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 적대 세력의 개입이라도 있었나?”



“아니요. 그냥.....관리 실수입니다.”



애초에 행성 봉쇄 기구의 무인병기를 무작정 개조해서 코랄 제네레이터를 탑재했는데도 사고가 터지지 않는다면 그게 거짓이 아닐까, 빌렘 메이스가 덧붙이기로는 다행스럽게도 탈주 당시에 아무런 인명 피해가 생기지는 않았다지만, 무인 MT를 거의 30대 정도나 소실당했다고 실토했다.


뭐, 그 정도의 피해를 입고도 사람이 한명도 다치지 않았다면 그게 정말 천운이겠지만.



“코랄 동력으로 움직이는 행성 봉쇄 기구의 병기....그걸 통제하려고 시도한 것 자체가 우행이라고 생각됩니다. 레이븐.”



“행성 봉쇄 기구조차 실패한 일이니까.”



“저조차도 뼈저리게 느끼는 사실인데, 그런 잔혹한 진실로 찌르는 것은 그만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아주 약간의 악의가 첨가된 촌철살인에 의뢰인이 할 수 있는건 거듭 부탁하는 것 뿐이라, 빌렘은 보수 관련해서는 차후에 레이븐의 제안에 따라 조율하기로 결정하면서도 조건을 덧붙였다.



“파괴하셔도 책임을 묻지 않겠습니다만, 가능하시다면 RaD로 복귀할 수 있도록 손써주실 수 있으신지요?”



“...코랄로 움직이는 병기를 복귀시키라니, 내가 말로 설득하기를 바라는 건가?”



“하하....이러나 저러나 저희 물건이라, 물건이 제자리에 돌아오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하지요.

어디까지나 가능하시다면, 의 경우입니다. 무리하실 필요는 없고, 첫 실전으로 화려하게 저질러주시는 쪽도 저희는 괜찮습니다.”



말은 저렇게 해도, 결국 불안정한 시한폭탄이나 다름 없는 무한동력 전쟁병기를 세상 밖에 풀어놓은 자신의 책임이 없다고는 못할 입장이라서 차라리 파괴해야 한다면 레이븐의 손에 의해 파괴되는 쪽을 원할 것이다.


AAP07R: 발테우스 TYPE C.


처음 조우한 당시 외형적 차이라고는 우측 완부의 매니퓰레이터 유닛 대신 장착되어있던 대형 전기톱 다섯 자루로 이루어진 손, 그리고 미사일 런처 전개를 위해 장착되어있던 링 형태의 편향장치가 없다는 차이 정도.


그러나 이번에 빌렘 메이스의 태블릿 단말기를 통해 본 발테우스의 외형적 변화로 대표적인 것 하나는 아르카부스의 신병기 중 하나였던 VE-60SNA 스턴 니들 런처와 유사한 형태를 지닌 장사정포가 코어 MT 유닛의 왼쪽 어깨 쪽으로 뻗어나와 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더욱 가관인 것은 그에 대한 설명.



“제네레이터를 통해서 안정적인 동력이 계속 공급되고 있으니, 모티브가 된 아르카부스의 그 병기에서 착안해 아예 압축된 코랄을 발사하는....예, 코랄 레일건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듯 합니다.”



그러니까, 속도만큼은 아이비스를 연상케 할 정도로 폭발적인 속력을 낼 수 있는 그런 병기에 단 일격으로 AC를 종잇장 찢듯 박살내버릴 거대 전기톱을 달아버린 것도 모자라서 코랄을 발사하는 레일건까지 만들어서 부착했다?



“...내가 그때 킷의 MT에 총을 쏜 앙금이 아직도 남아있는 건가?”



레이븐의 입장에선 자신을 죽이려고 일부러 함정을 판게 아닌가 하는 합리적 의심이 들게 만들기에 충분했고, 이에 따른 상대의 대답은.



“솔직히 자식 둔 아버지의 입장에서 아직도 아주 조금 남아있긴 합니다만.”



아니라고는 말 안하는 저 혀를 내두를 뻔뻔함이었다.



“...이런 걸 두고 뒤끝이 심하다고 하는건가요.”



그리고 인간의 영 좋지 않은 면을 이런 식으로 실제 느끼게 될 줄은 몰랐던 에어의 신랄한 평가까지.


그렇다고 가만히 방치해둬서 좋을 건 하등 없는 일이라, 레이븐은 이 의뢰를 수락했다.






