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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체제, 구조, 그리고 나를 스쳐간 변화들에 대하여"





대통령이 누가 되든, 내 삶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이건 비관도 자조도 아니다. 단지 사실일 뿐이다. 대통령이 바뀌면, 한동안 뉴스는 환호하고 시위는 멈추거나 격화되고, SNS는 둘로 갈라져 이전 정권의 악행을 몰아세우거나 새로운 정권의 희망을 논한다. "세상이 달라질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외친다. 하지만 주식차트를 바라보는 내 일상은 단 한 번도 변화한 적이 없다. 세상이 바뀌었다는 그 '세상' 속에, 나는 들어본 적이 없다.


정치란 무엇인가. 누군가는 말한다. "정치는 우리 모두의 삶을 바꾸는 가장 직접적인 수단이다." 맞는 말이다. 이론상으로는. 그러나 실상은 어떤가? 정책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고, 혜택은 언제나 중간 어딘가에서 멈춘다. 정부는 복지를 말하지만, 복지의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은 복지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정권은 정의를 외치지만, 정의는 법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 자들만이 누린다. 나는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방 안에 앉아 유튜브의 광고를 넘기며 세상이 바뀌었다는 사실만 받아들인다. 내 삶은 여전히 어제와 같고, 그 어제는 그저 연장선의 오늘일 뿐이다.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래도 투표는 해야지. 그게 민주주의야.” 그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나 역시 투표를 한다. 매번 한다. 하지만 투표란 것이 나의 삶을 실질적으로 바꿔준 적은 없었다. 나는 정치라는 시스템 안에서 어떤 표식도 되지 못했다. 한 표의 행사로 바뀌는 세상은, 나처럼 매일을 생존 단위로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너무 멀리 있다. '정치가 중요하다'는 말은 옳지만, '정치가 곧 내 삶이다'는 실감한 적이 없다. 나는 정치로부터 철저히 소외된, 그저 통계상의 점 하나일 뿐이다.


정권이 바뀌면 무엇이 달라지나? 대통령이 새로 취임하면 무엇이 변하나? 달라지는 것은 정책의 이름이고, 표어이고, 행정 용어일 뿐이다. 일자리는 늘 창출된다고 하지만, 나는 그 ‘창출된 일자리’ 중 단 한 곳에서도 연락을 받아본 적이 없다. 경제는 성장했다고 하지만, 나랑은 별 상관이 없었다. 복지는 확대됐다고 하지만, 내가 마주한 복지는 고작 몇 번의 생색과 서류전쟁뿐이었다. 세상은 나를 배제한 채로 돌고 있었다. 어쩌면, 이건 단순히 나 하나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도시의 가장자리에 사는 사람들. 지방에 사는 청년들. 비정규직으로 버티는 수많은 노동자들. 오늘도 4대 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채 밤을 새우는 플랫폼 노동자들. 하루 12시간씩 편의점과 배달 사이를 오가며 '자영업'이라는 이름 아래 감당할 수 없는 빚을 떠안은 자들. 이 모든 사람들이, 사실은 나와 같다. 우리는 모두 이 사회의 ‘주요 타자’가 아니다. 그저 소외되고, 배제되고, 말없이 참고 있는 '통계 바깥'의 사람들일 뿐이다.


정치는 우리를 대변한다고 한다. 하지만 정치는 언제부터인가 ‘대중’을 위한 것이 아니라 ‘지지층’을 위한 전략이 되었다. 공약은 표를 위한 것이 되었고, 정책은 누군가의 PR 수단이 되었으며, 정당은 이념보다는 이해의 조합이 되었다. 우리가 누군가의 편을 들어야 하는 이유조차 흐릿해졌다. 정치는 여전히 열정적이지만, 그 열정은 나를 지나치고 어디론가 흘러가 버린다. 나는 구경꾼이 되고, 때로는 방관자가 된다.


그들이 세상을 바꾸고 있다고 외칠 때, 나는 조용히 내 일상을 이어간다. 아침에 눈을 떠서 주식 시장이 열리면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증권 프로그램에 로그인한다. 오전 9시, 시장이 열리면 나는 마치 조종사처럼 손가락을 움직인다. 하지만 그것은 생존을 위한 몸부림일 뿐, 어떤 꿈이나 비전의 실현이 아니다. 한때는 나도 미래를 설계하고자 했다. 좋은 대학에 가고, 안정적인 직장을 찾아 결혼하고, 집을 마련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그런 삶. 그러나 지금은 그런 설계도, 그런 로드맵도 무의미하다. 현실은 이미 내 계획보다 더 빠르게 변질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대선철이 되면, 정치인들은 ‘2030 세대’를 이야기한다. 정치인들은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척한다. 그들은 청년주택, 청년수당, 청년일자리 같은 말들을 꺼낸다. 그러나 그 단어들이 진심이 아님을 안다. 청년들에게 필요한 건 ‘청년’이라는 기표가 아니라, 실질적인 기회이고, 존엄을 지킬 최소한의 환경이다. 그러나 정치는 여전히 그들을 소비하고 있다. 소비한다는 말은 곧, 소모한다는 뜻이다. 그들은 선거가 끝나면 잊히고, 다음 선거철이 되면 다시 소환된다.


