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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편전쟁은 동아시아를 호령하던 청제국이 사실은 ‘종이호랑이’였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알린 사건이기도 했다. 두 해 동안의 전쟁 기간에 영국군의 사상자는 520명에 지나지 않았던 데 비해 청조의 사상자는 2만에 이르렀고, 패전의 결과 청은 중국 최초의 불평등조약인 난징조약에 서명해야했다. 전쟁의 한 당사자였던 영국을 비롯한 유럽 열강조차 청의 군사력이 이렇게 허약하리라고는 예측하지 못했다.

청은 난징조약에 따라 홍콩을 영국에 할양하고 전비배상금(戰費賠償金) 1200만 달러와 몰수한 아편의 보상금 600만 달러를 영국에 지불하는 한편,광저우(廣州)ㆍ샤먼(厦門)ㆍ푸저우(福州)ㆍ닝보(寧波)ㆍ상하이(上海)의 다섯 개 항을 개항해야 했다. 영국은 그 뒤 추가조약을 통해 영사 재판권 인정, 개항장의 조계 설치, 최혜국 대우 등의 특권을 획득했고, 이어 미국과 프랑스도 청에 불평등조약을 강요해 여러 특권을 얻었다. 아편전쟁과 난징조약은 한 세기 뒤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립으로 막을 내릴 ‘반(半)식민지 중국’의 길을 열어놓은 셈이다.




아편전쟁 때도 중국이 생각보다 너무 약해서


영국이 무지 황당해 했다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