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트주의의 허울과 허무"
1. 권위의 대물림과 엘리트주의의 뿌리
우리는 흔히 ‘학벌’과 ‘학위’를 통해 사회적 신분과 권위를 판단한다. 특히 국내 학계에서는 ‘독일 박사’라는 타이틀이 일종의 고급 브랜드로 인식된다. 이는 단순한 학위가 아니다. ‘독일 유학’은 지적 우월성과 국제적 인정을 상징하며, 국내에서의 무게감과 권위를 더해준다. 이 명함을 가진 자는 ‘배운 자’로 인정받고, 자신의 의견과 행동에는 일종의 면죄부가 따라붙는다. 그런데 이 권위는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단순히 학문의 깊이인가? 아니면 사회적 인식의 산물인가?
이 질문은 단순하지 않다. 왜냐하면 ‘권위’는 본질적으로 권력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독일 박사를 표방하는 자들은 종종 자신의 ‘독일 유학’을 근거로 타인을 설득하고 지배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들은 단순히 자신의 지식을 공유하는 수준에 머무르지 않는다. 오히려 ‘독일’이라는 상징에 기대어 자신을 ‘위대한 철학자’로 포장하고, 국내 동료와 학생들을 향해 우월감을 드러낸다. 그런데 이 ‘우월감’의 밑바닥에는 무엇이 있는가? 자존감의 불안인가, 아니면 타인에 대한 지배욕인가?
2. 독일 유학, ‘진리’의 상징이자 ‘속물’의 무대
독일 철학 전통은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지적 자산이다. 칸트, 헤겔, 니체, 하이데거 등은 서구 철학사의 거대한 기둥이며, 그들의 사상은 깊은 사유와 혁신적 통찰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독일 철학 전통이 ‘독일 유학’이라는 학위로만 재단될 때, 그것은 이미 ‘진리’가 아니라 ‘상징’이 된다.
한 개인이 독일에서 수년간 고된 유학생활을 견뎌내며, 비단 학문뿐 아니라 언어, 문화, 사회적 적응을 위해 힘쓴다. 하지만 그 과정이 진정한 ‘철학적 성찰’의 과정인지, 아니면 단순히 제도의 틀 안에서 인정받기 위한 기술적 숙련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오히려 제도 내 적응과 권위자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한 아부, 암암리에 경쟁하는 동료들과의 신경전이 더 현실적인 풍경이다.
즉, ‘독일 유학’은 때때로 진리 탐구의 장이 아니라, 엘리트주의를 양산하는 경력 관리의 장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경력’은 결국 본국으로 돌아와 ‘가치’를 극대화하는 데 쓰인다. 국내 대학이라는 ‘무대’는 좁고 경쟁적이지만, ‘독일 박사’라는 타이틀은 이곳에서 사회를 장악하는 무기가 된다.
3. 귀국과 복귀: 퇴락한 영웅의 귀환인가, 권력의 교체인가
그는 왜 독일에 남지 않고 귀국하는가? 독일에서의 학문적 지위 획득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는 그가 본질적으로 ‘외국인’이자 ‘이방인’이라는 한계에 부딪힌 결과다. 아무리 뛰어난 실력자라도 언어, 문화, 인적 네트워크가 부족한 상황에서는 권력 중심에 접근하기 어렵다.
귀국은 퇴락한 영웅의 귀환일 수도, 권력 교체의 전략일 수도 있다. 그는 귀국 후 ‘독일 박사’라는 권위를 앞세워 국내 학계에서 신분 상승을 꾀한다. ‘배운 자’라는 상징을 통해 국내 대학 내에서 영향력을 확장한다. 그리고 자신이 이룬 권위의 위상에 기대어, 학생과 동료를 지배하려 한다.
하지만 그 지배는 철학적 진정성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권력관계의 산물이다. 자신의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 그는 권위적인 말투와 태도로 학생들을 휘어잡고, 토론을 ‘지배’의 장으로 바꾼다. 니체의 ‘초인’을 논하지만, 사실은 스스로 권력을 쥐고 있음을 과시하는 ‘가면’일 뿐이다.
4. 철학자의 가면: 자기기만과 자기과시
철학자가 되어야 할 이들은 본질적으로 자기 자신과의 대면이 필수다. 진실한 사유는 자기 의식의 고통과 마주하는 용기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독일 박사’ 교수 중 상당수는 이 고통을 회피한다. 대신 ‘철학자의 가면’을 쓴다.