이대로 살아야 할까. 때로는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너무 무기력한 건 아닐까? 너무 냉소적인 건 아닐까?’ 하지만 그 냉소는 내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사회가 그렇게 나를 만들었다. 노력해도 안 되는 일들을 겪었고, 성실함이 보상받지 못하는 구조를 봤고, 열정이 착취의 수단으로 전락하는 과정을 너무 많이 봤다. 나는 그저 ‘자연스럽게 식은’ 것이다. 열정은 남아 있되, 그것을 어디에 쏟을 수 있는지를 더 이상 모르게 되었다.


정치는 희망을 파는 직업이다. 그러나 그 희망은 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가? 대기업의 자제들? 기득권 계층의 자식들? 어릴 때부터 대치동과 목동을 전전하며 ‘경쟁’이라는 포장을 입고 살아온 아이들? 우리는 그 경쟁에 입장할 기회조차 없었다. 기회는 평등하다는 말은 가장 잔혹한 신화다. 기회의 평등은 출발선이 같을 때만 의미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애초에 경기장 밖에서 태어났다.


세상이 바뀌었다고들 말한다. K-콘텐츠가 세계를 휩쓸고, 경제 규모가 세계 10위권에 들고, 기술이 진보하며, 문화가 앞서간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런 세계화된 성공이 내 삶에 어떤 실질적 이득으로 돌아왔는가? BTS가 빌보드 1위를 한다고 전월세가 깎이나, 반도체 수출이 늘었다고 하루 식비가 줄어드나? 세상의 변화는 언제나 '뉴스 거리'일 뿐,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야기였다.


정치인들이 고급 레스토랑에서 만찬을 나눌 때, 서민들은 편의점 앞에서 도시락을 까먹는다. 그들은 국정 브리핑을 하며 국가의 미래를 말하지만, 나는 단타로 얼마나 수익을 낼 수 있을지 고민한다. 그들의 연설은 희망을 이야기하지만, 나는 더 이상 희망을 ‘기다리는’ 것을 그만두었다.


그렇게 나의 하루는 계속된다. 정권이 바뀌어도, 법이 바뀌어도, 대통령이 바뀌어도. 세상이 돌아가는 동안, 나는 멈춰 있다. 아니, 멈춰 있는 척하며 견디고 있다.


당신이 물을 수 있다.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
나도 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걸. 하지만 내가 묻고 싶은 건 이거다 — "지금껏 내가 뭘 해도, 도대체 뭐가 바뀌었었나?"


나는 나름대로 해봤다. 술집, 독서실 총무같은 아르바이트도 해봤고, 연예인 돼서 집안 일으킬거라고 오디션도 해봤고 기획사도 다니며 발버둥 쳤고, 중견 중소기업 면접도 해봤다. 결국 물어보는건 '니네 아버지 뭐하시냐" 였다. 니네집 돈 많고, 빽있냐 이거였다. 그렇게 돌아온 건 허탈함, 무력감, 그리고 ‘너 말고도 연예인 할 사람 많다’는 냉정한 구조였다. 그래, 나는 경쟁에서 도태됐다. 노력한다고 다 성공하나? 내가 열심히 하지 않았던 게 아니라, 이 구조가 열심히를 소비하고 갈아버리는 시스템이었다.



"중소기업에서는 한달 100만원 이상을 못 준다고 하더라"


"니네들은 아빠 빽으로 좋은 자리 다 들어갔잖냐"



그런데 지금 나보고 또 "그래도 투표해야지", "그래도 바뀔 수 있어", "정치는 삶이야" 이런 말을 하라고? 얼마나 더 속아야 하냐고. 이건 단순히 마음이 삐딱하거나, 정치혐오 때문이 아니다. 진짜 문제는, 현실이 ‘희망’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고장 나 있다는 것이다.



"정치는 삶이라고? 그 말이 맞으려면, 정치는 '내 삶'까지 와야 한다"



정치가 삶이라면, 왜 내 삶은 정치 바깥에 있는가?

정치가 기회라면, 왜 내 청춘엔 그 기회조차 없었는가?

