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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한 소년이 있다.


무뚝뚝하고 눈빛이 살아 있는 그런 소년.


이 소년에게는 큰 걱정이 있다.


혈육인 아버지가, 연료에 불과한 자원들이 살아 있다며 정신이상을 일으키는 것이다.


물론 스승인 나가이 교수도 있고, 잘 챙겨주는 누나 칼라도 있고, 뭐, 이대로면 그냥 좆같은 애비를 두었구나, 하고 끝날 것이다.


그 좆같은 애비가 불을 지르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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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비스의 불.


작중에서는 이런저런 설정들이 가득 붙어 있는 사건이지만, 간단히 소년 월터의 입장에서 보면 이렇다.


"나의 정신병자 아버지 때문에 행성 하나가 불타고 수억 명이 타죽었다."


월터가 아이비스의 불 당시 무슨 일을 했는지는 모른다.


무난하게 생각하면 안전한 곳에 대피해 있다가 나와보니 지상이 잿더미였을지도 모르고, 

극단적으로 생각하면 이 때 사랑하는 사람이 불타 죽었을지도 모른다. 언급 안 되는 어머니라거나.


어쨌거나, 이 사건은 향후 눈빛이 살아있는 소년-월터의 인생을 결정짓는다.


이제 월터의 삶은 단순히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사명'이 생긴 것이다.


'자기 아버지의 죄로 죽은 수억 명의 사람'

'자기 아버지의 죄를 막기 위해 목숨을 바친 나가이 교수를 비롯한 영웅들'


월터는 이들을 이렇게 뭉뚱그려 부른다...

'지인' 이라고.


'지인들의 유지를 잇는 사명'

핸들러 월터의 평생 갈 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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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비스의 불 이후 월터는 목성으로 가서 컸다는데... 목성의 월터를 키운 것이 G1 미시간일 지 모른다는 프롬뇌는 유명하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프롬뇌를 더해 보자.


"월터는 미시간의 제자로서, 파일럿으로서 이름을 날렸다."


근거는 다음과 같다.


1. 월터는 수상할 정도로 조종 실력이 뛰어나다.

올 마인드는 '당신의 핸들러는 강하다' 고 하며, 실제로 월터는 한 엔딩의 최종보스로까지 나온다.

암만 사기 기체에 강화 시술을 받았다고 해도, 본인의 조종 실력이 없으면 힘든 이야기다.


2. 월터의 자금이나 오퍼레이터로서의 능력의 출처를 설명할 수 있다.

신더 칼라는 따로 RaD를 운영하니 그렇다 쳐도, 월터는 돈이 어디서 나올까?

파일럿을 하던 시절에 쌓아놓았던 자금을 불렸다고 하면 그럴듯해진다.

오퍼레이터로서의 능력 역시 본인이 유능한 파일럿이었다고 하면 설득력이 높아진다.


3. 월터는 아주 발이 넓다.

단순히 월터가 강화인간 갈아넣는 뒷방 늙은이었다면 아르카부스 발람 등등과 다 연줄이 닿아 있는 게 가능할까?

월터가 유능한 파일럿이었다면 이것 역시 설명이 가능하다.


4, 작중 캐릭터들은 월터에 대해 신뢰도가 높다.

마찬가지로, 월터가 강화인간 갈아넣는 무능 지휘관이라면 설명 불가능한 요소다. 월터는 그 스네일도 말하는 걸 들을 정도로 발언에 무게가 있다.

이것 역시 월터가 유능한 파일럿이었다면 설명 가능하다.


아무튼, 월터는 자신의 능력을 쌓고, 쌓고, 또 쌓는다.


왜? 자신의 인생을 위해?

아니다.


이미 죽어버린 자기 아버지 죄를 갚으려고.

이미 죽어버린 나가이 교수의 못다 한 일을 하려고.

이미 죽어버린 아이비스의 불 희생자들에게 속죄하려고.


어느 순간, 월터는 파일럿 생활을 그만두고 돈을 모아 오버시어로서 루비콘으로 돌아간다.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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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빛이 살아있던 소년은, 이제 핸들러 월터가 되었다.


