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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팬덤이라는 자발적 착취"





1. 감정노동을 사서 하는 사람들


스포츠 경기를 보다 보면 이상한 장면을 자주 목격한다.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지고 있다는 이유로 욕을 하고,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던지고, 심지어는 사람과 싸운다. 마치 그 팀의 구단주라도 되는 양, 혹은 경기 결과에 따라 자기 통장 잔고가 줄어드는 사람처럼 행동한다. 그런데 정작 현실을 들여다보면, 그 누구도 구단과 실제로 엮여 있지 않다. 가족도 아니고, 투자자도 아니고, 그저 "팬(fan)"이다. 그것도 스스로를 그렇게 규정해버린.

사람은 왜 이런 행동을 하는가? 자발적으로 고통을 감내하며, 의미도 없고 보상도 없는 일에 감정을 쏟아붓는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스스로를 하나의 팀에 귀속시키고, 그 팀이 패배하면 자신의 삶도 패배한 듯 행동한다. 마치 스포츠 팀의 결과가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해줄 것처럼 행동한다. 이러한 '감정의 투자'는 도대체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2. '팀 선택'이라는 종교의례



더 흥미로운 현상은 바로 이 '선택의 임의성'이다. 어떤 사람은 갑자기 "나 야구 한 번 좋아해보려 해"라며 팀을 정한다. 그리고 그 다음날부터는 자기 정체성을 그 팀과 동일시하며, 경기에 분노하고, 상대 팀을 혐오하며, 심판에게 욕설을 퍼붓는다. 고작 하루 전까지만 해도 야구 규칙도 모르던 이가, 갑자기 "그 팀은 원래 전력이 약했어" 따위의 말을 입에 담기 시작한다. 언제부터 스포츠 팬이 '빙의체'가 되었는가?

이는 마치 종교적 개종과 유사하다. 원래 아무 신앙도 없다가, 갑자기 특정 교파에 입문하고, 하루 만에 교리를 전도하며, 타인을 심판하려 드는 신생 열혈 신자와 다르지 않다. 이런 사람들은 애초에 팀이 승리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무언가에 속해 있다는 느낌, 소속감, 공동체 환상, 그런 것들을 원했을 뿐이다. 문제는 그 소속감이 너무도 손쉬운 방식으로 생성되며, 너무도 강력하게 사람의 감정을 구속해버린다는 데 있다.



3. 감정 이입과 자아 해체



스포츠 팬이라는 정체성은 아주 묘하다. 그 정체성은 철저히 타인의 행위—즉, 선수들의 플레이—에 기반한다. 자기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아니,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훈련하지 않고, 뛰지 않고, 결정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결과에는 무한한 감정적 연대감을 부여한다. 내가 골을 넣은 것도 아닌데 내가 외친다. "우리가 이겼다." 내가 삼진을 당한 것도 아닌데 "우리가 졌다"며 괴로워한다.

여기서 발생하는 모순은 자아의 해체다. 그 사람은 더 이상 '자기'가 아니라, 유니폼에 박힌 이름, 등번호, 연고지의 상징으로 살아간다. 어떤 이들은 선수 이름이 적힌 티셔츠를 입고, 깃발을 들고, 경기장에 가서 울고 웃는다. 이 모든 행위는 자신의 정체성을 외부에 위탁한 결과다. 나는 더 이상 나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그 팀을 위해, 그 팀의 운명에 따라 존재하는 감정적 대리인이다.



4. 승패에 따라 변하는 삶의 질



팀이 이기면 기분이 좋고, 팀이 지면 하루가 망한다. 이는 일반적인 현상처럼 여겨지지만, 사실은 정신적으로 매우 위험한 상태다. 자신의 기분, 삶의 만족도, 심지어는 사회적 태도까지가 타인의 결과에 종속되어 있는 상태. 누군가가 말한다. "오늘 기분이 왜 이렇게 안 좋지?" 그리고 누군가가 답한다. "어제 우리 팀 졌잖아." 이게 대체 정상적인 감정구조인가?

만약 이런 상태가 스포츠가 아닌 다른 영역에서 나타난다면 우리는 그것을 심리적 의존, 혹은 감정적 착취라고 부를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벗어날 것을 조언할 것이다. 그런데 스포츠 팬덤만은 유일하게 이 감정 착취를 미덕처럼 포장한다. 열정, 충성, 팬심 같은 이름으로.



