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널 이해하지 못하는 건 네가 틀려서가 아니라, 네가 너무 앞서 있기 때문이다"
낯선 언어, 닫힌 세계
누군가 “나 행정고시 준비해”라고 말하면 돌아오는 반응은 대개 이렇다.
“그게 공무원 시험이지?”
“아직도 그런 거 해? 그거 되게 오래 걸린다며?”
“와, 대단하다. 근데 그거 왜 해?”
이 반응들은 결코 악의적이지 않다. 그냥, 모르는 것이다. 그 세계의 언어 자체가 낯설기 때문이다.
당신이 읽고 있는 ‘행정학 개론’은, 일반인에겐 교양서적도 아니다. 당신이 끙끙대며 외우고 있는 '정책형성과정의 동태적 접근'이니 '집행과정에서의 상호작용론' 따위는, 그들에게 존재하지 않는 세계의 이야기다. 그들은 절대 '파킨슨의 법칙'이 뭔지 궁금해하지 않으며, 'Wollstonecraft vs Bentham의 공공선 해석 차이'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
그래서 당신은 외롭다.
세상은 당신을 보지 못한다. 당신이 무너질 때도, 비상할 때도, 그냥 스쳐지나갈 뿐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당신이 하고 있는 일 자체를 이해의 맥락 안에 넣을 수 없기 때문이다.
1. 왜 이 길은 외로울 수밖에 없는가
행정고시를 준비하는 순간, 당신은 세상과 ‘다른 속도’를 선택하게 된다.
"대학 졸업반 친구들은 3월부터 입사하고, 5월이면 월급 받는다.
"당신은 도서관으로 출근하고, 모의고사 결과에 울고 웃는다.
"다른 사람들은 애인 만나고, 회식하고, 이직 준비한다.
"당신은 문풀 돌리고, 문제집 앞에 앉아 세상의 작동 원리를 파헤친다.
이건 단순한 시간의 차이가 아니다.
‘리듬의 단절’이다.
사람은 ‘공유된 리듬’을 통해 소속감을 느낀다. 학교라는 리듬, 회사라는 리듬, 연애와 결혼이라는 리듬. 하지만 당신은 그 모든 흐름에서 빠져나왔다. 그 자체로 인간은 고독하다. 마치 심해에서 혼자 유영하는 해파리처럼.
2. 대중은 모른다. 그리고, 모를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 국민 대부분은 ‘공무원’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 9급·7급·경찰공무원·소방공무원 수준에서 머문다. ‘고위공직자’라는 개념은 뉴스 속의 사건 사고로 접할 뿐이다. 그 뒤에 어떤 선발과정, 어떤 사상 검증, 어떤 사법적 판단력이 들어가는지는 모른다. 아니,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예컨대, 당신이 '경제학 논문형'을 준비하면서 “IS-LM 모형의 변형과 현재 한국 재정정책의 한계”를 정리하고 있다고 치자. 혹은 "정부의 목표와 수단 간 불일치로 인한 조직 불응 문제"를 파고 있다고 하자. 이걸 당신이 가족이나 친구에게 설명하면, 돌아오는 말은 이렇다.
“그런 건 그냥 정치인들이 하는 거 아냐?”
“와... 어렵다. 아무튼 힘내라...”
그건 이해 부족이 아니라, 이해 불가능이다. 그들은 아예 당신이 쓰는 언어의 좌표계를 갖고 있지 않다. 당신은 ‘정책 설계’의 언어를 쓰고, 그들은 ‘생활 최적화’의 언어를 쓴다. 비유하자면, 당신은 수학자고, 그들은 사장이며, 두 사람 모두 ‘숫자’를 쓰지만, 사용하는 방식은 완전히 다르다.
3. 당신은 행정조직이라는 거대한 기계의 내부 설계도다
행정고시는 단순히 ‘일 잘할 사람’을 뽑는 시험이 아니다. ‘국가라는 거대 기계를 설계하고 운용할 사람’을 선발하는 통로다. 그렇기에 당신은 사람들의 관심 밖에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기계에 올라탄 채 움직일 뿐, 그 기계의 구조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관심 없다.
