬션 전개로 인해 발생한 고열을 방출하며, 짓밟고 있던 AC 였던 것의 코어 였던 무언가를 향해서 방금 전까지 쥐고 있던 코랄 라이플을 내려놓은 오른쪽 매니퓰레이터를 뻗어 꿰뚫고, 그 안에서 멀쩡한 사람은 전혀 되지 못하게 심각한 화상을 입은 카르민 헥스를 끌어냈다.



“자신들이 받은 고통에 복수하고 싶다는 그 뒤틀린 의지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네 녀석과 같은 고통에 휩쓸리게 하고, 피를 흘렸기 때문에 마땅히 타인도 피를 흘려야만 한다는 그 논리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죽고, 소중한 존재를 잃어야만 했는지!”



강화 인간 C4-621은 입에서 선명한 빛깔의 생혈을 토해내며, 카르민 헥스의 논리에 반박하기 시작했다. 어설트 아머를 사용하면서 그의 몸 안에 주입되는 코랄의 양이 순간적으로 늘어났다가 어설트 아머의 파장이 폭발을 일으키는 순간 코랄이 빠져나갔는데, 그런 경험을 두번이나 하게 되자 이미 그의 신경계는 전부 코랄에 의해 빨갛게 물들어 피부 아래로 코랄이 비치는 것이 보일 정도였다. 각혈했음에도 입 안에서는 피의 맛조차 느껴지지 않고, 후각은 피의 비릿함조차 감지하지 못하는 상태.


코랄로 인한 화상 때문에 온 몸이 산채로 불타오르고 있을 카르민 헥스를 그대로 쥐어 터트려 죽이겠다는 기세로 매니퓰레이터를 가동해 그녀의 갈비뼈를 으스러트리기 시작하며, 강화 인간 C4-621의 발언이 이어졌다.



“정당한 복수도, 정당하지 않은 복수도 오늘 이 순간에 의미가 없어, 네 녀석들이 저지른 행위는 복수라고 명분을 내세운 학살과 파괴일 뿐이고, 생존자들은 오늘날 이후로 사라지게 될 네 녀석들의 만행으로 인해 상실한 것을 계속 기억하며 절대 채워지지 않을 빈 자리를 뼈저리게 체감하며 살아가야겠지.”



“신의....신처럼..... 군림하고 지배하는.. 해방 전선은... 루비코니언을 버렸어...!”



“그럴 수 있겠지, 왜냐하면 루비콘 해방 전선은 신이 아니니까.”



강화 인간 C4-621은 각혈하면서도 아직 명줄이 붙어있는 카르민 헥스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둔해져가는 감각 속에서 무의식에 가깝게 자신이 담아두었던 말들을 멈추지 않았다.



“루비콘 해방 전선은 신이 아니고, 신이 되고 싶어하지도 않았고, 신이 되려고 한 적도 없었다.

그들은 인간이다. 그저 이 세상을 살아갈 뿐인 인간.”



흐릿해지는 시야, 희미해지는 청각, 둔해지는 감각, 그 속에서 강화 인간 C4-621은 제 전우인 러스티를 떠올렸다. 미들 플랫웰, 인덱스 더넘, 리틀 쯔이, 아실, 로쿠몬센. 루비콘 해방 전선의 일원들을 떠올렸다. 만난 적 없는 섬 돌마얀마저 마음 속 한켠으로나마 인정하고 존중하고 있었을 정도였으니까. 그리고 뒤이어서 떠올린건 발람의 이름을 지우고 레드 건으로서 자신들을 도와줬던 G6 레드와 포토맥, 올버니, 오오사와, 케네벡. 그 다음으로는 베스퍼였던 프로이트, 오키프. 거기에 첫 단추를 잘못 끼웠을 뿐, 좋은 아군으로서 시작할 수 있었던 빌렘 메이스와 그의 수양딸인 킷 메이스.



레이븐.



그리고, 에어.


사무치게 그립지만, 지금은 만날 수 없는 존재.


그녀는 인간이 아니다. 그렇다고 그녀를 보고싶어하는 자신도 인간이 아니다.


그러나, 그 누구보다 인간적이고, 인간적일 수 있고, 인간처럼 살아가기를 바라왔다.


강화 인간 C4-621, 레이븐은 생명이란 이름의 불꽃이 마지막 최후까지 타오르는 감각만을 느끼며 아련함 담긴 미소를 지었고.



“너는 그저 이 세상에서 어떻게든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인간이, 그저 인간 대 인간으로서 타인에게 손을 먼저 내밀었던 그 인간들이, 자신에게 손을 내밀지 못했다고 해서 지옥 속에서 자신을 구원해주지 않은 비정한 신으로 빗대는 것은 궤변에 불과하다.