5. 이기는 팀만 보면 되는 거 아니야?



결국 묻고 싶다. 이기는 팀을 보면 되지 않는가? 지금 당장 순위표를 보고 1위를 응원하면, 매일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승리에 열광하고, 우승에 환호하고, 지는 날은 적다. 그게 더 효율적이지 않은가?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내 팀은 약체지만 응원할 가치가 있어" 같은 말을 한다. 뭐가 가치가 있다는 말인가? 그 팀은 너를 모른다. 심지어 다음 시즌이 되면 선수도 바뀌고, 감독도 바뀌고, 연고지조차 바뀔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말한다. "이 팀이 나의 팀이야." 이건 실은 비이성적인 집착이거나, 고시생적 미련에 가깝다. 열 번 떨어졌는데도 여전히 행정고시를 준비하는 사람처럼, 10년 동안 하위권을 전전하는 팀을 놓지 못한다. 스스로 삶을 피폐하게 만들면서도 손을 놓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고통 속에서 정체성을 느끼기 때문이다.



6. 팬덤은 자본주의의 감정 장사다



이 모든 구조를 들여다보면, 결국 하나의 단순한 결론에 도달한다. 팬덤은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감정소비의 대표적인 형태다. 스포츠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이다. 이 산업은 당신에게 아무런 실질적 보상을 제공하지 않으면서, 당신의 시간, 감정, 에너지를 흡수해간다. 당신이 유니폼을 사고, 입장권을 사고, 중계를 보기 위해 유료 서비스를 구독하는 동안, 그들은 당신의 삶을 착취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이 '진심으로 좋아서' 한다고 믿고 있는 그 행위는 사실 누군가가 만들어낸 상품 구조 속에서 소비자가 되어버린 결과다. 당신은 주체가 아니다. 당신은 소비자다. 감정을 소비하는 소비자. 그리고 그 감정은 매 시즌, 매 이적 시장, 매 감독 교체 때마다 리셋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말한다. "우리는 한 팀이다."



7. 무지성적 집단행동의 위험성



더욱 우려스러운 건, 스포츠 팬덤은 종종 광신적 집단행동으로 발전한다는 점이다. 특정 팀에 대한 맹목적 애정은 반대 팀에 대한 증오로 자연스럽게 번진다. 경기장에서의 난동, 온라인에서의 욕설, 팬들 간의 폭력. 이건 단순한 오락이 아니다. 이건 이념화된 감정이다. 진영 논리로 굳어지기 시작한 스포츠는 더 이상 스포츠가 아니다. 그것은 유사종교이고, 유사정치이며, 가장 비생산적인 열광의 무대다.



8. 결론: 정체성은 타인이 아닌 스스로 만들어라



그렇다. 스포츠는 재미있을 수 있다. 관전의 묘미, 경기력의 미학, 작전의 계산, 승부의 긴장. 하지만 거기에 자신의 정체성을 묶고, 감정을 구속하고, 삶의 질을 거는 순간, 그것은 자기 파괴적인 선택이 된다. 당신은 선수가 아니다. 감독도 아니다. 구단주도 아니다. 당신은 그저 관중이다. 그저 보는 자일 뿐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서울 사람이라면, 무적 엘지를 모르면 안 되지"


"존나 승리, 존나 승리의 빨검, 존나 간지인거 모름"


"서울 살면서 삼성 응원하는건 얼마나 뇌병변인거임?"


"연고지의 개념 모름?"


"그럼 연고지 왜 만듦? 월드 시리즈로 통합하지"


"잠실 구장 존나 편하게 가니깐 응원하는거지, 내가 씨발거, 기아 타이거즈 응원하러 광주까지 가야겠냐?"


"삼성 연고지는 어디임? 관심도 없음"


"왜?"


"갈것도 아닌데, 뒤지든 말든 뭘 신경 씀?'


"내 팀임?"


"삼성이 서울로 두산하고 연고지 바꾸면 응원해주지"


"이게, 내가, 야구팀 고르는 원칙임"



"존난 너, 엘지는 존나 천하무적임"



"하지만, 가전제품은 삼성만 씀"


"애플 좃 구데기, 삼성 갤럭시, 냉장고, 티비,  컴퓨터 존나게 좋음"



"난 삼성 빠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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