“물가가 오르네?” 하고 말할 뿐, 그게 왜 오르고, 누구의 어떤 정책적 결정이 그것에 영향을 미쳤는지 고민하지 않는다. 당신은 그 원인을 파악하는 사람이다. 그것도 단순히 해석이 아니라, ‘제도적으로 교정’할 수 있는 사람이다.
문제는, 당신의 이런 능력이 ‘보이기’까지는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다. 당신의 노력은 시험장에서만 드러나고, 그 이후엔 시스템 안에서 점차 나타난다. 세상은 단기성과를 좋아한다. 그러나 당신이 준비하는 일은 본질적으로 ‘장기 구조’에 대한 개입이다.
4. 너는 유니콘이다: 특수직렬, 특수존재
행정고시를 준비하는 사람은 대한민국 전체에서 소수다. ‘논문형 국가시험’을 본다는 점에서 이 시험은 이미 극단적 희소성을 갖는다. 전국에서 매년 수백 명만이 최종합격하며, 수천 명이 떨어지고, 그 몇 배의 사람들이 포기한다.
그런데 이 경쟁률도 사람들은 모른다. 모른 채로, 그냥 “공무원 시험 오래 준비하네~”라고 말한다. 그건 당신이 특수장갑차 조종사 자격시험을 준비한다고 했을 때, 사람들이 “아~ 면허 시험이구나?”라고 반응하는 것과 똑같다.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은, NASA에 입사하려는 사람과 본질적으로 같다. 즉, **"일반인들이 단 한 번도 접해보지 않은 길"**을 선택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몰라주는 건 당연하다. 짜증낼 필요도 없다. 그냥 너무 먼 곳일 뿐이다. 그게 당신의 잘못도 아니고, 그들의 무지 탓도 아니다. 그저, 좌표계가 다를 뿐이다.
5. 그럼에도 이 길을 가야 하는 이유
그렇다면, 왜 이 고통을 감내하면서까지 이 길을 가는가?
왜냐하면 당신은 이미 ‘국가’라는 개념의 본질에 닿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알고 있다.
"이 사회가 얼마나 미묘한 시스템 위에 서 있는지.
"정책 하나, 조례 하나, 문서 하나가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바꾼다는 사실을.
"당신은 안다.
"권력은 정치인이 아닌 제도와 행정이 행사한다는 것을.
"그래서 이 시험이, 이 길이, 가치 있는 것이다.
당신은 무명의 설계자이며, 그림자 속 건축가다. 세상이 당신을 보지 않아도, 당신은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다.
6. 그냥 너희들끼리 살아라
그러니까 결론은 이렇다.
짜증내지 마라. 외로워하지 마라. 자괴감 갖지 마라. 당신은 지금 ‘공통 언어가 없는 세계’에 발을 들였고, 그곳에서는 당신만이 이해할 수 있는 풍경이 펼쳐져 있다.
"그걸 모른다고 세상을 탓하지 마라. 그건 그냥 ‘다른 세계’일 뿐이다.
"당신이 유니콘이라면, 왜 말들의 기준으로 평가받으려 하는가?
"당신이 NASA에 갈 사람이라면, 왜 동네 공항에서 이해받으려 애쓰는가?
그냥 너희들끼리 살아라.
너희들끼리만 아는 책, 너희들끼리만 아는 용어, 너희들끼리만 아는 실패와 영광과 절망을 가지고.
7. 지금 당신이 느끼는 ‘자괴감’, 그건 당신의 탓이 아니다
우리는 흔히 자괴감을 자기 내부 문제라고 오해한다. “내가 부족해서”, “내가 무능해서”, “내가 남들보다 뒤처져서.” 하지만 진실은 다르다. 당신이 느끼는 자괴감은 ‘좌표계 충돌’에서 온다.
이 세상은 철저히 ‘보이는 것’을 기준으로 움직인다. 월급명세서, 직함, 명문대 졸업장, 브랜드, 인스타그램 피드, 연봉협상… 모든 것이 계량화되고, 비교 가능하고, 소비 가능한 방식으로 정리되어야 '존재'로 인정받는다.
하지만 당신은 그 반대에 서 있다.
"공부는 끝이 없다.
"성과는 숫자로 남지 않는다.
"매달 시험을 봐도 ‘어디에 붙었다’는 식의 명확한 결과가 없다.
