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웃고 떠들 때, 너는 멈춰 서서 조용히 내리는 눈을 바라보라"
모두가 열광할 때, 모두가 미친 듯이 웃고 춤출 때,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그 순간이 가장 위험한 순간이라는 사실이다. 축제는 달콤하다. 소리 높여 웃고, 술을 들이켜고, 음악에 몸을 맡긴다. 그렇게 인간은 일상이라는 감옥에서 벗어나 해방을 꿈꾼다. 하지만 진정한 자유란 감정의 고삐를 풀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한 걸음 물러나 자신을 지켜보는 통찰에서 시작된다.
사람이란 본디 감정의 동물이다. 기쁨이 오면 방심하고, 슬픔이 오면 무너진다. 그래서 인간은 늘 불균형 속에 산다. 희노애락이란 말이 괜히 생긴 것이 아니다. 기쁨은 반드시 슬픔을 동반하고, 환희는 어느 순간 허무로 변질된다. ‘바이오리듬’이란 단어도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상승곡선은 반드시 하강곡선을 낳는다. 그러니 웃고 떠드는 다수 속에서 무작정 함께 웃고 떠드는 것은 가장 어리석은 일이다.
진실은 대개 조용하다. 소란은 진실을 가리고, 열광은 이성을 마비시킨다. 그래서 다수가 웃고 떠드는 순간, 너는 멈춰야 한다. 조용히 주변을 둘러보고, 그 이면을 관찰해야 한다. 겉으로 보이는 환희의 이면에는 반드시 조작된 감정, 억지로 부풀려진 기대, 그리고 마침내 무너질 환상이 도사리고 있다. 세상을 정확히 보고 싶다면, 세상과 거리를 두어야 한다. 흥분은 판단력을 흐리게 하고, 기대는 항상 실망을 동반한다.
많은 이들이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온다”고 말하지만, 그 준비는 대부분 조용한 자기 성찰과 반복되는 일상 속 자기 단련에서 비롯된다. 반대로, 흥분한 군중 속에서 손쉽게 뭔가를 얻으려는 자는 결국 실망과 환멸에 빠지게 된다. 군중은 언제나 유토피아를 외치지만, 유토피아는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은 한순간에 바뀌지 않는다. 변화는 언제나 느리고, 끈질기며, 고통스럽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선, 우선 나 자신을 바꾸어야 한다. 내가 바뀌어야 세상이 바뀐다. 하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그 반대의 길을 택한다. “세상이 변해야 내가 바뀐다”고 믿고, 환경 탓, 정치 탓, 사회 구조 탓을 한다. 물론 세상은 불공평하다. 그러나 그 불공평 속에서 무언가를 이루는 사람은, 누구보다 먼저 자기 자신을 돌아본 사람이다.
그러니 눈이 올 때, 그저 조용히 눈을 바라보아라. 소란스럽게 짖어대며 환호하고 외치며 세상을 방해하지 마라. 고요함 속에 진실이 있고, 침묵 속에 지혜가 있다. 누군가는 그저 하얗게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위안을 얻고 싶을 수 있다. 그런데 왜 너는 그 고요함마저 깨뜨리며 존재감을 증명하려 드는가?
대중이란 언제나 흥분을 원한다. 감정은 콘텐츠가 되고, 열광은 소비된다. 그러나 인간은 감정의 소비자가 아니라, 감정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웃음도, 분노도, 환희도 스스로 절제하고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는 쉽게 선동당하고, 쉽게 소모되고, 결국엔 쉽게 버려지는 인생을 살게 된다.
삶은 매일의 전쟁이다. 누구도 네 인생을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 네가 먹은 건 네가 설거지해야 하고, 네가 펼친 이불은 네가 개야 한다. 누구도 너 대신 해주지 않는다. 일상의 싸움에서 이기는 자가 진정한 승자다. 반짝이는 성공은 순간이고, 평범한 일상 속 꾸준한 자기관리야말로 삶의 진짜 능력이다.
그러니 열광하지 마라. 흥분하지 마라. 남들이 떠든다고 함께 따라 웃지 마라. 그들의 웃음은 너의 진실을 덮고, 그들의 환호는 너의 판단을 흐리게 한다. 세상은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리고 바뀌는 게 있다면, 그것은 언제나 너 자신부터다. 기대하지 마라. 기대하지 않을 때 비로소 실망하지 않고, 실망하지 않을 때 삶은 평온해진다.
사기꾼들은 말한다.
“세상은 바뀔 수 있다. 단 하루아침에”
그러나 진실한 이는 말한다.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너는 바뀔 수 있다. 매일 조금씩”
너는 어느 쪽에 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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