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기준은 당신의 세계에만 유효하다 – 쓰레기, 인간, 그리고 상대성의 윤리학"
우리는 끊임없이 타인을 평가한다. 말투, 옷차림, 직업, 이력, 인맥, 신념, 실수, 태도, 과거, 소문. 이 모든 것이 평가의 근거가 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구분하고 분류하며 선호와 혐오를 드러낸다. 하지만 여기서 놓쳐서는 안 될 진실이 있다. 당신이 혐오하는 사람이 누군가에겐 생의 전부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가 흔히 ‘쓰레기’라고 부르는 사람들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다.
I. 쓰레기란 무엇인가: 정의되지 않은 멸칭
“저 인간은 진짜 쓰레기야.”
그 말은 쉽게 나온다. 다툼이 끝난 후, 관계가 파탄난 후, 배신을 경험한 후, 혹은 단순히 내 기준에서 이해할 수 없거나 불편한 인간을 바라볼 때 우리는 ‘쓰레기’라는 단어를 툭 던진다. 이 멸칭은 정의되지 않았고, 법적으로 규정되지도 않았으며, 사회적 합의조차 희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단어는 그 어떤 욕설보다도 강력한 배제를 뜻한다. ‘그 사람은 인간으로서 기본이 안 되어 있다’는 암묵적 선언이자, 존재 자체를 정리해버리는 단두대의 칼날과도 같다.
그러나 중요한 질문이 남는다.
누가, 어떤 기준으로, 타인을 쓰레기로 판정할 권리를 갖는가?
II. 상대적 존재의 가치
어떤 이가 당신에게 상처를 주었고, 당신의 삶을 파괴했으며, 당신을 철저히 무너뜨렸다고 하자. 당신은 그를 증오할 수 있다. 저주할 수도 있다. 심지어 ‘이 인간은 사람도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똑같은 그 사람이, 다른 누군가에겐 삶의 동반자이자 부모이자, 친구이자, 멘토이자, 사랑일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한 남자가 아내를 속이고 외도를 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아내는 남편을 쓰레기라고 부른다. 주변 친구들도 동조한다. 그의 명성은 추락하고, 커뮤니티에서 도덕적 매장 대상이 된다. 그러나 그 남자는 자식에겐 따뜻하고 헌신적인 아버지일 수 있다. 오래된 친구에겐 인생의 구원자이며, 동료들에겐 믿을 수 있는 파트너일 수 있다.
이 경우, 그 남자는 쓰레기인가, 인간인가?
답은 단순하지 않다. 그는 어떤 면에서는 분명히 도덕적으로 잘못된 행동을 했다. 하지만 그것이 그의 존재 전체를 ‘쓰레기’라는 단어로 환원할 수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이 세상에 온전히 ‘쓰레기가 아닌 인간’은 얼마나 남을까?
III. 평판은 진실이 아니다
사람은 정보를 바탕으로 판단한다. 그리고 그 정보는 대부분 간접적이며 왜곡되어 있다. 평판이라는 것은 인간의 기억과 감정, 편견과 관점을 거친 결과물이다. 즉, 평판은 진실이 아니다. 그것은 누군가의 주관적 감정과 제한된 맥락 속에서 생성된 서사일 뿐이다.
더욱이, 인간은 본능적으로 한 번 각인된 이미지를 쉽게 바꾸지 못한다. 예전에 비열한 짓을 했던 사람은 이후에 어떤 선한 행동을 해도 ‘본성은 안 바뀐다’는 말로 그 변화를 무시당한다. 반대로, 처음 인상이 좋았던 사람은 여러 번의 실수를 ‘그럴 수도 있지’라며 넘어간다.
그러므로 평판이 나쁜 사람 = 쓰레기라는 등식은 위험하다.
그는 그저 타인의 서사 속에서 악역을 맡았을 뿐, 절대적인 악인이 아닐 수 있다.
IV. "그 쓰레기를 왜 좋아하냐고?" 라는 폭력
어떤 사람이 당신이 혐오하는 사람을 사랑한다면, 사람들은 이렇게 묻는다.
“그 쓰레기를 왜 좋아해?”
이 말은 사랑의 자유에 대한 부정이자, 타인의 선택을 무시하는 오만이다. 사랑이란 이성과 감정, 시간과 경험, 가치관의 복합적 작용이다. 어떤 인격의 특정 단면만 보고 “사랑할 수 없다”고 단정하는 것은, 그 사람의 복잡한 경험과 서사를 무시하는 것이다. 게다가 이런 말은 종종 가스라이팅처럼 작용한다.
“너는 눈이 없니?” “너도 이상한 사람이다.”
이런 언어들은 사랑의 대상을 향한 비난을 넘어서, 그 사람을 사랑하는 나 자신마저도 쓰레기로 전락시키려는 사회적 린치다.
V. 나 또한 누군가에겐 쓰레기일 수 있다
가장 깊은 성찰은 여기서 시작된다.
당신이 지금까지 살아오며 누군가를 아프게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는가?
누군가를 실망시키고, 오해하게 만들고, 때론 함부로 대하고, 침묵함으로 상처 주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당신 역시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는 ‘쓰레기’일 수 있다.
아무리 당신이 스스로를 도덕적이고 책임감 있는 사람이라 생각하더라도, 타인의 관점과 맥락에서는 당신이 파괴자, 배신자, 가면을 쓴 이중인격일 수도 있다. 이 사실을 인정할 때, 우리는 진정한 겸손에 도달한다. 그리고 그 겸손은 타인을 평가하는 손가락을 멈추게 한다.
VI. 윤리의 새로운 출발점: 이해와 거리두기
이 글은 모든 악행을 용서하자거나, 모든 사람을 긍정하자는 말이 아니다. 잘못된 행동은 분명히 규탄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 규탄은 ‘행위’에 대한 것이어야지, 존재 전체에 대한 부정이어서는 안 된다. 도덕적 분노와 인간적 존엄은 구분되어야 한다.
우리는 누군가를 미워할 수 있다. 그와 거리를 둘 수도 있고, 다시는 관계를 맺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를 ‘쓰레기’라 규정함으로써, 다른 사람의 사랑까지 공격하지는 말아야 한다. 어떤 인격이 복잡하고 다면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윤리의 새로운 출발점이다.
VII. 말의 칼날을 거두라
말은 무기다. “쓰레기”라는 단어는 그 무엇보다도 강력한 폭력이다. 그 말에는 삶을 짓밟고, 인격을 파괴하고, 관계를 단절시키는 힘이 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가 그 칼날을 거두고, 맥락을 보고, 다양성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우리는 인간의 복잡성을 이해하는 한 걸음 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다.
"누군가를 쓰레기라 부르기 전에, 기억하라"
"당신도 누군가의 인생에선, 반드시 악역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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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스타일이 바뀌었는데 AI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