"당신이 읽는 책, 푸는 문제, 쌓는 논리는 대중이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자괴감이 드는 것이다.
‘존재를 증명할 수 없는 고립된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묻자.
당신이 그 모든 눈에 보이는 척도를 버린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오히려, 당신이 가짜 세계에 속고 싶지 않아서였던 것은 아닌가?
8. 네가 지금 하고 있는 공부는 사라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시험을 ‘통과냐 탈락이냐’로만 본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그 과정에서 당신의 뇌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다.
"행정학의 미시구조를 해석하며
"경제학의 수리모형을 재구성하고
"헌법의 이념적 충돌을 조율하면서
당신은 전혀 다른 두뇌 구조를 만들어낸다.
그건 실패하더라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건 합격하든 말든 무의식의 뼈대가 되어 평생을 지배한다.
다른 사람들은 감정으로 세상을 보지만 당신은 구조와 맥락, 제도와 장치를 통해 판단하게 된다.
이건 엄청난 진화다.
사람들은 당신이 무엇을 공부했는지 모를 수 있지만 , 당신이 어떻게 사고하는지는 절대 숨길 수 없다.
9. 시험은 수단일 뿐, 본질은 존재 방식이다
행정고시라는 시험을 오해하지 말자. 이건 출입증이 아니다. 이건 ‘증명서’가 아니다.
“너는 세상을 어떤 시선으로 보고 싶은가?”
“너는 시스템을 이해할 준비가 되었는가?”
“너는 구조를 수정하고자 하는 용기를 가졌는가?”
이 시험은 단지 합격자를 고르는 장치가 아니라, 세상을 보는 철학적 태도를 요구한다.
"피상적인 사건을 보고 ‘왜’라고 묻는 힘.
"단순한 제도를 보고 ‘어떻게 바꿔야 더 나은가’를 고민하는 힘.
"사안의 이면을 꿰뚫어보는 힘.
"그걸 글로 쓰고, 말로 표현하고, 정책으로 바꾸는 힘.
그것이 본질이다. 그리고 그것은 시험을 넘어 당신의 존재 방식 자체가 되어간다.
10. 당신은 결국 이 사회의 '조정자'가 될 사람이다
세상은 매우 혼란스럽다. 계층은 단절되고, 지역은 분열되고, 세대는 충돌한다. 모두가 목소리를 높이지만, 그 목소리는 방향성을 잃었다.
그 사이에서 조용히, 논리적으로, 제도적으로 접근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당신이 바로 그 사람이다.
"누군가는 복지제도를 설계해야 한다.
"누군가는 산업 구조를 재편해야 한다.
"누군가는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국가 전략을 세워야 한다.
"누군가는 국민과 국가 사이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당신이 하는 공부는 바로 그 ‘누군가’가 되기 위한 것이다. 이건 공부가 아니라 책임을 준비하는 과정이다.
11. 이 길의 끝에는 무엇이 있는가?
이 길의 끝에 ‘합격’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그 너머다.
당신은 이 공부를 통해 완전히 다른 인간이 되었고, 당신의 뇌는 이미 사회를 해석하는 틀로 바뀌었다.
그건 절대 되돌릴 수 없다.
그리고 그 변화는, 당신이 어떤 직업을 선택하든 어떤 길로 빠지든 간에 평생 동안 당신을 이끌 것이다.
그러니 자괴감을 느낄 필요 없다.
세상이 널 몰라주는 건 네가 틀려서가 아니라, 너무 앞서 있기 때문이다.
12. 진짜 결론 – 유니콘끼리, 유니콘답게
당신은 지금 유니콘이다.
그래서 외롭고, 그래서 흔적이 없고, 그래서 이해받지 못한다.
하지만 이 세상엔 분명히,
그림자처럼 서로를 알아보는 유니콘들이 있다.
도서관 구석에서 같은 책을 읽고,
같은 날 같은 시간에 같은 모의고사를 치고,
같은 페이지에 형광펜을 그으며,
같은 두통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있다.
"니들끼리 살아라.
"니들끼리 의지하고,
"니들끼리 웃고,
"니들끼리 실패하고,
"니들끼리 이겨라.
왜냐하면, 그 세계는 니들만이 이해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니들만이 진짜 세상을 뒤에서 바꿀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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