그리고 그 의뢰를 다음 날 아침에 실행하러 가기 전,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으니.



“드디어, 마침내!”



손을 하늘로 번쩍 들어올리며 뛸 듯 기뻐하고 있는 저 문제적 남자인 프로이트를 좀 조용히 시켜놓는 것이 우선이라, 분명 의뢰에 대한 내용을 일부라도 유출시켰다간 계속 들러붙어서 시끄러운 짓을 하다 못해 의뢰에 무단으로 따라와서 훼방을 놓을지도 모를 위험요소를 제압하기로 결정.


그토록 레이븐과의 모의전을 기다리고 또 기다려왔던 프로이트는 RaD제 가상 시뮬레이션이 아니라 AC 대 AC로 이루어지는 현실 모의전으로 하겠단 레이븐의 말에 무언가 좀 더 재미를 덧붙이고 싶었는지 자신의 AC에 약간의 조정을 가한 상태였다.



“고집을 버린 거야, 뭐야?”



러스티는 AC 록스미스에 생긴 대표적인 변화가 되는, 우측 매니퓰레이터에 마운트되던 터너 어설트 라이플 대신 올라간 발람제 리니어 라이플인 해리스가 올라간 점과, 개방되어있는 코어의 상부를 통해 조립되고 있는 VP-20C 제네레이터를 올려다보며 옆에 있는 프로이트에게 물었다.



“내 AC는 블레이드 사용 시 추진력이 좋은 편인데다 ACS 강제 캔슬 기능을 조합하면 순간 추진력만으로 상대와 거리를 엄청 좁힐 수 있겠더라고. 그래서 떠오른 전법을 실험해보고 싶어졌어.”



프로이트의 대답을 들으며, AC 록스미스에 VP-20C를 장착시키는 작업을 직접 하던 아르카부스 선진개발국 출신 엔지니어들은 목구멍을 꽉 채워 맺혀있던 한이 쑥 내려간듯, 편안한 표정을 짓는 것을 보더니 이 광경을 V.II 스네일이 보았더라면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에 대해 진심으로 고민했을거란 의식의 흐름이 이어졌다.


뭐, 제네레이터의 교체는 괜찮아도 여전히 무장은 발람제 실탄 라이플을 고집하는 모양새에 이를 바득바득 갈다가 결국 거품을 물고 뒷목을 잡았을거란 짧은 결론까지 내리면서 말이다.



“...그 실험 상대는 전우고?”



“그렇게 떫은 표정을 지을 것 까진 없잖아, 레이븐이 질거라고 생각하진 않을텐데?”



하긴, 시뮬레이션을 통한 모의전에서 레이븐이 패배한 것은 어셈블리 완성을 위한 과도기에서 벌어진 현상이라 납득할 수 있던 문제였으므로 딱히 프로이트의 말에서 반박할 논점을 찾을 이유가 없던 러스티는 그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일 뿐.


철컥-


이윽고 제네레이터의 교체를 마친 AC 록스미스의 코어가 재조립되자, 소리 나게 손뼉을 쳐서 손을 털어낸 프로이트는 또 다른 흥밋거리와 즐거움을 제공해줄 제 자신의 애기(愛機)에게 향했다.


그리고, 그 상대가 되어줄 레이븐의 새 AC가 탑재된 컨테이너가 벽 밖의 모의전 필드를 향해가는 모습을 보며 러스티를 비롯한 AC 파일럿들은 한 가지 직감한 것이 있었다.


승패와 상관없이, 이 시대의 AC 설계사상에 대한 변곡점이 생겨날지도 모른다는 것을.








레이븐은 개방되지 않은 컨테이너 내부에서 자신이 앞으로 함께하게 될 기체, AC 루치페르에 탑승한 채 자신의 손으로 OS를 직접 조율하는 중이었다. 아르카부스가 극한으로 개조했던 사형수 형틀과 같던 조종석이 아니라, 내구성 하나만큼은 일전의 발테우스와의 재교전을 통해 입증되었던 발람제 신형 시트가 장착되어 평범한 AC의 것과는 다를바 없는 구조.


그러나 AC의 모든 시스템을 총괄해줄 소프트웨어를 구성하는 것은 필요 없는 기능들이 절제된, 효율만을 위해 움직이게끔 설계된 루비콘 3 조사기술연구소의 것.


이 OS 팩의 설정에 약간의 보탬을 해준 오키프, 그리고 코랄의 특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OS를 로더 4의 것과 유사하게끔 재조정해준 에어에게 마음 속으로 감사를 표하던 레이븐의 귓가에 선명한 메아리 대신, 기계적인 무전 수신음이 들려왔다.