이 가면은 ‘비판적 사유자’, ‘사회 비판가’, ‘진리 탐구자’의 이미지다. 그들은 자신을 그런 존재로 포장하며, 학생들 앞에서 우월적 태도를 보인다. “내가 독일 박사다”, “나는 한국 똥박사와 다르다”는 말투는 자기과시의 전형이다. 하지만 그 속내에는 자기기만이 숨어 있다. 진정한 철학자라면 자신이 모르는 것과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이들은 ‘독일 유학’이라는 외피 뒤에 숨으며, 본인의 지적 불안과 한계를 은폐한다.
5. 엘리트주의와 자기 파괴
이 현상은 개인적 문제를 넘어서 사회적 문제다. ‘독일 박사’가 권력을 쥐고, 대학 내 위계질서를 구축하며, ‘자기 과시’와 ‘권위 유지’에 집착할 때, 학문 공동체는 위태로워진다. 비판과 토론이 권력투쟁으로 변질되고, 학생들은 진정한 사유의 자유를 박탈당한다.
게다가 이 엘리트주의는 자기 파괴적이다. ‘나는 독일 박사’라는 권위를 앞세우면서도, 동시에 그 권위에 끊임없이 불안을 느낀다. 이 불안은 과시적 권위로 충족하려 하지만, 결국 ‘철학자의 정체성 붕괴’를 가져온다. 진정한 사유는 자기 부정에서 시작하는데, 그들은 그 과정을 두려워한다.
"철학과 권위, 그리고 진정성"
철학은 근본적으로 진리 탐구의 과정이며, 권위를 탐하는 과정이 아니다. 독일 유학이라는 경력은 단지 수단일 뿐, 목적이 될 수 없다. 만약 이 경력이 권위와 위선을 위한 도구가 된다면, 철학자는 자기 자신을 배반하는 셈이다.
우리는 ‘독일 박사’라는 타이틀이 본질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냉철히 성찰해야 한다. 그리고 진정한 철학적 사유가 권위와 권력의 게임에 휘둘리지 않도록 사회적 장치를 고민해야 한다. 학문 공동체는 투명한 평가와 공정한 경쟁, 그리고 무엇보다 ‘사유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
끝으로, 진정한 철학자는 자신의 한계와 불안을 직시하는 자다. 권위가 아니라 진실에 목말라하는 자다. ‘독일 박사’라는 타이틀 뒤에 숨는 대신, 스스로의 사유를 꾸준히 검증하고 의심하는 데서 철학자의 자격이 나온다. 그렇지 않다면, 그는 단지 허울 좋은 ‘속물’에 불과하다.
"그래서 너, 한달에 얼마 버는데?"
"독일 박사 따서, 한달에 1000만원은 버냐?"
"너 코인 나보다 잘해?"
"니 따위가, 코인하면서 돈만 좇아 사는 순수한 나를, 속물이라고 깔 자격이 있을까?"
"니가 존나 잘생기고, 몸매 좋고, 여자들이 좋아하고, 코인 차트가 머리에 그냥 보여서 돈이 벌리는게 보이는데도, 니가 독일 박사까지 따면서, 클럽도 못가보고, 헌팅도 못해보고, 국내서 교수질이나 하면서 세월 처먹고 그렇게 늙어 뒤지게 살거 같냐고"
"그게 뭐야? 씨발아, 사는 재미가 있냐?"
"돈, 여자, 섹스, 권력 빼면, 인간이, 그것도 남자가 뭘 위해 사는건데? 사슴이냐?"
"뭐든 니 눈에 안 보여서 못하는거지, 니가 세상을 거부한게 아니란다"
"존나 이새끼, 양자 물리학 좃도 모르네"
"뭔, 대화가 통해야 말을 하지, 씨발놈아"
"씨발, 독일 똥박사 줘도 안함"
"그거 한다고 돈 얼마나 번다고"
"니가 존나 못생기고, 여자한테 어필 못하고, 남성성 좃도 없는 열등감 덩어리라 그런거나 하는거다"
"독일 철학자들 봐라, 어디하나 문등이같이 생기지 않은 놈이 있나"
"다 존나 우울하게 살았으니, 철학자나 하면서, 존나 어두컴컴한 곳에서 존나, 쥐새끼같이 산거지"
"니체는 뭐 가정환경 좋았는줄 아냐? 집안 씹창나고 가족들 개 븅신이었지"
"그러니깐, 사회 비판하고, 신도 죽인거 아니겠냐"
"니가 존나 밝은 인간이었으면, 사업가를 했겠지, 씨발아"
"존나 밝은 태양 빛 놔두고, 왜 하수구에 기어 들어가 존나 암울하게 지냄?"
"그게 정신병이란거다, 개, 씨발아"
"약을 정기적으로 처먹으라고, 이 개새끼야"
"그게 니 본질이라고"
"존나 같잖네, 븅신, 문등이, 꼽추같은 새끼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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