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번호: Rb23, 랭크: F, 식별명: 레이븐에 의한 인증을 확인.
생사불명 상태를 해제, 유저 권한을 복구합니다. 용병 지원 시스템「올 마인드」에 어서 오십시오."'

'"레이븐, 당신의 귀환을 환영합니다."'

딱딱한 기계 장치와 생기없는 빛깔을 뿌려대는 모니터로 뒤덮인, 그런 심심하고 살벌하기 그지없는 최첨단의 강철 관 속에서 그는 의식을 되찾았다.

"인증은 통과한 모양이군. 네겐 충분한 경험이 있다.
이 행성에도 금방 적응할 수 있을테지."

"바로 일을 가져왔다. 확인해라, 621."

관 안쪽 통신 장비에서 흘러나온 인위적인 목소리의 데이터, 그 목소리의 낮설지 않은 묘한 느낌이 막 활성화된 뇌세포를 자극했다.

낮설고도 익숙한, 기분나쁜 데자뷰.

받아온 일이라는 것은 분명 아르카부스의 그리드 135 소탕. 그리고 발람의 이설형 포대 파괴 의뢰일 것이다.

강철 관, 그 중심인 조종석에서 아직 내리지 못한 강화 인간은 데자뷰라 부르기엔 과할만큼 뚜렷한 기억에 기이함을 느꼈다.

자세히 생각하면 할수록, 헤집어지고 코랄이 주입당해 반쯤 익어버린 강화 인간의 뇌로도 충분히 당혹감을 느낄 정도의 혼란을 그는 느낄 수 있었다.

[강화 인간 C4-621, 레이븐]

자신의 기억 속에서 그는 이미 그 이름으로 그리드 135를, 이설형 포탑들을 전부 처리했다. 그것도 세 번.

수송 헬리콥터들과 레드건에게 전달되려 했던 신형 AC의 테스트 파일럿도 이미 처리했다. 역시나 세 번.

그의 기억의 오류가 생긴건 예상보다 빠른 시점이었다. 다목적댐 습격. 그 임무에서 그는 레드건의 13번을 받았고, 해방 전선의 파일럿인 인덱스 더넘을 죽였다. 이번엔 한 번.

그리고 같은 임무에서 그는 G4 볼타와 G5 이구아수를 배신하고 그들을 격퇴했다. 두 번.

일반인이었다면 이 혼란스러운 꿈결같은 기억에 똑바로 말도 못하고 굳었을 것이라고 그는 추측했다. 물론 자신이 일반인이었던 기간은 꽤 오래 전이기 때문에, 일반인을 전제한 추측의 정확도는 낮을 것이라는 생각도 피어올랐다.

그는 자세한 판단을 위해 일단 AC에서 벗어나 일상 공간으로 향해야겠다 생각했다. 기이하고 낮선 기억에서 벗어나기 위한 무의식적인 방어기제성 외면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때만큼은 뜯어고쳐진 뇌의 망가진 기능은 역설적으로 도움이 되었다. 관성을 받아 끝을 모르고 밀려드는 과거의(어쩌면 또다른 미래의) 기억들은 강화 인간이 판단에 매달리는걸 포기하자 전원 꺼지듯 사라졌다.

기능적으로는 송장과 크게 다르지 않은 육체로 겨우 AC에서 벗어난 그는 본인의 휴식 공간으로 향했다. 일이 이미 준비되어 있다고 들었으나, 핸들러에게 아직 연락이 오지 않았으니 여유가 조금은 있다는 생각이 그의 뇌리를 스쳤다.

약 한 시간 뒤, 기억을 차분히 복기하던 그는 형용할 수 없는 혼돈 속에 잠겨 숨조차 쉬이 쉴 수 없었다.

뇌 및 신체 활동의 유지 그 필요 이상의, 이하의 속력을 내지 않던 심장의 박동은 위급 상태 이상의 속력으로 고동치기 시작했다. 자신의 심장 박동 소리가 다른 장비 없이 달팽이관을 때릴 수 있다는 사실은 그에겐 참 신기하게 다가왔다.

무형의 루비코니언
'레이븐... 그래도... 저는... 사람과..... 코랄의......'

방금까지 들렸던 목소리
'네가 번 돈이다... 재수술을 받고... 평범한 인생을...'
'62... 1...'

환영의 말을 뱉었던 인공 자아
'강화인간 C4-621, 레이븐. 당신의 역할은 이제 끝입니다.'

그러고도 남은 수많은 목소리와 장면들은 과할 정도의 충격이었다.

그리고 30분 뒤. 뇌의 의식 활동을 거의 멈춰두었던 그는 '신규 메세지, 1건' 하는 차가운 기계의 목소리에 혼돈에 젖었던 의식을 털어냈다.

"621, 무슨 문제 있나? 아까 헬기를 격추했을 때 큰 부상은 없던 것 같던데, 휴식이 길군. 공개 의뢰다. 누군가가 선점하기 전에 출발하는게 좋아."

그 말을 듣고서야 그는 겨우 뇌의 과부하를 중단할 수 있었다. 아직은 시작점일 뿐이었다. 네 번째 이야기의.

그는 다시 강철의 관 속에 몸을 눕혔다.

"독립 용병 제군! 발람 동맹 기업, 다펑의 의뢰를 공시한다!"

자세히 듣지는 않았지만 기억 속에 흐릿한 그림자처럼 묘한 잔재가 남은 브리핑을 들으며 그는.

이번에는 어떻게 최고의 결과를 낼 수 있을까.

그런 희망적이고 비현실적인, 답지 않은 생각이나 하며 레이븐으로서 네 번째 첫 의뢰에 출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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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소설이긴 한데! 사실 만화로 그려보고 싶었는데! 내 손은 만화를 그릴 수 있는 손이 아니라 계속 고민하다 이렇게 소설로나마 적어본다.

반응이 미적지근하면 적당히 관둘 생각이긴 한데, 평소에도 망상하던 내용이어서 사실 인기가 있으면 좋겠다 하는 바보같은 바람도 있다.

과연 다음 화는 나올 것인가? 다음 시간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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