[“모의전 필드에 도착했습니다. 레이븐.”]



에어, 그녀의 음성을 흐릿하지 않은 속삭임으로 듣던 순간이 엊그제 같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음성이 이제 이런 기계적인 수단으로 들리는 것에 낯선 기분이 들긴 했으나, 이제 레이븐은 제 자신이 원하든, 그녀가 원하든간에 더 이상 머릿속으로 메아리치는 목소리는 들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런다고 해서 둘이 크나큰 것을 상실한 것은 아니다.


그저, 서로를 연결하던 형태가 바뀌었을 뿐.



“확인.”



컨테이너의 이동이 멈추며 전해지는 진동은 AC 행거에 고정된 프레임을 타고 쭉 올라와 레이븐의 몸을 발 끝에서부터 머리 꼭대기까지 부드럽게 뒤흔들어 그의 몸과 정신을 전부 깨워주었다. 더 이상 자신은 강화 인간이 아니다. 그렇기에 강화 인간처럼 싸울 수는 없다.


AC의 모든 조작은 자신의 육감, 반사신경, 손과 발로 해야 하는 것이 되어, 더 이상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여주던 그 AC들은 존재하지 않게 되었기에.


평범한 인간은 될 수 없을지언정, 평범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을 못 하는 몸이 되지는 않았기에.


이윽고 컨테이너의 전면부가 개방되고, 새순이 돋아나는 중인 앙상한 침엽수들이 자리잡은 눈 덮인 설원 한복판에서 전투 모드로 대기중인 AC 록스미스를 관측하자, 한번 숨을 들이마시며 심호흡 한 레이븐은 제 의지에 따라 머리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머리로 결정하고 몸으로 행동하여 스위치를 눌렀다.



[메인 시스템, 전투 모드 기동]



AC 루치페르에서 듣는 첫 COM 시스템 보이스.


보이스가 종료되는 순간, 고정하고 있던 모든 앵커가 해제되어 자유가 된 AC 루치페르는 곧바로 기동해서 컨테이너를 고속으로 박차고 나와 설원의 땅을 긁으며 미끄러지듯 안착했다.



[“움직임이 많이 가벼워졌군, 잡다한 걸 좀 들어낸 소감은 어떻지?”]



“손에 맞을 물건을 든 상대에 비하면 아직 모를 일이지.”



시뮬레이션을 통한 교전과 다른 움직임에 감탄하는듯한 프로이트의 통신이 들려오자, 레이븐은 그렇게 말하는 프로이트의 AC 역시도 필요 없는 것을 빼고 필요한 것을 채워넣지 않았냐는 어조로 맞받아쳐, 프로이트는 그 무전을 듣고는 소리내어 코웃음을 흘렸다.


그동안 AC 록스미스의 족쇄이자 모래주머니 역할을 해주었을 제네레이터와 라이플을 교체했으니 오죽 편하겠는가 하는, 핀잔에 가까운 소릴 못알아들을 프로이트가 아니었으니까.


대화보다는 몸 쓰는 전투를 더 선호하는 것은 공통분모지만, 그 공통분모 덕분인지 프로이트와 레이븐은 제법 대화가 잘 통하는 편이었다. 이러한 대화도 그런 관계니까 가능한 대화.


그러나 대화는 대화, 싸움은 싸움. AC 록스미스의 제네레이터가 공회전을 시작하자 이에 지지 않고 AC 루치페르의 제네레이터도 열을 내기 시작해 두 AC는 상대를 향해 조준하고 있지 않던 우측 완부의 무장을 천천히 들어올려 상대에게 겨누었고.


말은 필요 없다는 듯, 각 AC들은 서로를 향해 에임 어시스트 시스템을 활성화하며 곧바로 어설트 부스트 기동으로 거리를 좁히기 시작했다.






기존의 터너 어설트 라이플보다 교전 유효사거리가 더 길어진, AC 록스미스의 해리스 리니어 라이플이 먼저 불꽃과 함께 강철 탄환을 내뿜었으나, 상대역인 AC 루치페르의 부스터 유닛은 외장 프레임의 기반이 되어준 HAL 826에 탑재되어있던 IB-C03B: NGI 001이라 그저 좌측으로 지나가는 AQB 기동을 한번 했을 뿐이었음에도 프로이트는 제 AC의 에임 어시스트가 일순간 흔들리는 경험에 자기도 모르게 휘파람을 내뱉으며 감탄했다.


