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사는 어떻게 죽어갔는가"
나는 한때 인사의 신이었다. 스무살, 스물여덟 살까지 나는 누구를 마주치든 먼저 인사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어르신에게도, 회사에서 스치듯 지나가는 동료에게도, 심지어 이름도 모르는 동네 사람에게도 진심을 담아, 밝고 명랑하게, 정말 개처럼 인사하고 다녔다. 나는 그런 인사가 인간 사이의 기본 예의이고, 사회를 부드럽게 이어주는 윤활유라고 믿었다. 어렸을 때 그렇게 배웠다. "누굴 만나든 인사 잘해라." 부모님이 그랬고, 선생님도 그랬고, 사회가 그렇게 가르쳤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그 믿음이 산산이 깨지기 시작했다. 인사를 해도 돌아오는 건 침묵이었다. 냉소였다. 무시였다. 나는 웃으며 다가갔는데, 상대는 나를 벽처럼 지나쳤다.
기억난다. 첫 직장이었다. 복도에서 마주오던 40대 여자 상사에게 인사를 건넸다. 밝게, 분명하게. 그런데 돌아온 건 철저한 무시였다. 나밖에 없었다. 복도에 둘뿐이었다. 내가 "안녕하세요" 했는데, 그 사람은 그냥 무표정하게 지나쳤다. 그때 처음으로, 내 인사가 부끄러워졌다. 마치 혼자 바보 같은 짓을 한 것 같았다. ‘내가 뭘 잘못했나?’라는 자괴감이 들었고, 그게 반복될수록 나도 점점 입을 다물게 되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이사한 집에서도, 윗집 50대 아저씨에게 밝게 인사했다. 결과는 같았다. 그 사람은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아무 말도 없이 그냥 지나갔다. 그 눈빛은 마치 ‘왜 인사를 하지? 이 인간 뭐지?’ 하는 눈빛이었다. 그걸 보고 나는 사람에 대한 신뢰를 하나씩 지워나갔다.
사람은 상처받으면 변한다. 강아지도 반복적으로 학대당하면 사람을 물게 된다. 나는 리트리버 같은 사람이었다. 친절하려 했고, 긍정적으로 다가가려 했다. 그런데 세상이 내 진심을 짓밟고 조롱했을 때, 나도 변했다. 지금의 나는, 처음 본 사람에게 인사하지 않는다. 눈도 마주치지 않는다. 웃지도 않는다. 문을 잡아주지 않는다. 오히려 어떤 상황에서는, 그냥 상대를 경계하면서 쳐다본다. 문 앞에서 기사 아저씨를 맞이할 때조차, ‘이 사람이 갑자기 나한테 위해를 가하면?’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고, 주먹을 꽉 쥔다. 예전에는 "어서 오세요"라고 먼저 인사했을 텐데, 지금은 침묵뿐이다.
심지어 예의를 지켜도 조롱받는 세상이다. 편의점에서였다. 나는 습관적으로 현관문을 잡아줬다. 바로 뒤에 여학생들이 따라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냥 몸에 밴 행동이었다. 그런데 뒤에서 어떤 여자가 큰 소리로 말했다. “왜 잡아줘? 아니, 왜 잡아주는데?” 그리고 웃었다. 조롱이 섞인 웃음이었다. 마치 내가 뭘 이상한 짓이라도 한 것처럼. 그날 하루 종일 기분이 가라앉았다. 자책도 했다. ‘내가 잘못했나?’ ‘요즘 세상은 문도 잡아주면 안 되나?’ 그렇게 한참을 의기소침해 있었다.
그 이후로는, 나도 그냥 세상에 맞추기로 했다. 나만 쏙 들어갈 수 있게 문을 열고, 뒤는 신경 쓰지 않는다. 백화점 유리문이 무겁든 말든, 나는 내 몸 하나 들어가면 끝이다. 누가 따라오든 상관없다. 왜냐고? 친절을 베풀면 조롱당하고, 무시당하고, 혼자 찐따 취급 받는 게 지금 사회니까.
이건 단순한 예의의 문제가 아니다. 이건 사회적 단절의 문제다. 인간은 서로를 믿지 않는다. 관계를 맺으려 하지 않는다. 타인에게 마음을 열면 손해 본다는 걸 체득한 인간들이 이제는 아예 문을 닫고 살아간다. ‘착한 사람 병신 만드는 사회’, ‘선의를 조롱하는 문화’, ‘인사를 하면 지는 게임’.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그렇게 되었다.
나도 처음엔 그렇지 않았다. 인간을 믿었고, 선의를 기본으로 행동했다. 그런데 반복되는 무시, 경멸, 조롱, 차가운 시선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 인사를 안 하는 사람이 된 게 아니라, 인사를 할 수 없게 된 거다. 이건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사회 곳곳에, 내 마음을 이해할 사람들이 있다. 다들 말은 안 해도 속으로는 똑같은 경험을 하고, 점점 말을 줄이고, 표정을 지우고, 눈을 피하며 살아간다.
사람들이 악마여서가 아니다. 모두가 상처받았기 때문이다. 다들 누군가에게 무시당하고, 이용당하고, 배신당하며 그렇게 굳어버린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내가 먼저 상처를 입은 피해자였다. 그런데 그 상처가 나를 가해자의 형태로 바꿨다. 내 마음의 문을 닫게 만들었고, 이젠 나도 누군가의 인사를 무시하게 될 수도 있다.
그렇게 우리 모두는 병들어간다. 인사는 사라지고, 친절은 조롱당하며, 사람은 사람을 더 이상 사람으로 대하지 않는다. 인간을 포기한 내가, 과연 비정상일까? 아니면 지금의 이 사회가 이미 그렇게 썩어가고 있는 걸까?
나는 그냥 더 이상 믿지 않기로 했다. 인사를 안 하고, 문을 안 잡아주고, 미소를 주지 않는 이 세상에, 내가 내 마음을 내어줄 이유는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슬프지만, 이게 현실이다.
그리고 이 현실을 만든 건, 결국 무시하고 외면했던 그 수많은 인간들이라는 걸, 나는 아주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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