너는 그저 자신이 처한 상황의 책임을 누군가에게 전가하지 않으면 안 될 뿐이었고, 그렇게 자기합리화를 진리라고 퍼뜨리며 이 행성을 불태우려고 했다. 그 뿐.

그렇기에 너희가 신을 들먹여 장황하게 논리를 늘어놓아도 만행이 정당화되진 않아. 그 지옥에서 버틸 수 없었기에 지옥의 악마와 손을 잡았다는 것 역시 너희가 스스로 한 선택이다.”



그 말을 끝으로, 이토록 길게 말을 해봤을까 싶을 정도로 그가 마음 속에 담아두었던 것이 날아가버렸다.



“그렇...컥, 다고, 이, 이.... 행위는, 정의가, 되, 되지, 못 하-”



마지막으로 목숨줄을 쥐어짜내듯, 카르민 헥스의 입에서 나온 말은 폐부를 깊숙히 찌르는 갈비뼈 조각에 의해 각혈하며 끊어져버렸다. 이미 청각이 상실된것이나 다름 없어진 레이븐에게 있어선 그 말이 제대로 들릴 리 없었지만, 흐릿한 시야는 그녀의 입이 움직이는 모양을 관측했고 아마도 그런 말을 했으리라 추측하는지 띄엄띄엄, 천천히 입을 연 레이븐이 대답했다.



“....이건 정의가 아냐, 심판도, 선도 악도 아니지.

루비콘 해방 전선은 그 자체로 선이 될 수 없어, 그렇다고 악은 아니지. 그저, 최대한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서 노력하며 투쟁하는 인간들일 뿐.

그렇기에, 나는.... 너희들이 그토록 찾는 신이 진짜 존재하는지, 확인 할 수 있게 기회를 줄 뿐이다. 내가 할 일은-”



레이븐은, 익스팬션의 마지막 트리거를 당겼다.



“그렇게 찾던 신의 앞으로, 보내주는 것.”



어설트 아머 전개, 다 죽어가는 맨몸으로 코랄의 격류에 휩쓸려버린 카르민 헥스가 맞이하는 것은 존재의 소멸. 말 그대로 코랄에 씻겨나가듯 뼈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져버렸다.







쿵-


그리고, 모든 할 일을 마친 HAL 826의 거체가 힘 없이 무너져내려 무릎을 꿇었다. 살아있지 않은 강철 거인의, 살아있던 심장의 박동이 약해져가고, 허물어져갔다. 연이은 어설트 아머 사용으로 레이븐의 생명 신호가 빠르게 줄어들기 시작했고, 그가 밟고 서있던 회색 실선은 거미줄보다 얇게 줄어들어 그의 몸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툭, 끊어져버려 삶과 죽음 그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던 레이븐의 몸뚱아리를 죽음을 향해 곤두박질치게 만들었다.


어설트 아머를 사용하지 않았다 해도 이미 HAL 826의 생체 부품이 되기를 자처한 이상 죽음이 다가오는 것은 당연했고, 레이븐이 원한 것은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는 것이었으니까. 그래서 어설트 아머를 사용하며 스스로의 균형을 잃게 만드는 행위에 거리낌이 없었던 것이다.



‘...에어.’



그리운 이름을 불러보려 해도, 입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리드가 한 차례 흔들리고, 어설트 아머의 영향으로 약해진 천장이 무너져내려 그 파편이 주변에 내리꽂혀도 움직일 수 없어졌는데, 입을 여는 것이 가능할리가 없다.


그 대신, 고개를 들어 미약하네 내리쬐는 희미한 빛을 바라본 레이븐은 어두워져가는 자신의 시야를 의심했다. 죽음을 앞두고서 몸이 보여주는 허술한 환각일까? 차라리 그랬다면 좋을텐데.


레이븐은 무너진 천장 사이로 들어오는 빛을 받으며, 진짜 천사를 연상케 하는 무언가가 내려오고 있는걸 보는 것을 마지막으로 눈을 감았다.


그리고, 감각이 차단당한 그의 몸이 죽음이란 이름의 심연에 빠지려는 순간.



“늦어서 미안해요. 레이븐.”



레이븐에게 있어선 익숙할 목소리가, 그의 손을 붙잡아 심연에 빠지지 않게 지켜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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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재회


그래도 자기가 늦었다는걸 알고 있어서 시작부터 사과하는 에어였다


재회한건 좋은데 621 몸상태가 좀 많이 안좋아보인다 해도 걱정하지 마라 아직 여기서 이야기 끝낼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


그리고 좀 욕심이 될수도 있겠지만 순애 분량이 조금씩 더 늘어나서 진행이 될거다


근데 다음편은 순애랑 거리가 조금 있을지도 모름...


아무튼 이번 글도 읽어준 모두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