그리고 가벼워진 중량과 기연제 부스터 유닛의 파괴적인 출력에 힘입어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온 AC 루치페르의 터너 사격이 시작되자, AC 록스미스는 당연히 회피하면서도 FCS 효율을 내기 위해 새의 꽁지깃 같은 푸른 분사염을 내뿜으며 좌우로 QB 기동을 하며 레이저 블레이드를 전개, 터너의 사격 틈을 그대로 잡아내 부스터의 근접 추진 능력에 몸을 맡기며 파고들어 블레이드를 휘둘렀으나.


키이잉-


순간 소름이 돋게 느껴질 정도의 끔찍한 비명을 표현한듯, AC 루치페르의 좌측 완부에 장착된 코랄 발진기가 전개되어 불길한 붉은 빛의 날을 형성함과 동시에 AC 록스미스의 레이저 블레이드 날을 막아 튕겨냈다.


순간 응집된 코랄의 빛이 흩어지며 공중에 붉은 반딧불이 떠오르다 사라지게 만들었고, 레이저로 이루어진 칼날과 코랄로 이루어진 칼날이 맞부딪힌 여파로 잠시 밀려났던 둘은 각자의 AC가 순간적으로 허공에 떠오르게 되었음에도 그 상태에서도 주저함 없이 기동을 이어나가며 교전을 속행. AC 록스미스는 레이저 블레이드의 과열을 식히며 거리를 유지하다 AC 루치페르의 터너 라이플의 탄창이 한 차례 바닥을 보이기를 기다려 휴행탄수를 계산하고는 곧바로 해리스의 충전과 동시에 블레이드를 재전개하며 다시 급가속했다.


그리고 AC 루치페르는 그런 근접전을 예상했다는 듯, 좌측 행거 유닛에 마운트된 스커더 어설트 라이플과 완부의 코랄 발진기를 교체, 거리를 내어주지 않기 위해 곧장 뒤쪽으로 퀵 부스트 기동을 하며 거리를 쭉 벌려내기 무섭게 스커더 어설트 라이플을 사격.



‘이걸 당할 상대가 누구인지는 알겠지만, 불쌍하다고 해줘야 하겠는걸.’



두 자루의 어설트 라이플을 쥐고서, 한쪽의 사격이 끝났을 때 다른 쪽의 사격이 시작되어 무한히 연계되는 화망을 구축하게끔 구성된 AC 루치페르의 전투 방식을 몸소 체험하게 된 프로이트는 이걸 당할 상대가 적잖은 피해를 입으며 분노하게 될 것을 예상했는지 입가에 미소를 씨익 띄우다 정색하고는 과감하게 파고들었다.


레이저 블레이드의 편향장치가 전개되는 순간 발 맞추어 입력되는 ACS로 인한 근접 추진, 그것을 곧장 퀵 부스트로 캔슬한 AC 록스미스는 이러한 행위를 반복하며 경이로운 속도로 거리를 벌렸던 AC 루치페르를 추격해 무서울 정도로 거리를 좁혔으나 레이저 블레이드로 상대를 공격하는 대신, 이미 완충된 해리스를 제네레이터가 완전 고갈된 AC 루치페르에게 조준했다.


일반적인 AC, 만약 레이븐의 AC가 로더 4였거나 텐더풋이었다면 제네레이터가 완전 고갈된 이 상황에서는 직격을 피할 수 없는 전개일 터.


프로이트의 선택과 AC 록스미스의 기동은 흠 잡을 데 하나 없이 계산과 반응속도에 의거하여 완벽하게 구성되었으나, 상대는 로더4와 텐더풋이 아니었다.


타아앙-!


완충된 해리스의 고속 사격이 주황빛 전류를 튀기며 발사되었으나, 그 사격이 맞춰 헤집은 것은 AC 루치페르의 외장재가 아니라 그것이 위치하고 있던 지표면.


에임 어시스트로 인해 상대 AC에게 시야를 고정하고 있던 AC 록스미스는, 자신의 머리 위를 각부의 도약력만으로 뛰어넘어버린 AC 루치페르에게 집중되었다가, 뒤로 넘어가버려 시야에 담을 수 없게 되었기에 프로이트는 다급하게 QB 기동으로 발사 후 경직을 해제하려고 시도했다.


