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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 없는 수단의 오류"





우리는 종종 삶의 목적을 말한다. 돈을 벌고 싶다, 사랑을 얻고 싶다, 명예를 이루고 싶다. 그러나 정작 그 목적을 위해 어떤 수단을 쓰고 있는지 되짚어보면, 많은 경우 그것은 목적과는 전혀 상관없는, 혹은 매우 우회적인 방법이다. 돈을 벌고 싶다면서 매일 독서실에 앉아 시험 공부만 한다. 여자를 만나고 싶다면서 하루 종일 헬스장에 갇혀 몸만 키운다. 심지어 누군가는 행복해지고 싶다며 하루에 다섯 시간씩 명상에 몰두한다. 이쯤 되면 질문이 생긴다. 도대체 너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랍비는 묻는다. “사람이 목적과 수단을 혼동하는 것은 죄인가, 무지인가?” 그에 대한 대답은 이렇다. 죄이기도 하고, 무지이기도 하다. 죄라면 자기기만의 죄요, 무지라면 자기이해의 무지다. 사람이 무언가를 원한다고 말하면서 정작 그 ‘원함’의 구조를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는다면, 그는 이미 그 욕망의 노예가 된 것이다. 욕망을 가지되, 그것을 정제하고, 분석하고, 명료하게 보지 않는다면, 그 욕망은 불이 되어 주인을 태운다.



예컨대 어떤 이는 말한다. “나는 돈을 벌고 싶다.” 그러나 그의 하루는 시험공부로 가득하다. 행정고시이든, 회계사 시험이든, 공무원이든. 그에게 묻자. “당신은 돈을 벌고 싶은가, 안정된 직업을 갖고 싶은가?” 그는 잠시 머뭇인다. 다시 묻는다. “당신은 자산가가 되고 싶은가, 직장인이 되고 싶은가?” 그제야 그는 입을 다문다. 그가 가고 있는 방향은 사실 ‘돈’이 아니라 ‘안정’이다. 혹은 부모가 원한 미래, 사회가 이상적으로 칠해준 성공의 도식이다. 그는 돈을 원한다고 착각했지만, 실상 그는 돈이 아니라 ‘불안의 해소’를 추구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어떤 이는 “나는 사랑을 원한다”고 말하지만, 여자를 만나기보다 자신의 외모를 바꾸는 데만 열중한다. 물론 외모는 사랑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열쇠일 수 있다. 하지만 문을 열기 위해 열쇠만 계속 갈고 닦고, 정작 문 앞에 가보지 않는다면 그는 언제 사랑을 경험할 수 있는가? 헬스장에만 틀어박혀 자기 몸을 닦는 데 3년을 보낸다 한들, 이성과 한마디 대화를 하지 않는다면, 그는 철저하게 목적과 수단을 오해한 것이다.



랍비는 다시 묻는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수단을 신격화하는 존재인가, 목적을 잊는 존재인가?” 인간은 종종 수단을 목적처럼 대한다. 학문은 지혜를 위한 것이어야 하나, 어느 순간 ‘공부하는 행위 자체’가 자기를 지켜주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운동은 건강이나 자존감을 위한 것이어야 하나, 어느 순간 ‘운동하는 자기’가 정체성의 전부가 되어버린다. 그러다 보면 정작 원래 원하던 목표는 지워지고, 수단만 남는다. 즉, 망각된 목적과 숭배된 수단의 패러독스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깨달음을 얻는다. 삶은 항상 목적과 수단 사이의 정확한 연결고리를 점검해야 한다. “왜 이 길을 가는가?”, “이 수단이 정말 그 목적에 유효한가?”, “나는 지금 본질을 향해 가고 있는가, 아니면 주변을 빙빙 돌고 있는가?” 이 질문이 없으면, 인간은 쉽게 열심히 살면서도 본질적으로는 미끄러지고 만다.



랍비의 말에 따르면, “무작정 걷는 것은 죄가 아니다. 그러나 방향을 모른 채 걷는 것은 스스로를 망각하는 죄다.” 삶에서 방향은 목적이고, 걸음은 수단이다. 방향을 모르고 걷는 것은, 아무리 빠르게 가도 결국 어디에도 도달하지 못한다. 이 비극은 현대인의 모습과 정확히 겹친다. 우리는 너무나 분주하고 너무나 성실하지만, 정작 그것이 어디를 향하는지 묻지 않는다. 마치 목적지를 모른 채 고속도로를 달리는 운전자처럼.



그러므로 다시 말한다. 돈을 원한다면, 돈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공부해야 한다. 사람의 흐름, 시장의 메커니즘, 협상과 판매, 수요와 공급의 심리를 공부해야 한다. 여자를 원한다면, 여성이란 존재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대화하고, 공감하고, 가까이 다가서야 한다. 단지 외모를 바꾸는 것으로 그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철저한 오산이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마네킹을 상대로 한 연극이다.



마지막으로 랍비는 이렇게 마무리 짓는다.



“사람이 길을 걷되, 왜 그 길을 걷는지를 알지 못한다면, 그는 그저 모래 위에 성을 쌓는 자와 같다.”



수단은 중요하다. 그러나 수단이 목적을 대신해서는 안 된다. 목적은 명료해야 하며, 수단은 그것을 정직하게 향해야 한다. 우리는 똑똑한 수단보다, 정확한 방향을 먼저 고민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의 삶이 낭비되지 않고, 진정한 도달에 이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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