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좆됐다.


"자네의 동참에 전선의 리더로서 감사를 표하지. 이 자를 대려온 쯔이, 너에게도 감사를 표하마."


이것이 내가 오랫동안 심사숙고하여 내린.


"AC를 몰아본 적은 있나?"


아니, 그리 숙고할 필요도 없이 내릴 수 있었던 결론이다.

상황은 이러했다.




모든 한국 군대의 병사들이 꿈꾸고 꿈꾸는 그날, 1년하고 6개월 뒤, 전역이라 부르는 해방의 날.


나 김병장 병장은 그 날을 정확히 5일 앞둔 짬 다 찬 유사 민간인이다. 아니 '이었다.'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하루일과를 마친 뒤 폰으로 아머드코어 영상이나 보고 노래나 듣다가 취침에 든 날이었다. 내가 고려할건 전역하기 전에 머리카락 딴지거는 미친놈만 피하는 것 뿐이었다.


그리고 내가 예상했던 기상, 나팔소리를 듣고 대충 뒤척이다가 일어나는 기상은 전혀 다른 청각과 촉각으로 이어졌다.


뒷통수를 팍 치는 얼척없는 감각. 어떤 새끼냐고 따지기도 전에 군대에서는 절대 들을 일이 없는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야 김병장! 잠깐 기다리라니까 왜 여기서 자고있어! 대부께서 부르셔, 따라와."


말도안되는 상황에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자 난생 처음 보는 공간이었다. 척 보기에도 꽤나 낡은 공간. 나름 꾸준히 정리는 하는 듯 기분나쁘고 쿰쿰한 느낌 없이 오히려 사람 사는 냄새도 나는 곳이었다. 그 당장은 그딴걸 느낄 여유가 없었겠지만.


"아니, 아니 여, 여기 어디야. 시발 뭐, 뭐 여기, 여기 뭐야."


앞서던 여성은 얼척이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내 팔을 끌어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방 밖으로 끌고나섰다.


"그 잠깐 사이에 꿈이라도 꿨어? 대부께서 널 인정해주시겠대! 너도 순순히 오겠다 해주고, 대부께서도 받아주셔서 정말 다행이야!"


내 뇌가 정상적으로 부팅이 되고 처음 내린 결론은 이거였다.


'이게 자각몽이라는건가?'


약 5초 뒤 쯤 골목을 도는 도중 벽에 어깨를 부딪치며 받은 고통은 간단하게 그걸 부정했다. 뇌는 또 고장났다. 잠시 뒤 두 번째로 내린 결론은 이거였다.


'내가 납치를 당한건가?'


라기에는 해맑게 웃으며 내 팔을 끌고가는 여성이 납치범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니 다시 생각하면 이거 꽤 위험한 생각이었던 것도 같다. 혹시 모르지 진짜 납치였을지도. 외모나 분위기만 보고 파악하는건 나쁜 습관이다. 물론 아니긴 했다.


더 이상의 상황 판단의 근거로 현재를 기준삼는걸 포기한 뇌가 과거를 뒤지다가 문득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이 사람 목소리 되게 쯔이같다.'


그리 생각하고도 잠깐 뇌가 코랄에 찌들어버린건가 싶었다. 이런 상황에 아머드코어 생각이라니.


'아니 잠깐 근데, 대부라며. 대부면 돌마얀 아냐? 여기 설마 그리드인가? 역시 꿈인가? 자각몽은 고통도 느껴진다던가?'


겨우 다리를 멈추고 질문을 했다. 여기서 칭호를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했다. 썸 돌마얀이라 다 부를까, 이름이 님을 붙여 부를까, 씨를 붙여 부를까.


"아 그, 그러니까... 대부라면 돌..."


"응! 썸 돌마얀, 대부님 말이야. 지금 플랫월 씨도 계셔."


'와 맞구나. 세상에 아머드코어 꿈을 꿀 줄이야.'


사실 지금도 이것을 현실이라 생각하려면 뇌가 익을 것만 같아서 꿈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지금이라고 해봤자 돌마얀이랑 플랫월 만나서 '와줘서 환영한다' 같은 말만 들었을 뿐이라 오래 되지도 않았다.


시점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온다.




"AC는... 타본 적 없습니다."


게임에서는 엄청 탔지. 플레이타임이 1000시간은 넘는다. 이레귤러는 진즉 포기했지만 도미넌트까지는 가봤다고. 물론 당연히 일단은 아니라고 해야 좋을 것 같았다.


"그래, 하긴 타는 것이 이상하지. 원래는 다들 레커나 바쇼로 잔해부터 줍기 시작한다. 쯔이도 원래는 잔해를 주으라 시켰건만..."


돌마얀이 쯔이를 천천히 바라보자 옆에 있던 플랫월이 말을 덧붙였다. 인게임 내에서는 목소리만 들려 몰랐지만 둘 다 은근 덩치가 있었다. 먹을 것도 없다면서 저런 덩치가 어떻게 되는지 놀랍다.


"AC 잔해에서 무기들을 꾸역꾸역 줍더니 어느날부터 자연스레 전장에 나서더군."


"하지만 저도 싸울 수 있는 루비코니언인걸요!"


"안다. 그러니까 일단 넘어가고."


그들은 다시 나를 바라봤다. 이미 수없이 들어서 이사람들 대사까지 줄줄 읊을 수 있음에도 이렇게 직접 듣는 느낌은 매우 색달랐다. 익숙하면서 낮선 특이한 느낌이었다.


"기업이 루비콘에 처들어오기 시작했으니 전투원도 물론 필요하겠지만, 걸음마도 못때는 아기에게 달리라 할 수는 없겠지. AC가 준비되면 다시 알릴테니 오늘은 이만 물러가라. 다시 말하지만, 감사하고 환영한다, 김병장."


나 혼자만 한국식 이름이니 굉장히 어색한 느낌이다. 하기사 쯔이나 로쿠몬센 같은 이름도 있는데 한국계 루비코니언이 없으란 법은 없지.


그나저나 루비콘에 기업이 처들어오기 시작한 시점이라면 본편 시작, 그러니까 621이 오기 전 시점인거 같은데, 애매하게 전투 실력을 쌓으면 기업이나 621에게 썰리는거 아닌가?


무튼 나는 쯔이와 함께 방을 나섰다. 어려운 판단은 가급적 미루고 싶지만 미룰만한 여유가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쯔이는 신이 나서 나를 방까지 대려다주었다. 꽤 작고 아늑하다면 아늑해보이는, 역시나 낡은 방이었다. 해방전선의 일원이니 앞으로 여기서 지낼거라 한다. 원래는 어디서 지냈던거지?


문이 닫히고 침낭에 가까운 형태의 침대에 누워 아직까지도 잠이 덜 깬 상태로 멍하니 생각했다.


집가고 싶어 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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잤다가 일어났더니 기업도 봉쇄기구도 621도 아니고 해방전선 신삥으로 전생한 말년병장 이야기. 쯔이가 자꾸 붙어다니는걸 보면 아마 쯔이의 동갑내기 친구로 전생한 듯 하다!


애초에 해방연합은 깊이 다뤄지는 캐릭이 거의 없기도 하고 분량도 애매해서 쓰다보면 캐붕이 있을 수 있음

쓰다보면이라고 했지만 2편이 있을지는 모르는 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