다행히 경직에서 빠져나와 퀵 턴으로 뒤를 돌아보게 된 AC 록스미스가 관측한 것은, 그 잠깐 사이에 재충전된 제네레이터의 출력을 이용해 공중에서 다리를 하늘 위로 들어올려 AC를 뒤집는 기이한 기동을 하며 우측 행거에 마운트 되어 있던 마제스틱 바주카 런처를 조준하고 있는 AC 루치페르.


마제스틱이 화염을 내뿜으며 포탄을 발사하자 당연히 회피해야 할 입장인 AC 록스미스는 곧바로 측면으로 회피를 시도, 제발 저것이 일으킬 폭발에 휘말리지 않기를 바라듯 움직이면서도 냉각된 해리스로 견제사격했으나, 마제스틱 특유의 자비로운 근접 신관 범위에 AC 록스미스의 우측 각부가 아슬아슬하게 걸쳐버린 탓에 폭발.


방금 전 거리를 좁히려고 시도한 과정에서 터너와 스커더, 두 자루의 어설트 라이플에게 피격을 허용했기에 축적된 ACS 부하는 그 조금이나마 휘말려버린 폭발에 의해 그대로 게이지가 과부하로 터져버려 AC 록스미스가 크게 휘청였다.


이런 상황에서 코랄 발진기를 직격당한다면 그건 곧 위험 혹은 죽음임을 알고 있으나 거리가 좁지 않다는 것과 AC 루치페르가 상하반전 기동을 하고 있던 것이 다행이라, 마치 공중전이나 무중력하 기동을 하는 것 같던 저 검은 빛의 AC가 다시 180도 돌아 착지하는 순간까지도 아무런 견제가 이어지지 않아 AC 록스미스는 ACS 과부하에서 빠져나오며 해리스 리니어 라이플을 재장전했다.


재장전이 완료되기 직전, 다시 뒤로 돌아 AC 록스미스 쪽을 포착한 AC 루치페르가 역으로 공세를 펼치고자 AB 기동을 시작하리라 예측한 프로이트는 다시 한번 상대가 그 도약력으로 땅을 박차고 날아오름과 동시에 모든 부스터 유닛을 전개하고는 아예 공중전을 시도할줄은 몰랐는지, 뒤로 천천히 빠지던 AC 록스미스를 다시 어설트 부스트 전개를 통해 앞으로 파고들게 하며 사선을 벗어났다.


어설트 라이플 두 자루에서 발사된 총탄이 AC 록스미스의 이동 궤적을 따라 땅을 헤집는 간격이 점차 좁아지기 시작했기에 AB 기동 도중 기체를 뒤집는 선회기동을 한 록스미스는 관성을 받아 거리를 벌리며 해리스를 사격함과 동시에 레이저 드론을 사출, 공격 회피를 위해 고도를 상승시키려고 시도하는 AC 루치페르를 추적했다.


그리고 육감의 경지로는 이 행성 안에서 따라잡을 수 없는 규격 외 존재가 되어버린 레이븐은 아무런 경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각 지대에서 날아드는 레이저 드론들의 공격을 AC 루치페르의 탁월한 공중기동력으로 회피, 그러나 제네레이터의 EN이 고갈되는 타이밍을 노리고 있던 프로이트는 AC 루치페르의 퀵 부스트 기동 횟수와 체공 시간을 머릿속으로 헤아리고는 AC 록스미스의 레이저 블레이드를 다시 전개한 다음, 해리스를 충전하며 다시 가속.


노려진 타이밍에 맞게 공중 회피기동 도중 EN이 고갈된 AC 루치페르가 자유낙하하게 되었지만 오히려 자유낙하의 가속을 이용하려는 듯 코랄 발진기에서 붉은 코랄 빛의 대검을 형성하고는 좌측 완부를 들어올려 수직으로 베어가르는 자세를 취했기에, 대각선으로 가속하며 상승하던 AC 록스미스는 주저하지 않고 맞불을 놓듯 레이저 블레이드를 휘둘렀다.


콰직-


금속이 우그러지는듯한 파열음은 푸른 레이저 블레이드와 붉은 코랄 블레이드가 충돌하며 나는 소음, 동시에 가해진 검격이 서로를 튕겨내어 다시 밀려나자 공중에서의 회피 범위를 줄이고자 AC 록스미스 쪽에선 확산 바주카를 발사, AC 루치페르는 그 짧은 사이에 행거 시프트 조작으로 교환한 마제스틱을 발사하며 서로의 포탄의 근접신관이 충돌하여 두 AC의 사이에 화염으로 이루어진 짙은 장벽을 만들었다.