정치가 희망이라면, 왜 나는 그 희망에 한 번도 포함된 적이 없는가?


나는 그걸 묻는 것이다. 왜 우리는 언제나 가장 마지막에 고려되는가? 왜 우리는 '시장에서 조정될 문제'라며 미뤄지는가? 왜 우리는 목소리를 내면 ‘선동’이 되고, 침묵하면 ‘무관심’이 되는가?


지금의 시스템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간에 우리 같은 사람들을 지속적으로 ‘패배자’의 위치에 머물게 만든다. 그리고 그 위치를 정당화한다. 공부 안 했으니까, 준비 부족했으니까, 능력 없으니까. 하지만 우리는 알잖아. 노력으로 안 되는 것들이 훨씬 많다는 걸.
가진 자들은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스펀지’를 갖고 있다.
우리는 실패하면 그대로 추락이다. 스펀지도, 그물도, 쿠션도 없다. 낙오다.



"우리는 왜 정치로부터 멀어졌는가?"



정치가 나와 너무 멀어서다.

정치는 늘 위에서 아래로 말한다. 나는 언제나 ‘아래’였다.

정치는 늘 구조를 이해하라고 말하지만, 우리는 그 구조 안에 설 자리조차 없었다.

정치는 ‘이념’을 다투지만, 나는 오늘 끼니를 걱정했다.

정치는 ‘성장률’을 말하지만, 나는 아직 기본적인 존엄을 보장받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정치에서 멀어졌다. 아니, 정치가 나를 버렸다. 버려진 자리에서 나는 내 방식대로 생존을 선택했을 뿐이다. 방 안에서, 모니터 앞에서, 인터넷 창 속에서.



결론적으로 말해서,



나는 누가 대통령이 되든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 누구도, 지금까지 내 인생에 실질적으로 변화를 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에게 어떤 정권도, 어떤 정책도, 어떤 사회적 구호도 실체로 다가온 적이 없었다.
대통령이 바뀌면 한 자리씩 챙길 사람들은 늘 존재했다. 언론에 나오는 이름들, 청문회에 나오는 인사들, 늘 봐왔던 얼굴들. 대통령의 친인척들과 그 당의 국회의원들만 장관 해먹고 그 밑에 사람들만 한자리씩 다 해먹는다. 내 자리는 언제는 방구석 모니터 앞인데도 말이다.
그들의 세상은 끊임없이 재편되고, 재활용되고, 재구성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 재활용 시스템 밖에서, 오늘도 방 안에서 스스로를 '하찮다' 여기며, 그렇게 하루를 버틴다.


그들에게 우린 그저 여론의 수치일 뿐이다. 한 줄짜리 조사 결과, 한 표짜리 계량 도구. 하지만 나는 더 이상 내 삶을 누군가의 정치 실험으로 넘기고 싶지 않다. 내 삶은 더 이상 어떤 정권의 통계 속 예외가 되고 싶지 않다. 나는 그저 이 말 하나 남기고 싶다:



"세상이 바뀌었다고? 그럼 나에게 무엇이 달라졌는지 말해봐."


"대답할 수 없다면, 그 바뀐 세상은 내 것이 아니다"


"그건 니들끼리 바꾼 니들만의 세상이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방 안이다"



"내 세상을 바꿨던건, 내 주식기법이 업그레이드 되어, 하루 100만원에서 200만원으로 수익금을 2배 향상되게 만들었던 것이었고, 코인 1차 몰빵에 성공하고, 이제 2차 몰빵 쳐서, 2억 8천에서 1000만원 벌고 있는게, 변화된 내 능력으로, 변화된 내 세상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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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엔, 내가 빠껴야 내 세상이 바뀌는 것이었다, 그 누구도 나를 이끌어낼 수 없다"



"그러니, 자꾸 세상 바뀐다고 헛소리 집어 치워라"



"수십년을 살아왔지만, 그런 세상은 오지 않았었고, 높은 자리에 있는, 니들 자리만 바뀌었고, 니들만 돈벌어 처먹고 살았었다"



"이제는 그런 말에 속지 않는다"



"나는, 내 주식과 코인기법만 믿을 뿐이다"



"나중에 금투세 부활시킨다고 지랄하지나 말아라"



"내 밥벌이만 건들지 말아라, 그게 내가 원하는 세상이고, 그냥 아무것도 하지말고, 사고치지 말고, 얌전히 있다가 내려와라"



"항상, 니들은, 니들이 주도해서, 뭘 한다고 낍치면, 나라가 그때부터 망하기 시작한다"



"그냥 아무것도 하지마라, 그게 도와주는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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