월터의 캐릭터성은 여기서 흥미로워진다.


핸들러 월터라는 캐릭터든, 다음 두 가지의 설정이 양립한다 :


"핸들러 월터는 강화인간에게 애착이 있고 그들을 아낄 줄 안다"

"핸들러 월터는 강화인간을 무자비하게 임무에 투입하고 목적을 위해 그들을 냉혹하게 소모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모두, 월터에게 있어서는 사실이다.

다만, "후자"가 "전자" 보다 강했을 뿐.


617, 618, 619, 620... 전부 단순 버림패가 아니라 자기 강화인간들이다. 죽으면 화나고, 슬프다.

물론, 그것과는 별개로, 그들은 지인들의 유지를 잇기 위한, 사명을 이루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그런데, 한 녀석이 찾아온다.


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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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터가 621을 얼마나 아끼는지, 그리고 얼마나 특별하게 생각했는지, 인겜에서 주구장창 나오므로 더 적지는 않겠다.


월터가 621을 특별대우한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나쁜 과학자와 착한 과학자"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과거사를 슬쩍 던짐으로서 확인사살한다.


"내가 이러는 이유를 너도 알아주면 좋겠다"


하나의 사명만을 위해 달려온 사람이 타인에게 할 수 있는 가장 큰 고백일 것이다.


월터에게 621은, 단순히 좀 유능한 도구에서, 자신의 꿈을 이뤄 줄 존재로 커져간다.


그리고,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앞서 월터는 두 가지 캐릭터성이 공존한다고 했다.


"강화인간들에게 가지는 애정"

"지인들의 유지를 이어야 하는 사명"


지금까지는 이 두 개를 가르는 저울에서 '사명' 쪽이 압도적으로 큰 무게를 차지했다,


그런데 '애정' 쪽에 '621' 이라는 큰 무게추가 떨어진 것이다.


월터는 점차, 지인들의 유지를 이으려는 사명보다, 개인적인 애정에 흔들리기 시작한다.


저울이 평형추를 이루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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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비스를 잡을 때 월터의 대사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이 때 월터는 정말, 정말 순수하게 621을 응원하고, 621이 아이비스에게 타격을 먹이자 기뻐하고, 621이 이기면 뛸 듯이 기뻐한다.


아마, 이 때만큼은 월터에게 있어서 처음으로, '애정'이 '사명'을 압도하고, 저울추를 기울인 순간이 아니었을까.


물론, 이 직후 스네일의 기습으로 월터는 납치당한다.


핸들러 월터의 이야기는 납치당하고 그대로 증발당하는 레이븐의 불 루트나,

621이 자신을 배신하면서 끝나 버리는 주사위는 던져젔다 루트가 아니라,


"루비콘의 해방자" 루트에서 제대로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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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비콘의 해방자 루트, 최종보스는 핸들러 월터다.


이 월터는, 백지 상태다.


"강화인간들에게 가지는 애정"

"지인들의 유지를 이으려는 사명"


이 모든 것이 강화시술과 세뇌로 지워져서 저편으로 사라져 간다.


그렇지만, 그래도, 핸들러 월터는 핸들러 월터다.


621과 싸우면서, 다시 AC의 조종간을 잡으면서, 마음 속에 무언가 살아나는 게 느껴진다.


내가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지,


내가 여기까지 무엇을 했는지,


내 앞에 있는 저 녀석은 나에게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나는 정말로, 무엇을 바라고 있었는지.


여기서 프롬뇌 하나 더.


월터는 강화인간 시술을 받고, 에어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한 묘사가 있다.


그렇다면, 이 때 월터는 알지 않았을까.


평생 동안 죄인이라 생각하고 증오했던 "나쁜 과학자" 자신의 아버지가...


단순히 미치광이, 정신병자의 헛소리를 말했던 게 아니라,


어느 정도의 '진실'을 말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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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월터는 깨닫는다.


"지금 나는, '사명'의 편을 들 것인가, '애정'의 편을 들 것인가?"


핸들러 월터는 이렇게 대답한다.


...621에게 겨눈 총구를 내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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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들러 월터.


평생 눈이 빛나던 그 소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죽는 순간을 제외하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