그 장벽 너머 보이지 않는 상대가 어떤 행동을 할지는 모르나, 그것은 상대 역시 똑같이 느끼는 바. 그렇기에 AC 록스미스는 완충된 해리스를 폭발의 장벽과 함께 형성된 검은 연막 너머로 겨누었고.


타앙-!


라이플의 총성이 울렸다.






프로이트는 자신의 승리를 예측하기보단, 이 공격으로 상대에게 피해는 주었을 것이라는 쪽으로 예상했다. 조금씩 걷혀 사라져가는 연막 아래로 AC 루치페르의 스커더 어설트 라이플이 떨어지는 것이 보였으니까.


이러면 적어도 상대가 ACS 과부하에 걸렸을지도 모른다는 판단 하에서 내지르듯 레이저 블레이드를 다시 전개, 이번에는 그 푸른 날의 크기를 AC의 전고를 뛰어넘는 수준으로 늘려 제네레이터의 남은 EN을 쥐어짜는 일격을 시도했다.


그렇게 마지막 트리거를 놓기 직전.


키이잉-!


이 뇌리를 파고들어 찢으려는 비명 소리만 아니었다면 프로이트의 의도는 통했을지도 모른다.


온 몸의 육감이, 이 비명 소리의 근원이, 당장 그걸 멈추지 않으면 목숨이 달아날 수 있다며 프로이트에게 경종을 울리고 있었기에 프로이트는 제 자신의 이성적인 판단 대신, 본능을 믿으며 모든 ACS를 강제로 캔슬할 수 있는 익스팬션 트리거를 당겨, 펄스 아머를 전개했다.


그러기 무섭게 연막을 찢어 가르며 나타난 것은 불길하게 이글거리는 코랄의 파장.


분명히 청록색의 반투명한 펄스 아머가 기체를 감쌌거늘, 그마저도 상쇄시키려고 하는지 프로이트의 시야 기준 우측에서 좌측으로 훑으며 지나가는 코랄은 순식간에 펄스 아머의 충전치를 수직하락시킨데다 이게 아니었다면 즉사였을 수 있음을 암시하듯 엄청난 충격량의 반동을 이기지 못해 밀려나고는 그대로 추락했다.


펄스 파장이 견고하게 엮인 방벽을 숫제 뚫고 들기라도 했는지 AC 록스미스의 우측 각부는 코랄이 내는 고열에 의해 녹아 있었기에 더 이상의 전투 속행이 불가능하다는 ACS의 판정이 내려와, 프로이트는 자신이 판정패했단 문구가 HUD에 출력되는 것을 보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상대역이었던 AC 루치페르가 공중에서 천천히 하강하는 모습에서, 스커더를 소실당한 것 이외에는 피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을 정도로 멀쩡하다는 것을 관측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회선을 노크하듯 열어젖히며 들어오는 목소리는.



[“어떻게, 더 해볼 생각인가?”]



승자의 여유나 후련함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는, 무감정하고 무미건조한 레이븐의 한 마디.


저 한 마디에서 마치 자신을 한계까지 몰아붙였던 어느 노인의 발언이 떠올랐던 것을 생각한다면 저 말은 프로이트 자신의 자존심을 손 끝으로 눌러 긁어대는 것과 다름이 없을테지만.



“앞으로는 시간이 되는대로 귀찮게 굴어줄테니 각오하라고, 레이븐.”



체력의 한계가 찾아와 지칠지언정 마음이 지치지 않는 남자인 프로이트에게는 새 흥밋거리가 제 발로 찾아온 격이었기에 패배에 대한 미련 따위는 접어 날려버린 채, 눈처럼 하얀 이를 드러내며 씩 웃어보일 뿐이었다.






-----


AC 루치페르의 전투방식을 글에 최대한 압축해서 담았다


2라이플로 니가와, 상황 따라서 동시사격이나 교차사격, 마제스틱으로 스태거 캐치나 회피 방해, 공중기동전 위주, 기습 코랄대검 지르기나 스태거 극딜


물론 4행거라서 가끔 손 꼬일 가능성이 있는데 루트별 최종보스전에서 다 테스트한거라 성능은 괜찮음


그리고 플뤼겔 칼부캔 해리스차지를 터득해버린 프로이트


이 정도는 해줘야 프로이트가 본무대에서 날뛸때 밸런스가 맞다


아무튼 이번 글도 읽어준 모두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